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2편
<-- Chapter 7 : Holy Grail -->
◇
얼마 지나지 않아 모드레드와 우아랑이 도착했다.
대충 인수에 맞춰 커피를 끓인 뒤, 우리는 그동안 있었던 일에 관하여 대화를 나누었다. 대화는 물론 계속해서 상황을 지켜보았던 나와 우아랑이 주도했다.
“서울이 완전히….”
베디비어는 괴로운 듯 신음하며 중얼거렸다. 그 손을 잡고 있던 발렌타인이 이내 앞으로 나섰다.
“저희처럼 재킷을 입지 않은 사람들도 말인가요?”
“그렇다.”
거기에 우아랑이 무뚝뚝하게 목소리를 냈다. 우리가 모여 있던 장소로부터 조금 떨어져 있던 그녀는 눈썹을 징그린 채 조심스럽게 말을 이었다.
“서울 내의 시민들이 모조리.”
“이제 구분을 두지 않겠다는 거야…?”
린슬렛은 적잖이 당황한 듯했다. 나는 보다 심각한 얼굴을 한 그녀를 보고는 어깨에 손을 올렸다.
“아니, 단순한 퀘스트의 일환이었겠지.”
“티티….”
“그러니 역으로 말하자면, 이유가 없는 이상 서울 시내 전체를 해킹해 사람을 조종하지는 않을 거야.”
약간의 감을 더해, 나는 그렇게 중얼거렸다.
이유는 잘 모르겠지만 나는 녀석의 행동이 어떠한 의미가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그리고 그것은 아마 그레일의 의지라고 포장되어 우리에게 보여질 터였다.
인간의 궁극적인 진화.
그것이 그레일이 이루고자 하는 목적이다. 아니, 녀석 또한 실제로는 엘레노어가 만들어낸 존재에 불과했기 때문에 그렇게 말하는 것은 무의미할 터였다.
결국 모조리 엘레노어의 의지였다.
“…. 시험해보고 싶은 거겠지.”
그렇게 중얼거린 나는 곧바로 퀘스트창을 띄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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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픽 퀘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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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타나토스의 여정 1/1
난이도 : ★ * 10억
내용 : 군세를 막아내고, 저를 찾아오세요.
제한 시간 : 09:20:18
보상 : 당신이 그토록 바라고 있던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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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게 뭐야?”
테이블 위에 앉아 다리를 꼬고 있던 트리슈가 의아한 듯 내 곁으로 다가왔다. 그녀에게 퀘스트창이 보이도록 돌린 나는 이내 천천히 말을 이었다.
“마지막 퀘스트.”
“….”
그 말이 지닌 힘에 모두가 침묵했다. 하지만 뒤를 이어 냉정하게 퀘스트창을 확인한 우아랑이 말을 이었다.
“군세를 막아내라는 건?”
“아마 대규모 몬스터의 공습이 있을 거라는 말이겠죠.”
베디비어가 쓰게 웃으며 대답했다.
“제한 시간이 끝나면 공습이 시작된다는 거겠지?”
“그랬으면 좋겠네. 솔직히 좀 쉬고 싶어서….”
린슬렛의 통찰력 있는 말에 짧게 한숨을 내쉰 트리슈가 어깨를 주물렀다. 다들 아마 나와 비슷한 방식으로 퀘스트에 대해서 이해를 한듯 싶었다.
“쉬는 것도 좋지만 그 전에 준비를 해두어야겠지.”
“어떤?”
“내가 결전을 치르는 사이에 서울을 방어해야지.”
“아항~ 티티, 그래서 넬에게 부탁한 거구나?”
“그렇지.”
나와 린슬렛은 서로를 보며 싱긋 웃었다. 그러자 뒤를 이어 의아하다는 듯 고개를 갸웃거린 우아랑이 나섰다.
“그, 부탁이라도 할 셈이냐?”
“? 아니.”
그럴 시간이 있을 리가.
“그럼 어떻게….”
“협박.”
모르가나를 통해서 말이다.
증폭기를 통해 모르가나를 서울 시내에 활성화시키는 작업에서 개개인의 디멘션 커넥터가 지니고 있는 고유 식별 코드까지 손에 들어왔던 것이다.
“그런 ‘유저’님들께서 아서리안에서 어떤 플레이를 했는지는…. 넬이 알아봐줄 수 있으니 말이야.”
그걸 우리 사회의 법망과 맞추어서 처벌하는 건 물론 판사님이 하실 일이고.
“그걸 원한다면 서울 밖으로 도망쳐도 좋다는 거지.”
“…. 악당이로군, 네놈은.”
