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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크로맨서 재킷-288화 (288/321)

288편

<-- Chapter 7 : Holy Grail -->

“지금의 상황이?”

“네, 엘레노어가 의도한 일인 듯해요.”

“거 참, 이럴 줄 알았으면 머리에 왁스 좀 발라두는 건데. 지금이라도 시도를 해볼까…?”

어이가 없다는 듯 웃은 가웨인이 진열대 위에 있던 왁스를 집어 들었다. 나름대로 당황스러운 기색을 감추기 위한 행동일 것이다. 그것을 느끼고 나는 침착하게 넬이 넘기는 영상을 살펴보았다.

“CCTV 영상 같은데.”

“맞아요. 그걸 잡아서 송출하고 있는 거죠.”

뭔가 이유라도 있단 말인가.

“아, 넬.”

고민에 빠져있던 찰나 우아랑이 가까이 다가왔다.

“그렇다면 혹시 다른 기사들을 확인하는 것도?”

“물론, 제가 말을 꺼낸 이유도 그 때문이죠.”

넬은 부드럽게 웃었다.

“일단 어떤 분부터?”

그리고 뒤를 이어, 눈앞의 영상이 바뀌기 시작했다. 넬이 멋대로 송출되는 영상에 재밍을 걸고, 해킹을 통해 다른 것으로 바꾸는 것 같았다.

“아, 그렇다면….”

“후후, 이걸로 준이 지금 가장 걱정하고 있는 사람이 누군지 알 수 있게 되겠네요!”

넬은 신이 나 보였다.

“그, 그렇게 되는 건가?! 스컬!”

“….”

아니, 이 녀석은 또 왜 이래.

“어떤 분인가요? 린슬렛님? 트리슈님? 모디모디님?”

넬이 눈을 반짝반짝 빛냈다.

“누구냐! 대체 누구인 거지?!”

“아니 두 사람 다, 좀 진정하고….”

거기다 우아랑은 그런 텐션의 변화가 좀처럼 납득이 되질 않았다. 분명히 이 녀석 몇 주 전까지만 하더라도 날 붙잡아 고문하고 싶어서 안달이 났었는데.

“린슬렛으로 해.”

그리고 거기에 대답한 것은 가웨인이었다.

“우으, 저는 준한테 물어봤….”

“그래, 린슬렛으로 부탁해.”

나는 그 의도를 깨닫고 고개를 끄덕였다. 딱딱한 왁스 통을 든 채 서있던 녀석은 이윽고 몸을 돌려 계산대로 향했다. 나는 잠시 그 등을 바라보았다.

애써 그런 걸로 본심을 감추려는 녀석을.

“아, 그럼 그렇게 할게요.”

두 사람 역시 이윽고 그 사실을 알아차렸다. 나는 넬이 눈을 감고, 화면을 전환시키는 걸 바라보았다. 예상이 맞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비비안을 찾을 수고가 덜어지니까.

“….”

하지만 그야말로, 장관이었다.

영상이 휙휙 지나갔지만, 나와 우아랑은 그것을 명확하게 알아차렸다. 마치 뇌가 보다 엘레노어와 넬에 가까워지는 것처럼 말이다.

그리고 그것은 다른 에스콰이어들도 마찬가지겠지.

“스컬. 내가 한 가지 생각한 것이 있는데 말이다.”

그런 영상을 보던 우아랑이 입을 열었다.

“엘레노어는…. 우리를 보며 즐거워하고 있지 않을까?”

“왜?”

“정확히는 ‘이런 우리’를 보고 말이다.”

그렇게 중얼거린 녀석이 손을 들었다. 새하얗고 가느다란 손가락에, 검은 재질의 무언가가 휘감기기 시작했다. 정보량 송신 합금의 가장 기본적인 형태였다.

“너….”

“뭘 그리 놀라나? 너는 더 대단한 걸 보였으면서.”

우아랑은 쓰게 웃으며 날 바라보았다.

“그렇다면 여기서 이런 의문이 서는군. 그녀는 인간을 진화시킨다는 목적이 있다고 했지. 하지만 지금 하는 짓은 그와는 정반대되는 행동이 아닌가?”

“…. 생각하는 진화의 개념이 다를 수도 있지.”

나는 그렇게 중얼거렸다.

“아니…. 그래, 그게 아니었어.”

녀석은 멋대로 다른 이야기를 중얼거렸다.

“녀석은 내게 그렇게 말했다. 도식이 필요했다고.”

“…?”

그건 또 무슨 소리야.

“아니 하지만, 그건 말이 어딘가 이상해…. 도식이 필요‘했다.’는 말은 지금은 아닌 거니까. 하지만 그렇게 되면 지금 이 행동이 말이 되질 않는다.”

