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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크로맨서 재킷-301화 (301/321)

301편

<-- Chapter 7 : Holy Grail -->

광장에 모여 있던 군중들은 순식간에 해산했다.

다들 갑작스레 정신을 차려, 일단 도망치고 보자는 생각을 한 듯했다. 그런 상황에 우리도 계속 그곳에 있을 수만도 없었던 터라 곧바로 장소를 이동했다.

할 킬러즈의 본부 안으로.

“…. 이게, 어떻게 된 일이야.”

린슬렛의 안색이 창백했다.

“일단 좀 쉬자.”

그런 그녀를 부축한 채 나는 건물의 안쪽으로 이동했다. 사람은 단 한 명도 보이지 않았지만, 어쨌든 얼마 전까지만 해도 생활이 이루어지던 곳이었다.

커피 정도는 있겠지.

“비비안은…?”

“트리슈가 데려오기로 했어.”

나는 힘겨워 하는 린슬렛을 데리고 안쪽의 방으로 들어섰다. 이제는 모든 기록들이 정상적으로 작동하기 시작해, 이곳이 탕비실이라는 걸 알 수 있었다.

“이곳에 앉아 있어.”

“아, 고마워….”

그녀는 괴루은 듯 신음하며 자리에 앉았다.

텅 비어 널찍한 탕비실은, 커다란 테이블과 함께 구석에 각종 차와 커피들이 놓여 있는 구조였다. 물은 보온 주전자에 담겨져 있어 나는 곧바로 커피를 탔다. 그리고는 동시에 머릿속으로 숫자를 셌다.

“다들, 위치 전송할 테니까 오도록 해.”

[네, 알겠습니다.]

[가면 타나 오빠한테 기대서 쉴 수 있는 거야아?]

“…. 누구랑 같이 오는지도 말해줘.”

[넬 양과 아랑님입니다.]

[오빠랑 발렌타인과 함께 가고 있어.]

“뭐?”

고작 그것뿐이야?

트리슈의 이야기를 들은 나는 뭔가 이상하다는 생각에 손을 멈췄다. 그리고 잠시 고민한 뒤 말을 이었다.

“넬.”

“네, 준.”

그녀는 이름을 부르자 곧바로 내 옆에 모습을 드러냈다. 하늘하늘 떨어져 내리는 새하얀 머리칼을 바라보며 나는 생각했던 바를 입에 담으려고 했다.

“준…?”

하지만 린슬렛이 선수를 쳤다.

“아, 린슬렛님!”

거기에 반응한 넬이 놀란 듯 고개를 든 린슬렛을 향해 휙 날아갔다. 뭔가 말을 할까 싶었지만, 나는 이내 피식 웃고는 커피를 타는 일에나 집중하자고 생각했다.

어쨌든 둘 역시 할 말이 많을 테니까.

“무사하셔서 다행이에요!”

“아, 으응! 너는….”

“저는 계속 준의 곁에 있었어요!”

“준…?”

린슬렛은 그게 조금 신경이 쓰인다는 듯이 물었다. 그러자 싱긋 웃은 넬은 이윽고 더없이 그런 한 마디에 자긍심을 느끼는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네, 준.”

“뭘 그렇게 즐겁게 이야기하고 있어?”

나는 짐짓 모르는 척 두 사람의 곁으로 끼어들었다. 넬이 옆으로 물러서고, 내가 커피를 바로 앞에 내려놓자 린슬렛은 물끄러미 고개를 들었다.

“미안, 도움이 못 되서.”

“…. 그렇게 생각하지 마.”

나는 눈썹을 찡그린 채 대답했다.

하지만 역시, 내가 어떻게 말하든 린슬렛은 나름대로의 책임감을 느끼겠지 싶었다. 거기에 무력감도 더해지겠지. 그녀는 나와 협력하지 않고 나름대로 할 킬러즈와 아서리안에 대항하려고 했으니 말이다.

아마 대부분 그런 마음을 느낄 터였다.

평범한 인간으로서의 무력함을.

“…. 넬, 부탁할게 있는데.”

거기에 잠식되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그렇게 생각하면서도 나는 린슬렛보다 우선해 넬을 돌아보았다. 어쨌든 그녀에게 부탁할 게 있었으니까.

