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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크로맨서 재킷-296화 (296/321)

296편

<-- Chapter 7 : Holy Grail -->

불이 붙은 듯했다.

수많은 에스콰이어들이 전투를 벌이고 있는 장소에, 내 망자들은 마치 불길처럼 파고들었다. 선을 그리며 제각기 안으로 파고들어 그을리기 시작했다.

나는 그것을 중간쯤에서 묵묵히 지켜보았다.

그 이유는 간단했다.

솔직히 망자들을 다루는 것만으로도, 뇌가 충분하다 싶을 정도로 과부하를 일으켜댔기 때문이었다.

지직거리며 뇌세포가 타들어가는 기분이었다.

마치 지금 이 전쟁터처럼.

“좀 더 안으로…!”

하지만 나는 멈추지 않고 망자들을 밀어붙였다.

[타나 오빠! 괜찮아?!]

[안색이 좋지 못합니다만….]

“날 누구라고 생각하는 거야?”

멀리서 상황을 지켜보는 두 사람의 목소리가 이어졌다. 하지만 나는 귓구멍으로부터 터져 나와 흐르는 붉은 피를 스윽 닦아내며 그렇게 중얼거렸다.

그런 신체의 변화와, 두 사람의 말과 행동을 보자면 아무래도 트리슈와 모드레드는 전장의 오른쪽에서 나를 지켜보고 있는 모양이었다.

그녀들에게는 내가 마치 폭군처럼 느껴지겠지. 그리고 지금 전쟁터를 향해 파고 들어가는 나의 군세는 그런 표현이 아깝지 않을 정도였다. 나는 무뚝뚝하게 계속해서 앞으로 걸어 나갔고 해골 병사들이 길을 텄다.

“후….”

그리고 다음 순간, 녹색의 빛이 코끝을 스쳤다.

패일노트의 화살이 날아든 것은 찰나의 순간이었다. 하지만 지금의 나에게 그것은 무척이나 느리게 느껴졌다. 스치고 날아가는 화살을 나는 눈으로 바라보았다.

“…!!”

그것이 해골 병사들을 뛰어넘어 내게 달려들던 에스콰이어의 가슴에 꽂혔다. 강한 충격에 푸른 재킷을 입은 녀석은 버텨내지 못하고 나가떨어졌다.

[계속 보고 있어! 안심하고 전진해!]

트리슈의 목소리가 이어졌다.

“모드레드, 트리슈를 부탁한다.”

거기에, 나는 다시금 면밀하게 명령을 내렸다. 고대 로마의 군단병처럼 방패를 들고 전진하는 해골 병사들을 재배치하여 에스콰이어의 접근을 막고 전황을 파악했다.

모드레드의 배치는 바꿀 수 없었다.

결국 모두들 트리슈를 노릴 테니까.

그녀는 이 광활한 전장을 지배하는 저격수다. 모습을 드러내지는 않지만, 언젠가는 모두들 그 존재에 대해 눈치 챌 터였다. 그리고 그렇게 된다면, 그 성가심에 대해서도 알게 되겠지. 따라서 은신과 기동에 특화되어있는 모드레드를 붙여두는 것이었다.

[…. 알겠습니다.]

모드레드는 마지 못해 대답했다.

머리로는 알고 있지만 마음이 꺼려진다는 걸까. 하지만 나는 이럴 수밖에 없다는 생각을 했다. 최악의 경우에라도 죽지 않는 나와는 달리, 두 사람은 이런 혼란 속에서 어떻게 될지 알 수가 없었으니.

“…?”

고 생각할 무렵, 누군가 나타났다.

바닥의 검은 점액질로부터 그녀가 ‘피어올랐다.’ 나는 갑작스러운 상황을 이해하지 못하고 눈을 동그랗게 떴다. 처음에는 검은색이던 그녀, 모드레드는 이내 새하얀 피부와 윤기가 나는 머리칼을 갖추어 나가며 평소의 모습과 별반 다르지 않게 변화했다.

“모드레드!”

“왜 그러십니까?”

내가 놀라 물었지만 모드레드는 아무렇지도 않게 대답했다. 하지만 그녀는 이내 그런 자신의 몸이 신기하다는 듯 이리저리 매만져보기 시작했다.

“당신의 말대로 자유로워져 봤습니다만.”

그리고는 새침하게 중얼거렸다.

“아니, 그게….”

“당신께서 하신 대로 말입니다.”

당황해 뭐라 대답을 못하고 있자니, 그녀는 싱긋 웃으며 나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뒤를 이어 앞장서 전장을 밀어붙이고 있는 해골 병사들의 사이로 단검을 내던졌다. 검은 궤적을 그리며 그것들이 세차게 날았다.

“두 분 다 지키면 되겠군요.”

“…. 힘들면 바로 빠져.”

“수천의 병사들을 조종하는 것보다 버겁겠습니까?”

