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
"다행히 투구 폼을 고칠 필요는 없을 것 같아. 동작이 거의 일치해. 유일하게 걸리는 것이 있다면 팔의 미묘한 각도인데… 한국에선 문제가 없겠지만 일본에 가게 되면 분명히 파악당할 거다. 걔네들 현미경 분석은 장난 아니거든."
"그런가요? 하지만 그건 코스를 조절하려다 보니 생긴 거라… 어떻게 하면 좋죠? 전부 하나로 맞출까요?"
동팔의 질문에 승완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팔의 각도는 굳이 맞출 필요 없어. 같은 각도라도 코스를 다르게 던질 수 있다면 그리고 다른 각도라도 같은 코스를 던질 수 있다면 더 좋지. 상대방이 전혀 예측할 수 없게 되니까. 그래서 그립은 어떻게 쥐고 던지니? 먼저 슬라이더부터."
동팔이 자신이 어떻게 쥐고 던지는지 보이자 승완은 자신의 노하우를 하나씩 전수해주었다.
"이미 알고 있겠지만… 변화구를 던질 때 특별히 정해진 방법은 없어. 대신 긁는 방향을 어떻게 할 것이며, 어떻게 해야 공의 회전을 제대로 주는지가 중요하지.
대표적인 방법이 있긴 하지만 사람마다 손가락의 길이나 힘이 다 다르니… 천편일률적으로 같은 방법으로 쥘 필요가 없고. 당연히 슬라이더를 비롯한 변화구를 던질 때에도 쥐는 방법을 다르게 할 수 있지. 나 같으면 같은 커브라도 두 개 정도 쥐는 법이 있어. 당연히 던지는 모습은 조금 다르지만 같은 코스로 가.
"
말을 마친 윤승완은 자신이 직접 마운드에 올랐다.
그리고 자신이 쥐고 있는 것을 보여준 다음 공을 던졌다.
"이것이 첫 번째 파지법."
휙~! 퍽.
"그리고 이것이 두 번째 파지법."
휙~! 퍽.
그의 말대로 던지는 동작은 조금 달랐다.
하지만 분명히 코스는 같았다.
윤승완이 마운드에서 내려오면서 말했다.
"참고로 내가 이걸로 먹고살았다. 타자 입장에선 투수가 어떤 공을 던질지 모르게 하는 것이 제일 중요하거든. 속도가 빠르면 생각할 시간과 구질을 판단할 시간이 줄어드니 유리하고, 자신 있는 주력구가 많으면 그것도 유리. 그리고 방금 전처럼 주력구가 하나밖에 없어도 투구 동작이 다르면 헛갈리게 할 수 있기에 유리해."
"아, 그렇군요. 그동안 코스에만 신경 써서 투구 동작은 무조건 같도록 하는 데에만 신경을 썼는데……."
"그것도 좋은 선택이야. 지금 메이저리그에서 유명한 일본 투수도 같은 동작에 다양한 변화구를 던져. 그래서 날고 긴다는 메이저리그의 강타자들도 속수무책으로 당하지. 물론 그 와중에도 치는 사람은 치지만."
그가 자리에 앉은 후 이어 말했다.
"그러니 이젠 코스의 제구도 좋지만 새로 익히게 될 파지법에 익숙해지는 것이 우선이야. 그래야만 프로에서 더 오래 그리고 더 강하게 살아남을 수 있다. 어차피 넌 여기에 만족할 생각이 없잖니."
"네."
동팔은 그의 말에 다시 각오를 다지고는 마운드에 올랐다. 그리고는 방금 전에 새로 알게 된 파지법으로 공을 뿌렸다.
캉!
하지만 익숙지 않아 첫 번째 고리도 통과하지 못했다.
그러자 윤승온 투수 코치가 말했다.
"처음이니까 욕심내지 마. 천천히, 제대로 던진다 생각해. 많이 던지는 것보다 정확하게 던지는 것이 우선으로."
"네."
그의 코치에 동팔은 다시 마음을 가다듬고 익숙하지 않은 파지법으로 다시 공을 던졌다.
슉~
캉!
이번에는 첫 고리를 통과하고 두 번째 고리에 맞아서 튕겨 나갔다.
"잘했어. 방금 말한 대로 천천히. 그리고 제대로."
윤승완 투수 코치는 말을 하면서도 놀란 가슴을 진정시키기가 어려웠다.
'고작 두 번째 던지고 첫 고리를 통과해? 그리고 두 번째는 맞춰? 고작 두 번 만에?'
투구 품을 바꾸는 것은 어려웠다.
이미 익숙한 동작과 습관을 바꾸는 것이 어려운 것과 같은 이치였다. 동시에 생소한 쥐는 법으로 공을 던지는 것도 마찬가지다.
