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네크로맨서 재킷-298화 (298/321)

298편

<-- Chapter 7 : Holy Grail -->

“큭….”

최악의 기억이었다.

솔직히,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뇌가 타들어가는 듯했다. 지금 이 자리에서 디멘션 커넥터를 켠다면 세계는, 그녀를 미치게 만들어버릴지도 모른다.

어떤 때는 기괴한 명화를,

어떤 때는 스플래터 무비가,

어떤 때는 정신병자의 망상이.

그런 것들로 가득 차, 세계는 무엇이 진실인지 알 수 없게 변해버리고 만다. 인간은 그런 세계에서 제정신을 유지할 수가 없다. 넬이나 엘레노어 같은 고도로 발달한 인공지능이라도, 그 안에서는 영원히 헤맬 뿐이리라.

하지만,

“크윽….”

분했다.

평범한 인간이 되자 무력해진 자신이, 아랑은 그것을 얌전히 견뎌낼 수가 없었다. 그녀는 비틀거리면서도 입술을 질끈 깨물고 자리에서 일어섰다.

“후우.”

심호흡.

그리고 귓바퀴의 기계 장치에 손을….

올리려던 순간, 폭음이 울려 퍼졌다.

“윽?!”

갑작스러운 소리에 아랑은 놀라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 그녀는 어둠 속에서 뭔가가 부서지는 소리를 이어서 들었다. 그 뒤를 이어 잔해가 발밑으로 굴러들어왔다.

“무, 슨….”

상황인 거지?

그런 의문의 뒤를 이어, 어둠 속으로부터 거대한 무언가가 모습을 드러냈다. 입술을 질끈 깨문 아랑은 절로 발이 멈추는 것을 느끼고는 수치심에 휩싸였다.

그것은 몬스터였다.

텍스처가 씌워지지 않은, 아서리안의 검은 몬스터. 사족 보행을 하고 손에는 검 비스무리한 무언가를 들었다. 그 모습이 적잖이 위협적이었다.

아랑은 생각했다.

스스로가 무력하다고.

그리고 다음 순간, 휘둘러진 검에 얻어맞았다.

“카흑…!”

옆구리에 격렬한 통증이 일었다.

옆으로 튕겨져 날아갔다. 몸을 가누지 못하고 어딘가에 머리부터 부딪쳐 아랑은 바닥에 추욱 늘어졌다.

몸이 이상을 호소했다.

제발 살려달라고. 아마 입이 달렸다면 그렇게 말하지 않았을까 싶었다. 갈비뼈가 넉 대는 나간 듯했고 숨이 쉬어지질 않았다. 머리가 어질어질했다.

쿨럭, 하고 기침을.

그로서 바닥에 피를 한 움큼 내뱉은 아랑은 놀라 눈을 동그랗게 떴다. 붉은 그것이 지독히도 현실을 자각하게 만들어, 그녀는 절망에 휩싸여 고개를 들었다.

몬스터는 계속해서 검을 휘둘러댔다. 아랑은 그런 모습에서, 엘레노어가 그저 눈앞에 있는 모든 것을 베어 넘기는 식으로 몬스터를 통제하고 있음을 알아차렸다. 어쨌든 그런 단순한 동작이라도 지금의 아랑에게 있어서는 엄청난 위협이 될 테니 말이다.

코트를 입은 상태였다면 단숨에 베어 넘겼겠지만.

“….”

이제는 정말로 어쩔 수 없게 되었군.

쓰게 웃은 아랑은 디멘션 커넥터에 손을 올렸다.

솔직히 말해 상황은 좋지 못했다.

[아…. 갑자기 라이오넬이 날뛰기 시작했어.]

그리고 점점 그렇게 되어갔다.

트리슈가 길게 한숨을 내쉬고, 이어서 전장의 반대편에서 에스콰이어들이 날아올랐다. 마치 밀려드는 파도가 서로 부딪쳐 거세게 튀어오르는 듯한 풍경이었다.

[일단 막아볼게!]

트리슈가 소리치고 녹색의 궤적이 에스콰이어들이 부딪쳤던 자리에 폭격처럼 꽂혔다. 하지만 이어서 트리슈의 신음이 흘러, 나는 잘 되지 않았음을 직감했다.

