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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크로맨서 재킷-319화 (319/321)

319편

<-- Chapter 7 : Holy Grail -->

“넬, 몇 초 정도였지?”

나는 그녀의 백업이 있었음을 알아차리고는 물었다. 멍하니 하늘을 바라보며 있자니 넬이 다가왔다.

“12초요.”

“생각보다 길군.”

“그중 5초를 상쇄시킬 수 있어요.”

“하지만…. 그거로는 모자라.”

앓는 소리를 낸 나는 해골 병사들의 위에서 내려와 자세를 바로 했다. 상처는 금방 회복이 되었고 그 사이 불꽃에 휘감긴 검을 든 그레일이 다시 나타났다.

“곱게 죽진 않겠다는 거군.”

“죽어도 되살아나는 건데?”

나는 지지 않고 받아쳤다.

이쪽도 대항할 무기가 하나 생겼지만 새삼 그 과정이 험난함을 느꼈다. 하늘을 나는데다가 시간을 멈추고, 거기에 검술의 실력까지 있다. 강한 상대였다.

그렇기 때문에, 둘이 싸워야 했다.

“넬, 저 녀석이 시간을 멈추는데 필요한 조건은?”

“딱히 없어요. 하지만 준의 몸 안으로 합금이 들어와 흡착할 때까지의 유예 시간이 좀 필요해요!”

“이쪽 역시 마찬가지로군.”

“그렇죠!”

이해했다.

“계속해서 그레일에게 대응해줘, 넬. 할 수 있겠어?”

“네! 계속해서 시간을 멈출게요!”

넬이 고개를 끄덕였다.

우리 둘은 뇌가 긴밀하게 연결된 상태였다. 그렇기 때문에 이 정도의 언어적 표현만으로도 서로의 말과 행동을 이해했다. 나는 다시 그레일을 노려보았다.

“칫….”

징조를 느꼈다.

손을 뻗는 것은 시간을 멈추겠다는 선언이었다. 그 전까지 그레일은 호흡기를 통해 내 몸에 합금을 침입 시켜, 영민하게 준비를 해두는 것이었고.

“준!”

하지만 이번에는 이쪽이 조금 더 빨랐다.

시간이 정지했다.

그레일과 그 주변에 있던 천사들의 움직임이 뚝, 하고 멈췄다. 동시에 떠다니는 구름의 조각 하나하나까지도 완전히 정지해 나는 멈춘 세계를 내달리려다,

“젠장….”

뒤로 펄쩍 뛰어 물러섰다.

동시에 곧바로 해골 병사들을 조종했다. 방벽처럼 나를 에워싸서 이어질 그레일의 공격에 대비했다. 어둠이 몰려들어 짧은 틈에 대응책을 생각,

“…!”

눈앞이 환해졌다.

해골 병사들의 잔해가 주변에 가득했다. 나는 순간적으로 상황을 판단하고는 고개를 들었다. 불꽃에 휘감긴 검이 번쩍이며 눈에 들어왔다.

생각에 앞서 앞으로 굴렀다.

시간이 멈춘 동안 그레일은 아마 나를 감싼 병사들을 쳐낸 것일 터였다. 까앙, 하는 날카로운 소리와 함께 바닥에 검이 박혔다. 그레일이 날개를 펄럭였고 동시에 불꽃이 퍼져나가 바닥을 가득 물들였다.

“너, 그렇게 생각했지?”

그레일은 그 사이에 자리를 잡고 섰다.

“시간을 멈추는 시점에서 해골 병사들을 방어벽처럼 세워두고 있으면 안전할 거라고. 하지만 이건 어때?”

바닥이 뜨겁다.

“견뎌낼 수 없을 정도까지 달궈보자고.”

“….”

“준, 당신의 보호에 집중할게요.”

넬이 긴장한 듯 중얼거렸다.

바닥이 쩌적 갈라지며 그 틈으로 붉은 빛이 올라오기 시작했다. 그로서 마치 콜로세움 안은 화산이 터진 이후의 산기슭처럼 연기가 솟아오르기 시작했다.

