소설리스트

노오력의 투수-16화 (16/325)

[16]

윤승완 코치가 말했다.

"지금 우리 팀이 4위인 건 알고 있지?"

"네."

"그런데 내가 생각하기에 우리 팀 전력이라면 1, 2위를 해도 이상하지 않다고 본다. 지금 순위는 우리 전력에 비하면 낮아."

이는 엄밀히 말해 동팔의 공이 컸다.

그가 한 게임에서 3이닝을 완전히 막고 있으니 상대는 공격할 기회를 잃게 됐다. 그리고 그 틈에 자신들이 점수를 내면 승리할 수 있다.

하지만 그러지 못하고 있는 것이 현실.

"지금 우리 팀의 강점은 너야. 하지만 동시에 문제점이기도 해. 왜 그러는지 아니?"

"네? 그건… 제가 너무 잘 던져서인가요?"

동팔의 말에 윤승완 코치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네가 너무 잘 던져. 그래서 우리 팀 다음 투수들이 남은 이닝을 버티기가 힘들다. 이미 상대팀 타자들은 너의 공에 적응을 하고 올라와. 그런데 상대하는 투수는 너보다 구위가 떨어져. 그럼 결과는 뻔하지."

따악~!!

그 말을 할 때에 마침 자기 팀의 투수가 안타를 맞는 소리가 들렸다.

윤승완 코치는 동팔에게 본론을 말했다.

"그러니까 동팔아. 다음 시합부터 선발이 아니라 3이닝부터 던지자. 선발도 좋지만… 한 이닝이라도 너보다 더 좋은 공을 던질 애들이 없어서 그래."

선발은 확고히 팀의 주축이라는 인정을 받는 자리였기에 투수가 제일 서고 싶어 하는 자리였다.

그중에 1, 2선발은 팀의 에이스만이 할 수 있는 자리였다.

그 다음은 마무리다.

한 이닝이지만 선발이나 셋업의 투수들보다 더 구위가 좋아야만 할 수 있는 자리.

불펜의 꽃이었다.

물론 마무리는 구위만 아니라 심적인 부담감을 이겨낼 강심장도 필요했다.

그러다보니 투수는 중간에 던지는 셋업 역할을 기피했다.

그나마 승리조라면 괜찮지만 추격조라 불리는 패전조에 속하면 자신의 실력이 다른 투수에 밀린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과 다를 바가 없었다.

그러니 투수들은 기를 쓰며 선발이 되거나 확실한 마무리 투수가 되도록 노력하고 또 노력한다.

선발인 선수가 셋업과 마무리 역할을 하게 된다는 것은 그만큼 자존심이 상할 수 있는 일이었다.

비록 그것이 본인의 구위가 너무 위력적이라 생긴 일이라 해도.

그래서 제안을 하는 윤승완 코치도 동팔이 화를 내거나 짜증을 낼까 봐 조마조마했다.

처음에 동팔도 그랬다.

선발에서 갑자기 셋업과 마무리를 동시에 해야 하는 것 때문에 순간 짜증이 났다.

하지만 지금 팀의 상황과 리그 우승을 위해선 이것이 더 나은 방법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리고 자신의 팀이 리그에서 우승을 해야 프로구단에서 더 이목을 집중하게 된다는 것도.

비록 가슴과 기분은 가라앉았지만 동팔은 최대한 이성적으로 행동하기 위해 노력했다.

"후우… 알겠습니다. 생각 같아선 완봉하고 싶지만… 규정 때문에 그럴 수도 없으니……."

"그렇지. 완봉은 네가 프로에 다시 들어가면 마음껏 해. 하지면 여기는 아마리그야. 준프로급이라고 해도 프로는 아니잖니."

다행히 동팔이 힘들어 하면서도 받아들이자 안도하는 윤승완 코치.

그의 예견대로 동팔 다음에 올라온 투수들은 2이닝을 제대로 막지 못하고 실점.

결국 그 경기는 동팔의 선전에도 불구하고 패배하고 말았다.

일주일 후.

다음 시합이 있기 하루 전에도 동팔은 레슨장에 나와서 훈련에 열중했다.

그리고 잠시 쉬면서 사장님과 대화를 하고 있었다.

"그래서 내일 경기부터 중간에 나와 끝까지 던지기로 한 거야?"

