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86편
<-- Chapter 7 : Holy Grail -->
◇
마지막 퀘스트 마커가 가리키고 있는 회사는, 마치 마왕이 사는 성처럼 느껴졌다.
“헥터가 거주하는 구역이라는 건가….”
아랑은 그런 예감에 불안한 기분을 느끼며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건물 안은 바깥과는 달리 고요해 무언가의 모터가 돌아가는 소리만이 들려올 뿐이었다.
안으로 들어섰다.
얼마 전까지만 하더라도 청소를 했는지, 바닥에서 번쩍번쩍 빛이 났다. 하지만 그와는 별개로 벽은 거북이의 등껍질처럼 쩌적 갈라진 채였다. 그리고 그 사이에서 붉은 빛이 점멸하며 기괴한 분위기를 풍겼다.
알 수 없는 기분이었다.
언제부턴가 뇌는, 이 두 가지를 한꺼번에 묶어서 받아들였다. 아랑은 머리가 지끈거리며 아파오는 걸 느꼈다. 손을 들어 꾹꾹 매만져 벗어나려고 했다.
하지만 발은 그와 별개로 앞으로 나아갔다.
“우아랑.”
바깥을 살폈던 것일까. 조금 늦게 안으로 들어선 가웨인이 그녀의 이름을 불렀다. 눈앞에 팝업창을 띄운 채 서있던 아랑은 곧바로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 뭔가 이상하다는 생각을 했다.
“….”
“왜?”
“아니.”
자연스럽게 반말을 구사하는 가웨인이.
“따라 오시…. 오.”
“…?”
묘하게 말을 저는 아랑의 모습에, 가웨인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하지만 그녀는 쓸데없는 상념이라고 생각하며 앞장서 건물 안쪽으로 들어섰다.
머릿속을 비워내듯 숨을 내쉬었다.
그리고 그녀는 생각했다. 이곳이 어딘지를.
어머니의 회사.
그렇다면 구조는, 아마 같으리라.
“이쪽으로.”
무뚝뚝하게 목소리를 낸 아랑은 앞장서 로비의 안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하지만 이내 바닥이 떨리는 감각을 느끼고는 자리에 멈춰 섰다.
“….”
바닥이 부글부글 끓더니 벽이 솟아올랐다.
“호오, 대단해.”
옆에 선 가웨인이 놀라 그것을 매만졌다. 거북이의 등껍질처럼 갈라진 벽은, 마찬가지로 붉은 빛이 그 사이로 점멸하는 상태였다. 아랑은 여유롭게 웃는 그를 보며 인상을 찌푸린 채 입을 열었다.
“이게 말입니까.”
“거 까칠하네. 솔직히 그렇잖아?”
“….”
무시하자.
그렇게 생각하며, 그녀는 입을 다물었다. 그러는 사이 가웨인이 수박을 확인하듯 벽을 툭툭 두드렸다. 내부가 텅 빈 듯한 소리가 울려, 아랑은 말을 이었다.
“부수고 지나가죠.”
“흐음…. 괜찮을까 몰라.”
고개를 갸웃거린 가웨인이 몽둥이를 들었다.
우회할 방법을 찾거나 벽을 파훼할 수단을 물색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러는 대신 아랑은 간단하게, 부수자고 생각했다. 그 방법이 가장 확실했다.
“책임은 제가 질 테니.”
“아니, 어떻게?”
어이가 없다는 듯 웃은 가웨인이 몽둥이를 내리쳤다.
나무로 된 그것은, 일점을 가르는 능력이 둔한 만큼 무언가를 부수는 일에 특화된 무기였다. 하지만 생각과는 달리 둔탁한 소리가 울려 퍼질 뿐이었다.
벽은 아무렇지도 않았다.
“…?”
“흐음, 꽤 단단한데.”
그것을 조금 이해하기가 힘들었다. 아랑은 그렇게 생각하며 손을 들어 벽에 가져다댔다.
