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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크로맨서 재킷-308화 (308/321)

308편

<-- Chapter 7 : Holy Grail -->

전함의 갑판 위로 날아오르자 다시금 헬기가 흔들리기 시작했다. 고장 난 범퍼 카의 위처럼 세차게 각도가 뒤틀려, 나는 바깥쪽에 있는 넬을 바라보았다.

“엘레노어의 영향이…! 안되겠어요! 탈출을!”

정신을 집중하던 그녀가 고개를 내저으며 소리쳤다. 나는 뒤쪽에 있던 우아랑의 팔을 잡았고, 헬기의 벽에 발을 디딘 그녀가 날카롭게 튕겨져 날아올랐다.

“간다!”

그리고 나 역시 마찬가지로.

무너지기 직전인 헬기를 박차고 뛰어오르자 함선의 위가 그대로 눈에 들어왔다. 머리카락이 세차게 흩날렸다. 그런 와중 갑판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정보량 송신 합금.

가상과 현실을 잇는 매개체.

전함을 구성하는 기반은 그것이었다.

“…!”

검은 갑판에 전기의 흐름을 표현하는 듯한 붉은 이펙트가 퍼져 나갔다. 현대적인 디자인의 전함은 갑판에 아무것도 없이 밋밋했고, 그야말로 앞으로 나아가기 위해 모든 것을 희생한 듯한 구조를 띄고 있었다.

하지만 그렇게 생각한 것도 잠시,

“큭?!”

그런 밋밋한 갑판의 위에서 자주포가 피어올랐다. 그런 꿈같은 표현이 정확히 들어맞을 정도였다. 검은 바람이 휘몰아치며 생겨난 포가 나를 겨누었다.

투콰앙. 하고 포가 발사되었다.

“젠장!”

나는 비명에 가까운 소리를 내지르며 날아드는 포탄을 검으로 튕겨냈다. 하지만 그 물리적인 힘에 의해 바깥으로 밀려났고, 나는 바닥에 발을 끌며 착지했다.

그리고 깨달았다.

아슬아슬하게, 갑판 밖으로 떨어지기 직전이라는 걸.

“후우….”

한숨을 내쉰 나는 저 멀리 불꽃을 꼬리로 만들어내며 추락하는 헬기를 발견했다. 그리고 직후, 갑판 위의 자주포와 기관총이 나를 노리고 쏘아지기 시작했다.

“린슬렛!”

그리고 나는 어깻죽지에 방패를 꺼내들었다. 만들어지는 게 미처 끝나기도 전 앞으로 도약, 날아드는 탄환을 막아내고 포탄의 충격에 정면으로 맞섰다. 하지만 기관총과 자주포는 내가 버티고 서있는 위치를 초토화 시킬 기세로 계속해서 사격을 가해왔다.

하지만 그게, 어느 순간 멎었다.

“스컬!”

우아랑이 기관총을 베어낸 것이었다.

“큭….”

그 사실을 알아차린 나는 안심해 무릎을 꿇었다. 어깨 쪽이 심할 정도로 욱신거렸고 그런 가운데 나는 얼마 지나지 않아 뭔가 이상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우아랑이 벤 것은 분명히 기관총 하나였다.

“….”

그런 의문감에 고개를 든 나는, 누군가 기관총보다 네 배는 큰 자주포를 잡아서 뜯어냈다는 사실을 알아차렸다. 어둠 속에서 그 인영이 분명하게 보였다.

“준…!”

넬이 반쯤 경악하고, 우아랑 역시 내 얼굴에 뭔가를 알아차리고 고개를 돌렸다. 우리 세 사람은 어둠 속에 가만히 서있는 그 존재를 가만히 바라보았다.

그리고 그 발밑으로부터 빛이 뻗어 올랐다.

“….”

라이오넬이었다.

나는 그 사실을 어렵지 않게 알아차렸다. 하지만, ‘알아차렸다.’라는 표현을 써야할 만큼 지금 라이오넬의 모습은 평소와 달리 이질적이었다.

바이크 헬멧이 변화한 듯한, 뿔이 솟아오른 검은 투구. 갑옷이 덧대어진 바디 슈트와 망토. 그리고 마지막으로,

“너….”

검은 연기를 끄트머리로부터 발산하는 대검까지.

“넬, 우아랑을 데리고 먼저 가.”

순식간에 상황을 판단한 나는 옆에 서있던 넬에게 곧장 말을 건넸다. 라이오넬의 강함을 느끼는지 입술을 질끈 깨물고 있던 그녀가 놀라 날 바라보았다.

