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6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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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pter 7 : Holy Grail
머리가 지끈거리며 아파왔다.
“끄응….”
정신이 멍한 것을 느끼며 나는 잠에서 깨어났다.
푹신한 이불이 느껴졌다. 눈가에 피로한 기운이 묻은 것을 열심히 닦아낸 뒤, 나는 버티지 못하고 길게 하품을 하며 돌아누웠다.
분명 겨울일 텐데 새 우는 소리가 들려왔다.
“으음….”
아니 들려오…. 던가? 모르겠다. 날짜 감각이 무뎌진데다가 잠이 덜 깨서 그런지 뇌가 제대로 말을 듣지를 않았다. 창문을 통해 빛이 쏟아져 들어오는 것을 피해 나는 이불을 뒤집어썼다.
그리고 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저기, 오빠?”
누구지.
이 집에서 나를 오빠라고 부를 사람이 있던가?
“일어나십시오. 유하 언니가….”
목소리는 익숙했는데, 누군지 제대로 기억이 나지를 않았다. 대답을 해보려다가 도리어 앓는 소리만 나, 나는 문을 열고 들어온 사람이 다가오는 걸 느꼈다.
“안 일어나면 아침 없다고 하십니다.”
이불이 당겨졌다.
“으극….”
빛이 강하게 들어왔다. 눈썹을 찡그리며 몸을 웅크린 나는 뒤를 이어 팔이 당겨지는 것을 느꼈다.
“저도 없다고 하십니다!”
그녀는 귀엽게 우는 소리를 냈다. 하지만 나는, 잠이 쏟아져 몸이 꿈쩍도 하지 않는 것을 느꼈다. 하지만 낑낑거리며 팔을 당기는 힘은 계속 되었다.
지친다.
자고 싶은데.
계속해서 자고 싶은데.
“졸려어….”
“힉?!”
결국 참지 못하고, 나는 팔을 끌어당겨 그녀를 침대 속으로 납치(?)했다. 당황한 그녀가 비명을 내질렀고, 나는 조그마한 인형 같은 몸을 기분 좋게 끌어안았다.
“더 자자….”
“저, 저어?!”
“졸리니까….”
나는 반쯤 힘에 부쳐 중얼거렸다. 한동안 파닥거리며 당황하던 그녀는 이내 길게 숨을 내
뱉으며 몸에 힘을 뺐다. 나는 그런 그녀를 세차게 끌어안았다.
부드럽고, 좋은 냄새가 났다.
“…. 모.”
“모?”
“아니, 클레어….”
잠깐 머리가 멍해졌었다.
그녀의 이름은 클레어다, 그래. 그 사실을 상기하듯 생각한 나는, 이내 클레어를 꾸욱 끌어안았다. 그녀는 나의 가족으로…. 계속해서 함께 살고 있다.
슬쩍 눈을 떠, 그 모습을 확인했다.
검은 머리칼, 새하얀 피부, 조그마한 몸집. 얼마 전부터 다시 학교를 다니기 시작해 검정색 세라복을 입은 채였다. 고개를 푹 숙이고 있던 그녀가 날 올려다보았다.
“저…. 왜 그러십니까?”
푸른 눈동자에 의문이 서린 채였다.
“아니, 아무것도.”
뭔가 떠오르려다가 이내 멈췄다. 하지만 클레어의 얼굴을 보자, 뭔가 분명히 잊어버리고 있다는 자각이 머릿속을 스쳤다. 나는 거기에 대해서 잠깐….
“일어나!”
고민을 하던 중, 다른 목소리가 이어졌다.
“큭?!”
뒤를 이어 뭔가로 따악, 하고 이마를 때렸다. 정신을 차린 나는, 국자를 든 채 서있는 유하를 발견하고는 눈을 동그랗게 떴다.
“누나?!”
아니, 왜 이렇게 놀라는 거지?
“너 오늘 시험이라고 하지 않았어?!”
“으…. 그랬나?”
“빨리 일어나! 클레어도 애가 막 당기고 그러면 성희롱이라고 고소한다면서 날뛰어야 할 거 아냐?!”
“죄, 죄송합니다!”
“하아….”
일어선 클레어가 팔을 이끌었다. 나는 거기에 한숨을 내쉬며 일어나 유하의 앞에 자리를 잡고 섰다.
앞치마를 두른 채, 연갈색 머리를 하나로 묶었다. 그녀는 눈썹을 잔뜩 찡그린 채 불만스러운 얼굴로 나를 바라보았다. 나는 시선을 피해 구겨진 교복 치마의 주름을 펴며 방에서 도망치는 클레어를 바라보았다.
“너 애 벌써부터 건들면 큰일 난다?”
그리고 혼이 났다.
“건드려…?”
“빨리 씻고 내려와. 밥 해놨으니까.”
유하는 도끼눈을 뜬 채, 일방적으로 대화를 마치고 돌아섰다. 그 모습을 멍하니 바라보던 나는, 덜 깬 잠에 취해서 화장실 쪽으로 향했다.
그리고 이내 깨달았다.
“모르가나….”
게임이 계속해서 실행 중이라는 사실을.
검은 보석이 손바닥 위에서 춤을 추었다. 그러자 뒤를 이어 눈앞의 풍경이 뒤바뀌었다. 몸의 감각이 온전해져 나는 길게 숨을 내뱉으며 바닥에 무릎을 꿇었다.
모조리 환상이었다.
엘레노어가 만들어낸.
[어머, 더 즐기시지.]
그리고 목소리가 이어졌다.
“너….”
엘레노어였다.
[제가 만들어낸 이상 사회는 어떤가요?]
“그게, 대체 무슨 소리야…?”