[뭐, 뭐야? 모디모디가 완전히 둘로…!]

“아, 제 쌍둥이 동생입니다.”

[뭐어?!]

“노, 농담이 늘었네. 모드레드.”

“뭐, 당신의 발상을 보고 놀랐기 때문이겠죠. 스스로 합금을 조종함으로서 자유로워진다니….”

중얼거린 모드레드가 팔을 가슴 앞에서 교차시켰다.

“그것이 유일한 방법이었구나 싶어서.”

그 손끝에 꽃잎처럼 단검이 피어올랐다.

“…. 사, 살살해라.”

“노력해보겠습니다.”

모드레드는 전혀 노력할 것 같지 않은 얼굴로 말했다. 그리고 곧장, 마찬가지로 전장을 밀어붙이는 해골 병사들의 틈새로 단검을 수 차례 내던졌다.

진군의 속도가 훨씬 더 빨라졌다.

“트리슈, 보기에 어때.”

[음~ 거의 도착한 것 같아. 좌측에서 린 언니와 우리 오빠, 헥터의 군이 싸우고 우측에서 라이오넬과 다른 기사들의 군세가 싸우고 있으니까.]

거진 계획대로 이루어지고 있다는 말인가.

“사실 헥터도 우측으로 두고 싶었습니다만.”

“어쩔 수 없잖아. 맞붙고 있는 걸.”

나는 그렇게 중얼거리며 계속해서 병사들을 앞으로 밀어붙였다. 다시금 누군가 해골 병사들의 위로 뛰어올라 나를 공격하려고 들었으나 트리슈와 모드레드가 간단히 그것을 제압했다.

병사들의 전진이 멈췄다.

“이대로 좀 묶어두고 있으면 돼.”

중얼거린 나는 땀으로 범벅이 된 자신을 느끼며 자리에 멈춰 섰다. 고작 500미터? 그 정도를 전진한 것뿐인데 정신적으로 무척 지치는 것을 느꼈다.

“그럼 저희는 전황을 소강상태로 유지하겠습니다.”

“부탁, 해.”

눈동자를 타고 피가 주륵 흘렀다.

모드레드에게 보이지 않도록 돌아선 나는 방패를 든 채 묵묵히 공격을 견뎌내는 해골 병사들을 바라보았다. 누군가 쓰러지면 누군가 일어서 그 자리를 대체했다.

그리고 다음 순간, 누군가 또 병사들을 짓밟고 위로 뛰어올랐다. 나는 놀라 고개를 들었다. 그 기세가 조금 더 거세다는 것을 느꼈기 때문이었다.

[또 무슨 바보가…!]

“아니, 뭔가 이상합니다.”

[쏘면 그만이야!]

그리고 녹색의 궤적이 날아들었다.

그것이 허공에 뛰어오른 에스콰이어에게 명중했다. 하지만 기세가 꺾이는 일이 없이 검은 인영은 곧바로 나를 향해 세차게 날아들었다.

절체절명의 순간,

“타나…!!”

모드레드가 아슬아슬하게 내 앞을 막아섰다. 그 직후, 에스콰이어가 착지하는 충격으로 바닥이 부서지며 흙먼지가 휘날렸고, 모드레드는 나를 휘말리지 않도록 뒤로 밀어내고는 그 안으로 파고들었다.

연이어 검이 부딪치는 소리가 들려왔다.

“큭!”

뒤를 이어 먼지가 걷히고, 그 안에서 누군가 모습을 드러냈다. 푸른 무언가가 휙 날아들어 고개를 숙여 피한 나는 곧이어 놀라 눈을 동그랗게 떴다.

“린슬렛…?!”

화려하게 찰랑이는 금발. 푸른빛이 끄트머리로부터 일렁거리는 조그마한 방패를 든 기사.

그녀가 나를 향해 방패를 겨누었다.

본부로의 침입은 이번에도 그다지 어렵지 않았다.

“이쪽이에요!”

물론 가장 큰 것은 넬의 존재였다.

“곧, 따라가지!”

하지만 아랑 역시 자신의 부대이니 만큼 움직임에 망설임이 없었다. 두 사람은 엘레노어가 만들어둔 온갖 함정과 몬스터들을 아무렇지도 않게 파훼하며 나아갔다.

바닥이 무너져 내렸다.

건물이 붕괴하여 재구성이 될 정도로 모든 것이 정교하게 엘레노어의 손아귀에 들어갔다. 아니 아마 그녀는 원래부터 할 수 있는 걸 유예를 둔 것뿐이겠지.

“아랑님!”

“큭!”

검이 날았다.

무너진 벽에 박힌 그것을 밟고 아랑은 높게 뛰어올랐다. 갑작스러운 상황이었지만 그녀는 냉정하게 대처해 상처 하나 없이 바깥으로 빠져나왔다.

그리고 생각했다.

거리가 얼마나 남았지?

