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네크로맨서 재킷-284화 (284/321)

284편

<-- Chapter 7 : Holy Grail -->

얻어맞은 턱이 욱신거리며 통증을 호소했다. 눈을 부릅뜬 채 눈앞의 가웨인을 노려본 나는 저도 모르게 주먹을 들어 거세게 휘둘렀다.

하지만 막혔다.

“가웨인!”

“하, 주먹이 많이 죽었는데? 타나토스!”

그런 도발을 이겨내지 못하고 나는 계속해서 안으로 파고들었다. 어깨로 가웨인의 가슴을 밀치고 주먹을 날려 거만하게 솟은 코에 꽂아 넣었다.

“큭!”

코피가 튀었다.

동시에, 나는 고간을 노리고 날아드는 가웨인의 앞차기를 무릎으로 막아냈다. 그리고는 자세가 무너지기 직전인 상태에서 다리를 잡고 당겨 쓰러뜨렸다.

[스컬! 무슨 일이냐?!]

다투는 소리가 들려오자 놀란 듯 우아랑이 목소리를 이었다. 하지만 나는 개의치 않고 가웨인의 위로 올라타 멱살을 쥐었다. 녀석이 킥킥 거리며 웃었다.

“좋아, 이거지. 역시….”

“미친 새끼가!”

“그래놓고 지금 올라타 있는 사람이 누구지?”

녀석은 잔학하게 웃어보였다.

“큭!”

그런 도발에 당해 주먹을 들려던 찰나,

“준!”

넬의 목소리가 이어졌다.

두 사람이 도착한 모양이었다.

나는 입술을 꾹 깨문 상태에서 감정을 참아내며, 녀석의 멱살을 쥐고 함께 자리에서 일어섰다. 입술을 비죽인 가웨인의 얼굴에서 코피가 주륵 흘러내렸다.

“그, 이, 일단 이거 놓고….”

“안 돼.”

다가온 넬의 목소리에 나는 진지하게 중얼거렸다.

알고 있다.

꼴사납다는 것 정도는.

사실 만나기 전까지만 해도 침착하게 대화를 이끌어나갈 것이라고 단언했지만. 나는 가웨인의 도발에 보기 좋게 걸려들고 말았다. 그것을 부끄러워하지도 않고 녀석의 멱살을 쥐고 벽에 밀어붙이고 있다.

“핫, 이건 또 뭐야?”

녀석은 비웃듯 내 옆의 넬을 바라보았다.

“너 이런 취미도 있었냐? 이런 거랑 섹스하는 거.”

“주둥아리 안 닥쳐?”

“얼굴 예쁘고 머리 하얀데다가 가슴 크고 골반에 허벅지까지…. 사내새끼들 생각은 다 똑같군.”

참지 못하고 주먹을 날렸다.

“…. 한 대 더 때려줘요.”

넬까지 그렇게 말해, 이어서 한 대 더.

“큭…. 재미있네. 아가씨, 이름이?”

“넬이라고 하는데요.”

“좋은 울림인데. 우 대위님도 잘 계셨나?”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웨인은 전혀 기가 꺾이지 않았다. 녀석은 내게 멱살이 잡힌 채 뒤쪽의 우아랑을 향해 넉살 좋게 손을 흔들어보였다.

“두 사람 다 침착해라.”

하지만 녀석은 그걸 무시하고 흥분해 이를 드러낸 우리를 진정시키려고 했다. 거기에 정신을 차린 듯 넬이 헛기침을 하며 뒤로 물러섰다.

“가웨인 씨.”

그리고 우아랑이 앞으로 나섰다.

“이제 대위님이라고는 불러주지 않는군.”

가웨인은 여유롭게 거기에 반응했다. 나는 경계를 늦추지 않은 채 두 사람이 대화를 나누는 모습을 가만히 지켜보기 시작했다.

“예, 언제나 싫어하셨으니 말입니다.”

“그래놓고 잘도 부르셨군.”

“딱히 거절할 이유는 없죠. 싫어하는 사람이 싫어하는 행동을 하는데.”

그렇게 이야기한 우아랑이 싱긋 웃었다.

“….”

나는 그 모습을 조금 당황해 바라보았다. 이쪽이 여유를 잃었기 때문일까. 우아랑은 평소와는 달리 침착하게 이야기를 이끌어 나가기 시작했다.

“그러고 보니 좀 의아한데, 왜 당신이 이 녀석이랑 있는 거지? 분명 둘이 죽이고 못 사는 사이 아니던가?”

