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85편
<-- Chapter 7 : Holy Grail -->
땅속에 잠들어있던 망자들이 울부짖기 시작했다.
“뭐, 뭐냐?!”
우아랑이 놀라 비명을 내질렀다. 갑작스레 나를 중심으로 검은 점액질이 가득 퍼지기 시작했기 때문이었다. 녀석은 놀란 듯 가슴을 움켜쥐었다.
“준.”
그리고 넬이 다가왔다.
“….”
“제가 도와드릴게요.”
뒤쪽에 부웅 떠오른 그녀가 내 어깨를 부드럽게 감쌌다. 뇌가 받아들이기에는 조금 벅차, 숨을 몰아쉬던 나는 곧이어 뇌가 한결 편안해지는 것을 느꼈다.
그래, 나는 네크로맨서다.
처음에는 자기 자신부터 시작해…. 누군가를 자신의 망자로 삼는 의인화된 죽음. 타나토스.
“…. 확실히, 상징이 있으니 이해하기 편하군.”
“예, 당신께서 원하는 대로.”
꽤나 벅차지만 말이다.
넬의 부드러운 목소리를 들으며, 나는 내가 원하는 대로 정보량 송신 합금을 움직이기 시작했다. 내 머릿속에 가장 강렬하게 남은 이미지로서 그것을 벼려냈다.
망자들을.
“스컬….”
하나 둘씩, 검은 바닥에서 망자들이 일어서기 시작했다. 검은 재킷에 바지를 입은 해골들이었다. 폭주족처럼 손에 사슬을 감거나 장병기들을 든 채로.
그 숫자는 점점 불어났다.
나는 조용히 눈을 감고 그 광경을 상상했다.
“두 분, 준의 곁에 붙어 서주세요.”
“….”
“아, 알겠다.”
자잘한 일은 넬이 처리를 해주고 있다.
그녀를 믿고, 나는 계속해서 망자들을 소환했다. 한 번 요령이 붙자 망자들은 순식간에 불어나 대로를 가득 메웠다. 눈앞의 에스콰이어들과 대적할 수가 되었다.
“후우….”
그리고 나는 눈을 떴다.
시야의 한쪽이 붉게 물들었다. 주륵, 하고 피로 된 눈물이 눈동자에 맺혀 이내 흐르기 시작했다. 나는 이것이 게임 상의 이펙트가 아닌 진짜 피임을 알아차렸다.
뇌가 과부하를 일으킨 것이다.
“준.”
“가자.”
넬이 말을 잇기도 전,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는 피를 스윽 닦아내며 품에서 스파다를 꺼내 쥐었다. 뇌가 차가운 불꽃에 휩싸인 듯한 기분에 휩싸였다.
그리고 나는 천천히 걸어가기 시작했다.
눈앞에서 기다리고 있는 적의 대군을 향해.
“가웨인, 우아랑의 호위를.”
속도를 점차 높이며.
“거절할 거라는 생각조차 않는 모양이군.”
뒤따르던 가웨인이 몽둥이를 손에 쥐고는 비릿하게 웃었다. 나는 뒤를 이어 반대편 뒤쪽에 있는 우아랑을 돌아보며 말을 걸었다.
“내가 에스콰이어들의 발을 묶어놓을 테니까, 우아랑.”
“알겠다.”
“충돌할 거야. 곧바로 돌파해.”
우리는 그렇게 협의를 마쳤다.
나는 뇌를 ‘움직여’ 그로서 해골 병사들을 조종했다. 뒤를 따르던 녀석들을 앞장세웠고 돌진하는 군세의 속도를 드높였다. 앞에 서있던 에스콰이어들은 갑작스레 생겨난 군세에도 당황하지 않는 모습이었다.
조종당하기 때문에 당연한 건가.
“…!!”
그리고 충돌이 발생했다.
전열의 앞에서 폭음과 함께 두 그룹이 부딪쳤다. 내가 만들어낸 해골들이 제각기 부서져 하늘로 치솟았다. 하지만 충돌은 멈추지 않고 계속해서 이어졌다.
두 세력은 뒤섞였다.
