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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크로맨서 재킷-303화 (303/321)

303편

<-- Chapter 7 : Holy Grail -->

안으로 들어선 나는, 어두컴컴해진 쇼핑몰의 모습에 잠시 눈을 감고는 다시 떴다. 그러자 온통 검은 가운데 야광처럼 빛나는 실선으로 가게와 복도의 테두리가 그려졌다. 그로서 그럭저럭 걸을만해졌다.

무슨 공포영화의 한 씬 같은 기분이다.

온통 어둡고, 의지해 걷는 것은…. 애매하고. 뭐 그런 가운데 어둠 속의 어딘가에 무서운 괴물이 기다리고 있다. 거대하고 절대로 상대하고 싶지 않은 존재가.

“…. 라이오네엘?”

거기다 생각해보니, 정신을 차렸다고 한들 녀석이 어떻게 나올지는 알 수 없는 상황이었다. 나는 걸음에 조심을 기울이며 조금씩 앞으로 나아갔다.

쇼핑몰 안쪽으로 들어서자 거대한 로비가 나왔다.

지난번과 마찬가지로 변한 것은 그다지 없었다. 첨예한 달이 떠있는 가운데, 천장까지 유리로 된 벽이 솟아올라 쇼핑몰의 안을 아름다운 빛으로 물들였다.

“….”

그리고 그 가운데, 녀석이 있었다.

벤치에 앉은 채. 자신의 거대한 검을 마치 기둥이라도 되는 것처럼 다리의 사이에 세운 채였다. 지친 전사 같은 분위기를 풍겨 나는 개의치 않고 가까이 다가갔다.

그는 눈치를 챈 듯했지만 반응하진 않았다.

따라서 나도 무어라 먼저 입을 열지는 않고, 다가가 옆에 털썩 앉았다. 녀석의 넓은 등은 그럼에도 아주 조금의 미세한 반응도 보이질 않았다.

순간 선 채 죽었다는 묘한 말이 떠올랐지만, 그건 아닌 듯했다. 나는 가만히 앉아 달빛을 맞으며 녀석에게 먼저 꺼낼 좋은 말을 생각하기 시작했다.

인터넷에 짐바브웨의 속담이라도 검색해볼까.

“계속, 싸워왔나?”

그렇게 고민을 하던 찰나, 라이오넬이 먼저 입을 열었다. 멍한 채 그 굵직한 목소리를 들은 나는, 조금 당황해 한 박자 늦게 대답을 하였다.

“아, 응.”

그러자 녀석은 입을 꾹 다물어버렸다.

대검을 쥔 손이 파르르 떨렸다. 그것마저 믿지 못하겠다는 듯, 라이오넬은 깊은 눈동자에 의심을 담아냈다. 잠깐 그 모습을 지켜보던 나는 곧바로 질문을 던졌다.

“할 킬러즈는?”

차근차근 대화를 이끌어나가자고 생각했다.

시간이 없었기 때문에.

“…. 모르겠다.”

“여기서 이러고 있어도 돼? 너희 대장은? 헥터나 다른 간부들은? 대응책 같은 거 안 짜고 있대?”

“HQ가 완전히 전멸했다. 아무와도 연락이 되질 않는다. 헥터나 김, 최. 담당자인 그 누구하고도.”

중얼거린 녀석은 이내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리고는 어둠 속에 서서 대검을 어깨에 짊어졌다.

“다들 알고 있는 거겠지. 백 대령이 죽었다는 걸.”

“뭐…?”

갑작스러운 이야기의 진행에, 나는 눈을 동그랗게 떴다. 그러자 아무렇지도 않게 이쪽을 돌아본 라이오넬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 사내는 야망으로 가득 찬 존재다. 지금 같은 상황에서 살아 있었다면 당연히 제일 먼저 움직였겠지.”

“그, 래…?”

나는 이해하지 못하고 되물었다.

“제안이 오기도 하였고.”

“무슨?”

“….”

내가 의아해 돌아보자 녀석은 침묵했다. 평소와 다름없는 모습이었지만, 나는 이질감을 느꼈다. 그것도 목의 안쪽에서 꺼끌거리는 기분이 나쁜 종류로.

“한 가지 묻고 싶은 게 있다.”

그리고 녀석은 감성에 젖었다.

“뭔데.”

빨리 이야기를 진행하고 싶었던 나는 거기에 싸늘하게 대답했다. 사실 적당히 쳐낼 수도 있었겠지만 그러지 않은 이유는 라이오넬의 표정이 심각했기 때문이었다.

