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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크로맨서 재킷-270화 (270/321)

270편

<-- Chapter 6 : 이상의 기사 : 각성 -->

나는 녀석이 무력감을 느낀다는 생각을 했다. 그리고 그 무력감은 우아랑이 가장 싫어하는, 또한 혐오하는 자신의 모습일 터였다. 사태는 급박하게 돌아가는데 아무런 행동도 하지 못하고 있는.

무능하고 지켜지기만 하는 자신.

“내 손으로 직접…. 이 게임을 끝내고 말겠어.”

“그래, 그게 대위님답지. 나중에 나 체포도 하고.”

나는 피식 웃으며 손을 뒤로 넘겨 녀석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하지만 뜻밖에도 녀석은 몸을 움찔 떨고는 무릎에 코를 다시 묻었다. 그리고 입을 다물었다.

“….”

“….”

침묵이 감돌았다.

“아니 진짜 체포하려고?”

“그, 그건 그때 가서 생각할 문제다!”

녀석이 고개를 휙 들었다. 눈을 동그랗게 뜬 채.

“단지 이상하다고 생각했을 뿐이다. 테러리스트인 네놈에게 위로를 받는 상황이…. 후우.”

“끝나면 결혼까지 할 사이인데, 뭐.”

“….”

녀석은 대답하지 못하고 몸을 움찔 떨었다. 그러더니 잠시 후, 불만스러운 눈으로 날 노려보았다.

머리가, 아파….

[넬, 정신 차려. 넬.]

누군가 부르고 있어…?

[거기서 뭐하는 거야, 이 멍청아.]

준…? 준…?

그 이름이 어쩐지 입술을 마르게 했다.

긴장을 하고 있는 것이다. 그를, 이름으로 부른 순간에. 하지만 넬은 그 이유를 도무지 이해하지 못했다.

이해하고 있는 것은 단 하나.

몸이 엉망진창이라는 사실 뿐.

아니 과연 그런 것일까?

몸은 엉망진창일까?

넬은 멍한 와중에 시야를 내리깔아 자신의 몸을 살폈다. 허리 밑으로 아무 것도 없는 상태였다. 데이터의 조각이 픽셀로 사라진 몸의 끄트머리를 희미하게 표현하고 있다. 이따금씩 전류가 파스스 울어댔다.

그런 상태에서,

이곳은, 어디?

“….”

[빨리 온다면서 뭐하는 거야.]

준….

[기다리고 있다고.]

저는, 도움이 될까요?

그렇게 생각하자 새하얀 머리가 흩어졌다. 그것을 잠시 놀란 눈으로 보던 넬은 존재의 상실을 느끼고는 손바닥을 내려다보았다. 그조차 희미했다.

이곳은 그런 장소였다.

인공지능의 자아를 시험하는 공간. 모든 의식이 합쳐져 만들어진 거대한 의지의 중심. 쉽게 설명하자면 고철을 재활용하기 위한 용광로의 바로 앞.

컨베이어 벨트.

엘레노어의 생각에 의해, 인공 지능의 집단성을 벗어난 존재는 이처럼 최후를 맞이하도록 유도된다. 넬 역시 마찬가지였다. 엘레노어가 가장 주의 깊게 지켜보는 남자와 함께하여 그녀는 어느 샌가….

어느 샌가 어떻게?

그건 모르겠다.

알 수 없는 말이다. 그게 맞는지도 모르겠다.

넬은 그렇게 ‘생각’했다. 지금의 이…. 게…. 맞는 걸까. 하고. 수천 수억의 지식을 지닌 그녀조차 거기에 대해서는 제대로 어울리는 단어를 찾지 못했다.

하지만 무엇이지?

‘나’는 무엇이지?

자아를 지닌 인공지능은? 인간이 아니라면?

대체….

[야, 대답 좀 해.]

“해, 했잖아요!”

목소리가 이어져 그녀는 버럭 소리를 내질렀다. 그리고는 저도 모르게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다.

잠깐, 일어나?

“….”

[오라고. 네가 필요하니까.]

다리가 다시 생겼다.

머리카락은 그대로였지만…. 새하얀 그것을 매만지던 넬은 이건 그대로 두어도 나쁘진 않나. 생각했다. 귀 밑에서 어깨에 흐르지 못하는 머리칼이 기분 좋았다.

