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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크로맨서 재킷-267화 (267/321)

267편

<-- Chapter 6 : 이상의 기사 : 각성 -->

이건 분명히 들켰다, 상큼하게 웃고 있는 진아 씨의 얼굴은 그런 뉘앙스를 처절할 정도로 풍기고 있었다. 하지만 옆의 우아랑은 전혀 그 사실을 알아차리지 못했다.

“적이었던 남자와 사랑에 빠지다니…. 나도 그런 적이 있지만, 역시 로망이 있는 일 아니겠어?”

“그, 그런 것 같습니다.”

놀리는 말에도 당황해 대답할 뿐.

“…. 하아.”

“타, 타나 오빠. 가만히 있을 거야?”

트리슈가 속삭인다.

“아니 뭘 어떻게….”

“뭐라도 해야지!”

세상에서 제일 어려운 주문이다.

“정현이는 알아?”

“아직…. 모릅니다.”

“흐음, 언제 말할 생각이야?”

“그, 그건.”

진아 씨의 질문에 적당히 얼버무리던 우아랑이 꿀 먹은 벙어리가 되었다. 물론 급조한 거짓말이란 캐물을수록 막히는 법이긴 했지만 녀석은 그 정도가 심했다.

“도와주시겠습니까?”

때문에 나는 곧바로 상황을 정리했다.

“저는 이 녀석을 갤러해드로 만들 겁니다. 그리고 함께 아서리안을 끝낼 생각이죠.”

“할 킬러즈가 이끄는, 현실과 가상이 융합된 새로운 세상이 마음에 들지 않기 때문에…. 맞지?”

“네, 저희는 같은 의견입니다.”

우아랑이 진지한 눈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글쎄…. 사실 회의적이긴 한데.”

“무엇이 말입니까?”

“애초에 모든 게 말이야. 엘레노어를 통제 하에 두어 새로운 세계를 열겠다는 할 킬러즈나 너희나…. 제정신이냐 싶은 거지.”

“하지만 저희에게는….”

“아 그래, 엑스칼리버. 알고 있지. 나쁘진 않다고 했잖아. …아 이건 너희한테 한 말이 아니던가.”

우아랑의 반발에 대답하던 진아 씨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하지만 이내 입술을 매만지며 말을 이었다.

“난 모르겠거든. 우리가 엘레노어를 그런 식으로 해서 이길 수 있을까? 아니 그런 말이 통하는 상대인가?”

“….”

“봐봐 너. 이름이…. 이준이라고 했지. 너, 혹시 지금 상황에서 네가 국가에 대항한다는 게 어떤 의미인지 이해하고 있어?”

표정이 사뭇 진지했다.

“말도 안 되는 거야. 사실. 아무리 할 킬러즈가 비효율의 끝을 달리는 군 기관이라고 할지라도. 그런데 잡기는커녕 공정한 ‘경쟁’ 속에 너와 누가 엘레노어님께 먼저 도달하냐 마느냐를 결정하고 있지.”

“그건….”

“간단해. 모조리 통제당하고 있기 때문이야. 엘레노어에 의해. 그 무한한 권능을 지니신 분의 주머니 속에서 우리는 놀아나고 있을 뿐이라는 거지.”

“….”

“그런데도 대항하는 게 말이 될 거라고 생각해? 사실 난 해결 방법은 단 하나밖에 없다고 보는데.”

“그게 뭐죠?”

“기지국 다 폭발시키고 디멘션 커넥터를 떼는 거.”

“…?”

“근데 불가능하잖아. 그러니까 항복해야지.”

“그럴 수 없으니 이러고 있는 거죠.”

“왜? 송유하도 그러던데.”

“예, ‘누나’는…. 뭐 아마 정의감에 비롯되어 한 행동이었겠지 싶기는 한데….”

“아, 그건 아니었는데.”

“네?”

나는 놀라 되물었다.

“남동생한테 부끄러운 누나가 되고 싶지 않아서. 그렇게 이야기했거든. 갤러해드 그 녀석.”

“….”

나는 입을 다물었다.

모르겠다. 알 수 없는 기분이었다.

“저는….”

“응, 잘생긴 청년.”

진아 씨는 웃으며 날 바라보았다.

시험해보려는 듯했다.

“사실 전혀 다른 이유인데요.”

“그래애?”

“네, 제가 이 게임을 끝내려는 이유는….”

그 개자식이 사람을 열 받게 만들었으니까.

