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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오력의 투수-5화 (5/325)

[5]

하지만 월요일의 출근과 여전히 업무에 적응하지 못했기에 시간은 더디게 흘러갔다.

"동팔 씨. 지금 나랑 싸우자는 거야, 뭐야?"

"죄송합니다……."

"뭐… 전보다 조금은 나아졌어. 하지만 그걸로 어림도 없는 거 알아, 몰라?"

"죄송합니다. 더 열심히 하겠습니다."

"열심히 하는 건 중요한 게 아냐. 빨리 그리고 제대로 해야지."

오늘도 자신의 상사인 김 대리에게 야단을 맞았다.

그럴 때마다 구원투수가 되어 나타난 사람은 민희였다.

"그래도 전보다 나아졌으니 다행이네요. 나중에 더 나아질 거예요. 제가 옆에서 봐 드릴게요."

솔직히 남자의 입장에서 여자의 도움으로 위기를 벗어나는 건 달갑지 않은 일이었다. 하지만 그녀의 마음을 알기에 동팔은 그녀의 호의에 고마워했다.

하지만 이전에 업무에 집중했던 것과는 달리, 이젠 쉽게 집중할 수 없었다.

'어서 빨리 퇴근을 해야 하는데…….'

그러나 시간은 이제 막 점심시간이 다가오고 있었다.

특히나 빨리 레슨장에 가서 공을 던지고 싶었기에 기다림은 시간의 흐름을 더욱 느리게 했다.

그래도 다행인 점은 모든 기다림에는 끝이 있었다.

"사장님. 저 왔습니다."

"오, 동팔이구나. 오늘은 빨리 왔네?"

"네. 꼭 시험해보고 싶은 것이 있어서요."

"시험? 설마… 새로운 구종을 익히려고? 체인지업도 부족한 거야? 너도 진짜 야구에 제대로 미쳤구나."

레슨장의 사장님은 그 말을 하면서도 안타까웠다.

'이렇게 열정이 있는 친구가 혹사 때문에 이 꼴이라니… 쯧쯧.'

그리고 평상시처럼 익숙하게 창고 열쇠를 꺼냈다.

하지만 동팔은 열쇠를 가져가지 않았다.

"아뇨. 오늘은 변화구 연습이 아니에요."

"응? 변화구가 아냐?"

투수가 던지는 공은 크게 두 가지로 나뉘었다.

직구와 변화구.

물론 직구 같은 변화구가 있고, 변화구 같은 직구도 있다. 하지만 변화구가 아니면 보통은 직구. 그리고 당연히 직구는 힘과 속도를 중요시한다.

"네. 전과 달리 몸이 좋아진 것 같아서 시험해보고 싶거든요."

"그래……."

몸이 회복되었다고 해서 얼마나 좋아질까.

사장님은 그렇게 생각하면서도 동팔의 무언가 굉장히 기대하는 표정을 보았다.

그리고 평상시와는 달리 회사에서 바로 왔는지 동팔이 정장을 입고 있자 웃으며 말했다.

"몸이 좋아졌다니 다행이네. 공은 이미 있으니까 마음껏 던져 봐. 그리고 옷은 갈아입고 던져라. 양복입고 어떻게 던지겠니? 내 추리닝 줄 테니까 갈아입고 와."

"네. 감사합니다."

사장님의 배려로 동팔은 창고에서 옷을 갈아입고 나왔다. 그리고 마운드에 올라가 글러브를 끼고 한 손에 공을 들었다.

'가능할까? 가능해야 하는데… 아냐. 가능할 거야.'

아침에 트레이닝을 하면서 확인했다.

그러나 저녁이 된 지금, 다시 떠올리면 착각이었나 싶은 생각도 들었다.

"후우……."

잡념을 떨치기 위해 동팔은 심호흡을 했다.

그리고 자세를 다시 잡은 다음, 스트라이크 존을 보며 강하게 공을 던졌다.