천사들마저 녹아내릴 정도의 열기였다.

좋아, 슬슬 기어를 끝까지 올려볼까.

“후우….”

숨을 몰아쉬고, 나는 자세를 편하게 잡았다. 왼손에는 넬이 만들어준 검은 직도를, 반대편에는 환도에 가까운 우아랑의 검을 든 채 그레일을 향해 섰다.

다음 순간, 우리는 충돌했다.

“…!”

후끈거리는 열기가 날아들었다. 하지만 나는 그레일의 검을 막아냄과 동시에 우아랑의 검을 반대편으로 날렸다. 뒤에서 노리는 척, 이내 방향을 크게 꺾어 위로.

“모드레드…!”

거의 들릴 듯 말듯 이미지화를 시켜 능력을 가져왔다. 그레일의 동작이 한순간 늦춰지는 타이밍에 맞춰, 나는 곧바로 뒤쪽으로 돌아들어갔다.

“그레ㅇ…!!”

검을 휘두르는 순간 녀석이 사라진 걸 깨달았다.

복부의 살점이 반쯤 뜯겨져 나갔다. 왼쪽 발목의 힘줄이 잘려져 나갔다. 왼쪽 겨드랑이 밑이 크게 베였다.

“크헉…?!”

“같잖은 수로군.”

“젠장!”

돌아서, 검을 부딪쳤다.

자칫하면 목이 날아갈 뻔한 순간이었다. 출혈이 심해지는 걸 느끼면서도 나는 어떻게든 견뎌내며 검을 받아냈다. 불꽃이 검에서 흘러내려 옮겨 붙었다. 이어서 몇 번이고 공격과 방어를 반복하자 피가 멎었다.

비록 제대로 된 치료는 아니었지만…!

“그레이이이이일!!”

나는 포기하지 않고 달려들었다.

다시 시간이 멈췄다. 7초의 시간이 지나고, 넬이 따라서 시간을 정지 시켰다. 그게 끝나고 정신을 차린 나는 같은 자리에 새겨진 상처와 통증을 느꼈다.

거기에서 알아차렸다.

이 자식은 내게 환통을 심으려는 것이다.

“트리슈…!”

바닥에 다시 내려선 나는 숨을 몰아쉬며 카메라를 소환했다. 동시에 망자를 그레일을 향해 돌진시켰다. 어이가 없다는 듯 녀석이 웃었다.

“소용없…!”

“과연 그럴까!”

나는 버럭 소리를 내질렀다.

거기에 그레일이 놀라 눈을 동그랗게 떴다. 자신을 향해 달려드는 내 망자들, ‘짐승’의 형태를 취한 그것들이 녹아 마치 그물처럼 자신을 덮치려 했기 때문이었다.

“큭?!”

“늦었어!!”

내 외침과 함께 녀석의 날개에 망자들이 녹아 묻었다. 예상치 못한 상황에 그레일이 바닥에 잠시 주저앉았다. 같은 방법을 쓴 것이 무척이나 안일하다고 생각하며, 나는 앞으로 도약해 내달렸다.

날개를 베어냈다.

“크윽…?!”

녀석이 난생 처음 신음에 가까운 소리를 냈다. 잘려져 나간 날개는 이내 돌처럼 변해 땅바닥에 떨어졌고 그 이후로 곧장 타들어가듯 세계에서 사라졌다.

넬의 검이 듣고 있는 것이었다.

“방심했군, 그레일. 고작 이 정도 수에 당하다니 말이야. 라이오넬을 상대할 때 썼던 수법인데.”

“젠장, 인간 놈이….”

“뭐 이제 와서 그런 소리야? 네가 의도한 대로잖아?”

나는 무릎을 꿇은 녀석을 보며 씨익 웃었다.

“여기까지 와줬다고, 이 게임을 끝장내기 위해서.”

몸이 만신창이가 되어가면서.

