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0편
<-- Chapter 7 : Holy Grail -->
알고 있다.
아니, 그 누구라도 알 것이다. 그것은 명백한 사실이었으니까. ‘라이오넬이 강하다.’는 것은 마치 태양이 동쪽에서 뜨는 것마냥 자명한 진실이었다.
하지만 나는 언제나 거기에 맞서왔다.
새삼 스스로가 한심해지는 순간이었다. 나는 항상 해를 서쪽에서 뜨게 만들려고 해왔으니까. 언제나 해를 동쪽에서 뜨도록 만드는 존재에게 맞서서.
“그래야 한다면 해야 한단 말이다!!”
버럭 소리를 내지르고,
“라이오넬!!”
검이 부딪쳤다.
물론 무게의 차이가 배는 났기에, 내 쪽이 밀려났다. 당연한 수순이다. 하지만 나는 이런
상황에 상정해 지금까지 수많은 망자들을 재단해왔다.
우아랑의 검이 라이오넬의 겨드랑이를 베고 지나갔다.
순간적으로 녀석의 자세에 빈틈이 생겼다. 나는 검을 비틀어 라이오넬의 대검을 들어 올리고는 머리를 숙인 채 그 밑을 지나가 반대편으로 훌쩍 빠져나갔다.
그리고 곧장 오금을 베어냈다.
타격은 없다. 알고 있다. 하지만 나는 녀석을 심리적으로 압박할 심산이었다. 망자들을 녹여 움직임을 봉쇄한다는 작전이 통하지 않는 이상, 이런 식으로라도 녀석에게 맞서야만 했다.
“젠장!”
하지만 상대하는 게, 물론 쉽지는 않았다.
뒤로 돌아선 라이오넬이 대검을 들자 후끈한 열기가 날아들었다. 그런 상황에서 나는 모드레드의 근본을 계승해 몸을 투명하게 만들며 앞으로 내달렸다.
라이오넬이 크게 검을 휘둘렀다.
내가 보이지 않는 상황에서 그것은 아마 택할 수 있는 최선의 답일 것이다. 하지만 나는 그것을 예상했고, 가볍게 미끄러지며 대검의 아래로 파고들었다. 그리고는 발목의 힘줄을 베어내며 빠져나갔다.
“…!”
그리고 쿵, 하는 소리가 울려 퍼졌다.
“뭐야…?”
전혀 예상치 못한 소리에 나는 놀라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리고 뒤를 돌아보자 맥없이 무릎을 꿇고 있는 라이오넬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뭐지?
저 녀석이 무릎을 꿇었다고?
나는 어이가 없어지는 걸 느꼈지만, 그와는 별개로 경계를 늦추지는 않았다. 겨눈 검을 늦추지는 않은 채 라이오넬의 곁으로 조심스럽게 다가갔다.
“야, 무슨 일이야?”
그리고 말을 걸었다.
“….”
대답은 돌아오지 않았다.
“나 간다? 먼저 가도 돼?”
나는 무릎을 꿇은 녀석을 향해 소리쳤다. 그러자 뒤를 이어, 라이오넬은 길게 신음하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 동작이 필사적으로 느껴졌다.
“…. 간다.”
그리고 녀석은 다시 검을 들었다.
그 모습을 보며 나는, 반쯤 무의식중에 ‘괜찮냐.’라고 물을 뻔했다. 하지만 그래서는 안 된다는 걸 자각하고 입술을 꾹 다물어 참았다. 마음을 다잡았다.
통증을 느끼는 걸까.
“….”
하지만 그럼에도 녀석은 검을 쥐었다.
“젠장, 이럴 필요는 없다고.”
버텨내던 나는 포기하고 스파다를 바닥에 내리꽂았다. 검은색으로 이루어진 함선의 갑판은 무슨 흙바닥이라도 되는 양 스파다가 쉽사리 꽂혔다.
“우리가 이럴 필요는 없어, 라이오넬.”
“싸워라, 타나토스.”
“그 녀석은 신이 아니야!!”
소리를 버럭 내지르고, 나는 표현이 잘못되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래, 솔직히 말하자면 신이라는 단어 이외에는 녀석을 표현할 길이 없었다.
하지만 내 말은,
“네가 바라던 신이 아니라고!”
“….”
“알아! 봤어! 가자 지구를 단 몇 초 만에 해방시켰지! 그럴 능력 또한 지니고 있어! 엘레노어는!”
하지만,
“그건 정의가 아니야!”
적어도 나는 그렇게 생각했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쩌면 좋지?”
하지만 녀석은 그런 내 말을 반박했다. 복부를 움켜쥔 채, 거칠게 숨을 몰아쉬며 대검을 땅에 꽂았다. 그리고 거기에 기대어 선 채 라이오넬은 말을 이었다.
“악이 있었다.”
나는 그 말을 이해했다.
알고 있다. 로버트 무가베. 짐바브웨 최악의 독재자이자 나라를 시궁창에 처박아버리고 자신은 호의호식을 누리다 죽어버린 악마 그 자체인 인물.
“그리고 악이 있었다.”
최악을 자랑하는 자연, 모든 것을 착취하는 기득권. 식민지 시절의 무력함과 천함을 그대로 지닌 국민.
패배하기 위해 태어난.
인간.
“그래서 그게 뭐 어쨌단 건데!”
나는 거기에 버럭 소리를 내질렀다.
사내의 몸이 움찔 떨렸다.
“알고 있어! 네 말이 틀리지 않다는 것쯤은…!!”
나는 그가 무너지기 직전이라는 걸 알아차렸다.