그리고 비비안의 검을 막아냈다.

“…!”

그것은 물론 가웨인을 향한 채였다. 말인즉슨 나에 대한 살의보다는 방해꾼을 쫓아낸다는 느낌에 가까운 공격이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간담이 서늘해지는 감각에 휩싸였다.

이유는 간단했다. 검 때문이었다.

태양의 검, 갈라틴.

그 무게감을 이제야 자각해, 나는 쓰게 웃었다.

“이준!”

하지만 이가 없으면 잇몸으로라도 해야 하는 법이다.

들려온 목소리에 고개를 돌린 나는 린슬렛을 튕겨 보낸 가웨인이 날 돌아본 것을 발견했다. 그 눈빛이 무언가를 말해 나는 주변을 둘러보았다.

어림잡아 열 이상, 각자의 무기를 쥔 에스콰이어들이 쇄도해드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방패!”

가웨인이 소리쳤다.

“…!!”

그 의미를 깨닫고, 나는 곧바로 방패를 들었다. 그리고 동시에 비비안을 가리듯이 서 가웨인을 돌아보았다. 녀석은 몽둥이를 머리 위로 거세게 들어올렸다.

“가만 안 둔다!!”

그리고 내게 소리쳤다.

나는 어쩐지 그가 하는 말의 의미에 대해 적당히 깨달았다. 그는 분명 이렇게 말하고 싶은 것이리라.

비비안을 다치게 하면 가만 두지 않겠다고.

“핫….”

나는 어이가 없어 피식 웃었다. 그러자니 눈썹을 잔뜩 찡그린 가웨인이 나를 향해 거세게 몽둥이를 휘둘렀다. 그 끝에서 눈부신 빛이 형태를 이루었다.

비헤딩 슬래셔.

머리를 썰어내는 일격이 곧장 날아들었다. 그리고 그것은 내 어깻죽지에 피어오른 린슬렛의 방패에 거세게 부딪쳤다. 나는 뜨거운 열기를 느꼈다.

하지만 그것은 곧, 튕겨져 나갔다.

[뭣…?!]

지켜보고 있었던 것일까. 트리슈가 놀란 듯 목소리를 냈다. 충격에 뒤로 밀려나 고개를 든 나는, 파편처럼 퍼져 나가는 빛의 알갱이를 발견했다.

그리고 그건 달려들던 적들을 짓이겼다.

“이준!”

목소리가 이어졌다.

고개를 든 나는 린슬렛의 공격을 막아낸 녀석과 눈이 마주쳤다. 녀석은 바로 옆을 돌아보았고 나 역시 그 흐름을 따라 내 군세가 있는 장소를 확인했다.

그리고 알아차렸다.

라이오넬이 바로 코앞까지 도달하였음을.

“…!”

녀석이 지나는 자리마다 남아나는 것이 없었다. 해골 병사들은 무슨 엿가락처럼 녹아내렸고 열기에 아스팔트 바닥이 움푹 파일 정도였다. 정신을 놓은 에스콰이어들마저 녀석의 주변에는 얼씬도 하지 못했다.

멜팅 케이프.

“저 자식하고는 절대 싸우고 싶지 않은데….”

나는 골이 아파오는 걸 느끼며 중얼거렸다.

“갈라틴을!!”

그리고 이어진 목소리에 눈을 동그랗게 떴다.

돌아보자 진지한 표정을 짓고 있는 가웨인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나는 곧바로 몸을 돌려 방금 막 정신을 차린 비비안의 손에 들린 검을 바라보았다.

갈라틴.

휘둘러져오는 그것을 받아내, 걸고 당겼다. 휘청거리던 비비안이 내 쪽으로 쓰러졌고 나는 주인을 잃은 갈라틴을 스파다에 걸어둔 채 허공을 향해 휙 집어던졌다.

그리고 중심을 잃은 비비안을 안전하게 받아냈다.

“야!!”

허공에 뛰어 올라 갈라틴을 잡아낸 가웨인이 그걸 보고는 버럭 소리를 내질렀다. 이런 거에 또 유치하게 반응을 하나 싶어 나는 눈을 동그랗게 떴다.