“저, 선생님?”

나는 당황해 계속해서 물었다.

“이 게임이 한 사람을 위해서 존재했다는 말이겠지.”

그러자 뒤를 이어, 가웨인이 다시금 모습을 드러냈다. 녀석은 편의점 비닐봉투에 손을 꽂아 넣은 채로 그것을 빙글 돌려 나에게 향하도록 했다.

“이준, 너를 위해.”

“무슨 말도 안 되는….”

어이가 없어 웃은 나는 그렇게 일축하려고 했다. 하지만 뒤로 돌자 우아랑이 고개를 내젓는 게 보였다.

“아니, 가능성이 없진 않은 이야기다.”

“너, 너마저.”

“넬의 존재가 그것을 반증하고 있기 때문이지.”

“아 그래, 그 펫도 어딘가 이상했어.”

가웨인은 힐끔 넬을 돌아보았다.

“저는 펫이 아니거든요.”

눈을 감고 있던 그녀가 눈썹을 찡그리며 대답했다. 그 모습을 보고, 순간적으로 웃은 나는 뒤를 이어 천천히 말을 이었다.

“그러니까 너희 말은…. 끄응.”

나는 말의 무게를 느꼈다.

확실히, 넬의 존재가 더해지자 나는 할 말이 없어지는 것을 느꼈다. 그녀는 확실히 이질적이었다.

“저기, 넬?”

“찾았어요.”

목소리가 이어졌다.

“뭐….”

히죽거리며 웃던 가웨인이 고개를 들었다. 표정에 순식간에 장난기가 사라지고 녀석은 나를 거의 밀쳐내듯이 뒤로 물러서게 만들고 넬을 향해 다가섰다.

“….”

그리고 확인했다.

말을 하지 않고서.

녀석은 괴로운 듯 입술을 질끈 깨물었다. 비비안은 함께 있는가를 묻고 싶어 하는 마음이 굴뚝 같아보였다. 하지만 차마 그것을 입 밖으로 내지는 못했다.

그것이 지금의 그에게는 사치이기 때문일까.

“어떤데?”

“아…. 평소와 다름이 없어 보이는데요.”

넬이 조금 멋쩍은 듯 중얼거렸다.

“위치만 알면 됐어, 괜찮아.”

나는 녀석의 머리를 툭툭 쓰다듬으며 중얼거렸다. 그리고 우리는, 화면을 반쯤 자신의 것인 양 붙잡은 가웨인의 등 뒤에 서서 그 내용을 확인했다.

넬의 말 대로였다.

“….”

평범하게 거리를 오가는 린슬렛의 모습이 보였다. 그 옆에는 익숙한 인상의 사내가 서있어 나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그에 대해 기억해내려고 했다.

“앤더슨…. 님이라고 기억하세요?”

“아.”

기억이 났다.

“근데 저 자식이 왜 린슬렛하고?”

“글쎄요?”

당황해 물었지만 넬 역시 상황을 이해하지 못하고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러는 사이 나란히 걸음을 옮긴 두 사람이 골목 안쪽으로 들어섰다.

그리고 화면이 뒤바뀌었다.

“라쿠스 기사단…?”

수십 명이 넘는 사람들의 모습이 서있었다. 질서정연하게 재킷을 갖추어 입은 그들의 앞에 린슬렛이 섰고, 그 주변으로 다가서는 여자가 보였다.

비비안이었다.

“….”

두 사람이 시선을 마주치고, 몽롱한 눈을 한 린슬렛이 좌중에 대고 무어라 말을 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 소리가 들려오지는 않아 나는 눈썹을 찡그렸다.

“넬, 혹시 소리는….”

“자, 잠시만요. 방법을 찾아볼게요.”

“아니, 이거면 됐어.”

그렇게 말한 것은 가웨인이었다.

“너….”

“나는 이곳에 가겠어. 그러니까 거기 펫. 이 영상이 찍히고 있는 장소가 어디야. 말해. 빨리.”

녀석은 고압적으로 넬을 돌아보았다. 처음에는 ‘펫’이라는 말에 발끈했던 넬은, 흉흉하게 물든 가웨인의 눈동자에 몸을 움찔 떨며 내 뒤로 숨었다.

“빨리….”

“적당히 해.”

나는 위협적으로 다가서는 가웨인의 말을 끊어냈다. 뒤를 이어 우아랑이 만류하듯 팔을 잡아당기는 게 느껴졌지만, 나는 무시하고 고개를 들었다.

“말해.”

