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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크로맨서 재킷-318화 (318/321)

318편

<-- Chapter 7 : Holy Grail -->

30초가 지났다.

그 사이, 수많은 것들이 스러지고 불에 타들어갔다.

“…. 역시 아직 모자라나.”

그레일은 그것을 조금 음울한 눈동자로 내려다보았다. 눈앞에는 그와 천사들 이외에 모든 것이 쓰러진 채였다. 해골 병사들은 불에 타들어갔고 가웨인은 콜로세움의 바깥으로 튕겨져 날아갔다.

그레일은 모든 걸 볼 수 있었다.

의수가 부서진 베디비어.

수많은 단검이 자신에게 꽂힌 모드레드.

지친 채 포위당한 트리스탄.

방패를 잃어버린 랜슬롯까지.

결국 이 정도인가.

아직 한참 모자란가….

“이 정도는 버텨내주지 못하면 곤란한데.”

그는 무언가 잘못되었는가. 그렇게 느끼며 눈앞에 팝업창을 띄웠다. 천사들은 점점 강해졌지만 적당히 저 정도의 재킷 능력으로 상대할 수 있는 수준이라고 생각했는데, 정신적으로 버틸 수 있는 힘이 다한 걸까.

“어떻게 하지, 엘레노어?”

그는 곤란해져 물었다.

지금은 어디까지나 ‘인간’으로서, 그는 자신과 살을 섞으며 사랑하는 여신의 도움을 필요로 했다.

[조심하세요.]

“뭐…?”

하지만 대답은 전혀 예상치 못하던 종류의 것이었다.

“자자, 모두 일어나세요! 다시 싸워야 되요!”

그리고 목소리가 이어졌다.

활기찬 소녀의 것이다. 그레일은 눈앞에서 벌어지는 광경을 순간적으로 이해하지 못하고 멍해졌다. 하지만, 그러는 사이에도 넬은 모두를 깨우고 있었다.

아니, 되살리고 있었다.

“베디비어님! 일어나세요! 제가 도와드릴 테니까!”

“넬….”

지상의 어디선가, 건물의 잔해에 처박혀 있던 베디비어가 고개를 들었다. 그는 넬의 얼굴을 한 번 보고는 쓰게 웃은 뒤 천천히 몸을 일으켜 세웠다. 실린더가 부서져 나갔던 의수가 다시 만들어졌다.

“모디모디님! 아직 주무시면 안돼요!”

“너무합니다…. 이렇게 다쳤는데….”

그렇게 중얼거리면서도 모드레드는 넬을 바라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가 팔을 세차게 휘두르자 망토에 박혀 있던 단검들이 튕겨져 나왔다.

“트리슈니임~?”

“아, 하하…. 왠지 지금 실시간으로 다 넬을 보고 있을 것 같은 기분인데?”

트리슈가 페일노트를 다시 장전했다.

“린슬렛님, 당신의 검이에요.”

“그래, 아론다이트.”

마지막으로 린슬렛까지.

뿐만이 아니었다.

“자자, 조금만 더 힘내요! 이길 수 있어요! 인간이!”

넬은 모두에게 기운을 복돋아주었다.

아니, 그것은 극히 일부에 불과했다. 그녀는 쓰러진 인간들의 상처를 회복시키고 싸울 수 있도록 무기를 다시 만들어주었다. 서울뿐만이 아니라 전함이 지구를 반 바퀴 이상 도는 동안 검은 천사들이 내렸던 장소를.

모조리.

그녀는 이 지구 전체에 영향을 끼치고 있었다.

“엘레노어…!”

[….]

다급해져 이름을 불러보았지만 대답은 없었다.

아니, 엘레노어 또한 분명 여기에 대응을 하고 있었다. 하지만 괴이하게도, 미심쩍게도 반반을 가져가는 정도가 고작이었다. 그레일은 이 사태를 좀처럼 이해하지 못하고 당황해 눈을 동그랗게 떴다.

“뭐냐, 이건…!”

그리고 저도 모르게 소리를 내질렀다.

“이것은 치트야!! 사기라고!!”

“…. 무슨 소리를 하나 했더니.”

목소리는 가까운 곳에서 이어졌다.

“넬도 인간인데, 당연한 거 아니야?”