"네. 처음에는 왜 그분들이 잘 던지지 못해서 제가 셋업으로 뛰어야 하는지… 그 생각도 들었지만 아마잖아요. 저와 달리 일을 하시고, 겨우 시간을 내서 훈련과 시합을 하시니 못 한다고 말하는 것도 우스운 일이고……."

"그렇지. 프로는 야구로 돈을 벌지만 아마는 반대로 돈을 쓰니까."

시간을 투자할 수 있어야 훈련을 하고, 훈련을 한 만큼 실력이 오른다. 프로는 사실 하루 종일 야구에 시간을 투자할 수 있지만 사회인은 그럴 수가 없다.

삶에 치여 사는 것도 버거운 마당에 겨우 시간을 내려고 해도, 훈련보다 개인 운동에 가까운 스트레칭을 집에서 해야 한다.

공을 잡거나 배트를 휘두르는 것도 조심해야 하고, 제대로 하려면 운동장에는 나가야 하는데 혼자서 할 수 있는 훈련에 한계가 있다.

이렇게 동팔이 하는 것처럼 레슨장에 가는 것도 있지만, 비용이 만만치 않다.

그러니 아마 선수가 프로 선수보다 재능이 좋아도 결국 밀릴 수밖에 없는 이유가 여기에 있는 것이다.

"그래도 이 기회에 불펜을 해보는 것도 좋을 거야. 선발이랑 느낌이 다를 테니까. 당연히 마무리도 마찬가지고."

"에이. 저 고교 때 완봉을 얼마나 많이 했는데요."

그의 말에 사장님은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그건 네가 내일이 되어 봐야 알아. 셋업맨이 어떤 마음으로 올라가는지."

사장의 말대로 그날 시합에서 동팔은 확실히 알게 되었다.

'만루에서 등판이라니… 그것도 무사(無死)…….'

동팔은 3이닝을 시작하자마자 등판할 줄 알았다.

하지만 아니었다. 두 번째 이닝에서 던지던 투수를 계속 기용한 것이다.

결국 무사 만루라는 최악의 상황을 만들고 말았다.

그 상태에서 등판하자 동팔의 머릿속에 여러 생각이 휘감았다.

'내가 만든 주자도 아닌데… 내가 책임을 져야 하다니…….'

물론 실점을 해도 지금 나온 주자들의 득점은 자신의 책임이 아니었다. 주자를 보낸 투수의 책임이었다.

점수야 나겠지만 자신의 자책점이 아닌, 전에 던진 투수의 자책점으로 기록된다.

그렇다고 해서 부담감이 없는 건 아니었다.

'그래서 사장님이 올라와 봐야 안다고 하셨구나…….'

기록으론 자신의 책임이 아니라지만 단 한 번만 실수하면 점수가 났다.

자신의 잘못도 아닌데 왠지 억울한 느낌이 드는 동팔. 마치 강제로 작두 위에 선 느낌이었다.

조금이라도 실수하면 치명적인 결과가 나오는 것처럼.

선발로 나와 완봉을 했다면 내보내는 주자도 자신이 내보낸 것이라 점수가 나더라도 억울할 일이 없었다.

처음으로 셋업맨이 되어 올라오자 동팔은 어제 사장님이 한 말이 절로 이해가 되었다. 그리고 이런 상황을 만든 윤승완 코치의 의도도 이해했다.

'내가 프로에 입단해도 바로 선발이 된다는 보장은 없어. 이렇게 추격조든 승리조든 셋업맨부터 시작하게 될 거야. 그리고 이건… 나의 빠른 적응을 위한 훈련…….'

상대하는 타자의 실력은 비교할 수 없었다.

하지만 적어도 상황은 비슷하게 만들 수 있었다. 그리고 심리적인 것을 극복하면 남은 것은 실력뿐.

"후우……."

마운드에 올라 마음을 빠르게 다잡은 동팔은 전력을 다해 공을 뿌렸다.

휙~ 퍽!!

가운데를 통과하는 직구였지만 상대 타자는 치지 못했다.

전보다 더 빨리진 공. 그리고 아마리그에서 130 후반대의 속도는 광속구에 속했다.

"스트~라이크!!"

한가운데로 몰린 공을 치지 못해서인지 타자는 많이 아쉬워했다.

'아무리 빨라도 뻔한 공은 배팅볼에 불과해…….'

이전 투수와 달리 더 빠른 공을 상대하게 되었지만 기가 죽을 생각은 없었다. 첫 공은 지켜봤지만 다음 공은 마냥 지켜볼 생각도 없었다.