“말씀하세요.”

“기사들의 위치를 찾아줄 수 있어?”

나는 냉정하게 목소리를 냈다.

녀석들 또한 상황을 파악하기 위해, 서울 내를 벗어나는 짓은 벌이지 않을 테니 말이다. 아니 아마 대부분이, 서울을 떠난다거나 하지 않겠지. 지방 쪽에서 활동하던 녀석들 또한 말이다. 그렇게 행동하기에는 게임 속의 유저들이 겪었던 일은 너무나도 악독한 일이었다.

다들 제대로 답을 알고 싶어 하겠지.

“음, 사실 ‘전부’ 파악이 가능하거든요.”

그렇게 생각하고 있을 쯤, 넬이 쑥스러운 듯이 웃었다. 나는 그 의미를 순식간에 깨닫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부탁해.”

“네, 맡겨만 주세요!”

그리고 넬은 다시 모습을 감췄다.

“…. 티티.”

뒤를 이어 커피를 한 모금 마신 린슬렛이 일어서 내 쪽으로 다가왔다. 단호함에 물든 얼굴에 나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그녀를 돌아보았다.

“응?”

“결국 모두 엘레노어의 손에 놀아나고 있었던 거야?”

“…. 그렇지.”

단 며칠이었지만 완전하게.

거기에 녀석은 무슨 이유에선지 그것을 해외에 방송까지 했다. 생각해보자니 완전히 이전과는 다른 행동 양상에, 나는 묘한 기분을 느끼며 앞머리를 매만졌다.

이게 녀석이 말하는 진화라는 걸까.

어떤 의미에서?

“그렇다면 너희는 어떻게?”

“아…. 그건. 다 오면 설명할게.”

“다?”

“물론 우리 쪽 사람들.”

고개를 끄덕인 나는 뒤를 돌아보았다.

“타나….”

괴로운 듯 서있는 베디비어의 모습이 보였다. 그 뒤에는 아직까지 제대로 정신을 차리지 못한 듯, 트리슈에게 기대어 서있는 발렌타인도 함께였다.

“다들 무사해서 정말로 다행이야.”

나는 그런 그들을 보고 진심을 담아 이야기했다.

그녀는 도무지 말을 들질 않았다.

“잠…! 이거 놓으라고!”

하지만 가웨인은 그런 저항을 무시한 채 그녀를 잡아끌었다. 뺨을 몇 대고 얻어맞았지만 개의치 않았다. 그는 반쯤 혼란스러운 기분인 채 그녀를 계속 끌었다.

앞장선 그 표정이 괴로움에 물든 채였다.

그 누구에게도 보여줄 수 없는 괴로운 표정으로.

“백시호!!”

하지만 비비안은 그것을 알아차리지 못했다.

“어딜 가는 거야! 대체!”

그녀는 악에 가까운 비명을 내지르며 그를 노려보았다. 필사적으로 싸운 뒤라면 몰라도 만전인 그를 상대하기에는 역부족이었던 터라 저항할 마음도 들질 않았다.

가웨인 역시 그것을 잘 알고 있었다.

“서울 바깥.”

어디든 괜찮다.

그 말을 삼키며 걷던 그는, 갑작스럽게 꿈에서 깨어난 것처럼 혼란에 물든 도심을 둘러보았다.

도로는 정체된 채였다.

운전을 하던 몇몇 사람들이, 정신을 차리자 차를 버리고 도망쳤기 때문이었다. 그로서 살풍경해진 도심은, 사람들을 더욱이 겁 먹게 만들어 도망치도록 했다.

정부의 통제는 전혀 이루어지지 않았다.

“….”

거기에서, 순간적으로 가웨인은 자신이 가장 증오하던 사내의 얼굴을 머릿속에 떠올렸다. 하지만 이내 자신이 쥐고 있는 비비안의 손을 더욱이 의식했다.

“가야 해.”

그는 그것을 꾹 쥐고는 고개를 돌렸다.

도심은 어느덧 다시 짙은 노을이 내리쬐기 시작했다. 그런 상황에서 그녀와 다시 만나, 이것이 얼마만인지 의식을 하면 더욱이 아득해질 것 같은 기분이었다.

