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94편
<-- Chapter 7 : Holy Grail -->
그 이유는 자명했다.
그녀가 나에 비해, 몇 배나 더 지능적으로 우월했기 때문이었다. 넬은 만들어진 존재였으나 평범한 인간은 물론이고 나처럼 진화된 존재와도 궤를 달리 할 정도로 많은 것들을 알고 있었다.
특히나, 그 누구도 진실을 가르쳐주지 않는 가상의 세계에 대해서는 더욱이.
왜냐면 그녀는 그곳의 주민이었으니까.
“그건 그렇고…. 준.”
거기에 대해 감사와 더불어 어딘지 묘한 기분을 느낄 즈음, 넬이 말을 이었다. 손끝에 불빛을 내며 앞장서 걸어간 그녀는, 쉘터의 가장 안쪽에 있는 문을 하나 발견하고는 그 앞으로 천천히 걸어갔다.
“지금 조금 기분이 이상, 한데요.”
그리고 날 돌아보았다.
그 표정이 조금 뾰로통한 채였다.
“뭐?”
“이게 질투인 걸까요?”
“…. 그, 글쎄.”
나는 당황해 대답했다.
이런 부분에 있어서 그녀는…. 잘 알지 못하는 만큼 솔직한 의견을 낼 때가 있다. 나는 가볍게 헛기침을 하고는 내 옆에서 팔짱을 낀 두 사람을 돌아보았다.
“…♡”
넬의 눈치를 살피는가 싶던 트리슈가 내 뺨에 다시금 입을 맞춰왔다. 오늘로 벌써 일흔여섯 번째였던 터라 나는 어색하게 웃으며 넬을 바라보았다.
“우으, 너무해요! 준!”
“아니 나로서도 어쩔 수 없는….”
말을 하던 도중, 이번에는 모드레드가.
“…! 바보!”
넬은 휙 화를 내고 방안으로 들어섰다.
볼이 빵빵하게 부푼 모습이 사실 좀 귀엽기도 했다. 나는 쓰게 웃으며 두 사람을 대동한 채 뒤를 따랐다.
“두 분 다 정신이 돌아오면 창피해 하시겠죠?”
“그, 그렇게 심술 부리지 마….”
“아, 넬의 편은 한 번도 안 들어주시고!”
“무슨 소리야. 난 언제나 네 편이었는데.”
“…. 역시 전 준을 세상 누구보다 사랑하고 있어요!”
또 금새 마음이 풀렸다.
“그럼 빠르게 가죠!”
웃으며 중얼거린 넬이 주변에 여러 개의 팝업창을 띄웠다. 그녀가 이것저것 준비를 하는 사이, 주변을 둘러본 나는 이곳이 통제실이라는 걸 깨달았다.
간이침대와 책상, 다량의 서류가 들어있는 책장들. 대충 간이침대의 먼지를 걷어낸 나는 뒤쪽에서 호기심 어린 시선을 보내던 트리슈와 모드레드를 앉혔다.
“여기 가만히 앉아 있어.”
“…?”
두 사람이 동시에 고개를 갸웃거렸다.
때 묻지 않고 순수한 눈이었다. 이쪽과 적대했을 때 마냥 멍한 분위기는 온데간데없이 눈에 생기가 돌아온 채였지만…. 아직 온전히 제정신은 아닌 듯했다.
“넬, 잠깐 이쪽으로.”
돌아서며 말을 걸자 넬이 내 곁으로 다가왔다. 잠시 고민을 하던 나는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이것은 하나의 가설일 뿐이다.
“지금 두 사람의 상태에 대해 생각해본 게 있는데.”
“…. 말씀해 보세요.”
넬이 부드럽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간단하게 말해, 합금이 뇌의 일부에 세포의 형태로 달라붙어 정신을 조종하고 있는 거잖아.”
“그렇죠.”
“그리고 그러한 명령을 내리는 매개체는, 엘레노어가 권한을 획득한 개개인의 디멘션 커넥터인 거고.”
즉, 이런 이야기다.
정보량 송신 합금은 원활한 활동을 위해 하나의 중개 장치를 필요로 한다. 그리고 이 경우에는 인간 개개인이 지니고 있는 디멘션 커넥터가 그 역할을 수행한다. 그러니 모르가나를 통해 중개 장치를 다시 빼앗아 옴으로서 그녀에게서 벗어날 수 있는 것이다.
하지만 나는 다른 방법을 시험해보고 싶었다.
“만약 우리가 직접 합금을 조종한다면?”
“….”
“괜찮지 않을까?”
