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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크로맨서 재킷-304화 (304/321)

304편

<-- Chapter 7 : Holy Grail -->

“어떤 의미에서?”

나는 그 옆에 기대어 서고는, 이내 힐끔거리며 주변을 둘러보았다. 그리고 바로 옆에 자판기가 하나 있다는 사실을 깨닫고 린슬렛과 함께 그곳으로 향했다.

“티티 네가 말한 자유에 대해서.”

커피를 하나 뽑아서 건네주자 린슬렛은 받아들고 잠시 멍한 채 땅을 내려다보았다. 나는 캔의 뚜껑을 딴 뒤, 그녀가 들고 있던 커피와 바꿔주었다.

“하지만 그건 결국, 진화가 아닐까? 엘레노어가 궁극적으로 바라고 있는, 그래서 우리를 시험하는 거고.”

“….”

나는 손이 굳는 것을 느꼈다.

“나, 몇 시간 전에 엄마와 만나고 왔잖아?”

“무사하셔?”

“아, 응. 회장님을 돕고 있었다는 모양이야.”

고개를 끄덕인 린슬렛이 커피를 한 모금 마셨다. 그리고 이내, 눈썹을 찡그린 그녀가 말을 이었다.

“그리고 난 그걸 완전히 예상하고 있었고.”

“예상?”

“응, 엄마라면 어쩐지 그러겠구나. 싶었던 거야. 간간히 지나면서 했던 말이나 행동이 기억나면서. 그리고 내가 한 가지 더 신기했던 게 뭔지 알아?”

“뭔데?”

“난…. 원래대로라면 평범한 여대생이잖아?”

그녀는 살짝 부끄러운 듯 옆머리를 꼬았다. 그 모습이 어쩐지 매력적으로 느껴져, 나는 짓궂게 웃었다.

“귀여운 여대생이겠지.”

“…. 기분 나빠. 티티.”

그녀는 냉정하게 감상을 내렸다.

“그런 캐릭터 아니었잖아? 매번 분위기 꽈악 잡고서 미국 하드보일드 영화의 주인공마냥.”

“내, 내가 그랬다고?”

“응, 사랑하는 여자를 잃은 중년 남자처럼.”

“….”

상처 받는다.

“그런 네가, 이렇게 변하고….”

당황해 입을 다물자 가까이 다가온 그녀는 내 볼을 매만졌다. 그 얼굴에 부드러운 미소가 번진 채였다.

“나 또한 스스로의 변화를 느낀다는 게.”

“린슬렛….”

“그렇기 때문에 이해했어, 티티. 네가 말한 자유를. 하지만 난 솔직히 그렇게 될 수 있을 것 같지 않아.”

“뭐…?”

놀라 되묻고 뒤를 이어,

“…?!”

부드러운 무언가가 입술에 닿고는 떨어졌다.

“나는 네 망자니까.”

그리고 뒤를 이어 부끄러운 듯 웃는 린슬렛의 얼굴이.

“너나 잘해. 신이랑 싸우러 가는 주제에.”

“널 믿고 있어.”

“나도, 널 그 누구보다도 믿고 있으니까.”

그녀의 목소리는 더없이 부드러웠다.

촉촉하게 젖은 입술, 부드러워 보이는 뺨. 화려한 금발이 이마에 달라붙은 것이, 마치 별처럼 보였다.

“그리고, 비비안을 구해줬으면 해.”

이어서 린슬렛이 진지한 얼굴로 중얼거렸다. 그 말을 이해한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는 가웨인과 사라진 이후로 줄곧 모습을 보이지 않고 있었던 것이다.

거기에 ‘제안’을 받았다며 사라진 라이오넬과,

“헥터도 마찬가지겠지.”

우리는 그렇게 모습을 감춘 녀석들이 엘레노어의 편에 섰을 것이라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자의든 아니든 간에.

“그래도, 비비안은….”

“글쎄.”

나는 섣불리 동정하려는 린슬렛의 말을 저도 모르게 잘라냈다. 그리고는 눈썹을 찡그린 채, 붉은 머리의 사내에 대해서 잠시 머릿속에 생각했다.

그 머저리 자식….

“차라리, 자의인 편이 낫지 않을까 싶은데.”

거기에 잠시 생각이 팔려 있던 나는, 길게 숨을 내뱉으며 린슬렛을 바라보았다. 그녀는 잠시 생각을 하다 고개를 세차게 내저었다.

“하지만 그랬다면 가웨인의 곁에 있지는 않을 테니까.”

“그것도 그렇군.”

나는 그녀의 말을 순순히 인정했다.