“어쩌다 보니.”

“재주도 좋아. 이준.”

“….”

무시하자.

“그래서, 내게 무슨 제안을 하고 싶은 거지?”

“우리와 함께….”

“아, 싫어.”

녀석은 우아랑의 말을 단숨에 끊었다.

“엿이나 먹고. 가서 둘이 잘해봐.”

그리고는 공허한 눈으로 날 돌아보았다.

“….”

“난 여기서 뒈질 테니까. 어차피 버린 목숨.”

“병신 새끼.”

나는 거기에 참지 못하고 말을 내뱉었다. 그리고 나는 가웨인의 얼굴을 붙잡고 뒤로 밀어냈다.

“스컬!”

“여기 가만히 있어.”

나는 차갑게 중얼거리고 녀석을 밀어붙였다.

“큭…!”

가웨인이 저항했다. 하지만 나는 무시하고 녀석의 얼굴을 몇 번 후려쳤다. 금새 조용해졌다. 나는 거기에서 이질감의 정체를 알아차리고 녀석이 튀어나왔던 가게 쪽으로 움직였다.

“도와.”

녀석을 바닥에 쓰러뜨리고, 중얼거렸다.

“하, 웃기는 소리하는군.”

하지만 도무지 말이 통하는 상태가 아니었다.

“크, 헉?!”

상처가 난 복부를 짓누르자 가웨인이 크게 비명을 내질렀다. 나는 그런 녀석을 차가운 눈동자로 내려다보며 계속해서 말을 이었다.

“다쳤군.”

“큭….”

“이대로 정말 뒈질 생각이냐?”

“왜, 괜찮지 않겠어? 아무것도 남지 않았는데.”

“비비안은 아직 살아 있어.”

“그게, 차여서 말이지. 매달리는 남자는 아니라.”

“정말로 그럴 수 있냐?”

“….”

녀석은 그제야 입을 다물었다.

나는, 비뚤어진 태도에 혐오를 느끼며 가웨인의 멱살을 쥐고 자리에서 일으켜 세웠다. 녀석은 지푸라기로 된 인형마냥 비틀거리며 내 손에 이리저리 휘둘렸다.

“어쩔 수 없단 말이지.”

통할까 모르겠지만.

“큭….”

나는 고통에 젖은 가웨인의 셔츠를 들어올렸다. 근육이 매끄럽게 잡힌 복부와 옆구리가 만나는 부분에 세로로 길게 찢어진 듯한 상처가 눈에 들어왔다.

거기에 약간 불탄 채였다.

“라이오넬이었냐?”

“그래….”

“그 자식하고는 절대 싸우고 싶지 않은데.”

“갈라틴만 있었어도 내가 이겼겠지만….”

“갈라틴에 헬리콥터까지 동원하고도 내가 이겼으니 네가 제일 연약한 것 같은데.”

“…. 시팔.”

가웨인은 쓰게 웃었다.

“그래도 아직 끝난 건 아니라고.”

나는 그렇게 중얼거리며 눈앞에 팝업창을 띄웠다. 푸른빛에 가웨인의 얼굴이 비췄다. 눈동자의 밑에 검었고 안색은 창백해 나는 곧바로 스킬을 시전 했다.

녀석을 내 망자로.

이 병신 머저리 자식을.

마음에 안 들지만.

우리는 곧바로 이동했다.

“바로 이 앞이다.”

우아랑이 눈앞에 팝업창을 띄운 채 중얼거렸다.

“조금 천천히 걸으면 안 될까? 조금 피곤해서.”

“엄살 부리지 말고 걸어.”

가웨인이 상처가 아문 배를 매만지고 나는 재촉했다. 동료(?)가 네 명이 되어, 나와 넬은 앞장서 나아가는 우아랑과 가웨인의 뒤를 따랐다.

내 망자가 된 뒤로 처음에는 조금 죽을 것 같아 하던 녀석은, 이제는 적당히 적응을 한 모양이었다. 겉으로 봤을 때의 변화는 거의 없었지만.

“대체 뭐가 망자가 된 거지.”

“형식적이고 또한 상징적인 부분이니까요.”

의아해 혼잣말을 중얼거리자 그것을 정확히 캐치해낸 넬이 대답했다. 힐끔 그녀를 돌아본 나는, 말은 하지 않았음에 그 뜻을 정확히 이해했다.

“결국 코트의 인식 문제라는 건가.”