지금은 단지 그뿐이다.

나는 그렇게 엘레노어를 깔보았다.

“아랑이를 잘 부탁해.”

“네?”

갑작스러운 말에 나는 눈을 동그랗게 떴다. 가벼운 아우터를 걸친 채 우리를 문밖까지 배웅해주던 진아 씨가 가볍게 미소를 지었다.

“그게 무슨 말이죠오.”

트리슈가 가늘게 눈을 뜬 채 그런 그녀를 노려보았다. 하지만 진아 씨는, 그런 트리슈를 귀엽다는 듯 보고는 이내 나를 돌아보았다.

“저 아이, 한 번은 무너질 테니까.”

“….”

“그래도 그쪽이 있으면 괜찮지 않을까 싶은데. 농담으로라도 맘에 들지 않는 상대와 결혼한다는 말은 안할 애거든. 기본적으로 남자를 좀 하찮게 여기니까.”

“역시 알고 계셨군요.”

근데 하찮게 여긴다는 건 무슨…?

“아, 자기 아버지가 워낙 대단한 사람이니까. 뭐랄까…. 일종의 일렉트로닉 콤플렉스가 있어서.”

“…. 엘렉트라 콤플렉스겠죠.”

“뭐, 그런고로 잘 부탁해.”

“노력해보겠습니다.”

나는 적당히 대답하고 돌아섰다. 서진아 씨가 하는 말을 이해했기 때문이었다. 그녀가 다음 퀘스트로 향하는 키 아이템을 준 시점에서.

“타나 오빠.”

그리고 트리슈의 진지한 목소리가 이어졌다.

“응.”

“무너질 거라는 말은 역시….”

“‘그레일’과 관련된 일이겠지.”

우리는 같은 생각을 하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트리슈가 예전에 했던 말을 머릿속에 기억해냈다. 이 아서리안이라는 게임의 ‘기사’는, 전설상의 기사에 교묘하게 덧씌워져 그 어떤 부분을 따르게 된다고.

랜슬롯이 나를 위해 기사단 전체를 배신한 것이라던가. 아니면 형제의 사랑을 파멸시킨 트리스탄. 외팔이 베디비어. 그리고 대리로 내세워진 모드레드와….

유하의 경우에는 완벽한 기사로서의 갤러해드.

우아랑의 경우에는 성배를 찾는 갤러해드.

“무슨 이야기를 하고 있었나?”

적당히 머릿속을 정리하며 돌아가자, 우아랑이 전봇대 옆에 서있었다. 힐끔 시선을 피한 녀석이 한숨을 내쉬었고 트리슈가 킥킥 웃으며 그 곁으로 다가갔다.

“왜 혼자 있어? 대위님.”

“무, 무슨 말이냐?”

“불편해서 그런가했지.”

싱긋 웃은 트리슈가 부드럽게 말을 걸었다. 뭔가 고민이 있는 듯 보이는 우아랑을 배려해준 것이리라. 나는 그런 그녀의 행동을 감사히 여겼다.

“퀘스트 중에 뭐라도 있었어?”

나도 이렇게 편하게 말을 걸 수 있으니.

“딱히….”

중얼거린 그녀가 앞장서 걷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내 팔짱을 끼며 매달린 트리슈를 바라보았지만 불편하다는 듯 입술을 다무는 것 이외에 행동을 취하진 않았다.

“….”

사실 엄청나게 어색한 광경이다.

테러리스트인 트리스탄과 할 킬러즈의 요원인 우아랑 대위님께서, 십 년쯤 알고 지낸 친한 친구마냥 저렇게 팔짱을 끼고선 함께 걷고 있다니 말이다.

이후 맨홀을 열고, 우리는 다시 지하로 내려왔다.

“스컬, 확인해둬라.”

바닥에 발을 디디자, 우아랑이 내 쪽으로 퀘스트창을 내던졌다. 나는 곧바로 그것을 받아 내용을 확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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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픽 퀘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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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갤러해드의 여정 9/10

난이도 : ★☆☆☆☆☆☆☆☆☆

내용 : 목적지에 문제없이 도달해 기사가 될 준비를

하세요.

제한 시간 : 없음.

보상 : 받아들이기 힘든 진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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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길한 보상이다.

“….”

“위치는…. 제주도로군.”

하지만 우아랑은 아무렇지도 않아보였다.

“가는 건 배로?”

“흠….”

