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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크로맨서 재킷-305화 (305/321)

305편

<-- Chapter 7 : Holy Grail -->

“인사는 대강 끝나셨습니까?”

“그래.”

나는 짧게 대답했다. 두 사람의 사이를 가로질러 안으로 들어서자 우아랑과 모드레드는 내 뒤를 곧바로 따라왔다. 나는 잠시 머릿속에 남은 일들을 정리했다.

“모드레드, 넌 여기 있겠다고 했지?”

“네, 여기가 HQ이므로.”

그녀는 믿음직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다면 그녀는 엘레노어가 있는 장소까지 도달할 수 있도록 나와 우아랑, 넬을 서포트 한다는 말이었다.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일단 그쪽에서 어떻게 나올지 봐야겠지만.”

“넬 양이 그에 대한 예상을 했습니다만….”

“어떻게?”

“서울이 재구성되지 않을까 생각하는 모양이다.”

거기에 대답한 것은 우아랑이었다.

“우리가 서울에 도착했을 때처럼 말이지.”

“하나의 게임 에어리어처럼?”

내 물음에 우아랑이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나는 그녀가 하는 말을 납득하지 못하고 눈썹을 찡그렸다.

“글쎄.”

“뭔가 짐작이 가는 바라도 있나?”

“개인적으로는…. 음.”

잠시 침묵.

사실, 좀 더 화려하지 않을까 싶었다. 엘레노어라면. 마지막이라고 할 수도 있는 전투에서 단순히 서울을 에어리어로 삼아 전쟁을 ‘중계’할 수도 있겠지만.

“그보다 더 어처구니가 없는 짓을 벌일 것 같은데.”

쓰게 웃은 나는 그대로 다시 고민에 빠진 두 사람을 돌아보았다. 사실 좀 우스운 상황이라고 생각했다. 시간이 5분도 채 남지 않은 상황에서 병력의 배치는 끝났지만 적이 어떤 식으로 들어올지도 알 수 없으니.

“….”

전혀 예상이 안 되는 것은 아니었지만.

그야말로 어처구니없는 짓의 향연이겠지.

녀석은 ‘인간’이 ‘예상할 수 있는 범주’를 아득히 뛰어넘은 그야말로 신적인 존재니까. 정말로 몇 번이고 말하는 거지만 그 외의 호칭은 의미가 없었다.

엘레노어는 신이었다.

“일단, 옥상으로 이동하시죠.”

고민에 빠지려던 찰나 모드레드가 날 이끌었다.

“…. 그래.”

고개를 끄덕인 나는 눈썹을 찡그린 채 엘리베이터로 가 거기에 올라탔다. 가는 사이, 정보 쪽의 스킬을 가지고 있는 몇몇 에스콰이어들이 제각기 마지막으로 전투를 대비하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사실상 HQ(headquarter)의 역할을 맡고 있기 때문에 당연한 일이었지만, 이곳이 현재로서는 가장 중요한 지역이었다. 결국 현재로서는 정보를 차단당하면 모든 게 끝이었기 때문이었다.

엘리베이터튼 얼마 지나지 않아 옥상에 도착했다.

어쩐지 묘한 기분이었다. 1분도 남지 않아 시간이 점점 카운트되는 걸 볼 때마다. 드디어 내 목표가 이루어진다는 게 어린아이처럼 기쁘기도 했고, 동시에 이 신이 마지막으로 무슨 짓을 저지를까 걱정이 되기도 했다.

“준비를.”

“대기하고 있다.”

뒤쪽의 두 사람 역시 그런 듯했다.

건물의 옥상 위. 서울 시내가 훤히 내려다보이는 가운데 나는 그렇게 숫자가 0이 되기를 기다렸다.

5.

4.

3.

2.

1.

하지만 숫자는 거기에 멈췄다.

“…?”

공기가 얼어붙었다.

나는 그로서, 시간이 정지했음을 알아차렸다.

시간을 정지하는 일에는 세 가지의 원리가 필요했다.

