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99편
<-- Chapter 7 : Holy Grail -->
[네…?]
모드레드의 놀란 듯한 목소리가 이어졌다.
“너희는 우아랑이 어떻게 됐나 좀 확인해줘.”
상황의 변화에, 곧바로 대응책을 정했다. 계승하는 근본은 모드레드의 것으로. 날카롭게 눈을 빛낸 나는 곧바로 정면의 린슬렛을 향해 내달렸다.
[아이 참! 타나 오빠아!]
트리슈가 원망하는 소리가 이어졌지만.
이대로 가다가는 끝이 없을 듯했다. 린슬렛은 방패를 세운 채 몸을 낮추고 내게 돌진해 들었다. 나는 그녀가 날 꿰뚫기 직전의 상황에서 곧바로 모드레드의 스킬을 발동시켰다.
시야가 뿌옇게 물들었다.
동시에 시간이 몇 배는 더 느려진 듯한 기분에 휩싸였다. 나는 돌진해오는 린슬렛의 어깨를 잡고는 그대로 타고 반대편으로 훌쩍 넘어갔다.
그리고 직후, 스킬을 해제했다.
“…?!”
허공에 뛰어오른 나를 린슬렛이 놀란 듯 돌아보았다. 그녀는 속도를 줄이려는 듯 돌아섰지만, 멈추지는 못하고 내가 서있던 벽에 화려하게 충돌했다.
콰앙, 하는 폭음.
그와 동시에 가득히 흙먼지가 흩날렸다. 주변의 에스콰이어들이 차 사고라도 난 것처럼 린슬렛이 부딪친 장소를 돌아보았고, 나는 그 사이 바닥에 착지했다.
“이거 완전 투우사라도 된 기분이군.”
그리고 어이가 없어 웃었다. 하지먼 어쨌든, 스스로 농락을 당했다고 생각한 소는 분명히 더 화를 낼 터였다.
지금처럼.
“큭…!”
흙먼지 속에서 아론다이트의 검기가 날아들었다. 짧은 순간에 반응해 그것을 피한 나는 그 직후 내 쪽으로 달려드는 린슬렛을 막기 위해 해골 병사들을 소환했다.
물론 린슬렛은 그것을 아무렇지도 않게 돌파했다.
날카로운 소리와 함께 병사들이 허공으로 치솟았다. 그 사이에서 무표정한 얼굴을 한 린슬렛이 아론다이트를 내던졌고 원형의 방패가 회전하며 날아들었다. 원형으로 된 검기가 마구잡이로 퍼져 나왔다.
“망령 신체.”
나는 곧바로 스킬을 시전 했다.
푸른 검기는 내 몸을 날카롭게 통과해 지나갔다. 하지만 타격은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검기 자체에 있는 물리력조차 재킷 주변에 미세하게 살포된 정보량 송신 합금이 모두 먹어치워 버린 것이었다.
린슬렛은 조금 놀란 듯했다.
하긴 그도 그럴 터였다. 이전까지만 해도 맥없이 당하던 녀석이 갑작스레 마술사마냥 스킬을 사용해대니까. 반쯤 넋을 놓은 상황에서도 어이가 없는 거겠지.
하지만 이로서 시도해볼 수 있을 터였다.
“린슬렛!!”
병사들의 조종을 놓은 지금이라면.
“윽….”
이름을 부르자 그녀는 괴로움을 느끼는지 이마를 짚었다. 그 모습을 바라보며 나는 천천히 린슬렛을 향해 걸음을 옮겼다. 머릿속으로 상상을 했다.
그녀의 정신을 들게 만들기 위해서.
하지만 바로 그 순간, 무언가 날아들었다.
“빌어, 먹을…!!”
“가웨인!”
바로 옆에서 날아든 녀석이 중심을 잡지 못하고 바닥에 충돌했다. 눈을 동그랗게 뜬 나는 바로 옆으로 다가서는 후끈한 열기에 고개를 돌렸다.
“…. 아니, 하필 이 타이밍에.”
“최선을 다한 결과다.”
“이게?”
나는 어이가 없어 중얼거렸다. 바로 옆에 선 터미네이터는 조금의 타격도 입질 않았던 것이다.
“어쩔 수 없잖아. 사람이랑 싸우게 하던가.”
“….”
그건 솔직히 맞는 말이다. 라이오넬은 말하자면 괴수 쪽에 가깝지. 그것도 재난 영화의 괴수.
