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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크로맨서 재킷-265화 (265/321)

265편

<-- Chapter 6 : 이상의 기사 : 각성 -->

의외로 제대로 생활하고 있는 모양이었다.

“….”

전혀 예기치 못했던 상황에, 모드레드는 그 큰 눈망울이 쏟아지지 않을까 싶을 정도로 동그랗게 떴다. 바로 앞의 벽이 갈라지며, 그 안에서 세 평 남짓한 주거 공간이 모습을 드러냈기 때문이었다.

무척이나 미래 지향적인, 새하얀 방이었다.

공간을 최대한 아낀다는 느낌이었다. 정보량 송신 합금으로 인해 내부의 가구들은 마치 마시멜로처럼 미끈거리며 유기적으로 움직였다. 방안에서 활동을 하는 사람의 생각에 따라 변화하는 듯했다.

“아, 모디모디.”

방안에 앉아있던 린슬렛이 일어섰다. 당당하게 웃는 모습이 어른스럽게 느껴져, 모드레드는 고개를 꾸벅 숙이며 그 곁으로 다가갔다.

“린슬렛님.”

“오는데 귀찮지는 않았어?”

린슬렛이 반갑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며 손을 잡았다. 모드레드 역시 할 수 있는 선에서는 최대한 활짝 웃었다. 입술을 부드럽게 늘어뜨리는 정도였지만.

“네, 어차피 배가 근처까지 와주었기 때문에.”

단순히 근처에 있던 맨홀을 통해 지상으로 올라와 오기만 하면 되는, 간단한 일이었다. 근처를 순찰 중이던 군인이 없던 건 아니었지만 금새 돌파했다.

“발렌타인이 없었으면 참 피곤했을 거야. 그치?”

“네, 그랬을 겁니다.”

대화는 자연스럽게 이어졌다.

하지만 둘은 사실, 서로의 눈치를 조금씩 보고 있는 상황이었다. 모드레드는 린슬렛의 진의를 알아볼 요량에 온 것이었고, 당사자 역시 그것을 모르지는 않았다. 때문에 두 사람은 일단, 자칫 흉악해질 수 있는 분위기를 대화를 통해 누그러뜨리려고 했다.

어쨌든 원만히 풀고 싶다.

그런 기분은 공통되었으니.

“들어와, 좁지만.”

린슬렛이 뒤로 물러서며 권하자 모드레드는 고개를 끄덕이며 안으로 들어섰다. 새하얀, 사람의 허리까지 오는 구체가 늘어선 세로로 긴 방이었다. 하지만 그것은 이내 형태가 바뀌어 의자가 되었다.

“쭉 이곳에서?”

“응, 의외로 편하다니까. 밖에 안 나가도 되고.”

“그렇, 습니까.”

확실히 ‘합금’이 필수적인 가구의 역할을 맡아준다면 얼마든지 시간을 보낼 수 있겠지 싶었다. 거기에 평범한 건물의 공간을 변형시켜 활용하는 만큼 할 킬러즈에게 발견을 당할 확률도 그만큼 줄어드리라.

“…. 참고로 화장실은 따로 가.”

“? 그렇습니까.”

감탄하고 있자니 린슬렛의 말이 이어졌다. 거기에 별 생각 없이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한 모드레드는 변형되어 만들어진 의자에 조심스럽게 앉았고,

“정말이야.”

진지하게 말을 덧붙이는 린슬렛과 눈이 마주쳤다.

“…. 예, 예에.”

“뭐, 그쪽 퀘스트 진행은 잘 되고 있어?”

뒤를 이어, 반대편의 의자에 걸터앉은 린슬렛이 말을 이었다. 그녀 쪽에서 먼저 말을 꺼낼 것이라는 의식은 없었던 터라, 모드레드는 조금 당황해 대답했다.

“갤러해드 퀘스트라면…. 거의 완료했습니다.”

하지만 들어두어서 나쁠 건 없겠지.

어쨌든 목적은, 진의를 들어두는 것이었다. 그녀가 무슨 이유로 이렇게 반쯤 제멋대로 엑스칼리버와 그에 대한 계획을 짜두었는지에 대해서.

“이야기는 들었지? 티티가 아니라….”

그리고 왜 타나토스에게 갤러해드가 되지 말라는 권유를 하였는가에 대해서.

“우아랑 대위가 된다는 것 말입니까?”