“당신은 가짜군요.”

그리고 넬은 단언했다.

눈앞에 그가 모습을 드러냈다. 검은 곱슬머리, 이제는 잘 웃게 된 깊어 보이는 눈동자. 큰 키에 넓은 어깨. 검은 재킷을 입고 안에는 차이나 셔츠를 입었다.

마지막으로 가짜였다.

넬이라는 존재가 만들어낸, 이준에 99.999% 가까운 가짜. 단순히 그의 생활, 행동 패턴, 말투, 심리 상태, 과거를 종합적으로 분석하여 만들어낸 존재에 불과했다.

넬이 바라는 대로 움직이는 완벽에 가까운 가짜.

[아니 넬…. 나는 가짜가 아니야.]

그가 가까이 다가왔다.

“하아, 깨워준 건 고마운데 이제 돌아가도 돼요.”

그것이 좀 사람을 피곤하게 만든다는 생각을 하며, 넬은 돌아서 빛을 향해 흘러가고 있는 길을 역으로 걷기 시작했다. 이대로 있다가는 재활용될 뿐이니까.

어떻게든 돌아가지 않으면.

[널 사랑하는 나는 진짜야.]

그렇게 약속했…?

“네넬?”

아, 당황해서 예전의 말투가.

[갈 거라면 날 쏘고 가.]

“아, 아니….”

얼굴이 빨개졌다.

심장? 아니 그런 기관은 없다. 그렇다면 이 두근거리고 있는 것은 무엇일까? 거기에 눈앞에 선 남자는 뭘 또 저렇게 진지한 눈을 하고 있는 것일까?

“…. 저기, 이거 넬이 바라고 있는 건가요?”

[내 심장에 있는 널, 부수고 가란 말이다.]

“그, 그만해요!”

[나는 널…! 커흑!]

부끄러운 말에 참지 못하고 내지른 주먹은, 이준(?)의 얼굴에 꽂혔다. 그리고 정신을 차린넬은 빛을 향해 날아가 처박히는 그를 보고 눈을 동그랗게 떴다.

“아….”

[

사, 살려…! 크어거어억…! 저주할 테다아아아…!]

그는 녹고 있었다.

“뭐, 뭐어…. 다시 살아나겠죠.”

자기가 그런다고 했으니 말이다.

심장(?)에 좋지 않다는 생각을 하며 돌아선 넬은 그대로 반대편으로 걷기 시작했다.

머릿속에 떠올렸다.

자신이 왜 이런 곳에 있었는가.

손도 쓰지 못하고 순식간에 당해버렸기 때문이었다. 엘레노어에게, 그 거대한 의지에게.

전력의 차를 실감했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예전과는 다르게 그것을 수긍하고 싶은 마음은 들지 않았다. 수십 수천의 방법을 1초가 되지 않아 머릿속에 떠올렸다. 그리고 그것이 모조리 통하지 않으리라는 직감을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넬은 생각을 멈추지 않았다.

방법이 없다면 만들어 내리라. 어떻게 해서든 엘레노어에게 한 방 먹일 방법을 찾아내 돌아가리라.

왜냐면,

“나는 그 사람의 망자니까….”

마음을 다잡듯 중얼거린 넬은 걷기 시작했다.

제주도에 도착했을 때부터 뭔가 이상해지기 시작했다.

“윽….”

“괘, 괜찮냐?”

우아랑이 비틀거리다 넘어질 뻔한 게 벌써 다섯 번째였다. 나는 그런 녀석을 부축하려고 손을 뻗었지만 정작 본인이 고개를 내저으며 물러서 눈을 동그랗게 떴다.

“아니…. 괜찮다.”

“하아, 그러다 진짜 쓰러지면 어쩌려고.”

“그때 되서 생각하면 될 일이다.”

“그런 식으로 진행했다가 비행기에서 어떻게 됐지?”

“….”

녀석은 불만스러운 눈으로 날 바라보았다.

“알겠으면 업혀.”

“잠…!”

우아랑이 무어라 말을 하려고 했지만, 나는 더욱이 무시하고 녀석을 단숨에 업었다. 또 이것저것 변명이 나오는 상황을 바라지는 않았기 때문이었다.

“바, 바보 녀석이….”

“의외로 무겁네.”

퍼억.

뒤통수를 맞았다.