여기서 말하는 원리란 사물, 아니 이 경우에는 ‘개념’의 근본을 설명하는 이치를 뜻하는 말이었다. 시간을 정지한다는, 기존에 없던 일을 행하기 위하여.

물론 실제로 ‘시간’을 정지시키는 건 아니었다. 시간은 본디 멈추거나 가게 할 수 있는 종류의 개념이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엘레노어가 행하는 것은 그저….

아니, 그녀가 아니로군.

[그래, 나다.]

뒤를 이어 목소리가 이어졌다. 아무래도 녀석은 내 생각을 읽어내는 듯했다. 완전히 정지한 눈앞의 풍경을 나는 한동안 차갑게 노려보았다. 밤의 편린을, 건너편으로부터 점차 새벽이 밝아오는 가운데.

[내가 시간을 정지시켰다.]

만화를 너무 봤어, 당신.

[하지만 대단하잖아? 이것으로 세계는 지배되었다.]

모든 인류의 뇌를 지배하에 둠으로서 말인가?

하지만 그것은, 기만에 불과했다. 단순히 마술사의 속임수였다. 나는 그렇게 생각하며 어딘가에서 인류를 차갑게 내려다보고 있을 그레일에 대해서 상상했다. 사실 그 또한 그런 기만에 불과한 존재였다.

시간을 멈추는 것처럼.

나는 그 원리를, 이제는 완전히 이해하고 있었다.

뇌의 인식을 상승 시키고, 눈앞의 풍경을 텍스처를 씌워 정지하게 만든 것처럼 뒤바꾸며. 동시에 몸을 둔하게 하는 녀석의 ‘시간 정지’에 대해서.

그리고 원리를 알기만 하면 불가능하진 않았다.

이겨내는 것쯤은.

“윽…!”

마치 얼어붙었던 옷이 부서져, 그제야 움직일 수 있게 된 기분이었다. 비틀거리며 앞으로 걸어 나온 나는 길게 숨을 내뱉으며 식은땀이 흐르는 걸 닦아냈다.

“준!”

목소리가 이어졌다.

“빌어, 먹을…!”

버텨내지 못하고 무릎을 꿇은 나는 거칠게 숨을 몰아쉬며 스스로를 진정시켰다. 손가락이 심할 정도로 떨려오는 가운데 나는 온몸이 갑작스러운 상황의 변화를 받아들이지 못하고 떨리는 것을 느꼈다.

“나 말고, 다른 사람들을….”

어느덧 넬이 앞에 모습을 드러냈다. 괴로운 마음을 견뎌내며 이야기한 나는 이내 무릎에 힘차게 힘을 주고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다.

뒤를 돌아보았다.

돌처럼 굳어진 우아랑, 모드레드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아마 두 사람은 지금 내가 움직인다는 사실을 인식조차 하지 못하고 있을 터였다.

“빌어먹을….”

그 밖의 모두가 마찬가지였다.

옥상 난간에 올라선 나는 완전히 정지해버린 세계의 모습에 놀라 눈을 동그랗게 떴다. 허공에 멈춘 박스라던가. 모두가 엘레노어에게 대항하기 위해 준비를 하던 중에 벌어진 일이었다. 나는 분한 마음에 휩싸였다.

하지만 그보다 더 걱정인 것은,

“…. 어디까지야?”

이렇게 시간이 멈춘 범위가 대체 어느 부분까지냐 하는 것이었다. 일단 시야가 닿는 곳은 모조리 멈춰버려, 나는 입술을 질끈 깨물었다.

“그게 중요한 게 아니지 않아?”

뒤를 이어 목소리가 들려왔다.

“시간이란 결국에 우리가 볼 수 없는 다른 차원을 이해하기 쉽게 정의해놓은 것에 지나지 않아. 2차원의 인간들은 3차원을 시간이라고 부를지도 모르지.”

“너….”

고개를 돌린 나는 그레일을 발견했다.

검푸른 정장에 그와 비슷한 색의 머리칼. 그는 나를 보며 싱긋 웃고는 지나쳐 옥상 바깥으로 나아갔다. 나는 다시금 몸이 움직이지 않는 걸 느꼈다.