엘레노어의 방대함을 느끼고, 그로서 의심이 피어올랐다. 그녀가 정말로 지속할 것인지에 대해. 지금의 세계를. 제 3세계 국가의 패배한 국민을 이끌어주는 자유의 여신으로 남아줄 것인지.
하지만 그 외에 매달릴 것이 없다.
왜냐면 그녀조차 없으면,
“세계에…. 악이 만연하기 때문이잖아?!”
“알고 있군.”
“아냐, 그건…. 말도 안 되는 짓이야…!”
“어째서지?”
“그걸 다 묻고, 어이가 없군…! 라이오넬!”
나는 녀석의 말을 거세게 잘라냈다. 라이오넬이 움찔 몸을 떨었고, 나는 입술을 질끈 깨물며 가까이 다가갔다. 스파다를 원래의 자리에 꽂아둔 채로.
“전사라는 말은 허울에 불과했던 거냐!”
다가가 나는 녀석의 얼굴을 세차게 후려쳤다.
검은 투구의 위, 사실 이쪽의 주먹이 더 아프겠다 싶을 정도였다. 하지만 나는 그것을 무시한 채, 무너져 내리려는 라이오넬의 멱살을 쥐고 들어올렸다.
“싸워!”
“어째서….”
“네가 말하는 전사는 그러기 위해서 태어났으니까! 뒈져도 일어나서 싸우라고! 이 악이 만연한 세계에서…. 다 죽어 나자빠진 쓰레기들로 가득 찬 세계에서…!!”
“타나, 토스….”
중얼거린 녀석이 손을 들었다.
“싸우…! 응?”
그리고 나는 멱살을 붙잡혔다.
아니, 잠깐?
“크헉?!”
설마 싶어 당황하던 순간, 나는 면상에 알싸한 통증을 느끼며 뒤쪽으로 나가떨어졌다. 라이오넬의 거대한 주먹에 속수무책 없이 한방을 허용해버리고 말았다.
“윽…!”
코피가 뚝뚝 떨어졌다.
“이해했다, 너를.”
바닥에 엎어진 내가 몸을 가누는 사이, 자리에서 일어선 라이오넬이 가까이 다가왔다. 대검을 등에 짊어진 채, 검은 망토를 휘날리며 다가온 녀석이 손을 내밀었다.
“일어나라.”
“…. 그건 보통 내가 하는 말인데.”
나는 어이가 없어지는 걸 느끼면서도 손을 잡고 일어섰다. 그리고 녀석과 나는 한동안 서로를 바라보았다. 나는 투구의 벌어진 틈새로 보이는 녀석의 눈동자가 한결 후련해져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윽…?”
바닥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그와 동시에, 아무것도 없던 바닥에서 검은 바람에 휩싸여 천사들이 일어섰다. 점점 그 숫자가 늘어나, 나와 라이오넬은 서로를 등진 채 그것을 바라보았다.
“이준, 이었나.”
“뭐?”
그리고 녀석은 뜬금없는 소리를 내게 했다.
“네 이름.”
“그, 그런데.”
놀라 되물었으나 목소리가 진지해, 나는 얼떨결에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직후, 나는 무언가 목덜미를 쥐고 당기는 감각에 놀라 눈을 동그랗게 떴다.
라이오넬이었다.
“잠…!”
그리고 이어서, 그 이유도 쉽사리 예상이 됐다. 하지만 나는 주변에 점점 천사들이 번지듯 생겨나는 가운데 그런 녀석의 행동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발버둥 쳤다.
“내 이름은. 이라는 뜻이다.”
하지만 라이오넬은 더없이 침착했다.
“너…!”
“zita rangu riri. 내 이름은.”
내 목덜미를 쥐지 않은 다른 손으로 투구를 벗은 녀석이 진지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검은 피부에 깊은 눈동자를 본 나는 말이 이어지질 않는 것을 느꼈다.
하지만 머나먼 기억 속에서, 떠올렸다.
“포.”
“….”
“포 무탐바라.”
녀석의 이름을.
“고맙다, 이준. 나의 이름을 기억해준, 내 가장 강대한 적수이자 존중하는 전사. 마지막으로….”
친구여.
녀석이 그렇게 중얼거리고,
“큭!!”
나는 몸이 나는 것을 느꼈다.
“오오오오오오오오!!”
시선을 돌리자, 녀석이 멀어져 가는 것을 느꼈다. 그렇게 갑판 안쪽으로 날아가는 내게 주먹을 내보인 녀석은 대검을 들어 세차게 휘둘렀다. 그제야 천사들이 녀석에게 달려들어 다시금 싸움이 벌어졌다.
“포…!!”
나는 멀어져 가는 녀석을 잊지 않기 위해, 눈 한 번 깜빡이지 않고 계속해서 바라보았다.
갑판의 안쪽에서 착지할 때까지.
“빌어먹을…!”
착지할 타이밍을 잡지 못하고 나가떨어졌다.
한 바퀴 굴러 착지한 나는 그대로 천사들이 포위하며 서있는 방향을 노려보았다. 라이오넬이 순간적으로 고함을 내질러 주의를 끌었기 때문에, 이쪽은 안전하게 빠져나오는데 성공했다.
하지만 중심의 라이오넬은,
“큭…!!”
보이지 않았다.
아니, 라이오넬이 아니다.
“포! 포 무탐바라!!”
나는 버럭 그 녀석의 이름을 불렀다.
잊지 않도록, 되새기기 위해. 또한 죽지 말라는 말을 대신하여. 대검에 맞아 튕겨져 날아오르는 천사들로 그의 위치를 파악하고 한동안 바라보았다.
하지만 이내, 돌아섰다.
할 일이 있다.
나는 이 게임을 끝내야만 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