나는 불확실한 채 질문을 던졌다. 그러자, 진지한 표정이 되어 입을 다물고 있던 넬이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언제부터 생각하셨어요?”
“뭘?”
“합금을 당신의 손으로 직접 조종한다는 부분이요.”
“이 두 사람이 내 말을 들을 시점에서.”
나는 그렇게 중얼거리며 뒤를 돌아보았다.
헤헤, 하고 귀엽게 웃은 모드레드가 내게 손을 흔들었다. 거기에 고개를 끄덕이며 반응한 나는 곧바로 넬을 돌아보며 말을 이었다.
“내가 무의식중에 영향을 끼친 걸까 싶었거든.”
“음, 솔직히 말씀드려도 될까요?”
“응.”
“준이 인간이 아니게 되는 기분이 드네요.”
“…. 왜?”
넬은 조금 복잡한 눈으로 날 바라보았다. 경외감, 그리고 동시에 우려가 거기에 깃든 채였다.
“이해하고 있다는 거잖아요. 전문가도 아닌 당신이.”
“이쪽의 시스템을?”
“네, 진아님이나 헥터님 같은 경우면 몰라도 제대로 된 정규 교육도 받지 않은 당신이 그 분들보다 더 깊숙한 부분까지 이해를 한다는 건….”
“대단하지?”
“그, 그렇게 말할 문제가 아닌데요오….”
걱정을 덜어주고자 장난을 친 것이었지만 넬은 크게 눈썹을 찡그렸다. 하지만 나는 개의치 않고 녀석의 머리를 툭툭 쓰다듬은 뒤 천천히 돌아섰다.
“부탁해, 넬.”
“우으. 괜찮을까 모르겠네요.”
“조금이라도 ‘무기’를 만들어 둬야할 때니까.”
중얼거린 나는 눈을 감고 두 사람의 앞에 무릎을 꿇었다. 그리고 팔을 뻗어 천천히 두 사람의 손을 쥐었다.
“갈게요, 그럼.”
그리고 곧장, 이미지를 상상해내기 시작했다.
◇
그가 안쪽으로 사라지자 침묵이 맴돌기 시작했다.
그리고 가장 먼저, 불쾌한 표정으로 서있던 가웨인이 쉘터의 안쪽으로 향했다. 그로서 멍하니 침낭 쪽을 바라보며 서있는 아랑과, 그런 아랑을 걱정스러운 얼굴로 바라보는 정현이 자리에 남게 되었다.
진아는 그런 두 사람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뭐라도 말 좀 해줘.”
그리고 이내 피식 웃으며 정현의 어깨에 손을 올렸다. 검은 바지 정장. 딱딱하고 강한 분위기였지만 진아가 보기에는 그저 딸에게 말을 걸기를 어려워하는 어머니로밖에 느껴지지 않았다.
“….”
“이제 곧 싸우러 갈 텐데?”
“알겠습니다.”
진아의 말을 이해한 정현은 고개를 끄덕였다.
사실 그녀는 진아가 생각했던 것처럼 겁에 질려있거나 하지는 않은 상황이었다. 다만 어떻게 첫 마디를 하면 좋을까 고민을 하고 있었을 뿐.
진실을 알아버린 딸에게.
“아랑아.”
그녀는 결심을 마치고 가까이 다가갔다.
딸아이는 입을 다물고 있었다. 슬픔과 분노에 사로잡힌 듯한 옆모습을 바라보던 정현은 그녀의 어깨에 부드럽게 손을 올렸다.
“저는, 눈을 돌리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아랑이 말을 이었다.
“세상에 만연한 악으로부터.”
“왜 그렇게 생각하니?”
“제가…. 아무것도 모르는 애송이기 때문이죠.”
아랑이 차갑게 중얼거렸다.
“알고 있구나.”
거기에 정현은 보다 차갑게 대꾸했다. 순간적으로 몸을 파르르 떤 아랑이 놀라 그녀를 돌아보았다.
“어머니…?”
그 눈동자가 약간 겁에 질린 채였다. 눈썹을 찡그리고 있던 정현은 부드럽게 고개를 끄덕였다.
“만약 이런 대답을 들으면 만족할 수 있겠니?”
“그, 그게 어머니가 생각하는 저라면…!”
“하지만 내가 그렇지 않다고 해도 아랑이 너는 만족할 수 없겠지. 스스로 잘못되었다고 생각하니까.”
“….”
아랑은 대답하지 못하고 입을 다물었다. 그러자 뒤를 이어, 정현은 그런 그녀를 뒤에서 부드럽게 끌어안았다.
“엄마가 미안해.”
그리고 부드럽게 속삭였다.
“어머, 니….”
