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
"우리만 제대로 했으면 1부 리그에 갈 수 있었는데. 그라믄 진짜 제대로 된 시합을 할 틴디 말이여."
비슷한 말은 이전부터 들어왔다.
하지만 1부 리그로 가는 건 생각하지 않고 있었다. 단순히 자신을 치켜세워 주는 말이라 생각했다.
그리고 설령 진심이라 해도, 괜히 프로에 가까워지는 것 같아 꺼렸다. 부질없는 희망은 오히려 사람을 죽어가게 만든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젠 조금은 알 것 같은 동팔.
그래서 동팔은 2부 리그와 달리, 제대로 된 변화구를 던졌다.
휙~!
'포크? 아니 커브? 어쨌건 아래로 꺾이는 변화구.'
투구 폼은 전혀 바뀌지 않았지만 공의 움직임은 달랐다.
방금 전과 다른 궤적에 타자는 어떤 공인지 짐작을 하고 방망이를 휘둘렀다.
휙! 퍽!
"스트~라이크!!"
타자의 예상은 맞았다.
다만 예상과 다른 점이 있어서 치지는 못했다.
"들어서 알 곤 있었지만… 정말 제대로 꺾이네……."
이제 그에게 남은 기회는 단 한 번뿐.
그가 잠시 타임을 외쳐 멈추더니 자신의 가방에서 무언가를 꺼냈다. 그리고 손잡이 끝에 무언가를 걸었다.
그로인해 자연스럽게 방망이를 짧게 잡게 되었다.
그 모습을 보자 타격 연습을 하던 다른 타자들이 말했다.
"쟤 장타 포기했다."
"무조건 정확한 컨택으로 가겠다… 그 말이잖아?"
휘둘리는 부분이 짧을수록 정확한 타격이 가능했다.
단순한 지렛대의 원리.
비록 아주 조그마한 차이지만 찰나의 순간을 잡기 위해선 그 작은 차이라도 어떻게든 사용하는 것이 좋았다.
이는 동팔도 잘 아는 사실.
이번에 던지는 공은 정해졌다.
동팔은 자세를 잡고, 익숙한 동작으로 매끄럽게 공을 던졌다.
'이번에도 동일한 자세.'
공은 여전히 빨라 어떤 공인지 파악할 시간은 짧있다.
그래도 방금 전보다 조금은 느렸기에 공이 더 선명하게 보였다.
붕~!
타자는 동팔의 공이 올 곳을 향해 방망이를 휘둘렀다.
짧게 잡았기에 더 정확하게.
하지만 동팔의 공은 타자의 바깥쪽으로 낮게 빠져나갔다.
'읍!! 슬라이더?'
변화구의 이름대로 빠르게 왔다가 미끄러지듯이 빠져나오는 공. 하지만 방망이를 멈추기엔 늦었다.
남은 방법은 이대로 공을 향해 따라가는 것.
다행히 방망이를 조금 더 짧게 잡았기에 따라가는 것은 무리가 없었다.
반면 안 좋은 점도 있었다. 그 단점은 치명적이었다.
휭~ 퍽!!
"스트~라이크!!"
타자의 방망이는 동팔의 공을 치지 못했다.
방망이는 따라 갔지만 길이가 따라가지 못했다.
그 모습을 보며 준비하고 있던 윤승완 투수가 말했다.
"짧게 잡은 걸 보고는 슬라이더를 던졌어. 만약 커브나 체인지업이었다면 맞을 가능성이 높다고 판단한 걸 거다."
그의 말에 옆에서 같이 준비하던 태성이 말했다.
"바꿔 말해 슬라이더를 꺾는데 그만큼 자신이 있다는 말이겠죠. 결과는 보는 대로고."
"그렇지. 바로 눈앞에 있지."
윤승완은 글러브를 고쳐 낀 다음 이어 말했다.
"그리고 누구한테 시켜서 그것 좀 가져오라고 해라."
"그거요? 어떤 거죠?"
"여기 리그 규정. 하나 정도는 비치해놓고 있을 거 아냐?"
"그야 그렇죠. 어디 있는지 모르지만… 그럼 이번에 던지고 나서 제가 애들을 시켜서 준비시키겠습니다."
"그래라."
대화는 그것으로 끝.
5번 던지면 투수가 바뀐다. 그리고 두 투수를 상대한 타자는 다음 타자와 교대한다.
그래서 동팔과 윤승완 투수는 교대를 했다. 덤으로 짝을 맞출 포수도 마찬가지.