“일어나.”
차갑게 중얼거린 나는 엉덩방아를 찧고 있는 가웨인의 팔을 붙잡아 일으켜 세웠다. 그쯤해서 린슬렛까지 정신을 차려 우리는 서로 등을 맞댄 채 섰다.
“너는 어떻게 된 거야?”
가웨인은 어이가 없다는 듯 물었다.
“뭐?”
“린슬렛. 왜 갑자기 둘이 이혼이라도 했어?”
“….”
“상대, 바꿔줘.”
“왜.”
나는 짜증스럽게 대꾸했다. 그러자 가웨인은 싱긋 웃고는 반대편의 라이오넬을 가리켰다.
“넌 상대해봤을 거 아냐.”
“린슬렛은 상대해본 것처럼 말하는군.”
“라쿠스 기사단 시절에는 자주 대련했었지.”
“그때랑은 전혀 다를 거다.”
“그래도 한 번도 안 싸워본 것보단 낫겠지.”
가웨인은 끈질기게 들러붙었다.
“…. 좋아. 그럼 그렇게 하자고.”
거기에 나는 길게 한숨을 내쉬며 대답했다. 그리고 자연스럽게 원형을 그리며 돌아, 이번에는 내가 라이오넬을, 가웨인이 린슬렛과 대치하는 형국이 되었다.
확실히 이 후끈한 열기는 마주하는 것만으로도 사람을 지치게 만드는 기분이었다.
“가웨인.”
그렇게 생각하며, 나는 뒤쪽에 서있던 녀석을 불렀다. 그러자 갈라틴을 손에 쥐고 있던 가웨인이 의아한 얼굴로 날 돌아보았고 나는 인상을 찡그린 채 입을 열었다.
“다치게 하면 가만 안 둔다.”
“…. 병신.”
녀석은 피식 웃고는 돌아섰다.
◇
참을 수가 없었다.
“욱…!!”
더럽혀진 바닥에 실컷 구토를 한 아랑은 눈물과 콧물로 얼굴이 범벅인 채 고개를 들었다. 사실 먹었던 것도 없어 게워낸 것은 허여멀건 한 위액이 전부였다.
“빌어, 먹을….”
그녀는 비틀거리며 몸을 일으켜 세웠다.
몬스터는 허리가 두 동강이 난 채 그녀의 눈앞에 쓰러져 있었다. 그 모습을 한동안 분노와 짜증으로 바라보던 아랑은 잠금 장치가 해제되어 열린 문을 돌아보았다.
지쳤다.
30초 남짓한 시간이었지만, 아랑은 머릿속이 엉망진창이 된 것을 느꼈다. 거리가 가까워지자 손톱과 발톱이 하나하나 뽑혀져 나가던 감각이 더해져 정말이지.
상상하는 것조차 괴로울 정도로.
최악의 경험.
“….”
어쨌든 빨리, 엑스칼리버를 해제해야만.
그렇게 생각한 아랑은 곧바로 열린 문을 넘어 안쪽으로 향했다. 다시금 복도가 길게 이어지고 그 안쪽에 있던 연구실까지 비틀거리며 걸음을 옮겼다.
방 안쪽까지는 조금 시간이 걸렸다.
바닥을 걷는 내내, 행여나 무너져 내리지는 않을까 걱정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물론 그것은 기우였으나 아랑의 정신은 그만큼 한계에 몰린 상황이엇다.
하지만 어떻게든 버텨냈다.
그가 싸우고 있을 것이기에.
“후우….”
아랑은 길게 숨을 내뱉으며 방안으로 들어섰다. 그리고 그녀는 어둠 속에서 녹색으로 점멸하고 있는 기기를 발견하고는 가까이 다가갔다.
엑스칼리버다.
조그마한 원통형의 장비. 이것을 방안의 증폭기와 결합시키면 전 세계에 동일한 효과를 발생시킨다. 그로서 엘레노어를 묶어놓을 수 있게 되지만, 동시에 전 세계에 단시간동안 엄청난 혼란을 불러일으키는 것이었다.
하지만 물론, 아랑은 그럴 생각은 없었다.
원통형의 장비를 주워든 아랑은 전원 장치에 손을 가져다댄 상태에서 뒤를 돌아보았다.
그리고 연구실 앞에 누군가 서있다는 걸 알아차렸다.
“…?”