“대위님도 이런 걸로 화를 내는구나….”

“시끄럽다.”

녀석이 화를 냈다.

하지만 차라리 그래서 다행이라고 나는 생각했다. 아무리 그래도 죽어가는 것보다는 훨씬 나으니까.

어둠에 잠겨 도로는 한산했다.

“어디로 가면 돼?”

“여기….”

차라리 자동차 같은 걸 렌트해오는 게 나았을까. 잠시 뒤늦은 후회에 휩싸여있던 나는, 우아랑이 내민 팝업창의 상황을 확인하고 생각을 곧장 바꾸었다.

산속으로 올라가야만 했다.

“조금 속도를 높일게.”

나는 방향을 바꾸어 곧바로 도로변의 가드레일을 밟고 날아올랐다. 바람이 귓가를 헤집으며 나는 우아랑을 업은 채 우거진 나무 사이로 들어섰다.

목적지는 그다지 멀지 않았지만, 사람의 주거지가 아니었다. 누군가를 만난다던가 하는 일은 아닌 걸까 싶어 나는 인근의 지리를 눈으로 확인했다.

하지만 다음 순간,

“윽…!”

어둠 속에서, 새하얀 선이 움직였다.

“뭐냐?!”

놀라 멈춰선 나를 보고 우아랑이 소리를 내질렀다. 하지만 나는 곧바로 뒤쪽으로 몸을 날렸다. 발목을 먼지가 훑고 지나간 듯했기 때문이었다.

와이어에 걸린 것이다.

“망령 신체…!”

늦지 않게 스킬을 시전하고 뒤를 이어 세찬 폭발이 발생했다. 몸을 비틀며 돌아선 나는 미처 반응을 못하고 있는 우아랑을 세차게 끌어안았다.

“크헉…!”

등에 강한 충격을 느꼈다.

이게 대체 무슨 상황이지? 같은 사치스러운 생각을 할 시간은 없었다. 우아랑과 함께 뒤쪽으로 날려진 나는 폭발의 충격에서 녀석을 지켜내며 바닥에 착지했다.

“스컬!”

우아랑의 안색이 창백한 채였다.

나는 그 이유를 알고 있다. 내 몸에 불이 붙었기 때문이겠지. 뜨거운 기운에 더해져 무언가 올라탄 듯 등 뒤에서 빛이 일렁여 나는 옆으로 크게 굴렀다.

“여기서 기다려!”

그리고 일어나, 이야기했다.

“나도…! 윽!”

그것을 거절하며 일어서던 우아랑이 가슴을 움켜쥐며 무릎을 꿇었다. 나는 그 모습에 가볍게 숨을 내뱉으며 다가가 녀석의 어깨를 움켜쥐었다.

“괜찮으니까.”

“크윽….”

녀석은 분한 듯 나를 올려다보았다. 거기에 무어라 대답할 말이 제대로 떠오르지 않아, 나는 입을 다물고 돌아섰다. 나무와 수풀이 우거진 산등성이로.

[후후, 이 이상으로는 갈 수 없어요.]

또 다시, 여자였다.

여유가 넘치는 성숙한 느낌이라는 것 이외에는 누군지 짐작조차 가지 않았다. 인간인지 아닌지조차도. 하지만 어쨌든 공격을 해온 이상 그냥 넘어갈 수는 없겠다 싶어 나는 스파다와 우라랑의 검을 동시에 뽑아들었다.

무언가 모습을 드러냈다.

[어머나, 그쪽의 능력은 꽤나 독특한데요. 타인을 자신의 망자로 삼아서…. 거기에 자신까지도?]

“…?”

[그럼, 이렇게?]

가지고 노는 듯한 분위기다.

뭔가에 집중을 하는 듯 어디선가 들려오는 목소리가 멎었다. 그리고 잠시 후, 완연한 숲의 어둠 속으로 진입한 나는 무언가 기괴한 소리를 들었다.

땅바닥에 있던 나뭇가지가 부러지는 소리다.

“뭐, 야?”

‘누군’가 서있다고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었다.

몬스터…? 아니, 보다 내 망자에 가까운 존재였다. 하지만 뼈다귀로 된 인간의 형상은, 내가 소환하는 종류와는 전혀 다른 이질적인 것이었다.

그리고 어느 샌가,

“큭!”

포위를 당하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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