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네크로맨서 재킷-309화 (309/321)

309편

<-- Chapter 7 : Holy Grail -->

전함 내부는 상당히 복잡했다.

“으앙! 같은 길을 빙글빙글 돌고 있어요!”

완전히 미로처럼 길이 얽혀, 두 사람은 안으로 들어선지 꽤나 시간이 흘렀음에도 제대로 앞으로 전진을 하지 못하고 있었다. 취익. 하고 응축된 실린더에서 냉각제가 뿜어져 나오는 가운데 길쭉한 복도를 박차고 단숨에 내달린 아랑은 길게 숨을 내뱉으며 멈춰 섰다.

“하아….”

그녀는 턱을 타고 흐르는 땀을 닦으며 주변을 둘러보았다. 앞뒤로 길게 뻗은 복도는 온통 검은색이었고, 미등이 바닥을 비추어 외곽선을 겨우 드러냈다.

“함정이다.”

그리고 아랑은 결론을 내렸다.

“네?”

“실린더가 움직이고 있잖나. 벽이 움직이거나 해서 우리를 계속해서 빙글빙글 돌게 만드는 것 같다.”

의아해하는 넬의 모습에 그녀는 앞뒤를 두리번대며 중얼거렸다. 어렴풋한 기억에 의하면 대충 스무 걸음쯤 내달렸을 때 오른쪽으로 꺾고, 비슷한 걸음을 나아갔을 때 또 오른쪽으로 꺾었다. 그게 반복되면 완연한 정사각형을 만들게 된다.

“아, 한 번 체크해볼까요?”

“부탁한다.”

말을 이해한 듯 넬이 고개를 끄덕였다. 공중에 반쯤 떠오른 그녀에게서 등을 돌린 아랑은 그대로 다시 내달려, 복도가 이끄는 대로 계속해서 나아갔다.

그렇게 다시 한 바퀴쯤 돌았다고 생각할 무렵,

“아랑님!”

넬이 부르는 소리에 아랑은 바닥에 발을 끌며 자리에 멈춰 섰다. 그러자 넬은 복도를 스캔이라도 하듯 한 바퀴 휙 돌아보고는 벽을 향해 손을 뻗었다.

“저곳이에요!”

아랑은 지체하지 않고 달려들었다.

검을 들어 엑스자로 세차게 베어냈다. 손에 무겁게 감각이 휘감겼지만 아랑은 손목을 유연하게 움직여 벽을 무너뜨렸다. 그리고는 발로 걷어 차 무너뜨렸다.

하지만 무너진 잔해는 ‘밑’으로 떨어졌다.

“윽…?!”

순간적으로 앞으로 나아가려던 아랑은, 바로 옆의 벽을 움켜쥐며 자리에 멈춰 섰다. 저도 모르게 걷어찬 벽의 잔해가 발밑으로 떨어져 내렸다. 어쩐지 다리에 힘이 풀리는 것을 느끼며 아랑은 고개를 들었다.

“나, 날 죽일 생각이었던 거냐! 넬!”

“엑?! 아, 아니에요! 어라…? 이게 무슨…?!”

하지만 따라서 고개를 내민 넬은 의아한 듯 눈을 동그랗게 떴다. 그런 넬의 모습을 보며 아랑은 어딘가 이상하다는 생각에 조심스럽게 말을 이었다.

“뭔가 이상한 거라도….”

“방금 전까지는 반대편에 복도가 있었어요!”

“그럼 문이 박살나자 곧바로 사라졌단 거냐?”

“그, 그 이외에는 방법이….”

“….”

순간적으로 말도 안 되는 이야기라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넬이 거짓말을 할 리도 없었던 터라 아랑은 입술을 질끈 깨물었다. 하지만 이내 당황해 말을 이었다.

“아, 아니 널 믿지 못하는 건 아니다.”

넬이 불안해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차렸기 때문이었다. 때문에 아랑은 일부러 다독이듯 이야기했지만 심연처럼 깊게 물든 어둠을 들여다보던 그녀는 이내 눈망울이 그렁그렁해져서는 고개를 들었다.

“아, 아랑니임….”

“상황을 해쳐나갈 방법이 있을 것 같나?”

“모르겠어요. 저도 사실은…. 너무나도 갑작스레 벌어진 일이라. 눈앞에서 이런 텅 빈 공간이 발생한 게 현실인지 엘레노어가 저를 속이는 건지조차도….”

“넬!”

아랑은 돌아서 넬의 어깨를 쥐었다.

“네, 네?!”

“우리가 판단할 수 있는 건 지금의 상황뿐이다. 이 내부 공간의 폭과 깊이를 잴 수 있겠나?”