“너는 왜 싸워온 거지.”

“전에도 묻지 않았던가?”

“그래도 다시 듣고 싶다.”

목소리는 단호했다.

“….”

나는 잠시 침묵에 잠겼다. 하지만 그것은, 스스로 생각에 잠기기 위한 침묵이 아니었다. 나는 반대로 벤치에 등을 기대고 삐딱한 상태에서 라이오넬을 바라보았다.

“사실, 모르겠어. 이제 와서야.”

“잊은 건가?”

“진해져 뒤섞인 거지.”

왜냐면 계속 늘어났으니까.

내가 싸울 이유는.

갤러해드, 내 가장 소중한…. 하지만 지금은 없는 그 사람으로부터 비롯되었다. 하지만 그것은 단지 시작이었을 뿐이다. 나는 지금 내 곁에 있는 모두와 부딪치고 충돌하며 뒤섞이는 과정을 거쳤다.

그로서 이곳까지 도달했다.

단지 그뿐이었다.

그걸 설명하라는 건 무리였다.

“왜냐면, 난 이곳까지 ‘레벨 업’해왔으니 말이야.”

“…. 나와는 전혀 다르군.”

그는 쓰게 웃었다. 잠시 그 돌아선 등을 바라보던 나는, 자세를 바로하고 진지하게 손을 뻗었다.

“가자, 라이오넬.”

“…. 타나토스.”

“그 빌어처먹을 신에게 무슨 제안을 받았는지는 몰라도. 그 녀석이 정답이 아니라는 건 이제 알잖아?”

“아니, 모른다.”

“라이오넬!”

“그렇게 나를 부르지 마라.”

녀석은 침착한 목소리로 말했다.

“나는….”

하지만 얼굴은 전혀 그렇지 않았다.

완전히 혼란과 혼돈으로 가득차서는, 미련으로 절절한 채 나를 돌아보았다. 그리고는 등에 걸어두었던 대검을 뻗어 천천히 나에게 겨누었다.

“zita rangu riri.”

번역기가 작동하질 않았다.

“라이…!!”

상황을 이해하지 못하고 굳어져 있던 나는, 어둠 속으로 멀어져가는 녀석을 멈춰 세우지 못했다.

하지만 아마 그랬을 것이다.

알았더라도 멈춰 세우진 못했을 터였다.

라이오넬이 마지막으로 남기고 떠난 말이 머릿속에서 떠나질 않았다. 하지만 나는, 그런 와중에도 평소와 다름없이 행동하는 자신에게 약간의 이질감을 느꼈다.

머릿속은 착잡했지만, 그와는 별개로 할 일이 있어 거기에 온전히 매달리지도 못하는 스스로에게.

“이야기는 일단 내가 진행하겠다.”

“알았어. 부탁할게.”

그리고 시간은 지나, 0시를 넘겼다. 우리는 서울 시내에 숨어 있던 게임의 유저(에스콰이어)들에게 메시지의 형태로 협조를 요청했다. 물론 협조를 가장한 협박에 가까운 일이었지만 대부분은 거기에 응했다.

자 그럼 이제 문제는 그들의 지휘였다.

서울에 남아 우리와 함께 하기로 한 에스콰이어의 숫자는 9,728명. 넬이 정확히 추산한 수치로, 대부분이 그녀의 지시에 따라 각지의 시청이나 학교에 모여서 전투를 대비하고 있었다.

물론 넬은 나와 함께 엘레노어와 그레일을 상대해야했기에 에스콰이어들의 지휘는 필연적으로 다른 녀석들이 맡아야만 할 터였다.

그리고 여기에서 등장하는 것이 할 킬러즈였다.

도망쳤던 간부들이 돌아오고, 무너졌던 HQ가 재구성되면서 녀석들은 본래의 결성 목적에 맞춰 시민들을 보호하고 주적에 대응하기로 결의했던 것이다.

하지만 결국 문제는 그것이었다.

그동안 쭈욱 적대해 싸워오던 두 세력이, 공통된 목적이 생겼다고 한들 쉽게 협력할 수 있을 것인가. 솔직한 의견을 말하자면 나는 힘들다고 생각했다.

그 때문에 이렇게 모인 것이었지만.

“스컬.”

바로 그때, 앞장서 나아가던 우아랑이 날 불렀다.

싸늘하게 물든 본부의 복도. 그녀는 쓰게 웃으며 내 손을 잡았다. 부드러운 손길에 나는 조금 놀랐다.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몰라도. 너무 괘념치 마라.”