빠악~!!

그러나 동팔이 던진 공은 바닥에 패대치 치듯 떨어졌다. 어이없는 실수에 동팔은 물론, 지켜보던 사장님도 놀랐다.

"동팔아. 팔에 힘이 너무 들어간 것 같다. 힘을 좀 빼고 던져 봐. 뭐가 그렇게 급해? 천천히 생각하고 던져."

"네. 사장님……."

그는 투수 레슨장의 사장이자 코치였기에 단번에 동팔의 실수를 파악했다. 그의 말에 동팔은 다시 심호흡을 하고 마음을 가다듬었다.

'굳이 힘을 줄 필요는 없어. 알잖아. 전에 던졌던 느낌을 떠올리면 돼…….'

다만 거의 5년 전의 감각이라 쉽게 떠오르지 않았다.

하지만 그동안 쌓은 노력과 몸은 기억하고 있었다.

"후우……."

동팔은 특별히 속도를 의식하지 않고, 오직 던질 곳을 바라봤다. 그리고는 다리를 들어 올렸다 내리며 익숙한 동작으로 공을 던졌다.

팡~!!

이번에는 공이 원하는 곳으로 정확히 들어갔다.

하지만 동팔이 보고 있는 것은 공이 아니라 구속을 표시하는 디지털 전광판이었다.

'어느 정도지? 제발…….'

전력으로 던지지 않아 높은 구속을 바라진 않았다

그래도 전과 달리 강하게 던진 묵직함이 조금은 더 느껴졌다.

전광판에 찍힌 숫자는 120.

그 숫자를 본 사장님은 속으로 감탄했다.

'호오… 전에는 120을 못 넘겼는데…….'

그는 방금 전 동팔이 던진 동작을 떠올렸다.

강속구를 던지기 위해 힘을 많이 준 것도 아닌, 전과 같이 평범하게 던졌을 뿐이었다.

하지만 결과는 전보다 더 나아져 있었다.

"후우……."

구속이 시속 120을 넘자 동팔은 다시 호흡을 가다듬었다. 이전의 전성기에 비하면 낮은 속도였다. 하지만 자신의 벽과 같았던 120에 턱걸이를 했다.

'이번에는 조금 더…….'

동팔은 몸과 마음을 가다듬었다. 그리고는 방금 전보다 조금 더 힘을 준다는 생각으로 공을 뿌렸다.

팡~!!

이번에도 공은 원의 한가운데를 맞혔다.

삑.

이번에 찍힌 구속은 122. 150에 한참 못 미쳤다.

하지만 전보다 올라온 구속에 동팔의 입가에는 절로 만족의 미소가 피어올랐다.

팡~!!

그 후로 동팔은 계속 직구만을 던졌다. 50번의 피칭이 끝나고 난 동팔의 최고 구속은 127km.

사장님은 동팔이 던지는 것을 보면서 처음에는 자신의 일처럼 굉장히 기뻐했다. 하지만 이내 무언가를 고민하더니 종이에 무언가를 써 나갔다.

"휴우……."

완전히 만족할 수 없었지만 확실히 달라진 자신의 몸과 공을 확인했다. 동팔은 아쉬움을 뒤로하고 공을 정리한 다음 카운터로 나왔다.

"아, 오늘 돈 내는 날이죠? 죄송합니다. 먼저 계산을 해야 했는데."

"아냐. 급하면 먼저 던지고 내도 되지. 그런데 동팔아. 너, 돈 안 내도 돼."

"네? 왜요?"

설마 이제 더 이상 오지 말라는 말일까?

하지만 사장님의 이어지는 말은 정반대였다.

"그냥 나랑 계약이나 하나 하자."

"계약이요?!"

"그래. 계약. 네가 마음대로 와서 공을 던질 수 있는 대신 나는 네가 여기 다닌다는 것을 홍보할 거야. 일종의 광고 계약이지."