적어도 익숙해지는데 시간이 걸리고, 익숙한 것을 넘어 능숙하기까지 많은 노력을 필요로 했다.
하지만 동팔이 처음부터 익숙하게 던지자 윤승완 투수는 감탄과 동시에 질투가 밀려 올라왔다.
'나도 동팔이처럼, 아니 절반의 재능만 있었어도…….'
그랬다면 현역에서 은퇴하기 전에 더 많고 높은 개인 기록을 갱신했을지도 몰랐고, 은퇴 시기도 조금은 늦춰졌을 것이다.
하지만 동팔이 하나하나 집중해서 공을 던지는 모습을 보자 질투심은 이내 사라져 갔다.
'혹사로 인해 어깨와 등 근육 파열. 그리고 재활 실패와 동시에 방출. 하지만 이전부터 꾸준히 노력했고, 지금은 회복해서 다시 재기(再起)…….'
비록 동팔이 자신보다 어렸지만 한 사람으로서 존경심이 들지 않을 수가 없었다.
'과연 자신이라면 이보다 더 뛰어난 재능을 가져도 다시 일어설 수 있을까?' 생각하면 결과는 회의적이었다.
무엇보다 윤승완 코치의 마음을 끄는 것은 동팔이 자신의 조언에 순순히 따른다는 것이다.
마침 사장이 옆에 와서 말했다.
"동팔이, 가르치는 맛이 나는 아이죠? 스펀지처럼 잘 빨아들이니까."
"네……."
사장 말대로였다.
선수가 아닌, 스승으로 보면 이렇게 탐이 나는 제자는 없었다.
뛰어난 재능을 지닌 인재가 노력을 게을리하지 않는다. 거기에 혹사를 당했다가 날개가 꺾였다. 그리고 다시 재기하고 있기에 의지도 강하다.
그걸 생각하면 절로 몸에 전율이 일어났다. 그러했기에 윤승완 코치는 보고 싶었다.
"동팔이… 어디까지 갈 수 있을까요?"
"그야… 모르죠."
정말로 궁금했다.
그리고 동팔이 최종적으로 이룩하게 될 업적과, 그 업적을 세우는 데 자신이 일조할 수 있다는 것에 저절로 심장이 뛰었다.
정작 동팔은 계속해서 두 번째 고리를 통과하지 못해 아쉬워만 하고 있었다.
지금 자신이 어떤 기대를 받는지는 상상도 못한 채로.
그렇게 천천히, 제대로 공을 던지는 횟수가 150을 넘어가자 동팔의 팔에 신호가 왔다.
"후우……."
처음의 가벼운 느낌과 달리 팔이 부어올랐고, 조금씩 떨려 왔다.
그러자 지켜보던 윤승완 코치가 말했다.
"동팔아. 이제 그만 던져. 무리하고 있잖아."
그의 말에 동팔이 말했다.
"아뇨. 괜찮습니다. 이거에 두 배를 던져도 멀쩡해요."
하지만 동팔의 말에 그는 다시 한 번 말했다.
"무슨 소리야. 괜찮다니. 이미 몸은 비명을 지르고 있잖아. 덜덜 떨리는 손은 어떻게 할 거야?"
그는 많은 경험으로 동팔이 어떤 상태인지 바로 파악했다.
그것은 하루에 던질 수 있는 양보다 더 많이 던졌을 때 나타나는 증상 중 하나였다.
그러니 그는 동팔의 팔을 보호하기 위해서라도 무조건 말려야 했다.
"정말 괜찮……."
"괜찮긴 뭐가 괜찮아!! 그렇게 당해도 정신 못 차려?!"
동팔의 말에 윤승완 코치는 화를 내면서까지 막았다.
동팔은 하는 수 없이 쥐고 있던 공을 놓아야 했다.
'하긴… 악마와의 계약을 말하면 누가 믿겠어…….'
실제로도 괜찮았지만 설득할 자신이 없었다.
무엇보다 자신을 아끼는 마음이니 오히려 감사하고 고마워해야 했다.
이전의 자신을 가르친 감독은 오히려 자신의 경력을 위해 동팔을 희생시키지 않았던가.
"알겠습니다."
"잘 생각했어. 너무 조급해하지 마. 넌 분명히 다시 프로에 들어갈 수 있으니까."
"네……."
하지만 훈련을 그만두는 건 그의 앞에서만 해당하는 이야기였다.
집에 돌아온 동팔은 다시 혼자만의 훈련을 계속해 나갔다.
꽈드드드득.
강하게 당긴 고무줄이 비명을 질렀다.
지금 동팔이 하고 있는 것은 두껍고 긴 고무줄을 잡아 앞으로 당기는 것.