“무슨 이유…. 윽?”
그리고 놀라 입술을 질끈 깨물었다.
빨려들어가고 있었다.
손이.
“가, 웨인?!”
“어…? 자, 잠깐!”
갑작스러운 상황에 소리치자, 다시금 벽을 내리치기 위해 몽둥이를 들던 가웨인이 놀라 달려들었다. 그는 우아랑을 뒤에서부터 끌어안아 빼내려고 했다.
하지만 아무런 소용이 없었다.
“큭?!”
가웨인이 잡아서 힘껏 당김에도 아랑은 점차 벽으로 빨려 들어갔다. 당황한 그가 더욱이 매달렸지만 효과는 전무해, 아랑은 이내 한 가지 사실을 깨달았다.
“가웨인, 놔라!”
몸이 빨려 들어가기 시작해, 다급해진 그녀는 버럭 소리를 질렀다. 허리를 감싸고 당기던 가웨인이 놀라 뒤로 물러섰다.
“스컬에게! 퀘스트를…. 수행…. 하!”
“뭐, 뭐라고?”
얼굴이 반쯤, 빨려 들어갔다.
“갤러해드가 되어 가겠다고!”
그리고 어둠이 찾아들었다.
순간적으로 숨이 쉬어지질 않아 아랑은 깊은 바다 속에 빠져든 듯했다. 눈앞이 새까맣고, 스펀지 같은 것이 온몸을 감싼 듯해 그녀는 손을 휘저으며 나아갔다.
[어머니의 안.]
“….”
누군가 뇌에, 괴상한 말을 속삭였다.
그것이 불쾌한 감각을 가속 시켰다. 무릎을 낮추고 순식간에 앞으로 뛰쳐나간 아랑은 곧이어 밝은 빛을 향해 손을 뻗고 빠져나갔다.
“후우…!”
참았던 숨을 몰아쉬었다.
곧바로 앞에, 다른 벽이 보였다. 아랑은 거기에 손을 대지 않고 옆을 돌아보았다. 좁고 길게 뻗은 복도를 발견하고는 곧바로 자신의 검을 꺼내들었다.
[당신을 지키기 위한 방패.]
[붉은 피로 된 갑주.]
목소리는 계속해서 울렸다.
이곳은 어머니의 회사였던 장소다. 지금은 헥터가 지배하는 구역의 일부가 되었지만, 그 근본은 변하지 않는다는 걸까. 우아랑은 길게 뻗은 길을 서둘러 나아가며 주변을 계속해서 경계했다.
[성배를 찾는 당신의 여정을 도운.]
“어머니가 말이냐…?”
그녀는 저도 모르게 대답했다.
그리고 다음 순간, 무언가 비틀거리며 모퉁이로부터 모습을 드러냈다. 아랑은 검을 고쳐서 다시 쥐었다.
“헥….”
말을 끝내기도 전, 약병이 날아들었다.
“큭?!”
그녀는 놀라 뒤로 펄쩍 뛰어 물러섰다. 머무르고 있던 자리에 떨어진 약병이 펑, 하고 거센 폭발을 일으켰다.
매캐한 연기.
공기가 삼켜지는 기분이었다.
“헥터…!”
밀어닥치는 후폭풍을 향해 소리친 아랑은 검을 앞으로 쏘아 보냈다. 빛의 꼬리를 물고 그것이 연기 속으로 뛰어들어 그녀는 곧바로 뒤를 따랐다.
그리고 채찍이 날아들었다.
“대위 우아랑입니다…! 정신을!”
그것을 튕겨내며, 아랑은 걷히는 연기 속에서 모습을 드러내는 헥터를 향해 소리쳤다. 하지만 베디비어와 마찬가지로, 그녀는 눈동자가 멍한 채였다. 제대로 된 인간의 반응을 보이질 않았다.
마치 게임에 삼켜진 듯한 모습이었다.