“네, 결국에 게임의 형태를 취하고 있기는 하지만…. 그걸 위해서 엘레노어는 신물질까지 개발했으니까요.”

넬이 싱긋 웃었다.

가웨인이 방금 전까지 느끼던 통증의 가상의 것이었다. 신체 내부의 정보량 송신 합금이 문제를 일으켜 뇌가 착각을 하는 것이었고, 코트가 백업하던 신체 능력이 상처의 경중에 따라 하락했다는 소리였다.

그리고 나는 그것을 원래대로 되돌렸다.

뭐, 그런 이야기겠지.

“그 마지막 퀘스트란 게 대체 뭔데?”

한동안 걷던 중, 가웨인이 지쳐 목소리를 냈다. 거기에 힐끔 뒤를 돌아본 우아랑이 고개를 내저었다.

“모릅니다.”

“그렇다면 수행하는 의유가…?”

“….”

우아랑은 대답하지 않고 입을 다물었다.

복잡한 이유기는 했다. 우리가 갤러해드 퀘스트를 계속하는 이유는 우아랑의 몸에 있는 진짜 상처를 치유하기 위해서기도 했고, 퀘스트를 하다 분명히 마주할 것이라 예상되는 우정현 회장을 구하기 위해서기도 했다.

그녀는 모르가나를 가지고 있으므로.

“백시호.”

곤란해 하는 우아랑을 대신해, 나는 입을 열었다.

“…?”

“시키는 일이나 제대로 해.”

“‘시키는’ 일이었어. 이게?”

녀석은 어이가 없다는 듯이 웃었다. 하지만 그 말에 딱히 대답하는 일이 없이, 나는 앞장서 나아갔다.

무언가 발견했기 때문이었다.

거리의 끄트머리에서.

“여기가 어디야?”

“광화문….”

“아니, 누구의 ‘지역’이냐고.”

나는 당황해 말을 잘라내고 되물었다. 거기에 우아랑은 눈썹을 찡그리며 다른 지도를 꺼내 확인했다.

“헥터다.”

녀석은 그렇게 중얼거렸다.

“피곤하게 되었군….”

나는 눈썹을 찡그린 채 한숨을 내쉬었다. 그리고는 거대한 빌딩 숲이 들어선 주변을 둘러보았다. 높게 솟은 건물들의 사이에 있는 거대한 대로.

사람들로 가득했다. 자세히 보니 재킷을 입은 채 제각기 가면을 쓴 모습이었다.

아서리안의 유저들이다.

하지만 모두들 움직이지 않았다. 병마총에 있는 흙으로 빚은 군사들처럼 대형을 갖춘 채 가만히 서있었다.

“저걸 돌파해야한다는 거야?”

가웨인이 어이가 없다는 듯 중얼거렸다.

“퀘스트 지역은 이 안쪽에 있는…. 어머니의 회사 안이다. 어떻게 할 생각이지?”

우아랑까지도 조금 당황한 모습이었다. 하지만 나는 아무렇지도 않게 말을 이었다.

“뭐 어쩌긴 어째. 돌파해야지.”

“이, 이곳을요…?”

“그래.”

넬마저 회의적인 반응이어서,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눈앞에 서있는 에스콰이어들을 다시 바라보았다. 어림잡아 족히 수천 명은 되어 보이는 숫자였다.

확실히, 방법이 필요하겠군.

“군대라도 동원을 해야 할 것 같은데.”

그렇게 중얼거리고, 나는 놀라 눈을 동그랗게 떴다.

할 수 있다.

나는 스스로가 할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이 검은 재킷과 마스크가 나에게 무언가를 이해시키는 기분이었다. 그것을 멍한 채 받아들이던 중, 나는 조금 당황해 바로 옆의 넬을

돌아보았다.

“….”

녀석 역시 조금 놀란 듯했다.

나와는 정반대의 이유에서 말이다. 내가 자신이 다룰 수 있는 재킷의 힘에 대해 이해를 하여 놀랐다면, 녀석은 반대로 그렇게 이해한 나를 보고 놀라워했다.

왜냐면 난 평범한 인간이었으니까.

이 순간의 전까지는.

“망자 소….”

아니, 그게 아니다.

“이준?”

“무슨 일이지. 스컬?”

우아랑과 가웨인이이 날 보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런 두 사람의 시선을 잠시 견뎌내며 괴로워하던 나는 저도 모르게 고개를 들어 말을 중얼거렸다.

적절한 단어를 찾던 중이었다.

“망령 군세.”

그리고 공기가 얼어붙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