어이가 없다는 듯 중얼거린 사내가 자리에서 일어섰다. 새까만 곱슬머리에 훤칠한 키. 검은 재킷과 해골의 하관을 닮은 마스크를 얼굴에 쓴 모습이었다. 하지만 그 말의 내용이 터무니없어 그레일은 피식 웃었다.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를…!!”

그는 신성을 모독하는 소리라도 들은 양 반박했다.

“저‘것’은 그저 데이터 쪼가리에 불과해!”

“아니, 무슨 소리를 하는 건지 모르겠군.”

하지만 그는 단숨에 고개를 내저었다.

“너는 모르겠지, 그레일.”

“뭐….”

“네놈은 신이 존재할 수 없는 세계에서…. 유일하게 그것의 존재를 갈망하는 가장 가련한 존재니까!!”

버럭 소리를 지른 타나토스가 검을 뽑아들었다.

“….”

그것을 보고 그레일은 몸이 굳어지는 걸 느꼈다.

넬이 마지막의 두 번째로 도달한 장소는 바닷가 마을의 구석에 위치한 피난 쉘터였다.

주민이 50명도 채 되지 않은 마을이라 그다지 사람이 많지는 않았다. 바로 앞에서 희미한 파도가 소리를 내며 모래사장을 침식해 들어갔다. 해안선이 길게 뻗은 와중, 그녀는 모습을 감춘 채 쉘터의 안으로 들어섰다.

연갈색 머리를 반묶음한 여성.

오늘도 그녀는 앞치마를 두른 채 사람을 돌보고 있었다. 담요를 나누어주고 간단한 음식을 만들고, 비상식량을 점검하는 그 모습은 모두가 의지하는 성녀처럼 느껴졌다. 넬은 그런 유하의 얼굴을 머릿속에 새겼다.

감사합니다, 유하 언니.

그리고 고개를 꾸벅 숙인 뒤, 이동했다.

마지막 장소였다.

“아랑님!”

“넬…?!”

비비안을 부축하며 걷던 아랑이 놀라 허공에 나타난 넬을 바라보았다. 시간이 없다는 생각에 그녀는 곧바로 정신을 집중했다. 마법과 완전히 같은 원리로 넬은 두 사람의 상처를 치유했다.

“가웨인님과 헥터님을 데리고 여기서 탈출해주세요!”

“너, 너는…?!”

“물론, 그 사람의 곁에 있겠습니다.”

그것은 스스로의 신념이었다.

고개를 끄덕인 넬은 전함 내부의 구조를 순식간에 스캔했다. 뿐만이 아니라 시시각각 변화하는 구조를 실시간으로 확인해 계속해서 아랑에게 전송했다. 뿐만 아니라 가웨인의 위치와 헥터의 위치를 파악해 표시했다.

그것은 지금의 그녀에게 있어, 하품을 하며 드러눕는 것만큼이나 손쉬운 작업이었다.

“지금까지 감사했습니다.”

“넬…?!”

의미심장한 말에 아랑은 놀라 손을 뻗었다.

하지만 넬은 이미 사라진 뒤였다.

눈앞에서 흔적도 없이.

그리고 넬이 마지막을 거쳐, 마지막의 마지막….

아니, 말도 안 되잖아.

“내가 마지막 아니야?”

나는 그렇게 중얼거리며 뒤를 돌아보았다. 어느덧 내 어깨 위에 부웅 떠올라 있던 넬이 쓰게 웃었다.

“그, 그런가요?”

“애초에 유하는 왜 보러…. 아니, 됐다.”

말해봤자 집중력만 떨어질 뿐이다.

그렇게 생각한 나는 고개를 내저으며 검을 들었다. 칼자루와 날이 온통 칠흑으로 물든, 장식이라고는 없이 일직선으로 쭈욱 뻗은 그야말로 기본적인 검이었다.

베고 찌른다, 그 기능 이외에는 없는.

“…. 뭐, 되게 멋없게 생겼네.”

“하, 하지만 어쩔 수 없었다고요? 그 엑스칼리버의 식을 해제해서 합금에게 영향을 끼치도록 만들어서!”

어이가 없어 중얼거리자 넬이 변명했다. 그런 모습이 더할 나위 없이 그녀 같아, 나는 싱긋 웃었다.

“좀 예쁘게 만들어주지 그랬냐.”

뭐 뼈도 돋아나고 그렇게.

“지, 지금 엘레노어가 만든 검이 제 검보다 좋다고 말씀하시는 거예요?! 준?!”

“그렇게 말 안했는데.”

