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노오력의 투수-14화 (14/325)

[14]

"후……."

동팔은 호흡을 가다듬은 후, 타자를 슬쩍 봤다. 비록 방금 전에 완전히 속아 야구 방망이를 크게 휘둘렀지만 전혀 위축되지 않았다.

우랑우탄팀의 타자들처럼, 주눅 들지 않고 자세를 잡으며 이번에 오는 공을 기다렸다.

휙!

동팔은 직구와 같은 코스로 오는 하지만 중간에 속도가 급격히 떨어지는 공을 던졌다.

의도한 대로 타자의 방망이가 타이밍을 잡지 못했다. 그러나 직전에 방망이에 힘을 줄여 조금이나마 속도를 늦췄고, 그 차이가 이전과 다른 결과를 만들었다.

캉!

방망이에 맞은 공은 마운드 옆을 지나서 튕겨 나갔다.

턱.

다행히 수비하고 있던 선수 앞으로 갔기에 타자는 1루에서 아웃되었다.

"아……."

잘하면 안타였을 타구가 막히자 아쉬움을 뒤로하고 타자는 물러났다.

하지만 동팔은 전혀 그렇지 못했다.

'하마터면 첫 타석부터 출루했을지도 몰라.'

수비가 되어서 다행이지 아니었으면 처음으로 주자를 내보낼 뻔했다.

그 생각에 절로 긴장이 되었다.

어깨에 빠졌던 힘이 다시 들어왔다.

"아… 저거 안 좋은데……."

지켜보고 있던 윤승완 코치는 동팔의 변화를 알아차렸다. 하지만 나서지는 않았다.

'이것도 결국에 스스로 넘어야 할 산. 정신적인 안정을 빨리 찾을 수 있어야 이후에 올 더 큰 위기를 극복할 수 있어. 찰나의 순간과 한끝 차이가 중요한 야구에서 심리적인 흐름의 변화도 무시할 수 없으니…….'

걱정은 되었지만 그래도 한 번 이상은 거쳐야 할 관문이었다.

아무리 실력이 뛰어난 선수라도 어이없이 무너지는 이유 중 하나가 바로 심리적인 불안과 극도의 긴장이었다.

이것은 오랜 시간 본인이 직접 경험한 동시에 많이 목격했다.

과도한 긴장은 어깨를 굳게 만들었고, 그 차이는 바로 결과로 나타났다.

캉!!

"안타다!!"

"달려!!"

동팔의 한가운데로 몰린 실투를 타자가 놓치지 않고 쳐냈다. 단타였지만 안타를 맞자 동팔은 더 흔들리기 시작했다.

이후로 두 번의 안타를 더 맞아서 만루 상황이 되었다.

캉!

하지만 이후 상대팀의 병살타 덕분에 점수를 내지 않고 이닝을 마무리할 수 있었다.

"하아……."

가까스로 이닝을 마무리하게 된 동팔은 절로 깊은 한숨이 튀어 나왔다.

제일 힘든 사람이 그라는 것을 알기에 우랑우탄팀의 선수들도 뭐라 하지 않고 타석에 들어설 준비를 했다.

동팔의 뒤로 윤승완 코치가 와서 말했다.

"왜 이렇게 굳었어? 생각보다 힘들지?"

"네… 쉽지 않네요. 하지만……."

"하지만?"

"못 할 것도 없어요. 처음엔 긴장했지만 지금은 괜찮습니다. 간만에 제대로 승부하는 기분이라 어색했을 뿐입니다. 청룡기 때 생각하면 이 정도는 아무것도 아니죠."

동팔의 말에 윤승완 코치가 물었다.

"그래서 병살타 유도하려고 처음에 포심 패스트 볼 던지고, 그 다음에 투심 패스트 볼 던진 거야?"

"네. 같은 포심으로 생각하게 만들려고 그랬습니다. 결정구인 투심을 던질 때 밋밋하게 보이려고요."

방금 병살타는 우연히 그리고 동팔에게 운이 좋아서 생긴 것이 아니었다. 처음부터 타자를 상대할 때 의도하고 유도한 플레이였다.

"하긴. 포심은 수직 차이가 크지만 투심은 수평차이가 크니까. 그리고 긴장한 네 모습을 보니 상대는 변화가 크지 않아 실투라고 때렸지만… 오히려 예상한 대로 안 가는 바람에 잘못 맞췄지. 결과는 보는 대로 병살. 잘했다. 그래도 역시 선수 경험이 있는 게 도움이 되었구나."

"뭐, 그렇죠. 종종 힘들 때 이렇게 처리했거든요. 그때도 9할 이상 성공했습니다. 지금은 모르겠지만."