[하지만 역시 넌 대단해. 이해하고 있잖아?]

그는 비아냥거리듯 중얼거렸다.

허공에 올라선 채 멈춰 있었지만, 그 목소리는 똑똑히 내 귓가에 울려퍼졌다. 나는 눈을 동그랗게 떴다.

“그레일…!!”

약 10초 정도의 시간이었다.

시간이 멈춰 있지 않았으므로 적당히 그 정도였다. 내가 녀석이 멈춘 시간으로부터 벗어나 자유를 되찾는 것은. 아마 녀석은 그 시간에 뭐든지 할 수 있으리라.

하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어라, 벗어났네?”

그가 목소리를 내고 뒤를 이어서 웃었다. 거칠게 숨을 몰아쉬며 스파다를 뽑아든 나는 곧바로 그것을 녀석을 향해 겨누며 말을 이었다.

“대체 어쩔 셈이냐!”

“음? 아니, 준비가 필요해서.”

“무슨…?!”

“연출이랄까. 아무리 엘레노어가 ‘신’이라고 해도 말이지. ‘창조하기’보다는 ‘창조된’ 신에 가까워서 여러모로 스스로도 어려운 부분이 많은 모양이야.”

“대체 무슨 헛소리야!”

“가상 세계에서라면 그녀는 정말로 신이지만…. 현실에서는 어느 정도의 예열 기간이 필요하단 거지.”

씨익 웃은 그가 허공을 향해 손을 뻗었다.

“세계를 신의 산하에 두기 위해서는.”

그리고 하늘이 갈라졌다.

“….”

나는 어이가 없어지는 걸 느끼며 그것을 멍한 채 바라보았다. 검게 물든 구름이 갈라지며, 그 사이로 새하얗게 빛나는 달빛이 내리쬐었다. 하지만 그 사이로 이내, 무언가 거대한 존재가 내려서기 시작했다.

“무, 슨….”

나는 그런 목소리 밖에 내지 못했다.

그것은 항공모함이었다.

하늘 드높이 떠오른 채로 있는.

“하아, 사실 여기서 쓰려고 했단 말이지.”

그레일은 어둠 속에 떠있는 그것을 올려다보며 중얼거렸다. 하지만 나는 차마 말을 잇질 못하고 찬란한 왕좌처럼 빛을 내는 전함을 멍하니 바라볼 뿐이었다.

회전하는 네 개의 프로펠러는 그 하나하나가 작은 축구장만한 크기였다. 물론 그 중심에 있는 항공모함의 본체는 그 네 개를 합친 것보다 훨씬 더 거대했다. 짙게 그림자가 드리워 지상이 검게 물들었다.

“엘레노어랑 좀 싸웠어. 나는 역시 마지막이니 엑스칼리버라는 이름이면 괜찮지 않을까 싶었는데. 엘레노어는 프리드웬으로 가자고 하는 거야! 그게 아서왕 전설에도 나오는 배의 이름이라면서! 우습지 않아?”

그레일은 그런 상황에서조차 장난을 쳐댔다.

이게 아무것도 아니라는 듯이.

“근데 너희가 먼저 엑스칼리버라는 이름을 써버리면서…. 졌어. 이제는 아니야. 저건, 프리드웬.”

그는 쓰게 웃었다.

뒤를 이어, 나는 강화된 시야를 통해 항공모함의 위에 모습을 드러내는 사람의 형체를 발견했다. 천사와도 같은 날개를 단, 기이한 형상의 몬스터들이었다.

[저희 이야기를 남에게 하지 않아주셨으면 해요.]

이어서 엘레노어가 모습을 드러냈다.

“하하, 미안. 엘레노어.”

그녀는 더욱이 거대했다.

지구를 뒤덮을 정도로.

[그럼, 퀘스트를 시작해볼까요.]

거대한 가상의 손이 지상에 드리웠다.

다시금 시간이 흐르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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