내가 다시 묻자 녀석은 고민에 잠겨서 입을 다물었다. 하지만 뒤를 이어, 무언가를 떠올린 듯 턱을 매만지며 나를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역시 비행기가 낫겠군.”

“…. 너무 의기양양한 표정인데.”

“좋은 생각이 있기 때문이다. 바보 녀석.”

우아랑은 곧바로 팝업창을 빼들었다.

그래서 그 좋은 방법이라는 게,

“….”

비행기 안에 ‘나’는 몸을 숨겨서 가는 거였냐고.

“뭔가 불만이라도 있나?”

공항에 도착한 뒤, 내가 노골적으로 불만에 휩싸인 표정을 짓자, 우아랑은 아무렇지도 않게 물어왔다. 나는 머리 하나 정도 작은 녀석을 어이가 없어 내려다보았다.

아무것도 모른다는 눈이다.

“아니, 아무것도.”

“그러면 됐다.”

“….”

그래, 이게 다 내 업보겠지.

어쨌든 작전의 형태는 지난번과 별반 다르지 않았다. 무척이나 간단했고, 또한 나만 고생을 하는 일이었다. 물론 우아랑은 몸 상태가 상태이니만큼 별 수 없었지만.

[올 때 감귤초콜릿 사와야 되요.]

그렇게 생각하던 중, 목소리가 이어졌다.

“그래, 가웨인이랑 라이오넬한테도 나누어주자고.”

뒤를 돌아본 나는, 유리창 너머에 서있는 스포츠카를 보며 한숨을 내쉬었다. 여기까지 우리를 데려다준 베디비어가 그 안에서 싱긋 웃어보였다.

[조심해야 해요.]

그리고 이내, 차를 출발시켰다.

“너희나.”

나는 거기에 한 마디를 덧붙였다.

제주도에 가는 것은 나와 우아랑 둘이었다. 비행기에 잠입하는 일인 만큼 이번에도 다수가 움직일 수는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는 대신 나머지 멤버들은 린슬렛과 비비안을 도와 엑스칼리버의 탈취 준비를 돕게 되었다.

“뭐…. 별 문제는 없겠지만.”

트리슈라면 비비안에게도 금방 언니! 언니! 하면서 달라붙겠지. 그리고 비비안은 그걸 받아들이지 못해서 상황이 어색해질 테고 린슬렛이 한숨을 쉬겠고.

“가자, 스컬.”

“아, 그래.”

쓰 잘 데기 없는 생각을 하고 있자니 수속을 마친 우아랑이 돌아왔다. 거기에 고개를 끄덕이며 반응한 나는, 뒤를 이어 탑승 게이트 쪽을 살펴보았다.

출발까지는 10분 정도가 남았다.

“랜딩기어에 올라타면 되는 거지?”

“그래, 내가 탑승 게이트를 지나는 동안…. 들키지 않도록 거리를 유지하는 것이 관건이겠군.”

30미터 전후.

“어떻게든 해야지. 너를 죽게 놔두고 싶진 않으니까.”

나는 적당히 말을 중얼거리며 그대로 앞머리를 매만졌다. 생각에 잠겨, 대충 게이트를 통과해 어떤 식으로 녀석과 거리를 유지할지 고민을 해보기 시작했다.

물론 일단 모드레드의 스킬을….

“우아랑?”

그러던 중, 나는 아예 미동조차 않는 우아랑의 모습에 고개를 갸웃거렸다. 눈을 동그랗게 뜨고 있던 그녀는 나와 시선이 마주치자 이내 뒤로 물러섰다.

“….”

“왜 그래?”

“아, 아니. 아무것도 아니다.”

녀석은 그렇게 중얼거렸다.

“아무것도 아니라고 하지 않았나.”

수긍을 하려고 하니 도리어 눈살을 찌푸렸다.

“어, 음….”

“아무 말도 하지 말거라.”

“알았어.”

“아무 말도 하지 말라고 하지 않았느냐!”

“…. 알.”

“큭!”

손이 뻗어져왔다.

눈 바로 앞에.

“….”

그제야 나는 완전히 침묵했다.

“한 가지 묻고 싶은 게 있는데.”

이후 곧바로 다른 문제로 말을 걸었지만.

“또 뭐냐.”

거기에 지쳐 포기한 듯 우아랑이 눈을 가늘게 뜨며 날 돌아보았다. 망설이던 나는 이내 천천히 말을 이었,

“전화가….”

걸려오기 전까지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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