모든 것은 그녀를 상징하고 있다. 검은 코트, 귀 밑에서 자른 금발. 화장기가 만연한 도도하고 요염한 얼굴. 하지만 완전히 게임에 잠식당한 채였다.
“큭!”
하지만 그런 만큼 역시, 반응이 조금 늦었다. 그것을 느낀 아랑은 안으로 파고들어 보다 느릿한 동작으로 날아드는 헥터의 채찍을 피해냈다. 그리고 곧장 검을 들어, 자루 부분으로 명치를 거세게 후려쳤다.
“…!”
한순간 눈을 동그랗게 뜬 헥터는 이내 추욱 늘어졌다. 가녀린 그녀의 몸을 받아든 아랑은 길게 숨을 내뱉었다. 저도 모르게 벽에 기대어 섰다.
“후우….”
하마터면 위험할 뻔했다.
헥터는 진영을 구축해 지능적으로 전투에 임하는 타입이었다. 그런 만큼, 정신이 없는 그녀와 이렇게 순간적으로 좁은 장소에서 접근할 수 있어서 다행이었다. 그러지 않았더라면 꽤나 큰 시간을 소모했으리라.
“윽…?!”
하지만 조금 안심하던 것도 잠시, 아랑은 다시금 벽에 몸이 빠져드는 것을 느끼고 고개를 들었다.
아무래도 저항은 소용이 없을 듯했다.
“헥터! 정신 차리십시오! 헥터!”
비명을 지르듯 이름을 불러보았지만 반응은 없었다. 다시금 벽에 빠져들어 헥터의 손을 놓은 아랑은 그대로 어디론가, 다시 이동을 하기 시작했다.
[당신은 이미 갤러해드였어요.]
목소리가 이어졌다.
[이 게임을 끝내기 위한, 성배를 손에 넣기 위해 만들어진 존재죠. 붉은 갑옷을 입고, 십자가의 방패와 이상한 띠의 검을 든 그야말로 성배의 기사.]
분명 그것은 엘레노어였다.
[하지만 다른 갤러해드가 있었죠.]
머리가 지끈거리기 시작했다.
[그는 전임 갤러해드의 가장 소중한 사람이자, 그녀로 인해 계기를 얻고 이 세계에 들어왔죠. 그리고 제 조금의 호의를 등에 업은 채 무시무시할 정도로 완전해졌어요. 그로서 이곳까지 도달할 수 있었던 거죠.]
무시한 채, 아랑은 앞으로 계속해서 나아갔다. 다시금 벽의 바깥으로 빠져나가, 그녀는 구역질이 올라오려는 것을 느끼며 중심을 잡고 자리에 섰다.
[그렇다면 여기서 질문. 완전하다는 건 무엇일까요?]
“….”
답은 알고 있다.
하지만 대답할 마음은 들지 않았다. 아랑은 주변을 경계하며 앞으로 걷기 시작했다. 마치 동굴처럼 점점 깊어져 가는 좁은 길을 계속해서 나아갔다.
[행동으로 보여주고 계시는군요.]
“말만 많은 여자였나. 엘레노어.”
그녀는 짜증스럽게 받아쳤다.
[나아가고 있군요.]
“….”
[상처를 받아도. 자신의 모순을 깨달아 무너지더라도 그것이 완전한 것이죠. 절대로 멈추지 않는.]
몬스터가 모습을 드러냈다.
감각이 예민해졌다. 모퉁이 뒤로부터였다. 검은 기사가 갑작스럽게 창을 찔러오며 동시에 안으로 파고들었다.
“…!!”
물러서 막아내고, 공격했다.
[하지만 인간은 연약하죠. 그렇기 때문에 저에게는…. 인간의 진화에 앞서 하나의 도식이 필요했어요.]
창의 자루에 검을 걸고 비틀어 밀어냈다. 검은 기사의 자세가 흐트러져 아랑은 곧바로 등 뒤에 떠올라있던 세 자루의 검을 동시에 날렸다.
[인간이 나아갈 수 있도록 하는 알기 쉬운 로망스가.]