그렇게 중얼거린 우아랑이 쓰게 웃으며 나를 바라보았다. 나는 가볍게 어깨를 으쓱했고, 다가선 그녀가 조금 잔학하게 입술을 일그러뜨리며 말을 이었다.
“그렇게 된다면 네 체포는 내가 하는 걸로 하지.”
“…. 저기, 저기이. 두 사람.”
바로 그때, 누군가 우리 사이로 끼어들었다.
트리슈였다.
“뭐, 뭐냐.”
눈을 동그랗게 뜬 우아랑이 당황해 뒤로 물러섰다. 그러자 볼을 부풀린 트리슈가 가까이 다가와 의문이 잔뜩 뒤섞인 눈으로 그녀를 바라보았다.
“우리 없는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던 거야?”
“…. 아, 아무 일도 없었어.”
“하아, 결국에 적이었던 여자까지도?”
린슬렛이 어이가 없다는 듯 날 바라보았다. 그 표정이 묘하게 차가워, 나는 견디지 못하고 시선을 피했다.
이제 모드레드까지….
“거기에 인공지능까지 말이야.”
“뭐, 뭐야?! 린 언니! 설마 넬까지도?!”
“얼굴을 보니 딱 그렇던데….”
어라?
힐난을 견뎌낼 각오를 하던 나는 모드레드가 계속해서 침묵하자 놀라 고개를 들었다. 그리고 어느 샌가 방 한 구석에서 심각한 표정을 짓고 있는 그녀를 발견했다.
그러고 보니 아까부터 쭈욱 말이 없었다.
“….”
이건 이야기를 해보는 편이 좋겠군.
◇
우리는 일단 흩어졌다.
린슬렛을 포함해, 모두들 퀘스트를 대비하기에 앞서 가족들이 무사한지 확인해보고 싶어 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그 확인이 끝난 후에는 각자 넬이 알려주는 데로 기사들을 찾아가 설득하기로 했다.
물론 그게 안 된다면 협박을 해야겠지만.
할 킬러즈와 연관이 되어있건 아니건 기사들은 나름대로 게임의 상위 유저다. 분명히 큰 도움일 될 터였다. 그렇기 때문에 최우선적으로 확언을 받아두어야했다.
그리고 모드레드와 나는 곧바로 설득에 나섰다.
그것은 물론 모드레드와 내게 안위를 확인할 가족이 없기 때문이었다. 유하는 강원도에 안전히 있었으므로.
“다행입니다.”
그렇게 침묵에 잠겨 거리를 걷던 중, 모드레드가 입을 열었다. 나는 앞장서 걷던 그녀를 보며 침묵했다.
“효율적으로 움직일 수 있어서.”
“….”
“그도 그럴 것이, 제게는 더 이상 없는 것이기에.”
가족이 말인가.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하는 거야.”
나는 그렇게 중얼거리며 그녀를 향해 다가갔다. 고개를 푹 숙이고 있는 그녀를 돌려세우고, 그 가녀린 어깨를 부드럽게 토닥이며 안아주었다.
“유하가 기다리고 있다고.”
“…. 윽.”
그녀는 내 가슴에 얼굴을 기댔다.
“아버지는, 어째서….”
역시 그 때문인가.
모드레드는 그레일에 대한 진실을 받아들이기 힘들어하는 것 같았다. 그렇기 때문에 일부러, 예전처럼 ‘효율’을 중시하는 그녀로 돌아가려는 듯했다. 그로서 피폐해지려는 정신을 다잡으려는 것이겠지.
하지만 그렇게 둘 수는 없다.
“괜찮아, 울어도 돼.”
“안, 됩니다. 지금은….”
“아주 잠깐이라면 괜찮으니까.”
“아주 잠깐이 아니게 될 것 같아서 하는 말입니다!”
버럭 소리를 지르고, 그녀는 날 끌어안았다. 말과는 달리, 그녀는 눈물을 흘리며 내 가슴에 얼굴을 묻었다.
“부탁이, 있습니다.”
“뭔데.”
“계속 당신의 곁에 있어도 되겠습니까?”
“….”
“어떤 형태로든 좋습니다. 당신이 이 일이 끝난 후에 무엇을 한다고 한들, 뒤를 따라가고 싶습니다.”
“그건, 안되겠는데.”
나는 쓰게 웃으며 중얼거렸다.
“예…?”
모드레드가 공허한 눈으로 날 바라보았다. 하지만 나는 오해를 어서 종식시키기 위해 그녀의 머리를 부드럽게 쓰다듬고는 말을 이었다.
“너도 학교에 가야지.”
“…. 예?”
그녀는 다른 의미로 놀랐다.
“클레어 양, 몇 살?”
“여, 열여섯입니다만?”
