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7편
<-- Chapter 7 : Holy Grail -->
◇
“당장 그 개새끼 내 앞으로 잡아오란 말이다!!”
그는 전화통을 붙잡은 채 버럭 소리를 질러댔다.
물론 수십 년 전처럼 진짜 전화를 사용하지는 않았다. 때문에 백 대령은 손에 잡히는 걸 그 대용으로 내던지며 흥분을 주체하지 못하고 부하들을 닥달했다.
어두운 방안, 붕대를 감은 머리가 지끈거리며 통증을 호소했다. 길게 신음을 내뱉은 백 대령은 사무용의 책상을 쿵쿵 내리치며 밀려드는 흥분을 주체하지 못해 날뛰었다. 그는 용서하지 못했다.
자신을 배신한 아들을.
길러준 은혜도 모르는 망나니 자식을.
“…. 오냐오냐하고 기르는 게 아니었어.”
백 대령은 그런 와중에도 가웨인을 아들로서 대했다. 하지만 그것은 그에게 애정 비스무리한 것이라도 지니고 있어서가 아니었다. 철저하게 자신의 일부였던, 그렇기 때문에 자신의 마음대로 다룰 수 있는 존재라고 생각해서였다. 백 대령은 가웨인을 그렇게 생각했다.
그래서 이토록 흥분하고 있는 것이었다.
[대령님, 김 소령입니다.]
바로 그때, 귓가의 디멘션 커넥터를 통해 목소리가 이어졌다. 백 대령은 싸늘하게 거기에 대꾸했다.
“무슨 일이지.”
[며, 면목 없습니다. 시내의 호텔에서 트리스탄, 모드레드, 가웨인이 전투를 벌이고 있었습니다만.]
“다만…?”
뒷말을 따라하며 계속 추궁하자 반대편에서 숨을 삼키는 소리가 들려왔다. 백 대령은 길게 한숨을 내쉬며 책상 앞에서 빠져나왔다.
[붙잡지 못했습니다.]
“그럼 어떻게 됐는데.”
[도주 중인 적을 헥터 대위가 추적 부대를 편성해 적들을 쫓고 있습니다. 하지만 적들이 하수도 쪽을 다니도록 배를 한 척 소유하고 있는 만큼….]
“그게 무슨 개소리야!!”
버럭 소리를 지르자 반대쪽에서 침묵이 이어졌다.
백 대령은 상황을 이해하지 못한 상태에서 계속해서 부하들을 닦달하기만 할 뿐이었다. 그는 지하에 있는 배가 무슨 소리를 하는 건지도 제대로 알지 못했고, 그저 자신이 원하는 결과를 가져오기만을 바랬다.
“일 똑바로 못해?! 지금 애새끼들 몇 잡는데…!”
[죄, 죄송합니다!]
“뭐라도 하나 가져와! 몸만 돌아올 거면 차라리 거기서 묫자리 깔고 뒈져버려!”
버럭 소리를 지르고, 전화를 끊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분을 식히지 못했다. 담배를 빼물고 불을 붙인 백 대령은 방 한 구석의 장식장으로 다가가 병에 담긴 보드카를 꺼내들었다.
“빌어먹을….”
그리고 한 모금 마셨다.
잔에 따르지도 않고, 그러더니 책상으로 돌아와 귀찮다는 듯이 디멘션 커넥터를 빼어 제멋대로 내던졌다. 아마 더 이상 귀찮게 연관하고 싶지 않다는 제스처였다.
왜냐면 모르니까.
알고 싶지도 않으니까.
표현을 하자면, 어린애가 어리광을 부리는 일에 가까웠다. 그와 같은 노인들은 타인이 자신의 기준에 맞춰오지 않으면 저런 식으로 화를 내버리는 것이었다.
그는 항상 이것이 문제였다.
애새끼들 몇으로 치부할 수 있는 문제가 절대 아니었음에, 자신의 자존심을 생각하여 그렇게 밖에 대답하지 못했다. 일선의 부하들은 죽어나가는데 위에 앉아 거만한 폭군처럼 소리만 지르고 있는 꼴이었다.
그래놓고 겉으로는 나라를 위하는 척, 그것만이 애국이며 조국을 수호하는 길인 척. 이 길에 조금이라도 반발하는 자는 모조리 단죄해야할 악으로 만들고.
이런, 적에 대한 희생은 남에게 내맡기고서.
“항상 이런 게 문제였지. 세계는.”
‘나’는 그렇게 중얼거리며 고개를 들었다.
“…?!”
보드카 병을 손에 들고 있던 백 대령이 흠칫 놀랐다. 그리고는 믿을 수 없다는 듯 주변을 두리번거리기 시작했다. 나는 그의 움직임을 가볍게 따라했다.
