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
"조건이요?"
"간단해. 동팔 씨 어깨가 회복되었다는 조건. 병원에 가서 진단은 받아 봤어?"
"아뇨… 아직은……."
"그럼 지금 당장 가서 진단받고 와. 아니다. 어차피 나도 지금 당장 급한 일은 없으니까 내가 병원에 데려다줄게. 따라와."
김 대리는 직접 차를 끌고, 동팔과 함께 전문병원에 왔다. 다행히 사람이 많이 없는 시간대였기에 동팔의 순서는 빨리 왔다.
의사와 간단히 대화를 한 이후, 정밀 검사를 시작했다.
그리고 결과도 생각보다 빨리 나왔다.
"X―ray 검사 결과는 양호합니다. CT 결과도 이상은 없네요. 더 정확히 파악하려면 MRI나 운동 검사를 하는 것입니다만… MRI는 시간도 걸리고, 비용도 만만치 않아요. 하실 건가요?"
"아뇨. 나중에 시간이 되면 하겠습니다."
"그럼 간단히 운동 검사를 하죠. 이걸 이렇게 당겨 보세요."
의사의 말에 따라 동팔은 충실하게 이행했다.
모든 검사를 마치자 의사는 자신의 소견을 말했다.
"전에 무리해서 어깨와 등 근육이 파열되었다고 했죠? 그리고 일부 근육이 끊어지기도 했고."
"네……."
"그런데 지금은 정상입니다. 적어도 지금 반응을 보니 이전처럼은 아니지만… 상당히 회복한 것 같군요. 도대체 어떻게 한 겁니까? 보통은 아무리 재활을 해도 이렇게까지는 할 수 없는데."
당연히 동팔은 악마와의 계약이라고 말할 수 없었다.
"그건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기적이 일어난 건지도 모르죠."
"기적이라… 확실히 기적 같은 일입니다."
의사의 말에 김 대리가 물었다.
"그럼 동팔 씨 어깨랑 등은 완전히 회복된 겁니까?"
"완전한 회복은 장담할 수 없어요. 확실한 건 전보다 훨씬 나아졌다는 겁니다. 이전에 공을 얼마나 빨리 던졌다고 하셨죠?"
의사의 질문에 동팔이 답했다.
"150 이상 던졌습니다."
그러자 의사는 깜짝 놀라며 말했다.
"그 정도로 빨리요? 이거, 이거. 지금 사인 받아야 하는 거 아닌가 모르겠네."
의사의 말에 김 대리는 잠시 무언가 고민하는 듯했다.
"말씀 감사합니다. 덕분에 판단이 좀 서는군요."
병원을 나오고 다시 회사로 복귀하는 길.
차 안에서 김 대리가 동팔에게 말했다.
"동팔 씨. 좀 더 정밀한 검사를 받아 봐. 검진 비는 내가 회사에 잘 말해서 받아볼 테니까."
"네? 회사에서요? 그게 가능한가요?"
"복지법이나 사내 법으로는 안 되겠지. 하지만 방법이 없는 것도 아니니까 걱정하지 마. 그리고 사표는 내가 과장님께 말씀드릴 테니 그것도 걱정하지 말고."
예상외의 지원에 동팔은 기쁘면서도 동시에 부담이 밀려왔다.
"하지만… 곧 떠날 몸인데… 괜찮을까요?"
"곧 떠날 몸이니까 지원을 해주는 거야. 나중을 위한 투자라는 거지. 나중에 스타 선수가 될 가능성이 높으니 미리 손을 쓰겠다는 의미야. 나중에 광고 모델로 발탁할 때 싼값에 부려 먹으려고 하는 거다. 됐냐? 우리 회사가 무슨 자선 사업하는 곳도 아니고… 그냥 돈을 주겠어?"
김 대리의 말에 동팔은 납득할 수 있었다.
하지만 레슨장 사장님도 그렇고, 김 대리도 그렇고. 자신의 미래에 투자하겠다는 말이 기분이 좋으면서도 동시에 부담감으로 밀려왔다.
"그러니까 이제 병원 예약 잡고, 시간 되면 나한테 말하고 병원에 가. 그런데 이제 어떻게 할 거야? 바로 프로로 들어갈 수 있어?"
당연히 그럴 수 있다면 좋다. 그렇게 되면 굳이 회사가 아니더라도 더 전문적인 케어를 받을 수 있게 될 테니까.
하지면 현실은 녹녹치 않았다.
"그건 무리예요. 회복을 했다지만 지금 구속은 130에 조금 못 미치고 있어서… 그래도 전에는 120도 못 넘었습니다."
"더 훈련하면 130 이상 넘을 수 있을 것 같아?"
"확신할 수 없지만… 언젠가는 150도 가능할 수 있어요. 전에도 그 정도는 던졌으니까요."
"그래……."
두 사람은 한동안 서로 아무 말도 없었다.
