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네크로맨서 재킷-291화 (291/321)

291편

<-- Chapter 7 : Holy Grail -->

작전은 간단 그 자체였지만,

“윽!”

그것을 수행하는 것은 변수로 가득찼다.

먼 곳에서 날아온 화살이 곧바로 코앞을 스치고 지나갔다. 몸을 비튼 채로 그것을 피해낸 나는 길게 숨을 내뱉으며 아예 뒤로 몸을 날려 거세게 물러섰다.

“하, 트리슈…!”

나는 반쯤 질려서는 소리를 내질렀다. 공격이 어디로부터 이어질지 알 수가 없으니 눈 깜빡하는 것조차 상대의 허락을 받아야하는 기분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전진도 불가능했다.

방송국의 로비. 어둠으로 물든 공간에는 나무 덩굴 같은 것들이 자라난 채였다. 마치 요정 같은 게 사는 마을처럼 현실과 가상이 혼합된 채였다.

말하자면 트리스탄의 성이겠지.

무척이나 성가신.

“음, 이준. 힘들면 바꿀까?”

“무슨, 태그팀 경기냐!”

나는 뒤쪽에 여유롭게 서있는 가웨인을 향해 소리쳤다. 하지만 녀석은 그런 나를 우습다는 듯이 바라보았다. 즐겁다는 듯 킥킥거리며 웃기까지 했다.

솔직히 그 얼굴을 날려버리고 싶었지만.

“큭!”

날아드는 화살에 대응하는 것조차 벅찼다.

사정거리 내에 들어가면 설치해둔 함정이 작동하는 시스템인 듯했다. 뒤로 물러서면 화살의 비가 멈췄지만, 나아가면 나아갈수록 공격이 점차 거세졌다.

인기척은 전혀 느껴지지 않는데.

“뭔가, 방법이!”

[저기, 너 바보야…?]

목소리가 이어졌다.

“진아 씨?!”

[하아, 아까부터 몇 번이나 말했잖아? 두 사람 잠입 성공 했으니 이제 돌아서 가도 된다고.]

한심하다는 듯한 목소리가 이어졌다.

그러고 보니 그랬더랬다.

“….”

우아랑은 넬의 도움을 받아 방송국의 위에서부터 회장을 구출한다고 했다. 나는 방송국의 어딘가에서 전체를 통제하고 있을 트리슈의 시선을 끄는 역할이었다.

이후에는 안으로 잠입해 트리슈를 상대하는. 하지만 그것도 안으로 들어가는 게 가능할 때의 일이었다.

“어떻게든, 돌파를…!”

원형을 그리며 수십 발의 화살이 날아들었다. 그것을 다시금 몸을 날려 피한 나는, 바닥에 발을 지익 끌며 중심을 잡았다. 앓는 소리를 내며 고개를 들었다.

공격이 시작되는 지점으로부터 열 걸음 정도.

하지만 이 이상으로 움직일 용기가 좀처럼 나지를 않았다. 공격이 거듭되는 상황에서 나는 지치지도 않고 날아드는 화살에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그리고 다음 순간,

“…?!”

검은 궤적이 날아들어 화살을 쳐냈다.

그것을 따라 고개를 휙 돌린 나는 화살대를 부수며 바닥에 꽂힌 여러 자루의 단검을 발견했다. 그것이 어떤 소녀를 연상케 했다.

그리고 턱을 들자,

“모드레드!”

그녀의 모습이 보였다.

어둠 속, 한 가닥 흐르는 달빛의 끄트머리에 모드레드가 서있었다. 검은 판초에 창백할 정도로 새하얀 피부, 멍한 채로 물든 푸른 빛깔의 눈동자.

그리고 그녀가 춤을 추었다.

“….”

동그란 모양으로 펄럭이는 판초.

푸른, 창백한 달빛과도 같은 궤적.

클라렌트.

“큭!”

그녀는 마치 서부극의 총잡이 같았다. 판초가 펄럭이고, 그 안에서 음속에 가까운 속도로 단검이 날아왔다. 첫 발은 피했지만 그 다음은,

“젠장!”

찌릿, 하고 통증이 울렸다. 칼이 꽂힌 허벅지로부터 붉은 피가 튀어올랐다. 순간적으로 힘이 빠져 버텨내지 못하고 무릎을 꿇은 나는 곧바로 뇌를 움직였다.

이건, 가짜다.

진짜 통증이 아니다.

뇌가 착각을 일으키는 것에 불과하다.

“…!!”

나는 곧바로 체내의 정보량 송신 합금을 움직이게 했다. 통각 세포를 자극하는 녀석들을 떼어내 원래대로 신체를 강화시키려고 했다.