간단한 일이었다.
나에게 있어서, 그의 심리 상태를 완전히 이해하는 일은. 무척이나 손쉬운 작업이었다. 그는 갑작스레 들려온 내 목소리를 이해했지만, 제대로 받아들이지 못하고 공포에 몸을 떨고 있었다.
누군가를 부를까?
하지만 디멘션 커넥터를 빼두었다. 그렇다면 바로 뒤에 있는 저걸 집어, 부팅을 하는 작업을 해야만 한다. 그래야 다른 사람을 부를 수 있다.
그런 번거로운 작업을 하는 사이에, 습격이 이어질 수도 있다. 그런 생각에 백 대령은 그나마 자존심이라도 챙기자는 결론을 내리고 씨익 웃었다.
“자네, 오랜만이군.”
보드카를 한 모금 더 마시며 그는 여유를 부렸다. 잠시 고민을 하던 나는 천천히 일어섰다.
그의 그림자로부터.
“…!”
백 대령은 놀란 기색을 애써 감추는 눈치였다.
부글부글 거품이 일며, 나는 검은 그림자로부터 천천히 피어올랐다. 시선이 마주치자 백 대령이 당황해 눈을 동그랗게 뜬 것이 보였다.
그럴 터였다.
평범한 ‘사람’인 내가 이런 식으로 모습을 드러냈으니. 비과학적인 일이라고 생각을 하겠지.
하지만 트릭은 아니었다.
모드레드의 능력처럼 몸을 투명화한 뒤 움직이는 술수는 결단코. 나는 실제로 거품 속에서 피어올랐다.
“많이, 놀랐나?”
그리고 그것을 과시하는데 주저하지 않았다.
“…. 역시 대단하군, 엘레노어란.”
그는 애써 웃어보였다. 하지만 나는 그렇게 여유를 부리는 백 대령을 향해 천천히 다가섰다.
“일단 고맙다는 말을 해둘게.”
그리고 마찬가지로 싱긋 웃었다.
“뭐?”
백 대령이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거기에 나는, 그의 손에 들린 것과 완전히 같은 모양의 보드카를 손에 창조해냈다. 양과 묻은 지문까지 완전히 같게 해서.
“세계에서 가장 역겨운 인간이 되어주어서.”
나는 눈앞의 사내로 점차 변해갔다.
“네가 내 생각처럼 그런 역겨운 인간이어서…. 정말로 다행이야. 고마워. 더럽고 추잡한 쓰레기에 악당이 되어주어서. 정말로 감사하고 있어.”
“뭘…. 하려는 거지?”
그가 놀란 얼굴로 물었다. 고개를 비틀어 뒤로 물러서려고 했지만 나는 아무렇지도 않게 벌려진 거리를 채우듯 백 대령을 향해 다가섰다.
거울에 비춘 것처럼.
“하지만 이제는 그러지 않아도 돼.”
“무슨…?”
“더 나아갈 필요는 없어. 내가 대신 맡을 테니까..”
“그, 그게 무슨 소리냐.”
“악당으로서 당신을.”
그리고 나는 손을 찔러 넣었다.
“허억…!!”
그는 살면서 느껴본 적이 없던 강한 통증을 느꼈다. 얼굴에서 순식간에 핏기가 사라지며, 식은땀을 뚝뚝 흘리기 시작했다. 커다랗게 된 눈동자에 공포가 드리웠다.
그리고 핏발이 서기 시작했다.
“크억…. 너, 한, 성, 진…!!”
“미안, 조금 아플 거야.”
중얼거린 뒤, 나는 흡수하기 시작했다.
녀석의 모든 정보를. 거기에, ‘시체’를 한꺼번에 처리하는 쪽이 편하니까 말이다.
“커헉!! 으흐어어어어억!!”
“마음껏 비명을 질러도 돼. 소리가 새어나갈 염려는 없으니까. 괜찮아, 많이 아프지? 좀만 참아.”
나는 녀석의 체내에 있는 DNA 구조를 읽어냈다. 손가락 끝이 파고들어 척추를 긁고 내장을 헤집는 만큼 고통은 상당할 터였다. 기괴한 소리와 함께 백 대령은 무릎을 꿇고 내게 매달렸다 애원하듯 시선을 보냈다.
나는 그런 그를 가여이 여겼다.
나는 악인을 동정한다.
나는 사람을 구원하고 싶다.
나는 모두가 행복한 세계를 만들고 싶다.
인간을 진화시킴으로서.
보다 나은 선택을 하도록 인간을 구성함으로서.