“…. 해볼게요.”

그녀는 의지를 다잡듯 고개를 끄덕였다. 아랑은 아직까지도 바닥에 돌이 닿는 소리가 나지 않았다는 생각에 길게 한숨을 내쉬며 옆으로 돌아섰다.

넬이 손을 모았다.

그리고 그 조그마한 손에서, 보랏빛의 빛이 피어올랐다. 그것은 선의 형태로 이루어져 주변으로 힘차게 뻗어나가며 벽을 스캔하기 시작했다. 넬은 정신을 집중한 상태에서 무어라 말을 중얼거렸다.

마치 마법과 같은 광경.

빛이 뻗어나가는 것을 멍하니 바라보던 아랑은, ‘넬’ 정도 되는 존재조차도 현실과 가상의 구분이 어려운 걸까 싶어 눈썹을 찡그렸다. 그녀는 자신에 비하자면 수천, 수만 배는 우월한 존재일 텐데도.

“폭은 3km…. 깊이는 1km 정도에요.”

그리고 잠시 후, 눈을 뜬 넬이 충격적인 사실을 전해왔다. 아득해지려는 정신을 다잡은 아랑은 이내 머뭇거리며 조심스럽게 말을 이었다.

“반대편까지의 거리는?”

“500미터에요.”

“차라리 짧다고 말하고 싶군….”

아랑은 어이가 없어 쓰게 웃었다. 하지만 충분히 먼 거리였다. 뛰어넘는 것은 당연히 불가능했고, 타나토스가 응용하던 것처럼 검을 밟는다 하더라도 중간에 돌풍이 불어오거나 하면 곧바로 추락할 가능성이 컸다.

“일단 다른 길을 찾아보도록 하지.”

“그러는 게 좋겠네요.”

“일단 제대로 갈 방향과 장소를….”

“엘레노어라면 밑에 있어요.”

대화를 나누던 중, 누군가 끼어들었다.

“뭣….”

“그 곁으로 갈 심산이, 아니신지?”

놀라 고개를 돌린 아랑은 어둠 속에서 모습을 드러내는 여성을 발견했다. 하지만 그 모습이 무척이나 기억과는 달라, 아랑은 잠깐 동안 말을 잇질 못했다.

헥터는 마치 잠식당한 듯했다.

엘레노어가 만들어낸 게임 세계에.

“뭐, 못 볼 거라도 본 얼굴인데요?”

“헥터….”

“‘배신자’ 우 대위.”

싱긋 웃은 그녀가 가까이 다가왔다. 여유를 한껏 가장한 모습이었지만 아랑은 그런 그녀를 당황스러운 눈으로 바라보았다. 헥터의 웃는 얼굴이 점차 굳어져갔다.

그녀는 만들어지다 만 듯했다.

검은 점액질이 경화(硬化)되어 피부의 곳곳에 붙었다. 갑옷을 만들려고 했지만 그 중간에 손상이 된 것처럼, 굳은 점액질은 곳곳에 흠집이 간 상황이었고 알 수 없는 문자들이 떠올라 망가진 컴퓨터처럼 느껴졌다.

언뜻 드러난 금발의 머리, 그리고 푸른 눈동자와 목소리가 아니었다면 헥터라고 생각조차 못했을 것이다.

“우리는, 당신을 빌미로 회장을 잡으려고 했어.”

그녀는 비틀거리며 벽에 기대어 섰다.

“다음은 간단했지. 돌아오는 당신과 타나토스를 붙잡고 엘레노어가 나타나기를 기다리는 거야. 그리고 곧바로 엑스칼리버를 발동시키는 거고. 사실…. 이 재킷인지 코튼지 하는 병신 같은 건 안중에도 없었어.”

“너…. 몸이….”

“닥치고 들어!!”

헥터는 버럭 소리를 내질렀다.

“기억이 나. 당신 그때…. 나한테 한 방 먹였었지? 엘레노어에게 조종당했을 때의 기억이 있어. 정말로 엿 같은 기분이더군. 구역질이 날 정도야.”

그 손에 채찍이 휘감겼다.

“엑스칼리버는 말이지…. 말하자면 청야전술이야. 네가 제대로 인간의 말을 듣지 않으면, 모든 걸 부수어버리겠다는. 대화를 제안하는 수단인 셈이지.”

“아랑님, 검을…!”

“그런데 씨팔 아무 소용도 없었군!!”

아슬아슬하게 타이밍을 맞췄다.

“큭?!”