하지만 그 사이, 모드레드가 날아들었다.

“큭!”

시선을 힐끔 돌리자 웃고 있는 가웨인이 보였다.

그래, 결국 남 일이라는 거지?!

“모드레드!”

버럭 소리를 내지른 나는 가까이 다가선 모드레드를 노려보았다. 그리고 동시에, 손에 쥐고 있던 스파다에 힘을 주었다. 그것을 통해 반격하려고 했다.

하지만 불가능했다.

모드레드에게 검을 휘두르는 것은…!

채앵! 하고 날카롭게 소리가 울렸다.

나는 갑작스러운 상황을 이해하지 못하고 눈을 동그랗게 떴다. 모드레드가 단검을 휘둘렀기 때문이었다.

나를 향해 날아드는 화살을 막아내기 위해서.

“모드, 레드….”

나는 멍한 채로 중얼거렸다. 하지만 모드레드는, 이후로 움직이지 않고 굳어진 채였다. 뭔가 통증을 느끼는 건지 눈썹을 찡그리며 입술을 질끈 깨물었다.

그 사이, 다시금 화살이 날아들었다.

“위험해!”

나는 비명을 내지르며 그녀를 안아들었다. 그리고 동시에 뒤쪽으로 몸을 날려 트리슈가 심어둔 공격 범위의 바깥으로 모드레드와 함께 빠져나갔다.

“…!”

쿵! 하고 벽에 등을 부딪쳤다. 그리고 동시에 ‘쪼끄’만한 모드레드가 품에 휙 하고 굴러들어왔다. 나는 녀석을 끌어안고 거칠게 숨을 몰아쉬었다.

하지만 다음 순간, 칼날이 볼을 스쳤다.

“야, 인마?!”

나는 당황해 버럭 소리를 내질렀다. 단검을 내지른 모드레드의 손을 붙잡아 살짝 꺾고는 허리를 안아 움직이지 못하도록 했다. 하지만 모드레드는 상황이 그렇게 되자 발버둥을 치며 솟아올랐다.

“큭?!”

그리고 내 목덜미를 세차게 깨물었다.

“무, 무슨 짐승이냐!”

나는 당황해 버럭 소리를 내질렀다. 하지만, 모드레드는 전투 이외에는 생각하지 못하는 듯한 모습이었다. 거기에서 나는 어이가 없어지는 것을 느꼈다.

어째서 그녀가 이렇게.

화가 나기도 했고, 가슴이 미어지는 듯도 했다. 나는 참지 못하고 모드레드를 세차게 끌어안았다.

“….”

그리고 이내, 변했다.

꽉 깨물던 게, 질척한 감촉이 느껴졌다. 눈을 감고 있던 나는 모드레드가 내 목덜미를 ‘핥는다’는 사실을 알아채고 눈을 동그랗게 떴다.

[어머나.]

지켜보던 진아 씨는 꽤나 놀란 듯했다.

“이거 이거…. 정신을 지배하는 게 아니라 지능 지수를 떨어뜨리는 거 아니야?”

뒤를 이어 가웨인이 가까이 다가왔다. 녀석은 내게 안겨 고양이처럼 갸르릉 거리고 있는 모드레드를 보고는 어이가 없다는 듯 웃었다.

“모드레드. 내 말이 들려?”

나는 그걸 무시하고 물었다.

“….”

하지만 모드레드는 제대로 된 지성체의 반응을 보이지 못했다. 이쪽의 얼굴을 매만지는 녀석의 모습에, 길게 한숨을 내쉰 나는 이내 고민에 빠져 말을 이었다.

“진아 씨, 어떻게 하죠?”

[배변 훈련부터 시켜.]

“모르가나를 사용해 볼까요.”

무시하고 중얼거린 나는 팝업창을 켜지 않은 상태에서 검은 보석을 꺼내들었다. 그대로 그것을 내게 매달린 모드레드를 향해 천천히 가져다댔다.

[잠깐, 타나토스.]

하지만 진아 씨의 만류가 이어졌다.

“네?”

[기다려. 모르가나는 아직 쓰지 않는 편이 낫겠어.]

“왜죠?”

나는 당황해 되물었다.

[어떻게 될지 모르니까. 만약 사용한 직후, 모드레드가 기절하기라도 한다면 꽤나 시간이 지체되잖아? 하지만 지금 이 상태로도 그녀는 충분히 쓸모가 있지.]

“어떤 부분에서?”

[아까 화살을 날려버리던 걸 생각해보라고.]

“….”

별 수 없나.

“자, 모드레드. 잠깐 일어나자.”

나는 어린아이를 타이르듯 중얼거리며 모드레드를 일으켜 세웠다. 허벅지에 단검이 꽂힌 채였지만 통증은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거치적거리는 감각도 전무했다.