나는 그대로 우아랑을 기다리던 장소에 있었다. 시간이 얼마나 지났는지는 잘 몰랐지만 아무래도 엘레노어가 보여준 환상에 꽤나 취해있었던 모양이다.
[저는 인간을 진화시킬 생각입니다.]
“뭐…?”
제대로 이해하지 못해 되물었다.
[당신과 넬의 여정을 통해서 데이터는 충분히 모였어요. 이제 남은 것은 가상과 현실의 완전한 융화. 그리고 그걸 통해 만들어지는 새로운 시대.]
“그게 무슨 소리야…!”
[모든 것은 인간의 근본을 자극하기 위하여.]
목소리는 이후로 끊어졌다.
[당신은 ]
“큭?!”
나는 놀라 주변을 둘러보았다. 어둠에 잠긴 와중, 그 누구의 모습도 보이질 않아 나는 이내 바깥으로 훌쩍 달려 나갔다. 나선계단을 거칠게 내달렸다.
전화를 걸었다.
모두에게.
하지만 받는 사람은 없었다. 나는 뭔가 불길한 예감이 머리를 스쳐 바깥으로 달려 나갔다.
누군가 계속 말을 걸어왔다.
누군가, 누구일까. 나는 그를 알고 있….
다.
그는 이 세계의 주인이다.
인간의 몸으로 신이 된 남자였다.
“….”
나는 눈을 동그랗게 뜬 채 그를 바라보았다. 세차게 내달려 도로를 넘어, 나는 어느덧 바닷가의 모래사장 위에 발을 디디고 서있는 상황이었다.
“얼굴을 직접 마주 하는 건 처음이지? 우리.”
“당, 신….”
포마드를 발라 매끈하게 넘긴 머리,
검푸른빛의 정장. 175정도 되는 적당한 키, 외모는 전혀 위압감을 주는 타입은 아니었지만 눈빛이 달랐다.
전혀 달랐다.
평범한 사람과는.
안광이 차갑게 빛나고 있었다.
“타나토스. 내가 가장 좋아하는 내 게임의 플레이어.”
“한, 성진….”
“그레일이야, 그렇게 불러주었으면 좋겠군.”
남자는 웃으며 이야기했다. 나는 거기에 제대로 된 대답을 하지 못하고 입술을 질끈 깨물었다. 그리고 그는 천천히 나를 향해 걸음을 옮겨 다가왔다.
구둣발을, 백사장에 디디고.
발자국이 남는다.
“너는…. 정말이지 굉장해.”
그리고 그는 활짝 웃으며 이야기했다.
“내가 원하는 대로, 멋지게 터전을 닦아주었어. 대단해. 이걸로 내가 원하는 세계를 만들 수 있게 되었어.”
푸욱. 하는 소리가 이어졌다.
“네 덕분이야, 정말로 고마워. 타나토스.”
“…?”
나는 의아함을 느꼈다.
그레일이 나를 꽉 끌어안아, 나는 그것을 밀어내려고 했다. 하지만 몸에 힘이 들어가지 않고, 따뜻한 감각만이 이어져 그는 아무렇지도 않게 내 등을 토닥였다.
“이제는 쉬어도 괜찮아.”
“무, 슨….”
그리고 나는 비틀거리며 뒤로 물러섰다.
“재킷은 다시 가져갈 테니까.”
복부에 뜨거운 기운이 맺힌 채였다.
나는 참지 못하고 바닥에 무릎을 꿇었다. 갑작스레 온몸에 힘이 빠져 꼼짝도 할 수가 없었다. 놀라 복부를 매만진 나는 한 가지 사실을 깨달았다.
피다.
‘진짜.’
“그럼, 고생했어.”
내 복부에 찌른 칼을 뽑아든 그레일의 모습이 희미해져 사라지기 시작했다. 검은 바람이 되어 그 남자는 눈앞에서 모습을 감췄다.
눈앞에, 메시지가 하나 떠올랐다.
Game Over.
~Arthurian~
Game Credits
Elenore Arts
Written / Directed By
~Holy Grail~
Main Producer
Elenore
Technical directors
Elenore
.
.
.
.
Thank you Player
“엿, 이나…. 먹어….”
그리고 나는 코인을 꺼내들었다.
검은 동전이다.
해골의 얼굴이 새겨진.
필사적으로, 사라져가는 아서리안의 데이터의 사이에서 마지막으로 이것을 찾아냈다. 나는 이게 왜 이런 모양인지를 깨달았다. 이 동전의 역할을 알아차렸다.
Continue?
Yes / No
“큭….”
물론 대답은 하나뿐이다.
나는 입술을 질끈 깨물며 동전을 밀어 넣었다.
딸그락, 하는 소리와 함께 동전이 파스스 부서졌다. 뒤를 이어 나는 비틀거리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마치 좀비처럼, 나는 모래사장의 위에 발을 디디고 섰다.
“허억, 허억….”
거칠게 숨을 몰아쉬었다.
어둠 속, 재킷이 삐져나온 내장을 다시 밀어 넣었다. 그 과정이 끝나자 탄피처럼, 품안에서 검은 마스크가 튕겨져 나왔다. 나는 그것을 받아 얼굴에 썼다.
“넬.”
그리고 그녀의 이름을 불렀다.
“네, 준.”
바로 뒤쪽에서 목소리가 들려왔다. 나는 돌아보지도 않은 채 죽음의 충격에 거칠게 숨을 몰아쉬었다.
하지만 어쨌든,
“코인을 전해준 녀석이 어디에 있는지 알아야겠어.”
죽을 때는 아니었다.
아직.
========== 작품 후기 ==========
아마 마지막 챕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