마치 물과 기름을 억지로 혼합하는 것처럼, 반발이 일어났다. 처음에는 쉽게 당했던 해골 병사들은 거리가 좁혀지자 에스콰이어에게 맞서기 시작했다.
하지만 무척이나, 이상한 광경이었다.
우리 넷을 제외하자면 이 대로에는 누구 하나 소리를 내는 존재가 없었다. 무언가 부딪치는 소리나, 베어져 넘어가는 소리 같은 것만이 가득할 뿐이었다.
비명 소리가 없는 전쟁터.
누군가 쓰러져 감에도, 그것을 알 수 없는 전장.
“부탁한다! 스컬!”
우아랑이 혼란스러운 틈을 타 충돌한 세력들의 사이를 빠져나갔다. 가웨인 역시 곧바로 그 뒤를 따랐고, 나는 병사들의 사이에서 그것을 잠시 바라보았다.
“가세요.”
침착한 목소리가 뒤를 이었다.
“넬…?”
“이곳의 지휘는 제가 맡을 테니.”
그렇게 중얼거린 그녀는 미소를 지으며 병사들을 불러 모았다. 그리고는 죽음의 여왕처럼 손을 뻗었다.
다행히, 에스콰이어들의 움직임은 단순했으므로.
“부탁한다.”
“네, 곧 따라갈게요.”
고개를 끄덕이는 넬을 뒤로 한 채, 나는 우아랑과 가웨인의 뒤를 쫓아서 내달리기 시작했다.
육안으로 보였다.
병사들의 어깨를 밟고 뛰어넘어 앞으로 나아가는 두 사람의 모습이. 발에 힘을 준 나 역시 그 뒤를 그대로 쫓아갔다. 중간에 누군가 막아섰지만 피했다,
“큭…?!”
고 생각했다.
뒤쫓아 검이 날아들기 전까지는.
입술을 질근 깨문 나는 병사들의 사이로 떨어져 내리며 검을 피했다. 그리고는 중심을 잡고는 스파다를 뽑아 주변을 경계하며 이어질 공격에 대비했다.
지치는 기분이었다.
전쟁터 안에서, 시야가 좁아진 채. 무기들이 부딪치는 소리만이 연이어 들려오고 있다. 키가 거진 비슷한 해골 병사들은 넬의 명령을 들었는지 나를 보호하듯이 감싸고 있었지만, 틈새가 벌어진 채여서 도리어 불안했다.
“젠장…!”
이렇게 검이 그 사이로 들어오니까.
찔러 들어온 검을 피한 나는, 뼈처럼 튀어나온 스파다의 칼날에 걸고 세차게 당겼다. 하지만 미지의 상대는 노련하게 검을 놓았고 그것이 안으로 끌려 들어와 아스팔트 바닥에 소리를 내며 떨어졌다.
특이한 점이 없이, 현대적인 모양을 한 검이었다. 칼날받이와 손잡이를 비롯하여 전체적인 길이와 형태가 효율의 극한을 추구한 듯한 수수함의 극치.
대체 누구인 걸까.
“….”
그렇게 생각하고 다음 순간, 나는 한 남자의 얼굴을 머릿속에 떠올렸다. 그리고는 그 안일한 예상이 들어맞지 않기를 있지도 않은 신에게 기도했다.
“대단하군.”
금새 무너졌지만.
“사람 피곤하게 하는 재주가 있잖아, 당신.”
인상을 찡그린 채 중얼거린 나는, 신이라도 된 것처럼 해골 병사들의 사이를 통과해 들어오는 그레일을 발견했다. 그는 세계의 법칙을 무시하는 듯 연출을 즐기고는 나를 향해 싱긋 웃어보였다.
“네가 만들어낸 건가?”
“그렇게 되었지.”
나는 눈썹을 찡그린 채 중얼거렸다.
“이토록 많은 병사들을 말이지. 아무리 넬과 재킷의 백업이 있었다고 한들 인간이? 놀라운데.”
“당신도 인간이면서 뭘 그래?”
나는 적당히 물었다.
“아니지, 나는 인간이 아니지….”
그는 고개를 내저었다. 정보량 송신 합금으로 인해 만들어진 눈앞의 남자는 그 사실을 인정하려는 걸까.