“아니, 이 찌질한 새끼가…!”

“당장 그 손 놓지 못해! 짐승 같은 새끼야!!”

땅에 착지한 가웨인이 내 쪽으로 분노해 다가왔다. 그 모습을 어이가 없어 바라보던 나는 이윽고 바로 옆에서 엄청난 열기를 느끼고는 고개를 들었다. 이쪽으로 천천히 다가오고 있는 라이오넬의 모습을 발견했다.

“….”

무슨 터미네이터도 아니고.

“시간만 끌어.”

“쓰러뜨릴 생각도 없어.”

그 모습을 보고 이야기하자 가웨인은 어이가 없다는 듯 중얼거렸다. 하긴, 나라도 같은 상황이라면 절대로 눈앞의 거구를 쓰러뜨린다는 발상은 못하겠지.

“비비안에게 손대지마라.”

녀석은 날카롭게 중얼거리고 앞으로 나아갔다. 곳곳이 붉게 물들어 더렵혀진 새하얀 코트를 걸친 채, 찬란한 황금빛으로 빛나는 검을 손에 들었다.

[제가 그쪽으로 가겠습니다.]

그리고 모드레드의 목소리가 이어졌다.

“응? 왜?”

[린슬렛님을 상대할 사람이 필요하지 않습니까?]

“….”

그러게.

“아니…!”

바로 그 순간 자각이 든 나는 뒤쪽에서 희미하게 풍겨오던 살기를 느끼고 몸을 던졌다. 그리고 고개를 휙 들자 머리 위를 스치는 푸른 검기를 발견했다.

“린슬렛!”

그녀는 멈추지 않고 내게 달려들었다.

“정신차려! 나야! 이준이라고!”

통하지는 않겠지만 나는 뒤로 훌쩍 뛰어서 물러났다. 하지만 다음 순간, 뭔가가 갑자기 팔을 거세게 끌어잡는 것을 느끼고 자리에 멈춰 섰다.

“큭?!”

비비안이었다.

[타나!!]

[타나 오빠!!]

모드레드와 트리슈가 비명에 가까운 소리를 내질렀다. 상황을 자각하지 못하고 있던 나는, 순식간에 쇄도해, 코앞까지 파고 들어온 린슬렛과 눈을 마주쳤다.

그녀가 내게 방패를 휘둘렀다.

우지끈, 하는 소리가 뒤를 잇고,

“컥…!!”

날카로운 통증이 복부를 짓이겼다.

순간적으로 폐에 구멍이 뚫리며 공기가 빠져나가는 듯하여, 나는 팔을 붙잡고 있던 비비안과 함께 뒤쪽으로 나가떨어졌다.

벽에 충돌했다.

“…!!”

하지만 어떻게 해서든 비비안은 지켜냈다. 원래 그런 약속이었기 때문이었다. 나는 비비안을 품에 끌어안은 채 조각난 벽이 무너져 내리는 소리를 들었다.

어쩔 수 없나.

“모드레드.”

나는 손을 뻗어 이번에는 얼굴을 할퀴기 시작하는 비비안을 밀어냈다. 그 사이 목소리를 들은 모드레드가 곧바로 내 말에 반응을 해왔다.

[네, 타나토스 씨.]

“작전을 변경하자. 더 이상 병사들은 필요 없어.”

[네…?]

“위력은 충분히 보여줬어. 아무래도 본능정도는 그래도 다들 남아있는 것 같으니까.”

허허실실이다.

누구도 지금 그러는 것처럼, 쉽게 덤벼들진 못할 터였다. 죽어도 피어오르는 망자들을 상대하느니 자기들끼리 싸우는 편이 차라리 나을 테니까.

나는 뇌를 이완시켰다.

마치 컴퓨터의 파티션을 구분해두었던 것처럼, 병사들을 조종하던 뇌의 용량을 가져왔다. 사실상 분할해두었던 집중력을 합치는 거나 마찬가지.

나는 눈앞의 여자를 바라보았다.

근접 공격력 하나로는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을 그녀.

린슬렛을.

“아무래도 싸우는 수밖에 없겠지 싶어.”

나는 그렇게 중얼거리며 스파다를 뽑아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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