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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오력의 투수-4화 (4/325)

[4]

"악마라고 해서 전부 뿔이나 꼬리, 박쥐 날개를 가지고 있는 건 아니야. 그건 전부 악마를 보지 못한 사람들이 만든 상상의 산물이지. 실제 악마와 천사는 인간의 모습과 같아. 바로 나처럼."

스크레이치의 눈을 본 동팔은 그가 다른 사람과 다른 점을 알았다.

'눈동자가… 세로?'

날카로운 뱀의 눈동자와 달리 염소의 눈동자처럼 각이 져 있었다.

그것만이 아니었다.

검게 일렁이는 무언가가 그의 눈동자 안에 있었다. 자세히 보면 해골 모양의 무언가가 빠져나오려 했지만 빠져나오지 못하고 다시 늪에 빠지는 모습과 같았다.

그리고 그와 눈이 마주치자 굉장히 위험한 느낌에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동팔이 반응에 악마가 말했다.

"이제 좀 믿기나? 우연히 들린 김에 유흥처럼 하는 일이니 너무 신경 쓸 필요 없어. 그래서 자네는 본인의 영혼의 권리를 나에게 넘기는 조건으로 어떤 소원을 원하는가? 저주? 힘? 아니면 매력?"

그의 물음에 동팔은 다른 것을 물었다.

"제 영혼이 뭐라고 그렇게 원하는 겁니까? 아무 쓸 데도 없는 인생인데."

그러자 스크레이치가 답했다.

"물론 자네 인생은 덧없지. 하지만 절망에 빠진 순수한 영혼의 파닥거림만큼 매력적인 건 찾기 어려워서 그래."

그가 하는 말이 사실인지 아닌지는 알 수 없었다. 악마가 하는 말을 전부 믿는 건 어리석은 일.

그래도 동팔은 그의 제안을 곰곰이 생각하고는 말했다.

"저주나 힘은 됐어요. 그냥… 어깨가 원상태로 회복됐으면 좋겠습니다. 어깨만 괜찮았어도… 이렇게까지 안 가는데……."

그랬다면 재활을 하고 제대로 복귀할 수 있었다. 그리고 프로에서 계속 뛸 수 있었고, 오랫동안 사귄 혜진이 떠날 일도 없었다.

또한 맞지도 않는 일을 하며 고개를 숙일 일도 없었다.

하지만 악마 스크레이치는 동팔의 소원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미안하지만 그건 너무 작은 소원이라서 들어줄 수 없겠어. 물론 내가 힘이 없는 건 아니지만 고작 그 정도 소원으로 자네의 영혼의 권리를 가져갈 수는 없지. 이것도 원수가 건 제약이라서… 방금 말했지 않나. 어느 정도 비슷한 가치를 걸어야 한다고."

"무슨 제약이 그렇게 많습니까?"

"그러게. 내말이. 당사자끼리 합의하면 계약은 끝나는 법인데 그는 그것을 인정하지 않아. 그래도 신이니 따르지 않을 수도 없고… 이렇게라도 계약을 해야 하지 않겠나."

두 사람은 같이 투덜거리다가 스크레이치가 새로운 제안을 했다.

"그래… 그럼 이건 어떤가? 한 번의 회복으로 끝나지 않고, 다른 사람들보다 뛰어난 재생력과 회복력을 주도록 하지. 아무리 혹사하듯 훈련해도 자다가 일어나면 회복할 수 있는 수준으로. 다만, 아주 약간의 부작용이 있겠지만… 신경 쓸 건 아니야. 회복하기 위한 과정에 불과하거든."

그의 말에 동팔은 혹시나 해서 물었다.

"대신 노력한 것도 되돌아가는 건 아니겠죠?"

회복과 시간을 되돌리는 건 같아 보였지만 결과는 전혀 달랐다.

그러자 스크레이치가 손을 흔들며 말했다.

"설마, 그런 야박한 조건을 걸겠어? 노력해서 얻은 게 유지되는 건 당연하지. 그래서 할 건가 말건가?"

그의 물음에 동팔은 혹시나 해서 물었다.

"저기… 저의 영혼을 가져간다면… 저는 어떻게 되는 거죠?"

"어떻게 되긴. 세상에서 죽는 거지. 그리고 그 이후에는 정해진 수명만큼 내가 원하는 대로 처리할 거야. 순수한 영혼이 내뱉는 고통의 절규는 나의 기쁨이자 존재하는 원동력이니까."

그 말을 하는 스크레이치의 얼굴에는 정말로 기쁜 미소가 피어올랐다.

하지만 무언가 굉장히 절제하고 있어 가면과 같은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물론 조건이 되면 무조건 가져가는 건 아니야. 예외조항도 있어. 그러니까… 자네 같은 경우는… 5년 이내에 월드 시리즈 우승이 되겠군. 그걸 이루면 나는 그대의 영혼을 깔끔하게 포기하도록 하지. 물론 능력은 유지가 될 거야."