“어…. 방금 전처럼 해줄 수 있어?”

“?”

그녀는 대답하지 않고 나를 바라보았다. 고양이처럼 입을 동글동글하게 만 채, 고개를 갸웃거렸다.

“화살 튕겨내는 거.”

“??”

“화살. 그, 쐐액 날아드는 거.”

나는 마임으로 표현했다.

이래도 괜찮은 걸까 싶었지만.

“!!”

모드레드는 이해한 듯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발꿈치를 휙 들고는 내게 다가섰다.

직후, 입술에 감촉을 느꼈다.

“….”

꼬리가 있다면 살랑살랑 흔들었을 것 같군.

나는 그렇게 생각하며 모드레드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공연히 얼굴이 붉어진 걸 느끼고는 피식 웃었다 어찌 되었든 이렇게 다시 함께 하게 된 것만으로 다행인가.

“역시 모드레드?”

“닥쳐.”

그 좋은 분위기를 가웨인이 다 망치려 들었지만.

차갑게 중얼거린 나는, 돌아서 나아가는 모드레드의 뒤를 따라서 걷기 시작했다. 조금 걱정이었지만, 음속으로 내던져지던 단검을 다시금 상기해냈다.

결국 문제는 그것이었다.

널찍하게 뻗은 로비를 걷는 일은, 수많은 병사가 성벽 위에서 지키고 있는 성문을 향해 무방비하게 걸어간다는 것이나 다름이 없는 짓이었다.

대미지의 문제가 아니었다.

물리력의 문제였다.

망령 신체나 가디언 서핑, 혹은 린슬렛의 방패까지. 원한다면 돌파해 지나가는 것은 가벼운 일일 터였다.

하지만 그 이후는? 온몸에 수백 발의 화살이 꽂힌 상태에서 제대로 움직일 수 있을까? 그 이후에는 무엇이 있을지 알 수가 없는데?

“….”

이윽고, 그 말이 현실로 이루어졌다.

수십 발이 넘는 화살이 순식간에 날아들었다. 나는 모드레드를 지키기 위해 앞으로 뛰쳐나가고 싶은 충동을 꾹 참아내며 그녀의 행동을 기다렸다.

그리고 판초가 펄럭였다.

“휘유.”

제일 뒤에서 따라오던 가웨인이 놀란 듯 휘파람을 불었다. 나 역시 눈앞의 광경을 보고는 기우나 다름없었다는 생각을 했다. 그만큼 이상적인 결과였다.

펼쳐진 판초 끝에서 단검들이 날았다. 그것은 반대편에서 우리를 노리는 화살들을 날카롭게 쳐냈다.

모드레드는 여유로운 듯, 나를 보며 웃었다.

“저 자식….”

언제나 도움만 받는군.

잠입 자체는 생각보다 쉬웠다.

“아랑님. 이쪽이에요.”

옆에 있는 이 인공지능의 덕분이었지만.

“알겠다.”

무뚝뚝하게 목소리를 내고, 아랑은 환풍구에서 밑으로 뛰어내렸다. 어둠에 잠긴 방, 곰팡이가 핀 냄새를 느꼈다. 바깥의 가로등 불빛에 방의 흔적이 드러났다.

사무실인가.

“불을 켤까요?”

“아니, 일단 무슨 일이 생길지 모르므로. 널 믿겠다.”

아랑은 주변을 두리번거리며 그렇게 의견을 냈다. 사실 이곳에 올 때까지의 흐름을 생각해보자면, 그런 결론 밖에 나오질 않았다.

내부를 배회하는 몬스터들, 그리고 함정.

몬스터들은 육안으로 상대를 파악하고 행동했다. 그런 만큼 기척을 죽일 수 잇는 어둠 속이 낫겠지.

“신기하네요.”

그렇게 생각하고 있자니, 휙 날아올라 방의 주변을 둘러본 넬이 피식 웃었다. 중심을 잡고 파티션인지 나무줄기인지 모를 것에 기대어있던 아랑이 고개를 들었다.

“뭐가 말이지.”

“저를 믿는다는 부분에서?”

“…. 효율의 문제기 때문이다.”

그녀는 괜스레 머쓱해져 시선을 피했다.

“후후, 일단 가실까요?”

“그래, 부탁한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그녀는 정신을 차렸다.

그리고 걷기 시작했다.

========== 작품 후기 ==========

히로인들을 고양잇과와 개과로 나누자면

개과 - 유하(리트리버)/린슬렛(도베르만)/넬(치와와)

고양잇과 - 트리슈(샴)/모드레드(먼치킨)/우아랑(러시안블루)

이런 느낌이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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