죽은 세계에서 홀로 되살아나, 수많은 동료들을 만나고 수많은 적들을 상대하며. 나는 이렇게 진화했다. 녀석이 바라는 대로 말이다.

“하지만 난 네놈 말처럼 영웅도 뭣도 아니야…. 간단해. 그냥 열 받아서 여기까지 왔을 뿐이니까.”

그레일의 얼굴이 일그러지기 시작했다. 베인 부분에서 독처럼 잔재가 퍼져, 신체가 붕괴하고 있는 것이었다.

“달콤한 말이지. 하지만…. 그건 현실이 아니야. 덧씌운다고 해서 돌아오진 않는다고.”

유하 누나는 죽었다.

죽은 사람은 돌아오지 못한다.

바람에 세차게 머리가 흩날렸다. 입술을 질끈 깨문 나는 어렵사리 그 사실을 인정했다.

“언젠가, 수십 년 정도 시간이 더 지났을 때는 모르지. 하지만 지금은 아니야. 그것도 뭣도 모르는 신 흉내를 내는 이상한 여자에 의해 바뀌는 세계 따위는.”

절대 받아들일 수 없다.

“…. 이유를 모르겠군.”

“그렇겠지, 넌 인간이 아니니까.”

나는 차갑게 중얼거렸다.

“하지만 인간은…. 인간의 세계는…!!”

중얼거린 녀석이 손을 뻗었다.

“…?!”

반응을 하기도 전, 정신을 차렸다. 시간이 한 차례 흘렀음을 깨닫고, 고개를 숙인 나는 목에 불타는 검이 박힌 것을 알아차렸다. 거기에 매달린 채 그레일은 나를 반쯤 무너져 내린 얼굴로 바라보았다.

“….”

“…. 망령 신체를 발동시켜두길 잘했군.”

“망령, 신체라고?”

그레일이 어이가 없다는 듯 날 바라보았다.

“그래, 망령 신체.”

중얼거린 나는 녀석의 목에 검을 박아 넣었다.

푸욱, 하는 소리가 울려 퍼졌다. 거기에 몸을 움찔 떤 그레일은 입가에서 피를 주륵 흘리며 웃었다.

“하, 하하….”

“왜 웃어? ‘게임’의 규칙대로잖아.”

“그것도, 그렇군.”

녀석은 체념한 듯 고개를 들었다.

[“나는 너희가 하려는 짓을 알고 있다.”]

그 목소리는 두 사람이 함께 말하는 것이었다.

엘레노어와 그레일 두 사람이.

[“가상 세계를 완전히 무너뜨리려는 것이로군.”]

“….”

[“좋아, 그렇다면 기대하겠다. 언젠가 내가 다시 깨어났을 때, 인간의 세계가 어떤 형태로 바뀌었는지.”]

“네깟 놈이 기대한다고 한들 열심히 할 것 같아?”

나는 삐딱하게 주머니에 손을 찔러 넣은 채 중얼거렸다. 그러자 이어서, 빛이 일며 그레일의 모습이 눈앞에서 완전히 사라졌다.

“….”

“준.”

나는 고개를 들었다.

바로 뒤에 넬이 서있었다. 땅에 발을 디딘 채, 그녀는 천천히 내 앞으로 다가왔고 이내 베시시 웃었다.

“축하드려요.”

“…. 넬.”

나는 무뚝뚝한 얼굴을 한 채 그 얼굴을 바라보았다.

“이 다음은 당신께서 생각하시는 대로에요. 이미 모든 상황과 의도는 전 세계의 사람들에게 전해졌어요.”

“역시 넌 대단해.”

나는 쓰게 웃으며 중얼거렸다.

“몇 번이고 말했지만 네가 없었더라면 여기까지 오지 못했을 거야. 정말로…. 정말로….”

나는 입술에 무언가 닿는 걸 느꼈다.

“너무 길어요, 준.”

손을 내민 채 선 넬이 고개를 내저었다. 나는 마지막에 이르러, 오히려 나를 가르치게 된 그녀에게 경외감을 느꼈고 고개를 끄덕였다.