휘둘러지는 채찍을 검을 뽑아 튕겨낸 아랑은 그대로 비틀거리며 뒤로 물러났다. 하지만 바로 뒤에 깊은 심연이 있어 그녀는 필사적으로 몸을 비틀어 옆으로 돌아섰다. 헥터는 흥분해 반쯤 눈이 맛이 간 채였다.

“결국 모든 게 무너졌어!!”

“헥터!”

“그토록 감추고자 노력했는데도!!”

채찍의 끝에 추처럼 검은 구체가 달라붙은 채였다. 그것을 헥터가 흥분해 마구잡이로 휘두르자 날카롭게 벽이 부서져 나갔고 아랑은 비틀거리며 뒤로 물러섰다.

깊은 심연이 드러났다.

“결국 엘레노어에게는 애들 장난이었다는 거겠지!”

“정신 차려라!”

“뭐가?! 결국 그 엿 같은 여자 손아귀에서 놀아났는데?! 정신을 차려서 뭘 어쩔 건데! 날 봐봐! 이런 병신 같은 꼬라지를 하고 다시 녀석이 바라는 대로 ‘기사’로서 이용만 당하는 거겠지! 네놈들을 막기 위해서!!”

분노해 일갈한 헥터가 품안에서 플라스크를 몇 개 꺼내들었다. 뒤가 막힌 상황에서 당황해하던 아랑은 이윽고 싱긋 웃는 헥터와 눈을 마주쳤다.

“나는 ‘시련’을 부과하기 위한 몬스터일 뿐이라고!!”

플라스크가 날아들었다.

척 보기에도 위험한 물질이 든.

찰나의 순간, 아랑은 고민에 빠져들었다. 하지만 생각에 앞서 몸이 움직였다. 그녀는 몸을 낮춘 채 플라스크의 밑으로 파고들어 헥터를 향해 날아들었다.

“아랑님!!”

넬의 비명이 이어졌다. 하지만 아랑은 헥터를 밀어내며 함께 심연으로 몸을 내던졌다. 땅에 떨어진 플라스크가 깨지며 그 안의 약물이 뒤섞였고,

“…!!”

이내 어마어마한 폭발이 그 위를 뒤덮었다.

프로펠러에 몸이 갈려나가는 것은 그다지 좋지 못한 기분이었다.

“크헥! 켁! 컥! 어헉!”

입안에서 이상한 소리도 났고, 몸이 제멋대로 회전하며 계속해서 날개에 얻어맞았다. 그 끝에 나는 뻥 뚫린 바닥으로 빠져나가 지상을 향해 추락하기 시작했다.

머리를 잘못 맞은 것일까.

정신이 약간 멍했다.

하지만 그런 와중, 나는 한 가지 사실을 깨달았다.

전함이 떠오르고 있다.

그러므로….

“지금 떨어지면, 돌아갈 수, 없어….”

반쯤 혀가 꼬부라진 채 중얼거린 나는 곧바로 품안에서 우아랑의 검을 뽑아들었다. 그리고 그것을 공중에 머물도록 한 뒤 짓밟고 위로 힘차게 날아올랐다.

“큭…!”

동시에, 스파다를 찔러 넣었다.

아슬아슬하게 성공했다. 나는 전함의 끄트머리에 스파다를 박은 채 거기에 매달릴 수 있었다. 그 사이 다시금 내 쪽으로 검이 날아왔고, 나는 그 두 자루를 번갈아 찔러 넣으며 전함의 벽을 필사적으로 기어 올라갔다.

“젠장….”

그리고 추욱 늘어져, 바닥에 무릎을 꿇었다.

“패배를 인정하는가.”

그 사이, 가까이 다가온 라이오넬이 무뚝뚝하게 목소리를 냈다. 숨 고를 시간조차 제대로 주지 않는 녀석에게 원망스러운 기분을 느끼며 나는 일어섰다.

“하, 무슨 소리야…? 이제 시작인데.”

스파다를 쥐고, 동시에 우아랑의 검을 머리 위로 띄웠다. 가만히 있던 라이오넬은 검을 손으로 가리켰다.

“그건, 우 대위의?”

“그래, 마음이 맞게 되어서 말이지.”

“….”

“간다, 이번에야말로. 라이오넬.”

“기대하고 있다. 타나토스.”

이야기를 주고받은 뒤, 녀석과 나는 검을 들었다. 그렇게 대치한 채, 나는 어쩌면 녀석의 대검도 계승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잠깐 했다.

하지만 지금 시험해볼 문제는 아니다.

서로를 겨누고,

“내게 보여라, 너의 길을.”

나는 중얼거리는 녀석을 향해 거세게 내달렸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