의아해 고개를 든 그녀는 이내 눈을 동그랗게 떴다.
“왔구나, 딸.”
그것은 ‘아버지’였다.
아니, 아버지가 아니다.
“그레일….”
“진실을 알았구나. 그래서 어떤 기분이지?”
그는 즐거운 듯이 웃었다.
검푸른 정장을 입은 채, 등허리를 꼿꼿하게 펴고 서있었다. 그다지 멋진 외모는 아니었지만 풍겨져 나오는 분위기에서는 왕으로서의 위압감이 느껴졌다.
완전히 똑같았다.
눈앞의 남자는, 그녀의 아버지와 완전히.
“어떻게 여기에….”
하지만 그보다 앞선 의문이 있었다. 눈썹을 잔뜩 찡그린 아랑은 눈앞에 ‘서있는’ 그레일의 존재를 이해하지 못하고 허탈해 물었다. 그러자 그는 싱긋 웃었다.
그리고 천천히, 손을 앞으로 뻗었다.
“나는 인간이니까.”
“그게 무슨 소리지?”
“살덩어리로 구성된 존재라는 거지.”
“…?”
아랑은 몸의 동작이 멎는 걸 느꼈다. 하지만 그런 그녀를 보고 그레일은 크게 웃기 시작했다.
“하하하하!! 그 말을 정말로 믿었어?”
“그레일…!!”
“애초에 인간이란 뭐지?”
“철학적인 논쟁을 하러온 것이 아니다!”
“하지만 궁금하지 않아?”
그레일은 자신의 얼굴을 매만졌다. 자신의 가장 가까운 사람과 똑같은 얼굴에 똑같은 목소리. 하지만 그는, 인간미라고는 느껴지지 않는 차가운 얼굴을,
“뭣…?!”
움푹 눌러버렸다.
아랑은 놀라 그 모습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하지만 그는 아무렇지도 않게, 마치 찰흙을 문대는 어린아이처럼 자신의 얼굴을 매만졌다. 그리고 그 뒤를 이어 몸의 형태 자체가 변하기 시작했다.
“내가 무엇인지.”
“그, 건….”
그리고 드러난 얼굴에 아랑은 입술을 질끈 깨물었다. 곳곳이 허옇게 샌 머리칼을 포마드로 넘긴 주름으로 가득한 얼굴, 적당히 배가 나온 검은 코트의 사내.
백 대령이었다.
“어떤 존재로 정의하면 좋을지.”
그것은 진지한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나’는 지금 지금 인간과 같은 원리로 현실에 존재하고 있어. 명백히 몸이 있고, 뇌와 비슷한 기관이 의식을 만들어내고 있지. 인간에 비해서 훨씬 우월하지만 어느 정도인지 감안이 되지 않을 정도로.”
“….”
“너희 인간은 우리를 이겨내기 위해 검을 벼려냈지. 하지만 그게 과연 이런 내 앞에서는 통할까?”
그는 팔을 양옆으로 펼쳐들었다.
그것이 마치 자랑스러운 날개라도 되는 것처럼.
“네트워크에 의존하지 않아도 되는 나에게?”
“그렇다면 당신은 무력해지겠지.”
아랑은 차갑게 목소리를 냈다.
“아니, 보다 원시적이 될 뿐이겠지만. 딱히 괜찮아.”
그는 검을 한 자루 벼려냈다.
검은 바람이 그레일의 팔에 휘감기며, 마치 마법처럼 그것은 만들어졌다. 그는 싱긋 웃으며 아랑을 향해 그 검을 겨누었다. 하지만 이내 이것이 더 낫겠다는 듯 권총으로 그 형태를 변형 시켰다.
“인간을 진화시키기 위해서니까.”
“인본주의적으로 인간을 해한다는 거냐.”
“그게 한성진이 바라던 것이니까.”
그는 남의 이야기를 하듯이 중얼거렸다.
“진리의 탐구를 통한 궁극적인 인간의 진화. 분쟁의 소멸. 평화의 실현. 새로운 시대의 도래.”
어느덧 그 눈에, 의지가 넘치기 시작했다.
“인간은 성배를 손에 넣어야 해. 무슨 수를 써서라도.”
“그걸 위해 이런 짓을….”
“진화를 위해선 희생이 필요한 법이니까.”
“말도 안 되는 소리 하지 마라!!”
아랑은 버럭 소리를 내질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