“그것이 뭐 어쨌다는 거냐!”
검이 기사의 투구를 꿰뚫었다.
동시에, 그는 비틀거리며 바닥에 쓰러졌다. 그리고 다시 땅으로 돌아갔다. 검을 원래대로 돌린 아랑은 뒤쪽에 엘레노어가 서있는 양 내달리기 시작했다.
마치 그녀로부터 벗어나고 싶은 것처럼.
[완전하다는 건 멈추지 않는다는 거예요.]
모퉁이를 돌자 문이 보이고, 열고 안으로 들어서자 계단이 보였다. 아랑은 계단의 난간에 뛰어올라 우아하게 회전하며 그것을 밟고 올라가기 시작했다.
[회전하는 지구처럼. 흐름에 따라 움직이는 세계처럼. 멈추지 않고 자신을 앞으로 나아가게 하는 것이죠.]
왜냐면 멈춘다는 건 죽음을 상징하기에.
그리고 이 세계는 죽은 자들의 세계이다.
“네크로맨서….”
그렇게 중얼거린 아랑은 꼭대기에 도달했다.
지상으로부터 50층 위, 그녀는 다시금 문을 열고 바깥으로 빠져나갔다. 고요한 기운을 느끼며 모퉁이를 돌아 퀘스트 마커가 가리키는 곳으로 향했다.
하지만 다음 순간,
“윽…!”
강한 통증을 느낀 그녀는 저도 모르게 자리에 무릎을 꿇었다. 가슴에 축축한 무언가가 느껴져 손을 가져다댄 아랑은, 셔츠에 밴 피를 발견하고 눈을 동그랗게 떴다.
“…!”
숨이, 제대로 쉬어지질 않는다.
[당신의 폐는 줄곧 망가진 채였어요. 제가 마술을 부려 기능을 하게 한 것뿐…. 하지만 이제 끝이군요.]
“커, 헉….”
무릎을 꿇은 그녀는 피를 한 움큼 토해냈다. 후두둑 쏟아지는 그것의 뒤를 이어, 어쩐지 불쾌한 인기척을 느낀 아랑은 고개를 들었다.
[저는 당신이 갤러해드가 되길 바라지 않아요.]
검은 기사들이 서있었다.
숫자는?
수십? 아니 백에 가깝다.
가까이 다가온 그들 중 하나가 아랑의 목에 검을 겨누었다. 가슴을 움켜쥔 채 괴로워하던 그녀는 무릎에 손을 짚으며 필사적으로 자리에서 일어섰다.
사실 아까부터 한계이기는 했다.
“그건, 네가 정할게 아니다. 신….”
하고 싶은 말이 많아서였다.
사랑하는 아버지를 빼앗아갔으며, 어머니를 증오하도록 만든 원수에게.
“그것을 정하는 건 나다!”
아랑은 의지를 담아 이야기했다. 눈앞에 선 기사들을 향해, 그리고 그것을 만들어낸 신에게도. 그녀는 당당하게 선언하며 고개를 들었다.
할 수 있다.
방금 보았다. 그가 수많은 수의 망자들을 세운 것을. 그러니 자신도 할 수 있을 터였다. 아랑은 수많은 상념이 머릿속을 지배하는 가운데 생각했다.
다시금 그의 망자로.
망가진 폐의 조직에 형상을 갖춘 정보량 송신 합금이 달라붙었다. 그 원자 구조가 정밀하게 변화하여, 신이 만들었다 일컬어지는 인간의 몸을 보강했다.
“윽…. 큭…!”
그것은 불쾌한 기분이었다.
형용할 수 없는.
지금껏 인류의 역사상 유래가 없던.
그야말로 진화.
아랑은 다시금 검을 뽑아들었다.
검은 코트를 다시금 흩날렸다.
“어머니를 내놔라! 이 개자식들아!!”
버럭 소리를 지른 아랑은 세차게 앞으로 달려 나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