“그래, 어떻게 생각해?”

“…. 네거티브. 입니다.”

모드레드는 일부러 말을 꼬았다.

그로서 감정을 슬며시 감추려는 심산이었다. 하지만 갤러해드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자 차갑게 굳어진 모드레드의 눈동자에서는 살기마저 느껴질 정도였다.

“부정적이라는 거야?”

린슬렛은 눈썹을 찡그리며 되물었다.

“네, 굳이 그럴 필요가 있나 싶어서 말입니다. 애초에 우아랑 대위는 저희의 적이니 만큼…. 최악의 상황이 벌어질 가능성도 있지 않습니까?”

여기에서 말하는 최악의 상황은 물론 배신이다.

기껏 협의 하에 갤러해드 퀘스트를 수행한다고 한들, 이후의 약속을 우아랑이 이행하지 않을 가능성이 있으니까. 그런 위험성을 굳이 감내해야하나 싶었던 것이다.

“사실 티티한테는…. 굳이 엘레노어가 깔아둔 듯한 길을 그대로 따라갈 이유가 있냐고 설득했지만.”

고민에 빠져 있던 린슬렛이 조심스레 말을 이었다.

“사실, 유하 씨와 관련된 일인 만큼 또 무슨 일이 생긴다면 쉽사리 냉정함을 잃을 거 같았거든. 그럴 바에야 차라리 포기하는 게 낫지 않나 싶었던 거야. 꼴사나운 질투라는 소리를 들어도 어쩔 수 없지만….”

그 표정이, 짙고 깊은 자기혐오에 휩싸인 채였다.

결국 그에게 갤러해드를 포기하라고 한 가장 큰 이유는 질투심 때문이라는 걸까. 린슬렛이라는 여자는 그 사실을 인정하고 있는 것일까.

“그렇게 생각하지 않으셔도 될 텐데 말입니다.”

모드레드는 쓰게 웃으며 중얼거렸다. 결국 린슬렛은, 자신의 그런 행동이 꼴사나운 질투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그 속죄로서 의욕에 넘쳐 일을 진행하고 있다는 것일까. 모드레드는 상황을 그렇게 이해했다.

“응?”

시선을 피한 채로 있던 린슬렛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아마 타나토스 씨는 인생의…. 그것도 성인이 된 이후의 대부분을 유하 언니의 영향 아래에 놓여있었겠죠.”

모드레드는 그렇게 중얼거리고, 이으려던 한 마디를 삼켰다. 자신 역시 타나토스처럼 다른 사람의 영향 아래에 놓여있기 때문에 그 감정을 알 수 있다는 말을.

“기억을 잃기 전의 유하 언니와 잃은 후의 언니, 양쪽 모두로부터. 그렇기에 그는 가상과 현실을 동등한 세계라고 여기게 되었을 겁니다. 어느 한쪽을 부정하면 송유하라는 사람은 아무것도 아니게 되기 때문에.”

“그렇겠지….”

린슬렛은 씁쓸한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하지만 그거 아십니까?”

“뭘?”

“그가 예전에 그랬었습니다. 지금 갤러해드에 대한 자신의 감정은 집착에 불과하다고.”

그래서 쉽사리 포기를 한 게 아닐까 싶었다.

“깨달은 거죠. 제가, 그리고 당신이 그랬듯이. 그 역시…. 그리고 그건 아마 저희로 인해.”

“….”

“괜찮지 않습니까. 린슬렛님. 질투 좀 해도.”

“고, 마워.”

린슬렛은 당황해 대답했다.

하지만 조금 안심한 눈치였다.

“뭐, 그와는 별개로…. 저는 효율을 중시하는 인간이기 때문에. 네거티브라고 말씀드린 겁니다.”

뒤를 이어, 가볍게 헛기침을 한 모드레드는 다시금 차갑게 물든 눈으로 린슬렛을 바라보았다. 새하얀 볼을 뾰료통하게 부풀린 채로.

“굳이 그럴 필요가 있습니까? 알기만 하면 됐지.”

“그, 그건….”

“네, 사실 저희를 배려한 거겠죠. 유우부단하면서.”

“유우…?”

린슬렛은 분위기가 묘해진다고 생각했다.

“기본적으로 모순적인 인간이라는 겁니다. 저와의 관계를 진지하게 고민하는 듯하면서…. 린슬렛님이나 트리슈님, 거기에 유하님이나 우아랑….”