“다 엄마의 잘못이야. 말하지 못한.”
때문에 딸이 이토록 괴롭게 만들었다. 그렇게 스스로를 책망하며 정현은 딸을 부드럽게 안아주었다. 오랜만에 느끼는 모친의 온기에 아랑은 어쩐지 가슴의 저편으로부터 따뜻한 무언가가 끓어오르는 것을 느꼈다.
눈물이 나올 것 같았다.
하지만,
“저도…. 어린애가 아닙니다!”
그녀는 그런 어머니의 손길을 거부하며 돌아섰다.
“제 책임입니다! 제가 좀 더 올바르게 생각하고 주변을 살폈어야 했습니다! 욕망에 지지 않고 좀 더…!!”
입술을 질끈 깨물며 그녀는 소리쳤다.
“저는 싸우겠습니다!”
“…. 그 사람의 딸답구나.”
“아뇨, 어머니의 딸입니다!”
정현이 쓰게 웃자 그녀는 당당하게 소리쳤다.
더 말이 필요 없을 정도로.
“….”
한동안 멍한 채 그것을 바라보던 정현이 말없이 뒤로 돌아섰다. 아랑은 눈가로 손을 올리는 어머니의 모습을 보고 당황해 눈을 동그랗게 떴다.
“제, 제가 뭐라도?!”
“으이그, 애가 나이 먹더니 눈물이 늘어서.”
쓰게 웃은 진아가 다가서 정현을 슬며시 안아주었다. 그리고는 식은땀을 뻘뻘 흘리기 시작한 아랑을 보고 소녀처럼 킥킥 웃으며 말을 이었다.
“믿고 있어. 딸.”
그것은 정현의 대신 하는 대답이었다.
“네, 반드시…. 모든 걸 끝내겠습니다.”
고개를 끄덕인 아랑은 뒤를 이어 이준과 넬이 사라진 방향을 슬쩍 돌아보았다. 그녀는 그동안 계속 이어졌던 가슴의 답답함이 사라진 걸 느끼며 말을 이었다.
“믿음직한 동료들도 있으니까요.”
그녀는 의지를 담아 대답했다.
그리고 다음 순간,
“윽?!”
강한 폭음과 함께 반대편의 벽이 부서졌다.
“뭐, 뭐냐?!”
순간적으로 쉘터가 크게 흔들리고 뒤를 이어 부서진 벽으로부터 타나토스가 튕겨져 날아왔다. 포물선을 그린 그의 몸이 몇 번이고 바닥에서 고무공처럼 튕겼다.
“스, 스컬!”
아랑은 놀라 그를 향해 곧바로 달려들었다. 그리고 뒤쪽에서부터 안아들고는 바닥에 함께 착지했다.
“….”
“무, 무슨 일이냐! 갑자기!”
“아니, 그…. 업보랄까.”
그는 반쯤 생각하기를 그만둔 얼굴이었다.
“뭐…?”
의아해져 되물은 아랑은 이윽고 묘한 살기를 느끼고 고개를 들었다. 벽이 부서진 충격에 먼지가 피어오른 상황, 그 너머에서 누군가 모습을 드러냈다.
“….”
모드레드였다.
“저, 저기…. 이게 대체 무슨 상황이냐?!”
“아니, 아무 상황도 아니야.”
“절대 그렇게는 안 보인다만!”
그녀는 당황해 고개를 들었다. 그러자 뒤를 이어, 어둠 속에서 다른 인영이 모습을 드러냈다. 아랑은 그것이 검은 판초를 입은 모드레드임을 알아차렸다.
“뭔가, 실패를?”
“아니, 성공했어. 둘 다 원래대로 돌아왔지.”
“그럼…?”
“그게 문제야.”
“저, 를…. 수치스럽게 만드셨지 말입니다아아!”
모드레드의 비명에 가까운 목소리가 이어졌다. 그리고 뒤를 이어, 그 옆에서 이번에는 트리슈가 모습을 드러냈다. 수치심으로 인해 얼굴이 새빨갛게 물들어서.
“미안, 타나 오빠. 아무리 그래도 이건 너무 창피해서…. 오빠를 몇 대 쥐어 패고 싶은 기분이야.”
그녀의 팔목에 철컥하는 소리와 함께 활이 휘감겼다. 살기가 등등한 얼굴, 모드레드도 마찬가지로 히끅거리며 우는 얼굴인 채 여러 자루의 단검을 손에 뽑아들었다.
그리고 동시에 그것들이 날아들어,
“….”
아랑은 피할까. 아니면 지켜주어야 하나 찰나의 순간 진지한 고민에 빠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