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83편
<-- Chapter 7 : Holy Grail -->
“누구?”
거기에 우아랑이 의아한 듯 되물었다. 하지만, 스스로 말하고도 잠시 멍해져 있던 나는, 이윽고 누군가에 의해 강제로 턱이 들려지는 걸 느꼈다.
넬이었다.
“확실히…. 가능성이 없어 보이진 않네요.”
그녀는 진지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지?”
“네, 결국에 모르가나가 동작했느냐 마느냐가 문제겠지만 한 번 찾아볼까요? 가웨인님이 어디에….”
“자, 잠시만 기다려라.”
뒤를 이어, 우아랑이 목소리를 냈다.
“그래서 뭘 어쩔 생각이지?”
“…?”
그녀는 당황한 듯 중얼거리며 넬과 내 사이에 섰다. 그리고는 머뭇거리다 조용히 입을 열었다.
“같이 싸우자고, 말이라도 할 셈이냐?”
“상황에 따라서는 그럴지도 모르지.”
나는 무뚝뚝하게 중얼거렸다.
“말도 안 되는 소리를….”
거기에 우아랑은 단호히 고개를 내저었다.
“그런 녀석과 협력할 수 있을 거라고 보나?”
“모르는 거지 싶은데.”
나는 희미한 냄새를 맡고는 그렇게 대답했다.
여기에서 말하는 냄새란, 가웨인의 행동에 대한 것이었다. 녀석이 만약 정말로 모르가나의 도움을 받아 엘레노어의 영향을 받지 않았더라면, 지금 어떤 행동을 취하고 있을까. 깨어난 뒤로 왜 그렇게 날뛰었던 것일까.
물론 그 답은 간단했다.
“백 대령.”
“하아, 스컬….”
“아, 아니 물론 퀘스트가 먼저긴 하지만.”
길게 한숨을 내쉬는 우아랑의 모습에, 나는 당황해 중얼거리며 뒤로 물러섰다.
“아뇨, 저는 그 반대라고 생각해요.”
하지만 넬의 생각은 다른 모양이었다.
“어…. 넬?”
“무슨 일이 벌어질지 알 수가 없으니까요. 최대한으로 많은 동료를 모아가는 게 더 좋아보여요. 마지막 퀘스트니 저쪽도 나름대로의 준비를 해두었을 테니까요.”
“그건 ‘동료’라는 말에 대해 너무 쉽게 재단하고 있는 거라고 생각하는데.”
우아랑이 지지 않고 받아쳤다.
“….”
나는 그 사이에서 당황해 입을 다물었다.
“대위님도 방금 보셨잖아요? 준을 공격하던 베디비어님을. 그런 상황에서 저희끼리만 퀘스트를 수행하러 가는 일은 위험 부담이 너무 커요.”
“그렇다고 해서 그런 남자를….”
“준은 어떻게 생각하세요?”
갑자기 화살이 돌아왔다.
그런 질문을 던진 넬이 진지한 눈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우아랑 역시 마찬가지였다. 한껏 분위기를 잡은 두 사람의 얼굴에 나는 곧바로 말을 이었다.
“협력을…. 못할 것도 없다고 생각하는데.”
물론 그렇기 때문에 찾겠다는 말을 한 것이기도 했다. 나는 어이가 없다는 듯 눈을 동그랗게 뜨는 우아랑을 돌아보며 그에 대한 변명을 늘어놓았다.
“비비안도 엘레노어에게 세뇌가 된 상태일 테니까.”
“그게 왜….”
“공통된 목적이 있다는 거지.”
나는 그것을 확신했다.
“자신을 칼로 찌른 여자를 말이냐…?”
“그래.”
우아랑의 의심에도 생각은 변하지 않았다.
반대로 내가 그런 상황이었으면 어땠을까 생각하자니 결론은 쉽게 나왔다. 내가 무슨 일이 있어도 송유하를 증오할 수가 없듯이 가웨인도 그런 것이었다.
녀석은 비비안을 미워할 수가 없다.
“한 번 시도해볼 가치는 있다고 생각해.”
“하아…. 도저히 못 말리겠군. 너란 남자는.”
우아랑은 길게 한숨을 내쉬고는, 이어서 쓰게 웃었다. 그리고는 바로 옆의 넬을 돌아보았다.
“최대한 시간을 아끼는 방향으로 부탁한다. 넬.”
“후후, 맡겨만 주세요!”