사장님의 말에 동팔은 어리둥절했다.

"갑자기 광고 계약이라뇨…? 전 프로도 아니고, 인기 있는 스타 선수도 아닌데요?"

"그야 지금은 그렇지. 하지만 나중에도 안 그런단 보장 있어? 보니까 몸이 어느 정도 회복한 것 같던데. 조금만 더 하면 이전의 구위를 어느 정도 회복할 수 있지 않을까?"

"네. 언제가 될지는 모르겠지만… 2년 안에는 가능할 것 같아요."

동팔의 말에 사장님은 박수를 짝! 치며 말했다.

"맞아! 그러니까 내가 계약하겠다는 거지. 너도 돈 생각하지 않고 마음껏 던질 수 있어야 그 시간이 더 단축될 거 아냐? 그리고 나는 지금의 강동팔이 아니라 1, 2년 후의 강동팔에게 미리 투자하겠다는 거고."

동팔은 다른 것도 아닌, 시간을 단축한다는 것에 귀가 솔깃했다.

"그렇게 해주시면 제가 더 감사하죠."

"나중에는 내가 너한테 더 고마워할 수도 있어. 평생 계약은 말도 안 되니까… 5년 정도만."

두 사람은 5년 동안 계약하며 서로가 원하는 것을 얻었다. 내용을 확인한 동팔이 사인하자 사장님이 그에게 물었다.

"동팔아. 이제 슬슬 프로로 나갈 준비할 거지?"

"그렇죠."

"그럼 지금 다니는 직장은 어떻게 할 거야? 내가 이러쿵저러쿵 할 일은 아닌데… 정말로 프로에 들어가려면 연습하는 시간을 늘려야 하지 않을까? 전처럼 혹사하듯이 할 필요는 전혀 없지만."

지금부터는 동팔에게 정말 중요한 순간이었다.

이 시간을 어떻게 사용하느냐에 따라 그의 미래가 달라질 수 있었다.

사장님의 말에 동팔은 고민하기 시작했다.

"그건… 이제 그만둬야겠죠? 퇴근하고 한두 시간만 던질 순 없으니까요."

"하지만 정말 괜찮겠어? 네가 다니는 회사도 대기업은 아니지만 유망한 기업이잖아."

"그렇긴 하지만… 아무래도 업무 보는 것도 저랑 잘 맞지 않고… 여기에 희망이 있는 이상 쉽게 포기할 수 없으니까요."

"뭐… 그건 네가 알아서 해라. 대신 어느 쪽을 선택하든 각오는 단단히 다져. 이왕 프로에 목표를 둔 이상, 직장은 곧 그만둬야 하지만 그때는 네가 스스로 선택해."

"네……."

사장님은 그래도 혹시 동팔이 프로에도 가지 못하고 오히려 안정적인 직장을 잃는 건 아닌가 걱정했다.

막상 그의 미래에 투자한다고는 했지만 자신이 그의 인생까지는 책임지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동팔은 사장님이 질문을 던졌을 때 이미 결정을 내린 상태였다.

'내일 사표 내면 그냥 받아주겠지. 그렇게나 일을 못하는데.'

다음 날.

동팔은 과장에게 사직서를 제출했다.

그의 사직서를 받은 과장이 동팔에게 물었다.

"동팔 씨. 갑자기 그만두시는 이유가 뭡니까? 여기서 힘든 일이 많나요?"

과장인 그가 동팔이 계속 대리에게 야단맞는 걸 모를 리가 없었다. 그래도 물어보는 것은 확인 차원이었다.

"다시 집중해야 할 일이 있어서 그렇습니다."

"그 일이랑 회사 일을 같이할 수 없나요?"

"죄송합니다만… 그건 불가능한 일이라서……."

동팔의 말에 과장은 사직서를 반려하며 말했다.

"지금 당장 사직서를 받을 수 없습니다. 그리고 나보다는 김 대리랑 이야기를 먼저 해 봐요. 김 대리."