신호를 기다리고 있을 때, 김 대리가 말했다.
"당장 프로에 들어갈 수 없으면… 아마 1부 리그 우승하는 건 어때?"
"네? 1부 리그 우승이요?"
"응. 어차피 그 사람들도 확실하지 않으면 투자하지 않을 거야. 거기에 선수를 영입하는 데 있어 헛돈 쓰지 않으려 하는 건 당연한 거고. 그럼 동팔 씨가 전과 달라졌다는 것을 보여줄 수 있는 방법이 얼마나 되겠어?"
신호등이 바뀌자 김 대리가 액셀을 부드럽게 밟으며 다시 말을 이었다.
"눈을 끌어야 몸값이 오르고, 그래야 더 좋은 팀에 더 좋은 조건으로 들어갈 수 있잖아. 당장 프로에 가는 것도 좋지만… 연봉도 생각해야지. 이전의 괴물투수로 불리던 강동팔이 다시 부활했다면 그들도 그냥 있지는 않을 거 아냐?"
"네……."
"아, 물론 그렇게 하라는 건 아냐. 당장 프로 2군에 들어가면 좋겠지만 그게 힘들다면 이런 방법도 있지 않을까 해서 한 말이니 신경 쓰지 않아도 돼."
김 대리는 이어서 아주 중요한 말을 했다.
"하지만 사표가 수리되어도 이번 한 달 동안은 회사에 출근해. 갑자기 인력이 빠지면 그 공백이 생각보다 크거든. 그 사이에 새로 사원을 뽑은 다음에 인수인계도 해야 하니까."
"네. 알겠습니다."
동팔은 지금 당장 회사를 그만두지 못했지만 적어도 사표가 수리되었다는 것에 만족해야 했다.
동팔이 퇴근을 하고 레슨장에 가기 전, 이전에 받은 연락처에 전화를 했다.
자신이 입단했던 오성 구단의 코치 중 한 사람이었다.
뚜르르르… 뚜르르르르…….
하지만 전화를 해도 받지 않았다.
"아… 월요일이라 쉬시는 중인가?"
프로리그는 일주일에 6일을 시합하고 월요일에 쉬었다.
특별한 상황이 아니라면 일반사람들의 일요일과 같은 날이었다. 그러니 전화를 받지 않아도 어쩔 수 없다 생각했다.
물론 다른 날 이 시간에는 시합 준비로 전화를 더 못 받게 되는 것이 사실이었다.
"어쩔 수 없지. 다음에 전화하자."
적어도 자신의 번호가 저장되어 있다면 그리고 발신자 표시를 봤다면 자신에게 전화할 수 있었다.
마냥 기다리는 건 싫었지만 그래도 통화할 순간을 기다리며 동팔은 레슨장으로 향했다.
한편, 동팔이 전화를 걸었던 코치는 핸드폰을 보더니 중얼거렸다.
"응? 동팔이잖아? 왜 전화를 했지?"
그는 다시 전화를 할까도 했지만 이내 핸드폰을 내려놓았다.
"됐다. 지금 무지 바쁜데 전화해 봤자 뭐 하냐. 재기할 수도 없는 녀석인데."
그렇지 않아도 지금 시즌을 시작하는 중이라 너무도 바빴다.
오랜만에 전화를 해온 사람들은 대부분 골치 아픈 일을 대동했기에 그냥 기억에서 지워버렸다.
며칠 후.
주말이 시작되는 토요일은 아마리그 시합이 있는 날이었다.
당연히 동팔도 빠질 수 없었다. 아니, 빠지고 싶지도 않았다.
다만 그동안 전에 알던 코치와는 통화를 할 수 없었다.
'설마 번호를 지우신 건가? 모르는 번호라 안 받으시고… 그럴 수야 있지만 이렇게까지 안 받으시는 건…….'
동팔은 코치가 자신의 전화를 일부러 받지 않는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으려 했다.
그러는 사이, 시합이 시작되었다
오늘 경기는 저번 주에 상대했던 팀과의 재경기였다.
그리고 이번에는 홈과 어웨이를 구분하기 위한 동전 던지기를 할 필요가 없었다.
"전에는 우리가 먼저 수비했으니까 이번에는 우리가 먼저 공격이야. 정해진 순번대로 타자 나가라. 전처럼 못 치면 가만 안 둔다."
그렇게 말은 하지만 자신들의 실력을 알기에 큰 기대를 하지 않았다.
같은 팀 선수가 타자로 나오는 사이, 동팔은 가만히 있지 못하고 야구공을 만지작거리고 있었다.
"동팔아. 오늘따라 많이 긴장한 것 같다."
"네. 민철이 형. 오늘은 좀 긴장되네요."
"그래? 왜?"
두 사람이 대화를 나누고 있는 그때, 그들의 뒤에서 민희가 나타났다.