그리고 우리는 그것을 도울 수 있다.
“그렇지? 엘레노어.”
“네, 그레일.”
“커억…. 그어어어억…. 어어허어거억…!”
백 대령이 완전히 녹아내렸다. 내가 바닥에서 피어오르던 것과는 반대로, 깔끔하게 바닥으로 녹아내려 허공을 향해 뻗은 팔을 마지막으로 세계에서 사라졌다.
“고마워, 백…. 이름이 뭐더라? 이 친구?”
“백 진호요….”
엘레노어가 어이가 없다는 듯 한숨을 내쉬었다. 나는 쓰게 웃으며 손에 들고 있던 보드카를 마셨다.
진짜와 같은 맛을 느꼈다.
나는 거기에서, 진정한 의미에 현실과 가상이 하나가 되었음을 느끼고 씨익 웃었다.
◇
셔츠를 들자 복근에 가로로 진 흉터가 눈에 들어왔다.
“이거, 남겠지?”
나는 슬며시 앓는 소리를 내고는 바로 옆에 서있는 넬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새하얀 머리를 하나로 땋은 그녀가 어색하게 웃으며 입을 열었다.
“오, 오랜만이네요?”
“응?”
그 말이, 조금 뜬금없어 되물었다.
“흥.”
하지만 넬은 뾰로통하게 볼을 부풀린 채 시선을 피했다. 나는 거기에 뭐라고 대답할 바를 찾지 못하고 고개를 갸웃거리다…. 이내 깨달았다.
아니 애초부터 모르지는 않았다.
“넬.”
“웃….”
손을 뻗어, 볼을 매만지자 넬이 얼굴을 붉혔다. 나는 부드럽게 웃으며 그런 그녀를 잠시 감상했다. 그리고는 천천히 해야했던 말을 꺼냈다.
“돌아와줘서 고마워.”
“너, 너무해요! 처음에 말씀해주셨어야지!”
“미안.”
“히잉, 그렇게 말하면 사과 받을 수밖에 없잖아요.”
“화, 더 내도 괜찮은데.”
나는 당황해 중얼거렸다.
뭔가 관계의 변화를 느꼈다.
돌아온 그녀는 조금 더 어른스러워진 듯했다.
아니 좀 더 자유롭다는 느낌이었다.
“하지만 그렇게 되면 곤란하잖아요? 준이.”
그것은 호칭 때문일까.
“일단은 끝내도록 하죠, 이 게임을.”
“…. 그래.”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일단 문제는 해골 코인을 만든 사람을 찾는 건데.”
“음…. 그건 왜요?”
“나에게 Continue를 준 사람이라고 봐야할 테니까.”
하나의 예감이었지만.
나는 그렇게 생각했다. 그 동전은 모르가나에 한없이 가까운 물건이었다고. 게임의 시스템을 이용하고 있음에도 엘레노어가 개입하지 않은 물건인 듯했다.
하지만 누가?
“…. 설마.”
어쩐지 불길한 예감이 머리를 스쳤다. 다시금 가드레일을 밟고 뛰어넘어, 숲을 헤치고 별장으로 돌아간 나는 그대로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섰다.
“어서 오세요.”
바로 앞에서 여자가 나를 반겼다.
기다렸다는 듯한 얼굴이었다.
“어떠셨나요? 성진님과의 만남은.”
“그걸 어떻게…?”
“아시는 분이 계시거든요.”
그렇게 말하며 웃은 여자가 돌아섰다. 그리고 시선을 보내고, 어디론가 앞장서 걷기 시작했다. 나는 누군가 팔을 당기는 듯한 감각에 그 뒤를 얌전히 따랐다.
“마침 아랑이도 끝났거든요.”
“진실과 마주하는 게 말인가?”
“네, 보기보다 큰 충격을 받아서….”
그리고 여자는 입술을 꾹 다물었다. 그것은 지금껏 모든 행동을 장난으로 일관하던 그녀가 유일하게 내 앞에서 진지한 모습을 보인 것이었다.
그만큼 심각하다는 걸까.
“우아랑….”
나는 걱정스러운 마음이 드는 걸 느끼고는 걸음을 재촉했다. 여자는 앞장서 나아가 나선계단을 내려갔다.
다시금 그 아래로.
“들어가시죠.”
열려진 문 앞에서 여자는 내게 그렇게 말했다. 잠시 망설이며 뒤쪽의 넬과 시선을 교환한 나는 마음의 결심을 마치고 천천히 안으로 들어섰다.
“어서와.”
“…!”
그리고 분명, 목소리를 들었다.
바닷가에서 들었던 것과 같은 목소리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