당기는 방향은 공을 던지는 방향과 완전히 일치했다.
그냥 힘만 기르기 위해 당기지 않고, 순간적으로 높은 속도를 내기 위해서 빠르고 강하게 당겼다.
마무리할 때는 힘을 빼고 자연스럽게 몸을 뒤로 돌렸다.
"후우… 후우……."
이전에는 경험이 없는 민희였기에 그녀의 앞에서 200개 이상을 던졌다. 하지만 경험이 많은 윤승완 코치의 눈을 속일 수 없었다.
그래도 동팔은 훈련을 멈추지 않고 자신을 계속 몰아붙였다.
고무줄뿐만 아니라 자신의 팔과 허리, 어깨, 등도 마찬가지였다.
피가 너무 돌아서 부풀어 올랐다.
입에 단내가 난 지는 오래.
방 안은 자신의 땀 냄새로 채워졌고, 숨을 쉬는 것도 버거웠다.
그런 상태까지 훈련을 한 동팔이 멈추는 때는 정해져 있었다.
동팔을 당기고 있던 고무줄을 놓으며 말했다.
"여기…까지인가……?"
이전의 경험으로 자신의 한계가 어디까지인지와 한계 이상을 넘었을 때의 감각도 알고 있었다.
동팔이 훈련을 멈추는 때는 바로 그 한계 직전.
이 이상 훈련을 하면 근육이 파열되고, 심하면 끊어질 수 있었다.
그러니 안전하게, 다시는 비극이 일어나지 않도록 미리 조심해야 했다.
동팔은 힘도 들어가지 않는 몸으로 겨우 샤워한 다음, 기어가듯이 자신의 방에 덮어둔 이불 속으로 들어갔다.
'악마가 준 능력이 어디까지인지 알 수가 없어. 그래도 한계 직전까지는 하루 만에 회복되는 것이 확실하니까…….'
그것이면 충분했다.
보통 다른 사람이라면 자신과 같이 과도한 훈련을 했을 때, 적어도 사흘 이상의 휴식 시간을 필요로 했다.
하지만 자신은 하룻밤이면 충분했다.
그것만으로 자신은 다른 사람들보다 몇 배 많은 훈련을 할 수 있었고, 그만큼 실력이 회복되고 향상되는 시간은 줄어들 테니까.
기다리던 1부 리그의 첫 시합이 있는 날.
동팔은 우랑우탄의 다른 선수들과 몸을 푼 다음, 미리 마련된 더그아웃으로 가서 상태를 봤다.
"몸은 어때?"
민철의 물음에 동팔이 답했다.
"괜찮아요. 대신 좀 긴장이 돼서……."
"하긴. 1부 리그 게임은 처음이니까. 분위기는 한두 게임하다 보면 적응될 거야. 적어도 실력으로 널 이길 투수는 거의 없으니까."
그리고 민철은 동팔에게 주의사항을 줬다.
"전에 말했지만 우리 리그에서 선출(선수 출신)의 선수 등록은 3명이 한계야. 그리고 경기에 나설 수 있는 사람은 동시 2명이 한계. 그리고 포수 제외하고 한 선수가 3이닝 이상 뛸 수 없어. 알지?"
"네. 제가 오늘 3이닝만 틀어막으면 되는 거잖아요."
"그렇지. 생각 같아선 전부 던지게 하고 싶지만… 그러면 뛰어난 선출이 리그를 씹어 먹게 되니까 미연에 방지하려고 한 규정이야. 정도의 차이만 있지, 대부분의 1부 리그에선 비슷한 규정이 있어. 2부 리그의 경우 선출이 잘 안 가니 유명무실하거나 없는 곳도 있지만… 1부 리그는 엄격하거든. 그럼 오늘 게임 잘 부탁한다. 가자."
"네."
오늘 시합은 자신들이 먼저 수비하게 되었다.
리그 첫 시합이자 동팔도 처음으로 하는 1부 리그의 시합이라 절로 어깨에 힘이 들어갔다. 하지만 고교생 때와 프로에서 겪은 경험을 떠올리며 부담감을 덜어냈다.
'가볍게 생각하자. 전과 다른 분위기지만… 그래도 못 할 건 없어…….'
그 생각을 하며 동팔은 공을 손에 쥐고 민철이 주는 사인의 공을 던질 준비를 했다.
이번에 공은 느린 변화구. 타자 바깥쪽의 커브였다.
슥~
휙~!!
상대팀의 첫 타자는 방망이를 크게 휘둘렀지만 맞지 않았다.
"스트~라이크!!"
우렁찬 심판의 소리와 함께 동팔은 공을 다시 받고, 다음에 던질 공을 준비했다. 이번에 들어온 사인은 아래쪽 체인지 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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