지친다고 말할 수 없는 상황이었지만, 아랑은 조급한 기분을 느꼈다. 그것은 물론 바깥에서 에스콰이어들을 막고 있을 타나토스가 걱정이었기 때문이었다.

가웨인까지 돌발 행동으로 빠진 상황에서.

“서두르자! 넬!”

두 사람은 걸음을 재촉했다.

본부의 지하로.

계단을 타고 밑으로.

그러자 곧바로 풍경이 뒤바뀌었다.

“큭, 역시….”

척 보기에도 마음이 괴로워지는 모습이었다. 묘사하기에도 괴로울 정도로 일그러진 풍경들이 눈앞을 가득 메웠다. 아랑은 구토감이 밀려드는 것을 느꼈다.

벽에 수도꼭지가 만들어졌다.

처음에는 대체 뭔가 싶었다. 이 타이밍에 갑작스레 벽에서 수도꼭지가 생겨나다니. 하지만 삐그덕 거리는 소리와 함께 그것이 돌아가고, ‘눈알’이 다수 떨어져 내리자 아랑은 참지 못하고 뒤로 물러섰다.

뿐만이 아니었다.

[까드득 까드득 까드득 까드득 까드득 까드득 까드득 까드득 까드득 까드득 까드득 까드득 까드득 까드득 까드득 까드득 까드득 까드득 까드득 까드득 까드득 까드득 까드득 까드득 까드득 까드득 까드득 까드득 까드득 까드득 까드득 까드득 까드득 까드득 까드득 까드득.]

수많은 사람들이 손톱을 가만히 놔두질 못하고 씹어 먹고,

[후웁 후웁 후웁 후웁 후웁 후웁 후웁 후웁 후웁 후웁 후웁 후웁 후웁 후웁 후웁 후웁 후웁 후웁 후웁 후웁 후웁 후웁 후웁 후웁 후웁 후웁 후웁 후웁 후웁 후웁.]

듣기에 혐오스러운 숨소리가 연이었다.

“윽….”

“괜찮으세요?”

괴로워하는 아랑을 보고 넬이 목소리를 냈다. 그녀 역시도 이런 것에는 적응이 되질 않아 길게 한숨을 내쉬었지만, 이내 의연한 표정으로 고개를 들었다.

본부의 지하에는 현재 엑스칼리버가 기동 중이었다.

엘레노어가 서울을 장악하자, 찰나의 순간 내부에 있던 연구원이 그냥 기동을 시켜버린 듯했다. 그리고 마치 독가스가 퍼진 것처럼 지하는 이제 사람이 다닐 수 없는 곳이 되어버리고 말았다는 이야기였다.

이 안에는 무의미한 정보들이 뒤섞여 하나의 새로운 세계를 만들고 있었다. 정보의 과다, 무엇이 진실이고 거짓인지 알 수가 없는 세계. 말인즉슨 엘레노어 또한 건들지 못하는 장소라는 말이었다.

“괜찮, 다.”

모든 것을 내려놓은 현실의 인간 외에는.

“다녀오마. 넬.”

“부탁드려요, 아랑님.”

“너를 믿고 있으니까.”

그녀는 쓰게 웃으며 디멘션 커넥터를 종료했다.

“윽….”

하지만 다음 순간, 버텨내지 못하고 무너져 내렸다.

어느덧 식은땀이 비처럼 흘러 등을 흠뻑 적셨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하지만 멈추지 않고 고개를 든 아랑은 눈앞에 드러난 완전한 ‘현실’에 길게 숨을 내뱉었다.

하지만 이런 곳에 있을 때가 아니라는 자각이 또.

확실히 이곳은 이제, 뒤떨어진 세계였다.

“좋, 아.”

별 것도 아닌 일이다.

아랑은 그렇게 생각하며 앞으로 나아갔다. 검게 물든 채로 있는 벽을 보자 어쩐지 거기에 눈알이 피어오르던 순간이 머릿속을 스치는 듯했지만 애써 무시했다.

넬이 말하기를 엑스칼리버의 반응은 가장 안쪽의 방에서 나온다고 했다. 기억에 의하면 그곳은 분명 엑스칼리버의 개발을 비롯해 제대로 된 활용을 위하여 신호증폭기와 연산용 슈퍼컴퓨터가 있는 곳이었다.

그나마 다행이었다.

아랑은 그렇게 생각하며 안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만약 예전의 계획대로 증폭기에 엑스칼리버가 연결이 되었다면 걷잡을 수 없는 사태로 번졌을 것이다.

하지만 다행히 그러지는 않았다.

내부에서 엑스칼리버를 기동시킨 연구원이 어떻게 되었을까를 생각하자면 좀 마음이 복잡해졌지만, 그녀는 애써 무시하며 문을 열려고 했다.

하지만 이내 알아차렸다.

철컥, 철컥.

“….”

문이 잠겨 있다는 사실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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