넬은 안심하라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
일단은 가웨인에게 협조를 요구하자.
우리의 결론은 그러했다. 퀘스트를 진행할 때의 안전을 생각하자면 최대한 많은 수의 동료가 필요할 것이라는 넬의 조언을 받아들였기 때문이었다.
사방이 온통 적이었으니까.
“춘추전국시대도 아니고.”
나는 그렇게 중얼거리며 앞장서 어둠에 잠긴 건물 안으로 들어섰다. 시야의 한구석에 떠올라있던 지도가 간소하게 바뀌며 건물 내부를 비추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 전에는 서울 전체를 표시하고 있었다. 중립 마을과 원탁의 멤버가 지배하는 구역으로 구분이 되어있던 지도는 전쟁이 한창 중인 나라를 연상시켰다.
랜슬롯, 모드레드, 트리스탄, 베디비어.
“….”
다들 어떻게 되어있는 걸까.
“이 경우에는, 브리튼이겠지만 말이다.”
고민에 잠겨 있자니 뒤쪽에서 따라 들어온 우아랑이 말을 내뱉었다. 곧바로 정신을 차린 나는 지나쳐 나아가는 우아랑을 따라 어둠에 잠긴 복도를 걷기 시작했다.
“이 건물 쪽으로 들어가시는 게 포착됐어요.”
뒤를 이어, 넬이 눈앞에 팝업창을 띄운 채 중얼거렸다. 그녀는 계획이 정해지자마자 서울시 전체의 CCTV를 해킹했고, 단숨에 가웨인이 마지막으로 목격된 위치를 확인해주었던 것이다.
하지만 설마 그 위치가,
“생각대로일 줄이야….”
그 결과를 상기한 나는 어이가 없어지는 걸 느끼며 중얼거렸다. 할 킬러즈의 본부가 있는 종로구 근처의 ‘중립 마을.’ 거기에서도 가장 음습한 구역에 있는 건물. 그는 이곳에서 몸을 치료하는 듯했다.
몇 번이고 할 킬러즈의 본부로 쳐들어가고, 막혀선 도주하고. 그걸 계속해서 반복해온 모양이었다.
“무모한 것도 정도가 있지.”
“흐음, 준이 그런 이야기를 하니 어쩐지 놀랍네요.”
“내가? 설마.”
나는 너스레를 떨었다.
하지만 분명, 나도 비슷한 소리를 자주 듣기는 했었다. 그렇게 생각한 나는 주변을 두리번거리며 건물 안쪽으로 들어선 우아랑이 돌아오기를 기다렸다.
“없어?”
“아무래도 텅 빈 건물 같군.”
“그, 래…?”
분명히 상호라던가 간판 같은 게 붙어있긴 한데, 이상한 일이었다. 고민에 빠져 있던 나는 이내 바로 앞에 모습을 드러낸 계단을 확인했다.
위와 아래.
“우아랑, 지하를 확인해줘.”
“알겠다.”
고개를 끄덕인 우아랑은 계단 밑으로 내려갔다. 그 뒷모습을 지켜보던 나는 넬에게 눈빛을 보냈다.
“넬, 너도”
거기에 고개를 끄덕인 그녀가 우아랑의 뒤를 쫓았다. 나는 안심하고 반대로 옆의 계단을 오르기 시작했다.
우아랑이 ‘진실’을 목도한 이후로, 내가 가까이 있어야하는 조건은 사라진 모양이었지만…. 언제 무슨 일이 벌어질지 알 수는 없었다. 최대한 조심해야겠지.
그렇게 생각하며, 나는 2층에 올라서 각 가게를 차례차례 확인하기 시작했다. 평범한 상가 건물에 음식점이 대부분. 하지만 영업을 하고 있는 곳은 없었다.
바깥에 사람이 없지는 않았는데.
없다.
사람의 인기척이, 전혀.
거기에서 나는 알 수 없는 이질감을 느꼈다. 혹시나 가웨인이 이렇게 해놓은 것일까…. 싶기도 했지만 그럴 이유가 없다는 생각에 그 가능성은 접어두기로 했다.
“뭐지…?”
나는 고민에 빠진 채로 계단을 올라 계속해서 가게 안을 확인했다. 그리고 이내, 불안한 기분을 참지 못하고 지하를 살피고 있을 두 사람에게 말을 걸었다.
“뭐 좀 있어?”