악마의 말에 동팔은 피식 웃으며 말했다.

"그건 완전히 불가능한 조건 아닙니까? 5년이 지나면 확실하게 죽는 시한부 인생이잖아요."

"그렇게 볼 수 있겠지. 하지만… 완전히 불가능한 건 아닐세. 나의 힘을 얻은 자네의 능력이라면… 안 그런가?"

동팔도 알고는 있었다. 고작 120도 되지 않는 변화구로는 절대로 프로에 들어갈 수 없다는 것을.

그래도 혹시나 하는 마음에 일말의 희망의 끈을 잡고 있었다.

그러나 오늘 현실을 마주했고, 현실의 칼날은 동팔의 실낱같은 희망을 끊어버렸다.

그리고 지금, 모든 것을 만회할 기회가 주어졌다.

그의 말에 동팔은 생각했다.

어깨가 돌아오는 것도 모자라, 혹사하듯 훈련을 해도 다시 회복한다면? 그리고 노력한 만큼 능력이 쌓인다면?

정말로 어쩌면 월드 시리즈도 불가능하지 않아 보였다.

그는 상상했다.

전 세계인이 보는 월드 시리즈에서 마지막 경기에 선발투수로 나와 팀의 우승을 이끌어내는 자신의 모습을.

그의 제안에 동팔은 고개를 끄덕였다.

"사실인지 아닌지는 모르지만 하도록 하죠. 그 계약. 어차피 이대로 사느니, 시한부 인생에 도전하는 것도 나쁘진 않겠죠. 난 이미 지옥 밑바닥이니까."

동팔의 말에 스크레이치는 씨익 웃으며 말했다.

"방금 그 말로 우리의 계약은 성립했네."

그리고 그의 손이 동팔의 가슴을 통과해 심장을 만졌다. 동시에 동팔과 스크레이치를 중심으로 검은 마법진이 생겨났다.

"나, 스크레이치와 강동팔의 계약은 이루어졌다. 내가 강동팔에게 주는 것은 강한 회복력. 그리고 강동팔이 주는 것은 자신의 영혼의 권리. 단, 강동팔이 5년 이내에 월드 시리즈에서 우승하면 나는 강동팔의 영혼에 대한 권리를 주장하지 못한다."

그가 계약을 내용을 말할수록 검은 마법진에선 끈적거리는 무언가가 나와 동팔의 심장으로 향했다. 믿을 수 없는 현상과 기묘한 광경에 동팔은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멍하니 있었다.

마법진이 사라지고 그의 손이 자신의 심장을 놓고 나오자 동팔이 물었다.

"방금… 정말로 계약한 겁니까?"

"못 믿겠나? 그럼 믿게 해주지."

스크레이치는 그 말을 하고, 동팔의 이마에 검지를 가져가며 말했다.

"잠시 자고 나면 달라진 몸을 느낄 걸세. 그럼… 최대한 발버둥질해보게나. 그것이 나의 또 다른 즐거움이 될 테니까."

스크레이치는 웃고 있었다.

기괴하게 올라간 입꼬리와 날카로운 이빨 그리고 먹이를 노리는 맹수의 눈빛을 보며 동팔은 이렇게 생각했다.

'악마 아니랄까 봐… 정말 악마같이 웃네…….'

동팔이 의식을 차린 곳은 자신의 집이었다.

익숙한 천장을 멍하니 보던 동팔은 생각했다.

'설마… 꿈?'

하지만 꿈이라고 하기엔 너무나도 선명했다. 그러면서도 혜진과 헤어진 것도 꿈이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동팔은 이불을 걷고 일어난 다음 스마트 폰으로 시간을 확인했다.

"어…? 뭐야? 일요일 어디 갔어?"

오늘은 일요일의 즐거움과 내일 다가올 월요일의 절망이 공존하는 날이어야 했다.

그런데 그 즐거움을 누리지도 못하고 출근해야 하는 상황이 되자 황당하고 동팔은 어이가 없었다.

하지만 그의 말에 동팔의 엄마는 더 황당해하며 말했다.

"어제 술 먹고 들어와서 주구장창 잤으니 없지. 이 녀석아."

"네…? 정말요?"

"그럼 엄마가 거짓말하디? 경찰에서 연락받고 데리고 왔어."

엄마의 말에 동팔은 알았다.

"아, 네… 그러네요……."

꿈이길 바랐던 혜진이와의 이별은 현실이었다.

그렇지 않았다면 자신이 이렇게까지 술을 마실 일은 없었을 테니까.

갑자기 어두워진 아들의 표정에 엄마는 혹시나 하며 물었다.