이젠 상대도 달랐고, 자신의 상태도 달랐다. 그러니 이전처럼 거의 성공에 확신하며 공을 던지진 못했다.

지금 동팔이 믿는 것은 자신의 제구력. 그리고 아마추어인 상대의 미숙함이었다.

처음 마운드에 올라 흔들렸던 순간과 달리, 지금의 동팔의 눈빛은 밝게 타오르고 있었다.

"안타는 이걸로 끝입니다. 다음부턴 절대 출루시킬 생각… 없습니다."

동팔은 자신의 의도대로 두 이닝을 마무리 지었다.

두 번째 이닝은 방심하고 있던 타자를 상대로 전부 삼구삼진이나 땅볼로 처리했다.

그 다음 이닝은 단단히 준비하고 올라온 타자들도 역시 삼진과 플라이 볼로 마무리했다.

동팔이 3이닝을 무실점으로 막자 태성이 더그아웃에서 말했다.

"3이닝 끝났네. 규정 상… 이젠 동팔이 나오고 자리 이동도 하자. 지환이 유격수 자리로 올라가고, 영민이가 마운드에 올라가. 그리고 타자들. 준비해. 투수가 막아도 타자가 점수를 내야 승리하는 건 다 알고 있잖아."

태성의 말에 선수들은 익숙하게 각자 할 일을 했다. 다만 이미 이번 시합에서 자신이 한 일을 마친 동팔만은 편하게 있을 수 있었다.

그러나 다른 사람들이 열심히 하는데 혼자만 가만히 있으려니 괜히 미안했다.

그래서 동팔은 윤승완 코치에게 물어보았다.

"코치님. 혹시 타격 연습도 봐주실 수 있나요?"

"타격? 전문은 아니지만… 기본은 봐줄 수 있지."

"그럼 부탁드립니다. 투수만 해서 타격의 기본을 전혀 모르거든요."

동팔의 말에 윤승완 코치는 처음에 말리려다가 생각을 바꿨다.

"열심히 던졌으니 쉬는 것도 좋지만 생각보다 많이 던진 것도 아니니 연습은 해도 되겠지. 그런데 한국에선 투수가 타석에 들어설 일은 거의 없는데… 괜찮겠어?"

그의 물음에 동팔이 말했다.

"네. 전 한국에 만족할 생각 없습니다."

이제는 목표를 당차게 말하는 동팔.

그의 대답에 윤승완 코치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렇지. 남자라면 또 야구선수라면 메이저리그 정도는 노려봐야지. 동팔이라면 충분히 가능할 일이니까. 메이저리그는 투수가 9번 타석에 들어서니 미리 연습하는 것도 좋을 거야."

윤승완 코치는 야구 배트 하나를 가져와 직접 잡는 법을 보여주었다.

"몽둥이 잡듯이 손바닥으로 잡으면 안 돼. 이렇게… 손가락으로 시작해서 잡아야 하고, 마지막을 보면 여기 손가락마디가 전부 일직선이 된 거 보이지? 이렇게 해서 잡아야 스윙이 편하고 컨트롤하기 쉬워."

그리곤 그는 직접 배트를 천천히 휘둘렀다.

"보이지? 아래쪽을 잡은 팔이 벌어지지 않고 몸에 딱 붙어 있는 거. 이게 되어야 공을 때렸을 때 밀리지 않고 힘을 실을 수 있거든. 또 휘두를 때는 공을 던질 때처럼 어깨에 힘이 많이 들어가면 안 되고."

휘두르는 자세를 제대로 보여준 후 윤승완 코치는 빠르게 휘둘렀다.

휭~!

빠르고 간결하게 휘둘린 야구 방망이는 묵직한 바람을 만들어냈다.

"처음부터 무리할 필요 없으니까 자세만 잡는다 생각하고 천천히 해. 지금은 기본만 하지만… 나중에 너한테 편한 자세가 따로 있어. 그걸 찾아가는 과정이니 기본자세에 너무 메일 필요도 없고."

"네. 알겠습니다."

그 이후로 경기가 끝날 때까지 동팔은 천천히 계속 배트를 휘둘렀다.

그날 경기는 우랑우탄팀의 승리로 마무리되었다.

그리고 동팔은 그날도 레슨장으로 향했다.

그날 밤.

동팔은 전혀 몰랐지만 그에게 있어 아주 중요한 만남이 이루어지고 있었다.

"오랜만에 뵙겠습니다."

"그러게. 오랜만에 보네. 신지예 기자. 갑자기 불러서 미안해."