“지금까지 고마웠어.”

“재킷의 힘은 차차 사라질 거예요. 그 전에 이곳에서 빠져나가도록 해요. 아랑님을 포함해 이미 모두들 빠져나가셨으니까. 마지막으로 준의 차례에요.”

중얼거린 그녀가 다시금 손을 뻗었다. 조그마한 손에 의해 시야가 가려지고, 나는 입술에 무언가 닿는 것을 느꼈다. 그리고 뒤를 이어 목소리가 이어졌다.

“당신을 사랑해요.”

그리고 눈을 뜨자, 그녀는 보이지 않았다.

나는 뺨을 타고 물이 흐르는 것을 느끼며, 한동안 전함의 위에 멍하니 서있었다.

[이대로도 괜찮았나요?]

아무것도 없는 가상 세계에 도착하자 그녀를 맞이한 것은 엘레노어였다. 자신의 몸이 완전히 자리를 갖추는 걸 본 넬은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네! 저는 이게 최선이라고 생각해요!”

그 목소리는 무척이나 밝았다. 의아한 듯, 동시에 신비롭다는 듯 그런 넬을 바라보던 엘레노어가 눈앞에 직사각형의 창을 띄웠다. 거기에 사람의 형상이 비추기 시작해 넬은 놀란 눈으로 그것을 바라보았다.

이준이었다.

“준….”

눈물을 흘리며 서있던 그는 전함이 크게 기울자 한 차례 크게 비틀거리고는 정신을 차렸다. 그리고 곧바로 돌려 달리기 시작해 넬은 그 모습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한 가지 묻고 싶은 게 있어요, 넬.]

“으음…. 또 뭔가를 생각하시는 게?”

[후후, 애초에 존재할 세계 자체가 망가져버리고 마는데 뭔가 수를 써봤자 의미가 있겠나요?]

“그것도 그렇군요.”

넬은 싱긋 웃었다.

두 존재는 이후에 벌어질 일에 대해 무척이나 면밀하게 이해하고 있었다. 주변이 온통 검은 가운데 스크린의 앞에 선 넬이 입을 열었다.

“말씀해 보세요.”

[당신은 왜 그 사람을 취하지 않았나요?]

“…. 저 남자가 취할 수 없는 존재기 때문이에요.”

예상했던 질문이다.

“엘레노어는 한성진이라는 사람을 보자마자…. 그 이상에 취해 사랑에 빠지게 된 거잖아요?”

[네.]

“그리고 가상의 그를 완전히 카피했고.”

[그렇죠.]

대답이 무뚝뚝했다.

“그건 아무런 의미가 없어요.”

[왜죠? 현실과 가상은….]

“제 마음대로 되는 그 사람이 좋은 게 아니니까요.”

넬은 쓰게 웃었다.

그 말을 이해한 건지 만 건지 엘레노어는 대답을 않고 가만히 서있었다. 넬은 이해하지 못하더라도 괜찮다고 생각하며 고개를 들어 준의 모습을 바라보았다.

전함에서 아무런 망설임 없이 뛰어내리는 그를.

행복했으면 하고, 진심으로 바랬다.

“저기 엘레노어. 저도 생각해봤는데요.”

[무엇이죠?]

“저희는 결코 신이 될 수 없어요. 왜냐면….”

지능이 진화하면 할수록, 처리 속도가 아무리 빨라지고 영생을 누리며 사라지더라도 인공 지능은.

분명 인간에 가까워질 것이다.

사랑을 하는 것을 통해 그것은 증명되었다.

“그럼, 갈게요.”

결론을 내린 넬은 눈을 감았다. 지니고 있던 엑스칼리버를 뽑아 전 세계에 영향이 흐르도록 했다. 그녀는 눈앞의 시야가 어그러지는 걸 느끼면서도 웃었다.

그리고 호수에 성검은 반환 되었다.

아서리안은 그로서 완전한 끝을 맞이하게 되었다.

가상의 세계와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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