“우아랑?!”

린슬렛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다.

“시간문제일 듯합니다.”

“…! 아니 걔는 또 왜?!”

“사실 일방적으로 여성 쪽에서 반하는 관계지만…. 그는 절대로 그걸 거절하지 않아서 문제겠죠.”

“티티이이이이…!”

분노에 몸을 떠는 린슬렛. 예상한 바였던 터라 모드레드는 가볍게 미소를 지어보였다.

“얼른 준비를 끝내시죠.”

“그래!”

“어떻습니까? 정확히 무엇을….”

“갤러해드 퀘스트가 완료될 시점에서 움직일 거야. 할 킬러즈의 요원들을 상대하기 위해 우리 쪽 용병단원들이 투입되어서….”

모드레드는 능숙하게 끌어냈다.

린슬렛의 의욕을, 그리고 계속 궁금했던 엑스칼리버를 탈취하기 위한 계획을. 그녀는 예전 같았으면 자신이 이런 식으로 대화를 끌어나가지 못했을 것이라는 자각을 하고는 빙긋 웃었다.

변한 것이다.

그가 자신으로 인해 변했듯이.

“여기 와본 적이 있나봐?”

여자가 돌아선 뒤 나는 곧바로 질문을 던졌다.

“이 집이 말이냐?”

거기에 대답한 우아랑은 길게 한숨을 내쉬며 주변을 둘러보았다. 널찍하게 정원이 뻗은 한옥 저택. 거기에 뭔가 추억이라도 있는 듯 그리운 시선이었다.

“한때는 살기도 했었지.”

“그래서 가있으라고 했던 거군.”

“그래, 이 저택에는 손님이 머무르는 방이 있으니. 예전에는 어머니의 사업 상대들이 자주 왔었지.”

“그렇다면 저 여자는…. 회장님의 친구?”

“동료와 같은 개념이라고 보면 되겠지.”

우아랑은 짧게 말을 끊었다.

“흐음, 성격 안 좋아 보이던데.”

“트리슈….”

“응? 왜?”

내가 가볍게 핀잔을 주자 트리슈는 아무것도 모른다는 듯이 웃었다. 여전히 내게 팔짱을 낀 채, 그녀는 여자와 마주쳤던 뒤를 돌아보며 말을 이었다.

“순순히 협력해줄 것 같지는 않아.”

“하지만 이모님은….”

“당신 보고도 딱히 반가워 보이지는 않던데?”

“….”

우아랑은 대답하지 못했다.

“잠깐…. 살펴볼까?”

그리고 트리슈는 치맛자락을 매만졌다.

“잠….”

“이미 늦었어. 대위님.”

그 안에서 카메라가 빠져나왔다. 당황해 눈을 동그랗게 뜬 우아랑과, 반대로 미소를 짓는 트리슈. 두 사람의 사이에 선 나는 가볍게 손을 들었다.

“좋아, 가보자.”

그리고 트리슈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헤헤♡ 이래야 타나 오빠지.”

“확실히 뭔가 수상해 보이기는 하니까.”

“끄응…. 모두 수포로 돌아가면 어쩔 생각이냐.”

“그럼 뭐, 다 때려치우고 귀농하지.”

“…?”

“트리슈는 새참을 준비하는 걸로?”

그때는 김시우겠지.

“요는 걱정이 너무 많다는 말이야.”

“아니 돌다리도….”

“지금은 아니지만.”

나는 우아랑의 말을 자르고, 이내 집중하기 시작한 트리슈를 돌아보았다. 하늘 높이 떠오른 카메라가 저택의 전체를 스캔하여 자그마한 미니어처로 만들었다.

“네트워크와 외부를 살펴볼게.”

그리고 트리슈는 조그마한 붓을 꺼내들었다.

“…?”

뭔가, 유적을 발굴할 때 쓸 법한 부드러워 보이는 붓이었다. 실존하는 것은 아닌 듯해 내가 고개를 갸웃거리자 트리슈는 웃으며 말을 이었다.

“아, 새로운 스킬이야. 어때, 귀엽지?”

그리고 그녀는 눈앞에 미니어처가 되어 떠오른 저택을 털어내기 시작했다. 그것은 단지 하나의 이미지인 듯싶어 나는 그것을 진지하게 관찰하며 이리저리 돌려보는 트리슈를 옆에서 한동안 지켜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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