"미안하시긴요. 좋은 기사거리 있다고 하시니 제가 가만히 있을 수 있나요. 오히려 제가 감사하죠."

윤승완은 지금 어느 여성과 만나고 있었다. 그는 자신이 한 말대로 기자였다.

기자는 새로운 소식과 정보. 그리고 그 정보는 많은 사람의 관심을 끌 만한 기삿거리면 더욱 좋아했다.

윤승완은 은퇴한 지 2년이 되었고, 이젠 프로구단의 코치도 그만두었다. 그래도 그가 지닌 이름값은 여전했고, 그의 야구 인맥도 무시할 수 없었다.

'지금이야 약간 일이 있어서 나오셨지만… 조만간 다시 복귀하실 가능성이 높으셔. 그러니 미리 친해져야지.'

그것이 윤승완과 친하게 지내는 전부는 아니었지만 중요한 이유 중 하나였다.

윤승완의 경우 인격적으로도 훌륭했기에 기자가 아니더라도 친해지고 싶은 사람인 것도 주효했다.

"그런데… 좋은 기사거리라고 말씀하셨는데 어느 구단 이야기예요? 혹시 은밀하게 일어난 비리?"

수뇌부의 비리만큼 사람들의 이목을 끌 만한 주제는 톱스타의 스캔들만큼 많지 않았다. 그리고 그 정보의 출처로 윤승완의 이름이 붙는다면 확실히 특종.

"신 기자. 아쉽지만 그렇게 거창한 건 아니야. 지금은 '에게?' 할 정도로 시시한 일일 수 있어. 하지만 나중에 시간이 지나면 분명히 특종이 될 이야기지."

"어머, 그런 게 있어요? 전혀 짐작이 안 가는데요?"

"그럼 힌트 하나만 줄게. 강동팔이라고 알아?"

윤승완의 말에 신지예 기자는 바로 답이 나왔다.

"알죠. 스포스 신문 기자로 좀 있으면 종종 듣는 이름이잖아요. 150 이상의 강속구를 뿌리고, 절묘한 커브와 제구력으로 청룡기 우승을 만들어낸 괴물급 고교 투수. 하지만 혹사로 인해 어깨와 등 근육의 부상과 파열로 재활했지만 120 이상 던지지 못하게 되자 방출된 선수잖아요. 그래서 본격적으로 고교생 투수의 경우 130개 이상 던지지 못하게 하는 규정을 만든 주인공 아닌가요?"

"정확해. 역시 신 기자야. 유능하다니까?"

"유능하다니요. 종종 듣다보니 기억하는 거죠. 그런데 강동팔 선수는 왜요?"

그녀의 물음에 윤승완은 그녀의 눈을 진지하게 바라보며 말했다.

"그 강동팔이 재기하고 있다면… 믿을 수 있겠어?"

"네?!"

윤승완의 말에 신지예 기자는 처음에 자신이 제대로 들었나 싶었다.

"그게 말이 돼요? 스무 살에 재활해도 실패했고, 그때 의학적으로 완전히 끝났다고 결론이 난 선수잖아요. 그리고 간간히 들려온 사회인 야구에서도 120 이상은 던지지 못했고… 변화구의 제구력으로 2부 리그에서 의리로 뛴다는 것까진 알고 있어요."

그녀의 말에 윤승완은 제대로 감탄했다.

"역시 신 기자야. 그것까지 알고 있었어? 그건 관계된 사람이 아니면 모르는 건데. 스포츠 기자가 사회인 야구에 관심을 가지는 경우는 많지 않으니까."

"말씀은 감사한데요… 솔직히 사회인 야구가 그리 각광받는 것도 아니고, 일반 사람들의 이목을 끌 주제는 안 되잖아요."

"그렇긴 하지. 그런데 내가 할 말은 그게 아니고. 그 이후의 일은 알고 있어? 정확히 말하면 올해의 변화 말이야."

그의 물음에 신 기자는 당연하다는 듯이 말했다.

"방출된 다음 현역으로 군대를 갔다 오고, 남는 시간이 고작해야 2년에서 3년이에요. 그걸로 어떤 변화가 생기겠어요? 그나마 야구를 포기하지 않고, 계속한다? 그건 인간극장에나 나오면 좋을 소재이지 않을까요?"

그러자 윤승완이 자신의 스마트 폰을 꺼내며 말했다.

"고작 그런 일이라면 다른 사람한테 말해서 제보했지. 그게 아니니까 내가 신 기자를 따로 부른 거 아냐. 이렇게 내가 먹을 것도 사주면서."

그가 스마트 폰에 저장된 영상 하나를 보여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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