마운드에 오른 윤승완 투수는 방금 전 던진 동팔의 공을 떠올리며 생각했다.
'어리다고 해야 할지, 자신만만하다고 해야 할지… 다음 타자들이 전부 보고 있는데 전력으로 던져? 연습할 때도 그렇지만… 실전에서도?'
보는 것은 상대적이다.
속도도 중요하지만 처음부터 빠른 공을 던지다, 느린 공을 던지면 더 느리게 보인다. 반대로 느린공을 던지다 빠르게 던지면 더 빠르게 보인다.
그래서 초반부터 공을 빨리 던지지 않는다.
그리고 지켜보는 타자들도 공의 속도를 눈으로 익히기 위해 눈을 떼지 않았다.
또한 다양하고 많은 경험을 한 윤승완 투수는 이럴 때 어떻게 해야 하는지 알고 있었다.
'처음에는 120 후반대의 직구와 변화구를 섞다가 나중에 구속을 더 높이면 내가 더 유리하지만…….'
공을 빠르게 던지는 것만이 능사가 아님을 알고 있었고, 최선을 다하는 것이 마냥 좋은 결과를 내지 않는다는 것도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윤승완 투수는 그걸 알아도 더 좋은 길, 편하고 쉬운 길을 선택하지 않았다.
"이거… 방금 전부터 그랬지만… 괜히 불타오르잖아."
그는 이런 저런 머리를 쓰는 것보다 동팔이 걸어온 승부를 순수하게 받아들였다.
단순한 연습만이 아닌 테스트에서도. 그리고 그가 정면승부를 선택한 또 다른 이유가 있었다.
'내가 구단에서 나온 것도 정정당당히 던지라는 코치를 해서 그랬는데… 내가 한 말을 내가 깰 수도 없지.'
무엇보다 그의 본성과 성격이 조잡한 수를 쓰지 않게 만들었다.
한 번 붙은 불은 마른 장작에 기름을 끼얹은 것처럼 활활 타올랐다.
"……?"
태성은 마운드에 올라가기 전과 전혀 다른 기세와 눈빛을 한 윤승완을 보자 의아했다.
타석에 서 있던 타자들도 역시 마찬가지.
'이거… 왠지 불안한데…….'
그도 초반부터 윤승완 투수가 전력을 다할 거란 생각은 하지 않았다.
동팔과 달리 이미 거의 들어온 상황에 도전자는 동팔이었다.
그러니 방금 던진 동팔보다 조금 더 잘하면 그만이었다.
하지만 마운드에 올라 온 윤승완의 눈빛을 보자 그 생각이 쏙 들어갔다.
꽈드득.
타자는 자세를 잡고, 제대로 칠 준비를 했다.
'투수가 바뀌었지만 그래도 마냥 당할 수 없어…….'
10번의 기회에서 고작 파울 플라이 하나로 끝낼 생각은 없었다.
하지만 야속하게도 윤승완 투수의 공은 그가 치기에는 너무 빨랐고, 절묘했다.
휭~ 퍽!!
전력으로 던지는 직구. 절묘하게 꺾이는 커브와 포크볼.
윤승완은 자신이 던질 수 있는 최고의 공으로 타자를 요리했다.
"스트~라이크!! 아웃!!"
10번의 타석이 끝나자 첫 타자는 한숨과 함께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다음 타자와 교대했다.
그는 지나가면서 다음 타자에게 짧게 말했다.
"둘 다 장난 아니야."
"그거 옆에서 봐도 잘 알겠던데요."
"옆에서 봐도 그 정도면… 여기선 진짜……."
지켜보는 것과 직접 마주치는 것의 차이는 그도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포기하거나 부담을 가지진 않았다.
'상관없잖아? 어차피 진짜 시합도 아니고, 두 사람 중 더 나은 사람을 선택하는 것뿐이니까.'
물론 그렇다고 해서 그저 지켜보겠다는 것도 아니었다.
그를 포함해서 타석에 들어설 모든 타자들이 전부.
하지만 그들 모두 동팔의 공은 물론, 윤승완의 공을 단 한 번도 치지 못했다.
"자자. 전부 여기에 투표해라. 투표……."
정해진 타석이 전부 끝났다.
이제는 강동팔과 윤승완 중 누구를 우랑우탄팀의 투수로 받아들일지 선택하는 순간이 왔다.
15명의 타자는 물론 포수를 보던 태성도 예외는 아니었다.
그리고 옆에서 지켜보던 4명의 다른 선수들도 투표를 마쳤다.