“안타까운 거야?”

“뭐?”

그리고 뒤를 이어, 린슬렛은 고개를 갸웃거리며 날 바라보았다. 잠시 머뭇거리던 나는 이내 속일 수는 없겠다는 생각에 천천히 말을 이었다.

“가웨인은, 비비안을 사랑하니까.”

“하지만 그건 사랑이 아니야. 집착이지.”

그녀는 차갑게 중얼거렸다.

“…. 자유를 빼앗고 새장속의 새로 기르는 거야. 저항하지 못하도록 의지를 빼앗고 다리를 자른 거지.”

“하지만….”

“적어도 비비안은 그렇게 받아들였어.”

그녀는 내 말을 단호히 잘라냈다.

“….”

물론, 내가 말하기에는 섣부를지도 모른다. 나는 실상 비비안과 제대로 이야기를 나누어본 적이 없으니까. 두 사람의 망가져버린 관계를 판단하는 건, 나 같은 게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

“그러니까, 혹시나 비비안이 도와달라고 한다면….”

“최,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그래요. 역시 우리 티티.”

싱긋 웃은 그녀가 내 머리를 쓰다듬었다. 그리고는 이내 조심스럽게 말을 이었다.

“결국 그녀도, 자유롭지 못한 자신은 싫은 거니까.”

“….”

나는 거기에서 완전히 이해했다.

그 이후로는 침묵이 이어졌다.

나는 시간이 아슬아슬해질 때까지 린슬렛과 서로의 얼굴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시간이 조금 지체되었다.

“휴게실이….”

린슬렛을 보낸 뒤, 나는 지도를 확인하며 건물 내부를 걸었다. 주변으로 할 킬러즈의 코트를 입은 녀석들이 몇몇인가 스쳐지나갔지만 딱히 적대하지는 않았다. 나는 그런 사실에 어쩐지 묘한 기분을 느꼈다.

그러고 보니 탱크와 헬기를 사용한다는 녀석들의 말에 뭔가 고민을 잠깐 했었던 것도 같은데.

“윽?!”

그렇게 생각하며 모퉁이를 돌 무렵, 다리를 걸렸다.

비틀거리며 넘어질 뻔했던 나는 깽깽이 발로 겨우 중심을 잡았다. 그리고는 대체 뭐에 걸린 걸까 싶어 당황해 뒤를 돌아보았다.

“….”

“후후♡”

그리고 눈이 마주쳤다.

뒷짐을 진 채 서있던 트리슈가 빙긋 웃으며 가까이 다가왔다. 나는 쓰게 웃으며 그녀를 향해 입을 열었다.

“무슨 일이야?”

“나도 곧 출발하게 되어서, 기운 차리려고 왔어.”

그녀는 장난스럽게 중얼거리고는, 내 주변을 빙글빙글 맴돌며 살펴보았다. 그 모습을 가만히 바라보던 나는 이내 의아해 입을 열었다.

“트리슈?”

“흐음 역시 쓸데없이 잘생겼다니까.”

“…. 뭐?”

“남자란 게 말이야. 키 크고 어깨만 넓으면 됐지. 얼굴까지 잘생기면 성가시단 말이지. 괜히 여자나 붙고.”

“트, 트리슈?”

“린 언니는 갔어?”

“방금 막 나간 참이야.”

고개를 끄덕이자 트리슈는 씨익 웃었다.

“린 언니, 저래 뵈도 타나 오빠한테 의존적이니까.”

“그, 그래?”

“응, 오빠를 엄청 생각하고 있다고? 사실 안 그랬으면 여기까지 따라왔겠어? 진작 서울을 빠져나갔겠지.”

“그럼 너도 그렇겠네.”

“…. 응?”

트리슈의 얼굴이 조금 붉어졌다.

“트리슈가 있어줘서 다행이야.”

그녀가 없었더라면 여러모로 불편한 일이 많았을 터였다. 하지만 그것과는 별개로, 트리슈는 우리가 팀이라면 분위기 메이커로서의 역할을 충실히 해주었다. 아마 그녀가 없었더라면 다들 축 늘어졌을지도 모른다.

“흥, 말솜씨만 늘어서.”

그런 내 말에, 새침한 듯 옆을 돌아본 트리슈는 이내 고개를 휙 돌려버렸다. 하지만 그런 모습과는 달리, 그녀는 이내 내 팔을 잡아끌고 근처의 방안으로 들어섰다.

“나는 아마 전투에는 참가하지 않을 거야.”

그리고 곧바로 말을 이었다.

“전세를 전체적으로 보는 스킬을 나밖에 보유하지 않았으니까. 그래서 말인데…. 어떻게 할까?”