“그럼…. 아직 중학생이네.”
“가, 갑자기 왜 이야기가 이쪽으로 진행된 겁니까?!”
“괜찮을 테니까, 이제부터는.”
나는 진지한 목소리로 말했다. 당황하고 있던 모드레드는 그런 내 말을 듣자 놀란 듯 입을 꾹 다물었다.
“그러니까 괜찮아, 울어도.”
“정말…. 어느새 말에 능숙해져서.”
그녀는 입술을 질끈 깨물고 나를 올려다보았다.
“덕분에 눈물이 쏙 들어갔습니다.”
“그, 그래?”
“예, 당신이 상기시켜주었으니까 말입니다. 울고만 있을 수도 없다는 사실을.”
싱긋 웃은 그녀가 내게서 떨어졌다. 검은 머리 아래로 눈물이 고인 푸른 눈동자가 보였다. 그것을 씩씩하게 훔쳐낸 모드레드는 싱긋 웃으며 심호흡을 했다.
“그러니 나오시죠.”
그리고는 곧바로 누군가에게 말을 걸었다.
“…?”
뭔가 싶어 고개를 돌린 나는, 골목 모퉁이에서 모습을 드러내는 우아랑을 발견하고는 눈을 동그랗게 떴다. 그녀는 볼을 빨갛게 물들인 채 가까이 다가왔다.
“알고 있었나.”
“그렇게 동요하면 누구라도 알 겁니다.”
머쓱한 듯 대답하는 그녀에게 모드레드는 조금 어이가 없다는 듯이 대답했다. 두 사람 사이에 어색한 기류가 흐르는 걸 느끼고 나는 눈썹을 찡그렸다.
“왜 따라오신 겁니까?”
그리고 그걸 먼저 깬 것은 모드레드였다.
“아, 아니…. 크흠, 어머니께서는 지금의 상황을 수습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고 계셔서 만날 상황이 아니었다.”
“흐음, 그래서 쫄래쫄래 쫓아온 겁니까.”
…. 뭐지?
묘하게 목소리가 차가운데, 모드레드.
“쪼, 쫄래쫄래?”
“넬 양에게 말해볼 테니, 다른 곳으로 가시는 건 어떻습니까? 그 편이 효율적일 것 같습니다만.”
“그, 그래도 라이오넬 대위님을 설득하러 가는 자리에 내가 빠질 수는 없겠지, 함께 하겠다.”
헛기침을 한 우아랑이 내 옆으로 따라붙었다.
“괜찮지? 스컬.”
그리고는 동의를 구하듯이 물었다.
“….”
어쩐지 모드레드의 시선이 계속 차가웠다.
◇
나는 솔직히 말해, 라이오넬을 싫어하진 않았다.
아니 굳이 따지자면 좋아하는 쪽에 가까울 터였다. 녀석으로부터 도움을 받기도 했으니까. 거기에 쿨하고 의지가 있는, 그런 사내를 싫어하지는 않았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생각했다.
이 녀석을 설득하는 건 쉽지 않은 일일 거라고.
“….”
아니 사실, 거의 불가능한 일이 아닐까?
짐바브웨.
아프리카의 남단에 위치한 조그마한 국가. 2020년, 독재자였던 로버트 무가베가 그 사악한 영혼과 함께 죽은 이후 기나긴 피 폭풍에 빠진 패배자들의 나라.
피바람이 부는 정도가 아니라, 피로 이루어진 폭풍이 한 차례 휩쓸고 가 모든 것을 망친 국가.
그것을 구원한 신(神)인 엘레노어.
그 과정을 지켜본 군인이었던 라이오넬.
그런 상황에서, 나는 자신이 믿던 신에게 농락을 당한 녀석의 마음이 어떤 것일까 감히 상상조차 되지 않는 것을 느꼈다. 그토록 올곧던 녀석이 이렇게 모습을 감춘 것을 통해 충격이 크겠거니 짐작하고 있을 뿐.
슬슬 다시 밤이 찾아들었다.
우리는 넬이 지정한 장소의 앞에 도착했다. 고개를 힐끔 들어 장소를 확인한 나는, 이내 뒤를 돌아보았다.
“…. 너희는 여기서 기다려.”
“조심하십시오.”
“여기서 경계하고 있겠다.”
고개를 끄덕인 나는 모드레드와 우아랑을 남겨두고 입구 쪽으로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시의 정확히 중심부에 위치한 5층짜리 다목적 쇼핑몰. 예전에도 몇 번이나 들렀던 장소였다. 영업은 물론 끝난 시간이었지만 가까이 다가가자 자동으로 문이 열렸다.
이 안에 라이오넬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