“나는 초월자야. 인간을 초월했지.”
“엘레노어가 새로운 몸이라도 만들어주셨나?”
“나에게는 다양한 모습이 있지.”
중얼거린 그가 자신의 얼굴을 매만졌다.
손에 짓눌려 얼굴이 움푹 들어갔다. 눈과 코, 그리고 입까지 완전하게. 그 모습을 놀라 바라보던 나는 그레일의 얼굴에 주름이 지는 것을 알아차렸다.
얼굴의 형태가 변화하고 있었다.
거기에 검은 머리카락이 새하얗게.
배가 나오고 키가 조금 작아졌다.
“….”
“어때, 이건.”
그는 다시금 싱긋 웃었다.
할 킬러즈의 부대장을 맡고 있는 백 대령의 모습이 되어서 말이다. 나는 그 모습을 어이가 없어 바라보았고, 뒤를 이어 바닥에 떨어져 있던 검이 공중에 떠올라 그의 손으로 되돌아갔다.
“진짜는 어떻게 되었지?”
나는 그 모습을 바라보며 물었다.
하지만 대답을 듣기도 전, 달려들었다. 검을 휘둘러 그레일과 맞선 나는 날카롭게 불꽃이 튀자 힘을 주어 녀석을 강하게 노려보았다.
“내가 진짜인데?”
그리고 녀석이 중얼거렸다.
백 대령의 얼굴과 목소리를 한 채로.
“….”
“애초에 누가 진짜인 거지?”
“적어도 내 눈앞에 있는 넌 아닌 것 같은데.”
“진짜란 건 뭐지?”
“너는 아닌 거.”
나는 최대한 천박하게 받아쳤다.
물론 알고 있다. 녀석이 어째서 이런 질문을 나에게 던졌는지. 현실과 가상이 하나가 된 세계에서 그런 건 아무런 의미가 없다고 말하고 싶은 것이겠지.
하지만, 그런 헛소리에 어울려줄 마음은 없었다.
“그레일!”
버럭 소리를 내지르고, 나는 몇 번이고 녀석과 검을 부딪쳤다. 말 그대로 현실과 가상이 뒤섞인 전쟁터에서, 나는 목을 찌르기 위해 들어오는 검을 막아내며 어깻죽지에 린슬렛의 방패를 피워 올렸다.
그리고, 들이받았다.
“…!”
그레일을 방패에 걸쳐 밀어붙인 나는 미식축구의 라인맨 마냥 앞으로 돌진했다. 성난 짐승이 되어 병사들을 꿰뚫고 나아가 그레일의 목을 잡아 내리 찍었다.
빠가악. 하는 둔탁한 소리.
“너는 구분 지을 수 있나?”
아스팔트의 파편이 튈 정도로 강한 일격이었다. 하지만 그레일은 상처 하나 없었고 그 상태에서 아무렇지도 않게 나에게 말을 걸어왔다.
“진화된 인간이기 때문에?”
무시하고, 다시 한 번 내리찍었다.
“그게 아니라면 어리석은 인간은, 어떻게 해야 하지?”
전혀 기세가 죽질 않는다.
“자신의 죄를 모르는 천하고 저열한 인간은.”
“….”
“비참하게, 눈과 귀를 감고 살아가는 수밖에 없는가?”
그건….
“나는 그런 세계를 이끌려는 것이다.”
녀석은 단호하게 중얼거렸다.
“끊임없는 교육과 그를 통한 진화.”
그리고 점차, 내 손에서 사라지기 시작했다. 녹아서, 질척거리는 점액처럼 녹아내렸다.
“인간의 정의는 실현될 것이다.”
그 말과 행동을 보는 내내, 머릿속이 복잡했다. 나는 아이스크림처럼 녹아내린, 그레일이었던 것을 놓고 천천히 뒤로 물러섰다. 불쾌한 감각에 인상을 찌푸렸다.
“인간도 아닌 주제에….”
쳐내듯 이야기한 나는, 이미 한참은 앞장섰을 우아랑과 가웨인의 뒤를 쫓아 다시 달리기 시작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