“준, 하지만…!”

“걱정 마. 금방 따라갈 테니까.”

나는 무뚝뚝하게 중얼거렸다. 안심하라는 듯 고개를 돌려 바라보자 넬은 이내 진정하고 고개를 끄덕였다.

“네, 내부를 탐색하고 있을게요.”

중얼거린 그녀가 모습을 감췄고, 뒤를 이어 우아랑의 곁에서 다시 모습을 드러냈다. 나는 두 사람이 대화를 나누고, 이내 갑판 안쪽으로 향하는 모습까지 지켜보았다. 꽤나 긴 시간이었지만, 녀석은 움직이지 않았다.

라이오넬은 그저 가만히 서있었다.

“….”

“결국 그쪽에 붙은 거냐.”

나는 중얼거리며 스파다를 뽑아들었다.

전함의 갑판 위, 세차게 바람이 몰아쳤다. 녀석은 대답하지 않고 내게 그 거대한 검을 겨누었다. 검은 연기는 마치 스스로 불타오르는 것 마냥 대검을 물들였다.

우리는 누가 먼저랄 것이 없었다.

“…!”

그래, 거의 동시였다.

녀석과 내가 서로를 향해 달려든 것은.

하지만 내 쪽이 조금 더 빨랐다. 검은 바람이 휘몰아치며, 나는 모드레드의 근본을 계승해 한 박자 빠르게 녀석의 품안으로 훌쩍 뛰어들었다.

스파다가 라이오넬의 복부를 꿰뚫었다.

“후…!”

하지만 나는 멈추지 않고 뽑아 옆으로 물러서며 허벅지를 베어냈다. 날카로운 상처의 뒤를 이어 피가 치솟으며 녀석은 그때가 되서야 내 존재를 알아차렸다.

사실 생각하지 않은 것은 아니었다.

상정을 해오지 않았던 것도 아니었다.

눈앞의 이 괴물과 싸우는 것을.

“느려…!”

그렇게 외친 나는 뒤로 물러서 망자를 몇 마리 소환했다. 해골로 된 병사들이 바닥으로부터 일어서 라이오넬을 향해 바이크 체인을 휘두르며 달려들었다.

하지만 역시 라이오넬은 쉽게 당하지 않았다.

뒤로 돌아선 녀석은 자신을 향해 달려드는 해골 병사들을 바이크 체인 째 날려버렸다. 나는 조각나 부서져 내리는 해골 병사들을 면밀하게 살폈다.

그리고 알아차렸다.

해골 병사들의 몸이 대검에 닿은 순간 미세하게나마 녹아내렸다는 걸. 아마 생각대로 대검은 멜팅 케이프처럼 고온의 열기를 내뿜는 듯했다.

그렇다면 일단, 무기를 봉해두는 걸로 할까.

“라이오넬!”

일부러 호전적으로 접근, 나는 녀석을 향해 세차게 검을 휘둘렀다. 물론 마찬가지로 녀석의 실력은 출중했다. 스스로 그토록 자부하는 것처럼 전사 그 자체였다.

거기에 대검의 열기까지 더해져.

“큭!”

견뎌내며 일부러 녀석을 맞상대하던 나는 이내 펄쩍 뛰어 뒤로 물러섰다. 그리고 짧은 순간, 스파다를 라이오넬의 발치를 향해 내던졌다. 물론 그것은 견고한 벽처럼 선 대검을 이겨내지 못하고 튕겨져 나왔다.

하지만 그 짧은 순간이면 충분했다.

“…!”

나는 먼 위치에 발을 디디고 서 정신을 집중했다. 눈을 감고 팔을 뻗자 그 행동의 의미를 알아챈 라이오넬이 검을 세우고 전차처럼 돌진해 내게 달려들었다.

하지만 늦었다.

아슬아슬하게 시간이 맞았다.

“망령 군세.”

그렇게 외치고 뒤를 이어, 병사들이 일어섰다.

갑판 자체가 정보량 송신 합금으로 이루어져 있는 만큼, 바닥을 검게 물들일 필요도 없었다. 일어선 해골 병사들이 라이오넬을 막아섰고, 이내 갑판 전체를 개미떼처럼 새까맣게 물들이며 적을 포위했다.

“….”

“멀리서도 잘 보여서 좋긴 한데.”

이거 완전 대규모 레이드라도 온 기분이군.

나는 그렇게 생각하며 먼 곳에 서있는 라이오넬을 노려보았다. 병사들에게 포위를 당한 녀석은 상황을 파악하듯 주변을 둘러보았고 나는 그 틈을 놓치지 않고, 병사들에게 명령을 내렸다.