"동팔아. 너 혹시… 아니다. 됐다……."

괜히 아들의 상처를 후벼 파는 건 아닌가 싶어 그의 엄마는 말을 끊었다. 그러자 동팔이 먼저 말했다.

"헤어졌어요. 혜진이랑. 하긴. 전 미래도 없는데 혜진이는 미래가 창창하니… 이해는 하지만……."

야구만 하느라 대학에 가지 못한 자신과 달리 혜진이는 이미 명문대를 나와 대기업에 취업한 상태였다.

취업하기 어려운 이 시대에 단번에 합격한 것만으로 그녀의 능력과 노력을 증명하고 있었다.

그래도 아쉬운 건 아쉬운 것이었다.

"에휴. 그래도 이렇게 쉽게 헤어지는 게 어디 있니……."

"아니에요. 7년 동안 사귀었는데 헤어지는 게 쉽겠어요? 참다가 더 못 참은 거죠."

그렇게 말은 했지만 여전히 동팔의 마음은 혜진을 떠나지 못하고 있었다. 그 말을 하면서도 혹시나 하는 마음에 그녀의 톡을 살피고 있었으니까.

그런데 그녀의 프로필 사진에 익숙한 남자의 얼굴이 보였다.

'설마… 남궁지완?'

그는 신인 드래프트에서 자신에 밀려 투수 중 2순위로 입단한 동갑내기였다.

다른 사람도 아니고, 혜진의 프로필 사진에 두 사람이 같이 찍은 사진이 올라와 있는 것일까? 그것도 바짝 붙어 있는 사진이.

그것을 본 동팔은 알았다.

이미 오래전부터 이런 결말은 예정되어 있었다는 것을. 자신이 방출된 그 순간부터.

동팔은 이를 꽉 물고 혜진의 연락처를 지웠다.

그리고는 엄마를 향해 밝게 웃으며 말했다.

"애초에 인연이 아니었던 거죠. 어쩌겠어요. 혹시 알아요? 나랑 더 잘 맞는 더 좋은 사람을 만날지. 그럼 저 출근하기 전에 잠깐 운동하고 올게요."

"그래라."

그래도 질질 짜지 않고 웃는 아들의 모습이 대견한 동팔의 엄마.

하지만 동시에 애잔하기도 했다.

엄마는 아침부터 운동하러 간 아들이 보이지 않자 작게 중얼거렸다.

"이젠 되지도 않는 야구를 왜 아직도 포기하지 않는지… 원……."

하지만 동팔의 엄마도, 주변의 어느 누구도 몰랐다.

대한민국은 물론 전 세계 야구에서 새로운 전설이 될 투수의 탄생이 이날부터 시작되었다는 것을.

부활의 시작

동팔에게 있어 평일의 일정은 똑같았다.

그러나 달라진 점이 있었다.

동팔은 항상 아침에 일어나면 투수로서 기본적인 운동을 했다. 그중에는 어깨와 등의 근육을 키우기 위한 웨이트 트레이닝도 있었다.

헬스장에 가는 돈도 아껴야 할 형편이었기에 집에 못 박아 만든 운동기구를 사용했다.

탄력이 강한 굵은 고무줄에 손잡이를 달고, 반대편에는 높이에 따른 고리가 달아 거기에 고무줄을 걸면 됐다.

낮은 곳에 걸고 위로 당기면 상완 이두근 또는 어깨 근육을. 어깨 높이에 걸고 좌우로 당기면 등근육을. 높은 곳에 걸어서 아래로 당기면 팔 뒤의 장두근을 발달시킬 수 있었다.

동팔은 다른 어느 운동보다 어깨와 등 운동을 할 때 변화를 느꼈다.

'확실히 달라. 전에는 이 이상 당길 수 없었는데… 지금은…….'

고무줄의 탄력은 잡은 부위의 길이에 따라 달라졌다. 길게 잡으면 쉽게, 짧게 잡으면 힘들었다.

전에는 약 70센티 부근을 잡고 부들부들 떨며 겨우 겨우 했지만 지금은 60센티 부근을 잡고 당겨도 무리가 없었다.

'설마… 그 계약이… 꿈이 아니었나?'

그렇지 않고선 일어날 수 없는 일이었다.

통증이 없어진 어깨와 등이었지만 힘이 들어가지 않았다. 하지만 지금은 아니었다.

'어쩌면… 어쩌면… 가능할지도…….'

확실하지 않았지만 한 가닥의 희망이 피어올랐다.

지금 당장 눈에 보이는 결과를 확인하고 싶어 몸이 근질근질하고 달아올랐다. 그러나 아침인 지금은 무리였다.

그래서 동팔은 바라고 또 바랐다.

제발 오늘 하루는 시간이 빨리 지나가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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