하지만 녀석은 듣는 시늉조차 하지 않았다. 넬을 향해 눈을 부라리며 다가서는 가웨인을

막아낸 나는 도리어 멱살을 쥐고 거세게 몰아붙였다.

“잠깐, 두 사람 다 진정해라…!”

우아랑이 당황한 듯 달려들었다. 하지만 나는 다시금 팔을 붙잡는 그녀를 무시하고 가웨인을 편의점의 진열대까지 밀어붙였다.

“어디야. 지금 여기가 어디냐고!”

녀석은 반쯤 미쳐 소리를 내질렀다.

“정신 차려. 지금 그럴 때가 아니야.”

“난 너한테 묻지 않았어!”

녀석은 차갑게 소리치며 손을 뻗었다. 맛이 간 눈동자에서 스스로의 실수를 알아차린 나는, 길게 한숨을 내쉬고는 가웨인의 멱살을 세게 움켜쥐었다.

“스컬…!!”

와장창, 하는 소리.

편의점의 유리창으로 내던져진 녀석은 날카로운 파편을 튀겼다. 뒤쪽에서 반쯤 졸고 있던 점원이 퍼뜩 정신을 차리는 모습에 나는 인상을 찌푸리며 깨진 유리창을 짓밟고 바깥으로 빠져나갔다.

“가고 싶으면 혼자 꺼지던가.”

“큭…?”

아스팔트 바닥에 엎어져 있던 가웨인이 비틀거리며 몸을 일으켜 세웠다. 가까이 다가간 나는 다시금 녀석의 얼굴에 세차게 주먹을 꽂아 넣었다.

“넬한테 그딴 식으로 말하지 마!”

나는 인상을 찌푸리며 다시금 쓰러진 가웨인을 향해 다가갔다. 그리고는 거칠게 멱살을 쥐고 들어올렸다. 어이가 없다는 듯이 웃은 녀석이 날 바라보았다.

“역시 안 맞는군. 너와 나는.”

“네놈이 무례한 거겠지.”

“저‘것’은 세계를 이렇게 만든 장본인이라고?”

“넬은 아니야.”

“개소리…!”

가웨인은 내 손을 쳐냈다.

“말이나 되는 소리해라! 이준!”

“나한테 소리 지르지 말고. 꼬우면 꺼지시던가.”

“…!”

가웨인은 감정적으로 몽둥이를 휘둘렀다.

하지만 나는 품안에서 스파다를 꺼내 그것을 가볍게 막아냈다. 그러자 복근을 움켜쥐며 뒤로 물러선 가웨인이 입술을 질끈 깨물며 나를 노려보았다.

“좋아….”

그러더니 돌아섰다.

“스컬!”

뒤를 이어 우아랑이 버럭 소리를 내지르며 편의점으로부터 빠져나왔다. 넬까지 그 뒤를 이어, 나는 가볍게 앓는 소리를 내며 스파다를 품안으로 밀어 넣었다.

“가웨인은….”

“내버려둬.”

나는 차갑게 중얼거렸다.

“아무리 그래도….”

허공에 반쯤 떠올라있던 넬이 가웨인이 사라진 쪽을 걱정스러운 얼굴로 바라보았다. 사람이 선한데도 정도가 있지 싶어 나는 황당해 말을 이었다.

“너, 저 녀석이 뭐라고 하는지 못 들었어?”

“예, 펫이라고….”

“그게 기분 나쁘지도 않은 거야?”

“예전에는, 그랬잖아요?”

“안 그랬어. 단 한 번도.”

나는 짜증스럽게 중얼거렸다.

“호오….”

“왜, 왜.”

하지만 넬은 생각 외로 의심하는 눈초리를 보냈다.

“정말로 그랬던가요? 처음에 준, 저 봤을 때 제대로 말에 대답도 안해줬던 것 같은데.”

“….”

“기억 날조도 이 정도면 대단한 수준이네요, 준.”

“아, 아니.”

“그러니까 냉큼 데려오지 못해요?! 저는 신경 안 쓴다니까요! 처음 보는 사람이 어떻게 생각하든!”

넬이 화를 냈다.

“널 소중히 생각해서…!”

“네, 네! 알았으니까! 지금은 한 사람이라도 더 제대로 된 인간이 필요한 법이라고요! 데려와욧!”

“….”

나는 상처를 받고 돌아섰다.

“의외로 잡혀사는 쪽이었군, 스컬.”

도망친 가웨인을 쫓기 직전, 나는 우아랑이 한 말에 무어라 반박을 할 수가 없었다.

========== 작품 후기 ==========

사실 아무래도 좋을 사실이지만... 넬이 영향을 가장 크게 받은 사람은 역시 그분인 것 같다는 생각을 종종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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