과장의 부름에 김 대리가 바로 다가왔다.

"동팔 씨랑 이야기 잘하고 와. 알았지?"

"네. 알겠습니다."

김 대리가 동팔을 보며 말했다.

"동팔 씨. 1층에 잠시 내려가죠. 이야기가 길어질 것 같으니까."

"네……."

항상 야단만 맞아 바로 사표가 수리될 거란 예상이 깨졌다. 그리고 무서운 직장상사인 김 대리와 이야기를 하게 될 줄도 몰랐다.

절로 어깨가 내려간 동팔.

두 사람이 간 곳은 회사에서 가까운 카페였다.

김 대리는 무작정 화를 내지 않고, 동팔에게 물었다.

"동팔 씨. 혹시 내가 계속 야단치고 화내서 나가려는 거야?"

솔직히 그 이유도 있었다.

하지만 사표를 내지 않은 것은 이 회사가 자신이 생활할 수 있는 유일한 곳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젠 달랐다.

"아니요. 과장님께 말씀드렸지만… 이젠 다른 일에 집중하려고 해요."

"다른 일? 어떤 일? 설마… 이직?"

"아뇨. 이직이 아니라……."

동팔은 그대로 말해도 될까 싶었다. 하지만 속일 일도 아니었기에 사표를 낸 진짜 이유를 말했다.

"다시… 야구를 시작하려고요."

"뭐?!"

김 대리는 동팔의 말에 자신이 제대로 들은 건가 싶어 다시 한 번 확인했다.

"잠깐. 야구를 다시 시작하겠다고? 내가 동팔 씨에 대해서 들은 것이 있기는 한데… 그걸로 괜찮겠어?"

최고 구속이 120을 넘지 못한다는 건 김 대리도 알고 있는 사실. 그런데 다시 야구를 하겠다는 동팔의 말은 황당하기까지 했다.

"사실… 몸이 점점 회복하고 있었나 봐요. 빨리 재활이 안 되었을 뿐이지. 얼마 전부터 구속이 점점 올라서 제대로 하고 싶어졌거든요. 더 늦기 전에……."

"얼마나 괜찮아졌기에 그렇게 결정한 거야? 그리고 동팔 씨는 이제 20대 중반이잖아. 여기에서 계속 일하면 경력이 쌓이고, 업무에도 익숙해져서 괜찮아. 그동안 내가 동팔 씨를 다그친 건 업무에 최대한 집중시키려 한 거지, 정말로 못해서 그런 건 아니었어."

김 대리의 말은 계속 이어졌다.

"낙하산이라고 하지만… 그것도 능력도 없으면서 고위직에 간 사람에 한해 욕이 되는 거지. 제대로 일하고 있는 사람에게는 특채라는 말이 어울린다고. 동팔 씨가 특출 나게 잘하는 건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완전 못 하는 것도 아니야. 그냥… 평범한 수준이지. 그래도 사표 낼 거야?"

김 대리의 말은 의외였다.

동팔은 자신이 꿔다 놓은 보릿자루보다 못 하고, 언제라도 나가길 바라는 사원인 줄 알았다.

"내가 동팔 씨를 정말 싫어했다면 아예 말도 안 하고, 나중에 정리해고 명단에 올려놓았을 거야. 그래도 어떻게든 노력하고, 노력한 만큼 성장하는 것이 보이니까 더 다그친 거지."

김 대리의 말에 동팔은 놀랐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선택이 흔들리는 건 아니었다.

"그렇게 생각해주실 줄은 몰랐습니다. 하지만 그래도 더 늦기 전에 회사를 그만두겠습니다. 어쩌면… 마지막 기회를 놓치기 전에 전력을 다하고 싶어요……."

김 대리는 동팔의 확고한 의지를 확인했지만 그렇다고 쉽게 물러나지 않았다.

"알았어. 대신 조건이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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