“이이이이…!”

“지금 뭘 하는 거냐?”

넬이 분해하던 중 목소리가 이어졌다. 고개를 든 나는 여전히 허공에 떠오른 채로 있는 그레일을 발견했다. 표정이 무뚝뚝해져 휘파람을 불자 녀석이 말을 이었다.

“뭘 하느냐고 물었다.”

“뭔가 하겠지. 신경 끄셔….”

중얼거리고 다음 순간, 발치에 불길이 일었다.

“허….”

“나를 능멸하려는 거냐!”

“아니 무슨, 어디서 또 이상한 사극 톤을 배워왔어.”

나는 그렇게 중얼거리며 불길을 견뎌냈다.

참고로 말하자면 ‘진짜’ 불이다. 하지만 나에게는 전혀 통하지 않았다. 넬의 백업과 더불어 몸이 완전하게 보호를 받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나는 그레일이 완전히 흥분한 것을 느끼며 검을 들었다.

“망령 군세.”

넬이 내 생각을 읽어내고 대신 말을 했다.

[결국 대항하겠다는 건가요.]

해골 병사들이 일어섰고, 뒤를 이어 그레일의 뒤편에 엘레노어가 모습을 드러냈다. 그녀는 마치 거대한 오로라처럼 허공에 넓게 펼쳐진 채였다. 적어도 대기권 바깥까지 드러누운 듯한 모습이었다.

“뭐 언제는 예상치 못했단 것처럼.”

하지만 나는 전혀 겁먹지 않았다.

내 옆에는 넬이 있으니까.

“인류에 대한 사랑이 사라지려고 하는군.”

“언제는 있었다고.”

중얼거린 나는 병사들과 함께 앞으로 나아갔다. 그러자 그레일 또한 다시금 천사들을 소환하여 우리는 거대한 콜로세움의 중앙에서 마주쳤다.

드디어 파이널 보스다.

“간다, 넬.”

소리친 나는 천사의 머리를 베어냈다.

동시에 뛰어올라 거대한 녀석의 어깨를 밟고 재도약했다. 그레일이 있는 위치까지 도달해 나는 검을 휘둘렀다.

“큭…?!”

놀란 녀석이 옆으로 피해냈다.

날개가 펄럭이며 깃털이 흩날렸다. 여덟 겹이 넘는 천사의 날개는 지금 이 순간 닭털보다 못해보였다. 하지만 그레일이 이런 반응을 보이는 이유는 간단했다.

이것은 녀석의 신체를 파괴하기 때문이었다.

정보량 송신 합금의 조합으로 이루어진 몸. 표현하자면 ‘로봇’이라는 단어가 그에 적합하겠지. 때문에 엑스칼리버가 행하는 가상 세계에서의 공격에서 자유로운 대신 그레일은 지금 내가 들고 있는 검에는 무력했다.

검으로 찌른 순간 넬이 그 주변에 방해 전파를 발생 시킨다. 합금에 전송되어있던 엘레노어의 식이 무력화되고 원래의 형태로 돌아가게 되는 것이었다.

“그냥 찌르면 죽는다는 말로 이해하면 편하겠지….”

나는 쓰게 웃었다.

아무것도 없는 허공.

“타나토스!!”

중심을 잃고 떨어지려는 내게 그레일이 날아들었다. 하지만 해골 병사들의 조종도, 그 외에 자잘한 신체의 보강을 넬에게 맡겨두고 있는 만큼 나는 정신을 집중하는 게 평소에 비해 훨씬 수월했다.

우아랑의 검을 소환했다.

그것을 밟고 날았다. 동시에 검을 사라지게 하고, 린슬렛의 방패를 어깻죽지에 세웠다. 그 상태에서 다시금 가속해 그레일을 향해 날아들었다.

인간 포탄 같은 거다.

“큭…!”

까앙! 하는 소리와 함께 녀석을 들이받았다. 조금 날려져 공중에서 멈춰선 나는 그대로 물러선 그레일을 차가운 눈으로 노려보았다.

그리고 시간이 정지했다.

그레일이 손을 뻗고 다음 순간 눈앞에서 모습을 감췄다. 고개를 휙 돌린 나는 복부에서 강한 통증을 느끼고 동시에 바닥으로 추락했다. 몇몇 해골 병사들이 팔을 얽어 아래에서 그런 나를 받아냈다.

“크윽….”

역시 호락호락한 상대는 아니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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