[아니 아무것도.]
하지만 돌아오는 대답은 냉혹했다.
[이건…. 엘레노어가 의도적으로 만든 상황 같아요.]
거기에 넬이 말을 덧붙였다. 4층으로 올라서, 마지막 문고리를 손에 잡은 나는 몸의 동작을 멈췄다.
“의도적으로?”
그리고 물었다.
[네, 그 이외에는 설명할 길이 없는 걸요.]
“그런가….”
“그럼, 물론이지.”
그 목소리는 다른 곳에서 들려왔다.
“…?!”
놀란 나는, 문고리를 놓으며 곧바로 뒤로 물러섰다.
하지만 이미, 늦었다.
와지끈! 하는 소리와 함께 불투명한 유리로 된 문이 박살냈다. 그리고 그 안에서 두툼한 무언가를 든 손이 뻗어져 나와 내 머리를 노리고 날아들었다.
“큭!”
아슬아슬하게, 피했다.
유리 파편이 튀어 눈앞이 번쩍였다. 인상을 찡그린 채 물러선 나는, 그 사이로 다시금 뻗어져 다가오는 검은 몽둥이를 발견하고 입술을 질끈 깨물었다.
스파다를 뽑아 맞섰다.
불꽃이 튀었다. 몽둥이를 튕겨낸 뒤, 자세를 바로 한 나는 옆으로 몸을 비틀며 가게로부터 떨어졌다.
[준, 무슨 일이에요?!]
“아….”
뭐라고 설명하지.
“그냥, 평범한 가웨인이야.”
[네?]
넬이 의아한 듯 되물었지만, 무시했다.
둔탁한 소리와 함께 유리창이 깨진 문이 박살났다. 그리고 그 안에서 몽둥이를 뻗으며 가웨인이 모습을 드러냈다. 나는 그 모습을 당황해 가만히 지켜보았다.
“너와 내가…. 또 싸우라는 것 아니겠어?”
남자는 눈을 부릅뜬 채로 웃었다.
붉은 머리. 새하얀 빛깔이던 코트는 군데군데 붉은 피가 묻어 기괴하고 흉측하게 변해버리고 말았다.
“진정해, 백시호.”
“그렇게 부르니 더 흥분되는군, 이준.”
역효과였나.
그것을 자각하고, 나는 낮게 우는 소리를 냈다. 갈라틴은 뭐 엿 바꿔 먹은 건지 둔탁한 몽둥이를 든 녀석이 그것을 세차게 휘둘렀다.
“…!”
강한 빛이 뻗어져 나왔다.
하지만 나는 곧바로 알아차렸다. 위력이 원본에 비하자면 수십 배 아래라는 사실을. 그렇기에, 물러설 장소가 있음에도 나는 녀석을 향해 달려들었다.
어깻죽지에 린슬렛의 방패를 피워 올리며.
“가웨인!”
따끔한 충격과 함께, 나는 날아드는 빛을 돌파해 앞으로 나아갔다. 그리고 미리 준비한 채 서있던 가웨인을 향해 검을 휘두르…. 지는 않고 그 앞에 멈춰 섰다.
“진정하라고.”
“….”
그가 주먹을 휘둘렀다.
맞아줄 생각까지는 없었지만, 나는 피해내지 못하고 유효타를 허용했다. 코끝이 아려오는 감각을 느끼며 가웨인을 향해 다시 한 번 말을 내뱉었다.
“싸우러 온 거 아니니까.”
“장난 하냐?”
“우리도 타협점을 찾을 수 있지 않을까 싶은데. 비록 서로를 죽이고 싶어 하는 관계이지만.”
“이 개새끼가….”
“뭐 병신아. 되는대로 날뛰기만 하고.”
젠장, 흥분했다.
거칠게 욕설을 내뱉는 가웨인의 모습에, 나 역시 같은 식으로 대답해버리고 말았다. 곧장 후회한, 나는 길게 한숨을 내쉬고는 검을 품속으로 밀어 넣었다.
“우리, 진정하지 않을래?”
하지만 다음 순간, 턱을 얻어맞았다. 갑작스러운 통증에 비틀거린 나는 이내 중심을 잡고 고개를 들었다.
“뭐해, 덤벼. 이준.”
내 얼굴을 후려친 몽둥이를 든 채, 가웨인이 살기를 띈 얼굴로 중얼거렸다.
“….”
이 새끼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