'이것도 스트라이크일 확률이 높아. 변화구라면 그냥 흘려보내면 되지만… 가능할까?'

상대는 변화구조차 스트라이크 존을 통과한다.

또 느린 것도 아니다. 빠른 변화구는 물론 느린 변화구도 던질 수 있기에 타자의 머릿속은 절로 복잡해졌다.

여러 구질의 공을 던질 수 있는 투수를 상대로 할 수 있는 것은 오직 자신의 임기응변.

즉, 순수한 타격 능력이었다.

동팔은 이미 타자의 생각을 읽고 있었는지 무사 만루에도 여유가 있었다.

그리고 태성이 보낸 사인을 읽고 그대로 공을 던졌다.

휙!

방금 전보다 확연히 느린 공.

이미 타격할 준비를 한 타자는 좋은 먹잇감을 발견한 사냥꾼처럼 매섭고 정확하게 배트를 휘둘렀다.

하지만 사냥감이라 생각한 공은 배트에 맞기 전, 급격하게 아래로 꺾였다.

휭~

"스트~라이크!!"

이번에도 어이없이 헛스윙을 한 타자.

이제 더 이상 물러설 수 없는 상황이 되었다.

'투 스트라이크… 그리고 노볼.'

철저히 자신에게 불리한 카운트.

반면 만루였기에 굳이 주자의 도루를 신경 쓸 필요가 없는 동팔은 오로지 타자에게만 집중하고 있었다.

굳이 스트라이크 존을 통과하는 공을 던질 필요가 없었다. 오히려 존을 벗어난 공을 던져 타자의 방망이를 이끌어내는 방법도 있었다. 동시에 범타를 유도하는 것도 있었지만 지금은 할 수 없었다.

'범타가 나오는 순간 점수가 나와. 우리 팀의 수비가 뛰어나긴 하지만, 선출인 지환이 형이 더그아웃에 들어갔으니 삼중살은 무리. 그리고 외야수의 어깨를 생각하면 외야 플라이는 곧 희생 플라이가 돼.'

여기서 지금 타자를 오직 삼진으로 잡아야만 실점이 없었다. 당연히 폭투를 할 경우, 3루 주자가 홈을 밟을 수 있기에 해서는 안 됐다.

이것은 태성도 잘 아는 사실. 그래서 이번에 동팔에게 요구하는 공은 상대적으로 안전한 공이었다.

태성의 사인을 받은 동팔은 그에 맞는 그립으로 공을 쥐었다. 그리고 다리를 올렸다 내리고, 빠르게 팔을 휘둘러 공을 뿌렸다.

'패스트 볼!!'

작정하고 힘을 잔뜩 준 팔. 그리고 빠르게 휘두른 팔을 보자 타자는 즉시 구질(球質)을 파악했다.

향하는 곳은 스트라이크 존. 가만히 있으면 자신은 그대로 삼진 아웃이었다.

휭~

타자는 당연히 공을 향해 빠르게 휘둘렀다.

낙차가 적은 패스트 볼이라면 적어도 컨텍하여 파울이라도 칠 수 있었다.

하지만 그것은 착각이었다.

휘잉~ 퍽!

동팔의 공은 타자의 방망이를 비웃듯이 궤적이 변했다.

직구처럼 날아온 공은 큰 변화를 이끌며 바깥쪽 아래로 빠졌다.

"스트라이크 아웃!"

심판의 외침에 완벽하게 속은 타자는 터덜터덜 걸어 나왔다. 그리고 옆에서 지켜본 다음 타자는 살짝 긴장하며 타석에 들어섰다.

'적어도 병살은 하지 말자. 병살은 하지 말자.'

확실히 병살보다 삼진을 당하는 것이 팀으로선 더 나았다. 적어도 만루 기회를 어떻게든 이어나갈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가만히 있다가 삼진을 당할 생각은 없었다. 어떻게든 이 기회에 점수를 내는 것이 중요했다.

하지만 경기는 타자의 의도대로 흘러가지 않았다.

따악!!

타자는 동팔의 공을 타격했다.

하지만 빗맞은 땅볼은 바로 2루수로 향했다. 2루수는 훈련한 대로 공을 잡은 뒤, 주자가 오기 전에 베이스를 밟고 익숙하게 1루로 송구했다.

"아웃!"

완벽한 병살타. 결국 동팔은 무사 만루에서 이닝을 완벽하게 지우고 더그아웃으로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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