"자, 이게 마지막인가? 지금 몇 대 몇이지?"
"10대 9입니다. 윤승완…님이 한 표 많아요."
동팔은 남은 한 표가 윤승완으로 나오면 자신은 다른 팀을 알아봐야 했다.
그래도 거의 절반이 자신을 선택했다는 것에 안도 하면서도 조마조마한 것도 사실.
"그래? 그럼 이건… 뭐가 나오려나?"
그렇게 말을 하면서 태성은 뜸을 들이지 않고 펴 보았다.
"강동팔."
그리고 직접 다른 사람들에게 확인을 받았다.
개표 결과는 10대 10의 팽팽한 결과에 한 사람이 물었다.
"태성이 형. 우리 홀수라면서요? 그럼 남은 한 표 어디 있는 거예요?"
그의 물음에 태성은 주변을 돌아보다가 윤승완 투수와 눈이 마주치자마자 피했다.
"아… 그게……."
그의 행동에 다른 사람들도 윤승완 투수를 보았다.
그러자 그가 말했다.
"정말 포수 아니랄까 봐… 능글능글하기는……."
"모든 포수가 그러는 건 아닙니다. 제가 좀 능글맞을 뿐이죠."
"능글맞은 놈이 머리도 좋으니, 더 능글맞아 보인다."
이제 모든 결정권을 가진 그는 편하게 말을 하고 있었다.
본인의 시합에 본인이 심판을 맡게 된 경우였다.
상대방인 동팔은 절대로 이길 수 없는 상황.
그래도 여기는 우랑우탄팀의 공간이었고, 자신은 이방인이자 팀원도 아니었다.
그러니 동팔은 이제 완전히 마음을 놓은 채로 그를 보았다.
그의 시선을 아는지 모르는지.
윤승완는 누군가 구해 가져온 리그 규정집을 보며 말했다.
"아마 지금 상태라면 내가 아주 조금은 더 낫다고 생각한다."
그 말은 동팔이 아닌, 자신이 투수로 들어가겠다는 의미와 같았다.
그래서 동팔의 고개가 떨구어 지려는 찰나.
하지만 그의 말은 끝나지 않았다.
"그런데 말이야. 나중을 생각하면 나보다 동팔 선수가 더 낫다고 생각한다. 지금 내가 던진 공은 내가 던질 수 있는 올해 최고의 구위였다면, 동팔 선수가 던진 공은 올해에 제일 좋지 못한 구위일 것이라 확신한다. 예를 들면 나는 지는 해이고, 동팔이는 다시 떠오르는 해. 이해가 가냐?"
그의 말에 동팔의 고개가 다시 솟아올랐다.
그러자 태성이 물었다.
"그럼… 저희 팀의 투수는 하지 않으시겠다는 겁니까?"
"그렇지."
의외의 선택에 동팔은 물론 민철도 놀랐다.
그것은 우랑우탄팀의 선수들도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의외의 말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그렇다고 내가 여기 안 들어오는 건 아냐. 여기 규정집을 보니까… 코치에 대한 규정이 없네. 난 선수가 아닌 코치로 들어가면 되겠다. 안 그러냐? 태성아?"
그의 말에 태성은 어쩔 수 없다는 듯이 웃으며 말했다.
"하하하. 그런 방법도 있었네요. 확실히 코치에 대한 규정은 없죠. 보통은 감독이 코치를 겸하니까."
그렇게 해서 경쟁을 거쳐 동팔은 당당하게 우랑우탄팀에 들어갈 수 있었다.
민철은 그 모습을 보면서 생각했다.
'태성이 녀석… 얼마 못 있다 나왔다지만 프로 포수 아니랄까 봐 머리 좋은 건 여전하네. 계획한대로 다 흘러가고…….'
경쟁 자체를 유도한 것도 그렇고, 동팔이 이 팀내에서 인정받을 수 있을 만한 무대를 마련한 수완은 확실히 좋았다.
민철은 우랑우탄팀의 축하를 받으면서 쑥스러워하는 동팔을 보며 생각했다.
'그것도 동팔이가 잘 던져서 가능한 일이었지만…….'
만약 동팔의 공이 어정쩡하거나 틈이 있었다면 태성이 무대를 준비해도 이런 결과는 나올 수 없었다.
무엇보다 윤승완 투수의 인정을 받기가 더 어려웠을 것이다.
그리고 이제 1부 리그인 우랑우탄에 들어가기 위한 마지막 관문이 남아 있었다.
"이제 애들한테 뭐라고 말해야 하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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