하지만 그녀는 아니다.

그럼에도 가웨인은 그런 비참한 자신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비비안이 없는 삶은 상상할 수 없었으니.

“왜?”

“설명할 시간 없어.”

이어진 물음에 그는 차갑게 대답하고 다시 팔을 잡아끌었다. 하지만 저항하는 기색이 만연해 가웨인은 이내 다시 뒤를 돌아보았다.

“죽고 싶지 않으면 나가야 한다고!”

“하, 차라리 그게 좋을지도 모르겠네.”

“….”

그 말은 가웨인을 고통스럽게 만들었다.

물론 비비안도 그것을 모르지는 않았다. 그리고 그렇기 때문에 그녀는 그런 식으로 이야기를 했다. 눈앞의 사내는 자신을 그 무엇보다도 소중하게 생각했으니. 본인이 죽겠다는 말을 한다면 더없이 상처 입으리라.

왜냐면 그는, 자신을 트로피처럼 여기기에.

“안 가.”

비비안은 냉정히 자신의 의사를 전했다.

“그렇다면 어쩔 수 없어.”

중얼거린 가웨인이 품속에서 검은 보석을 꺼내들었다. 물론 그것은 동작뿐이고 물질은 실존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비비안은 그 의미를 깨닫자 몸이 굳는 걸 느꼈다.

“…. 차라리 자르지 그래?”

그리고 이내 대답했다.

비참해져 웃으며.

“아, 그건 섹스할 때 불편할까?”

“수현아….”

“하지만 다리가 움직이지 않는 걸. 더 이상 네 허리를 부드럽게 감싸줄 다리를 가진 여자는 없어.”

가웨인은 괴로워했다.

거기에 비비안은 웃으며 말했다.

나는 네가 생각하는 이상적인 여자가 아니라고.

가웨인이 취해있는, 자신이 지킴으로 인해 더없이 아름다워지는 이수현이라는 여자는 이 자리에 없다고.

“그렇잖아?”

“여자가 상스러운 말을 쓰는 게 아니다.”

“…?!”

그리고 이어진 목소리에 가웨인은 흠칫 놀라며 뒤를 돌아보았다. 비비안 역시 익숙한 목소리에 눈을 동그랗게 떴고, 남자는 피식 웃으며 말을 이었다.

“뭐 못 볼 거라도 본 것처럼.”

“당, 신…!”

적의를 내비친 가웨인은 곧바로 뒤쪽의 비비안을 지키듯이 섰다. 그 모습에 백 대령은 큭큭 거리며 웃었다.

“한 가지 제안이 있다.”

“이제 와서 무슨 소리야! 너 대체 어디서 뭘…!”

질문을 던지던 가웨인은 이내 무언가를 깨닫고는 입을 다물었다. 거기에 백 대령은 아무런 반응도 보이질 않았다. 마치 그가 답을 내리길 기다리는 것처럼.

“너, 누구야?”

그리고 그는 날카롭게 목소리를 냈다.

한 순간 마음속에 의심이 일더니, 그것이 확신으로 변하는 데에는 그다지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가웨인은 눈앞의 사내를 의아한 눈으로 바라보았다.

“…. 가족이기 때문인가?”

그리고 사내는 조금 신기하다는 듯 웃었다.

“그 영감은 어디가고 네가 있어?”

“기왕이면 ‘모르는 채’로 진행을 하고 싶었는데.”

“뭐?”

“네게 ‘악역’을 부탁하고 싶어서.”

무슨 말인지 알 수 없었다.

하지만 가웨인은 일단 품안에서 갈라틴을 뽑아들었다. 그것을 가만히 바라보던 사내가 손가락을 들었다. 그리고는 한 마디 말을 내뱉었다.

“그러므로 잠시, 시간을 멈추겠어.”

그 말의 직후, 시간이 정지했다.

========== 작품 후기 ==========

가끔 생각하는 건데

정말 타나토스랑 가웨인이랑 비슷한 면이 있는데.

둘이 주변 관계나 그런 건 정반대인걸 보면 저도 좀 묘한 기분이 듭니다.

사실 타나토스 선생이 주인공이라서 그런 게 크겠지만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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