“뭘?”

“탱크니 헬기니, 다 필요 없을 거 같아서.”

“….”

그제야 내가 우려하고 있던 게 떠올랐다.

나는, ‘구세대의 병기’가 시내에 들어섰다가 괜히 혼란을 빚지 않을까 싶었던 것이다. 합금의 존재로 인해 아마 그런 것들은 쉽사리 무력화가 될 테니까.

“최대한 전투에는 참가시키지 말아줘.”

“헤헤, 역시 그게 좋겠지?”

같은 생각을 한 듯 트리슈가 고개를 끄덕였다. 뭔가 더 이야기를 해둘까 싶었지만, 나는 이내 그럴 필요는 없으리라는 생각에 고개를 끄덕였다.

“널 믿어.”

“이제 끝이라는 생각을 하면 좀 아쉬울 것도 같은데.”

“아이돌이 될 거라면서?”

“어머, 기억해주고 계셨군요.”

트리슈는 입술을 가리고 쿡쿡 웃었다.

“그럼 같이 데뷔하기로 하신 것도?”

“…. 그런 기억은 없는데.”

“히잉, 책임지기로 했으면서.”

우는 소리를 낸 트리슈가 테이블 위에 털썩 주저앉았다. 진한 녹색 빛이 감도는 긴 머리칼. 한동안 침묵하던 그녀가 나를 바라보며 씨익 웃었다.

“타나 오빠 덕분이야.”

“또 뭐가?”

뜬금없는 녀석이라고 생각하며 나는 쓰게 웃었다.

“우리 오빠와 나. 그리고 발렌타인을 구해주어서.”

“….”

“정말로, 타나 오빠는 내 은인이야.”

“누구라도 그랬을 거야.”

“우연이라고?”

“그렇게 볼 수도 있고.”

“하지만 그게 여러 번 겹치면서. 다들 타나 오빠가 바라보는 걸 함께 따르게 되었잖아? 진심으로 그 꿈을 이루어주고 싶다고. 우리 오빠만 보더라도….”

그녀가 손가락을 까닥거렸다.

“다들 당신의 망자가 되어버렸어.”

가까이 다가서자 트리슈는 날 끌어안았다.

“그러니까 조심해. 행여나 절대 죽지 말고.”

“죽여도 되살아나면 그만인데.”

“게임을 너무 많이 했어, 타나 오빠….”

그녀의 목소리가 부드러웠다.

마찬가지로 시간이 조금 아슬아슬해졌다.

“다녀올게요, 타나.”

“조심해.”

그리고 마지막은 베디비어와 발렌타인이었다.

마찬가지로 나는 배웅을 하기 위해 나온 상황이었다. 슬슬 새벽의 중간에 접어든 상황이었지만 전투의 준비가 한창이었다. 재킷을 입은 두 사람이 날 돌아보았다.

“모든 게 끝나면 낚시라도 가죠.”

“…. 대체 언제 일을 기억해 말하는 거야.”

나는 부끄러워 얼굴이 붉어지는 걸 느꼈다. 뒤쪽에 선 발렌타인이 그런 나와 베디비어를 보고는 키득거렸고, 그 사이 다가온 녀석이 손을 뻗었다.

“뭐, 그쪽이면 바다낚시가 되겠지.”

주먹을 부딪치고, 싱긋 웃었다.

“아예 그쪽에서 사실 건가요? 유하 씨와?”

“그, 글쎄? 봐야겠지 싶은데….”

의아해하는 베디비어를 보고 나는 조금 어색해하며 대답했다. 사실 뭔가 조금, 그 이후를 생각하자면 머리가 새하얗게 물드는 듯한 기분이 들어서였다.

하지만 그건 그거고.

“확실히, 끝나면 다 같이 뒤풀이를 하는 것도….”

좋겠지 싶었다.

“타나?”

“아냐, 아무것도. 잘 다녀와.”

하지만 입 밖으로 내기는, 어쩐지 껄끄러웠다. 쓰게 웃은 나는 녀석과 발렌타인을 본부 밖까지 배웅했다.

“그럼, 부탁합니다. 타나. 지금의 사태를….”

“너희도, 조심해.”

“끝나고 웃는 얼굴로 봐요. 타나님.”

인사를 한 두 사람이 어둠 속으로 훌쩍 뛰어올랐다. 그 모습을 잠시 바라보던 나는 길게

숨을 내뱉고는 천천히 뒤로 돌아섰다.

본부의 건물 앞에 서있는 두 사람이 보였다.

우아랑, 그리고 모드레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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