그리고 그만큼 부드러운 목소리에도.

“아…. 미안.”

걱정을 시켰던 건가.

“괜찮다. 우리는 이제….”

“?”

무어라 말을 하려던 우아랑이 침묵했다. 단어를 고르듯 입을 다물고 있던 녀석이 눈썹을 찡그리고, 이내 볼이 붉어졌다. 나는 그 모습을 의아해 바라보았다.

“저, 그….”

“응.”

“미안하다. 난 솔직히 타인과 이런 깊은 관계를 맺어본 적이 없는 것을 새삼 깨닫고 있다.”

“….”

깊은?

“왜냐면, 줄곧 혼자였으니까.”

부끄럽다는 듯 중얼거린 우아랑이 이내 쓰게 웃으며 날 바라보았다. 그 단정한 얼굴에서, 그녀가 나를 더없이 신뢰를 한다는 것을 읽어냈다.

“고마워.”

“그래서 말인데….”

마음을 담아 감사를 표하자 우아랑은 부끄럽다는 듯 말을 끌었다. 나는 침착하게 그녀가 말을 잇기를 기,

“두 사람! 거기서 뭐해!”

다리지 못했다.

멀찍이 선 복도 끝에 선 트리슈가 우리를 부르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회의는 생각보다 무난하게 끝이 났다.

다들 상황의 심각성을 인지하고 있기 때문인 듯했다. 우리는 할 킬러즈의 간부들과 함께 엘레노어의 군세에 대비할 진영을 구성해냈고, 녀석들로부터 그 외의 이야기들도 듣게 되었다.

일단 기능을 회복한 정부에서는 지금의 사태를 ‘전쟁’으로 규정한 모양이었다. 때문에 전차나 헬기를 동원해 에스콰이어들을 후방에서 지원한다는 듯했다.

“으음….”

좀 걸리는데.

“무슨 일이야? 티티.”

그렇게 생각하며 바깥으로 나와 걷던 나는, 의아한 듯 물어오는 린슬렛의 모습에 고개를 돌렸다. 다들 앞장서 좀 쉬기 위해 장소를 이동하던 중이었고, 나는 자리에 멈춰 서서 그녀를 돌아보았다.

퀘스트가 끝나기까지는 3시간 정도 남았다.

린슬렛은 시 외곽의 사수를 맡았기 때문에 지금부터 부지런히 움직여야 하는 상황이었다. 의연한 듯 보이는 얼굴에서 약간의 불안감을 느낀 나는 그녀의 손을 쥐고는 이내 반대쪽으로 걷기 시작했다.

“어, 어디 가…?!”

“바래다줄게.”

무뚝뚝하게 중얼거린 나는, 린슬렛이 다리를 끌며 자리에 멈춰서는 걸 느꼈다. 힘을 준 그녀는 눈을 가늘게 뜬 채 반대편을 손으로 가리켰다.

“저쪽.”

“…. 음.”

이제는 반대로 그녀가 나를 이끌기 시작했다.

“뭐 할 말이라도 있어?”

그녀는 부드럽게 웃으며 말을 걸어왔다. 그 미소에, 나는 어쩐지 어깨의 힘이 풀어지는 것을 느꼈다. 그리고는 내가 얼마나 린슬렛을 걱정하는지 깨달았다.

“위험하면, 도망쳐야 돼.”

“바보, 당연히 그럴 생각이야.”

“얼굴은 전혀 안 그래 보이는데.”

“뭐, 흥분해서 좀 날뛸지도 모르지. 열 받았으니까.”

나는 쓰게 웃었다.

새삼 린슬렛이 프라이드가 높은 여성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어떻게 보면 겁을 먹을 수도 있는 상황에서, 그녀는 자신을 가지고 논 신에 대한 분노를 먼저 느끼는 듯했다. 그것을 알아차린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자유로워져.”

“…?”

그녀는 의아해 고개를 갸웃거렸다.

“엘레노어부터 벗어나도록 해.”

“하….”

하지만 이어진 내 말에, 피식 웃으며 손을 놓았다. 그리고는 뭔가를 떠올리듯 이마를 감싸 쥔 채 벽에 기대어 섰다. 진한 금발이 가볍게 흔들렸다.

“‘이해’를 하는 내가 무서워지네.”

린슬렛은 불안한 듯 나를 돌아보았다.

========== 작품 후기 ==========

“zita rangu rir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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