“가라.”

시야 한쪽이 붉게 물든 걸 느꼈다.

“후우….”

구역질이 날 것 같은 기분이었다. 눈동자로부터 눈물처럼 피가 흘러내렸다. 이게 대체 어디서부터 난 건지는 모르겠지만 아마 좋지 못한 신호일 터였다.

뭐 그래도, 이 방법 밖에 없지만.

빠각, 하는 소리와 함께 눈앞에서 부서진 해골의 잔해가 솟아올랐다. 하지만 나는 전혀 개의치 않고 해골 병사들과 함께 앞으로 전진했다.

가랑비에 옷 젖는다는 말과 같았다.

라이오넬이 계속해서 대검을 휘둘렀지만 인간의 한계가 있었다. 해골 병사들은 틈을 노리고 녀석의 등에 달라붙거나 하며 열기에 녹아내렸고, 그렇게 점차 라이오넬의 움직임은 봉쇄되어갔다.

마치 늪에 빠져드는 것처럼.

검은 해골들에 의하여.

“후우.”

그리고 얼마 뒤, 녀석이 대검을 쥔 채 바닥에 완전히 무릎을 꿇었다. 이쯤이면 충분하겠지 싶어 해골 병사들을 사라지도록 한 나는 천천히 그 곁으로 다가갔다.

“….”

“이제 그만하는 게 어때? 라이오넬.”

나는 그를 내려다보며 중얼거렸다.

무릎을 꿇은 라이오넬은 검은 점액질에 뒤덮인 듯한 상태였다. 대검은 땅에 떨어졌고 망토를 두른 어깨는 내 명치에 위치한 상태였다. 나는 그런 녀석이 어쩐지 안쓰럽다고 생각하며 눈썹을 찡그렸다.

“zita rangu riri.”

그리고 목소리가 이어졌다.

이번에도 마찬가지로 번역기가 작동하지 않았다.

“뭐야…?”

“들리지 않는가, 사자.”

“미안한데, 난 영어도 배우는데 오래 걸렸단 말이지.”

“정의란 없다.”

“그 말이야, 그게?”

“세계에 정의란 존재하지 않는다.”

녀석은 알 수 없는 말을 중얼거렸다.

“그렇기에 내가 택할 수 없는 것은 별로 없었다.”

“…. 인간을 택하면 되잖아.”

“내 땅의 사람들을 택하는 것이 아니게 된다.”

“엘레노어에게 맞서는 게 말이야?”

“신은…. 세계에 만연한 악을 쓰러뜨릴 수 있다.”

녀석은 그렇게 중얼거렸다.

“그것과 싸워 승리할 수 있다. 패배할 운명에 처한 인간과는 달리…. 찬란하게 빛나며 승리할 수 있다.”

“라이오넬….”

“그렇기 때문에 나는 신의 곁에서 싸울 수밖에 없다.”

“…?!”

그 직후, 나는 놀라 눈을 동그랗게 떴다.

무릎을 꿇고 있던 라이오넬이 아무렇지도 않게 자리에서 일어섰기 때문이었다. 등을 뒤덮던 점액질이 순식간에 사라져 나는 물러설 생각조차 하지 못했다.

“큭?!”

그리고 목을 붙잡혔다.

“…!!”

“정신을 팔지 마라. 손속을 두지 마라.”

중얼거린 녀석이 내 목을 잡아든 채 걸었다. 나는 스파다를 휘둘러 라이오넬의 몸을 베어냈지만 타격은 없었다. 나는 그제야 녀석이 일어선 원리를 깨달았다.

기화시킨 것이다.

더욱이 세차게, 금속에 가까운 형질을 지닌 해골 병사들을 더 녹여서. 녀석은 그로서 일어선 것이다.

“이, 자식…!!”

“전투는 적을 죽이기 전까지는 끝나지 않는다.”

중얼거린 녀석이 멈춰 섰고 나는 등 뒤에서 흉흉하게 뭔가가 돌아가는 소리를 들었다. 불길한 예감에 고개를 돌리자 오금이 저려오는 것을 느꼈다.

“큭…?!”

전함을 떠받치고 있는 프로펠러의 바로 위였다. 보이지 않을 정도로 거세게 회전하는 그것을 보며, 나는 어떻게든 라이오넬의 손에서 벗어나려고 했다.

그리고 그가 손을 놓았다.

========== 작품 후기 ==========

프로펠러에 갈리는 것은 O벤저스 라는 영화의 오마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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