"안녕하세요. 오늘은 좀 빨리 왔어요."
그녀의 등장에, 더군다나 미인이 등장에 남자들은 그녀를 격하게 반겨주었다.
"오~ 지난주에 오신 그분이시네."
"반갑습니다."
"오늘도 동팔이 보러 오신 건가요?"
민희의 등장에 민철은 동팔의 등을 치며 말했다.
"뭐야. 혜진이는 어떻게 하고. 저 아가씨가 온다니까 긴장한 거야?"
민철의 말에 동팔은 그에게만 들릴 정도로 작게 말했다.
"아니에요. 그리고… 이미 혜진이랑 끝났어요."
"아, 그래… 미안……."
동팔이의 상황이 좋지 않은 건 알고 있었다.
그래도 7년간 사귄 애인과 헤어진 것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동팔은 오늘도 민희가 올 줄은 몰랐다.
"저기… 여긴 어쩐 일이에요? 어차피 저는 곧… 나갈 텐데."
지난주에는 민희가 업무를 가르쳐주기 위해 왔다.
그러나 오늘은 그럴 이유가 없었다. 동팔의 물음에 민희는 당연하다는 듯이 말했다.
"그야… 동팔 씨 공 던지는 것 보고 싶어서 왔죠. 전에 말씀 드렸잖아요. 저 이전부터 동팔 씨 팬이었다고."
그녀의 말에 주변에 있던 동료들이 휘파람까지 불면서 환호했다.
"이야~! 이거 동팔이! 팬이 우리밖에 읍는 줄 알았는데. 아니었네에?"
"그것도 미인 팬이라니… 부럽다, 부러워!"
질투는 하나도 없고, 순수한 호의의 말.
하지만 그들이 그렇게 떠들고 있을 때, 첫 타자가 삼진으로 아웃되어서 들어왔다.
"다음에 영민이지? 너 나갔다 와라. 이번에도 투수가 장난 아니네. 동팔이 정도는 아니지만."
이후로, 내리 두 타자가 연속으로 아웃되었다.
이젠 동팔을 포함한 동료들이 필드에 나왔다.
그런데 민철이 올라가기 전, 민희는 그를 붙잡고 말했다.
"오늘 동팔 씨 공은 전과 다를 거예요. 주의하세요."
이미 김 대리를 통해 어느 정도 정황을 알고 있는 민희였다.
하지만 깜짝 선물을 하는 기분으로 전부 말하지는 않았다.
"네?"
"그냥 그렇다구요. 다른 분들 다 올라가셨네요. 수고하세요."
민희는 그 말을 하고 미소를 지으며 민철을 올려 보냈다.
그리고는 기대감을 숨기지 않고 동팔을 지켜보았다.
동팔은 마운드에 올라 주변을 봤다.
익숙한 풍경과 사람들의 모습.
그 속에 새롭게 보이는 한 여인이 있었다.
지금 자신에게 돌아온 힘과 같이 새로운.
동팔이 공을 고쳐 잡았다.
그 사이 들어온 상대팀이 동팔을 보며 말했다.
"잘해 봐야 120도 안 되는 공이잖아."
"가끔 치는 경우도 있으니까 포기하지 말자고."
"지금 잘 봐봐. 그래야 눈에 익지. 저 팀은 제대로 된 투수가 저 친구 말고는 없어."
투수 하나만 공략하면 이길 수 있는 팀이었다.
투수가 워낙 강하기에 공략하기 어렵다는 점이 유일한 문제였다.
하지만 그들의 말대로 공략방법이 없는 것도 아니었다.
비록 뛰어난 제구에 변화구도 절묘했다. 하지만 속도의 한계가 있다는 점이 유일한 돌파구였다.
그건 동팔도 잘 알고 있다.
그래서 그는 더욱 눈빛을 불태우며 처음 올라온 타자를 보고 있었다.
타자 또한 동팔에게 지지 않겠다는 듯이 승리의 결의를 세우고 있었다.
'어차피 느린 변화구가 전부인 투수야. 쉽지 않겠지만… 그것만 잘 공략하면…….'
그 생각을 하며 전에 동팔이 던진 공을 떠올리며 이미지를 만들어 시뮬레이션 했다.
각자의 생각이 다를 때, 민철은 사인을 보냈다.
'이번 공은 바깥쪽 아래 커브.'
하지만 동팔은 처음으로 민철의 사인에 고개를 가로 저었다.
'응? 아니라고? 그럼…….'
그 이후로 사인을 보냈지만 동팔은 전부 고개를 가로 저었다.
'이제 남은 건 직구인데…….'
구속이 느린 직구는 타자에게 좋은 먹잇감에 불과했다.
그것도 타이밍을 빼앗는 것이 아니라면 더욱 위험했다.
민철이 말리기 위해 자리에 일어나다가 동팔이 자세를 잡고 던지려 하자 어쩔 수 없이 주저앉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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