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네크로맨서 재킷-264화 (264/321)

264편

<-- Chapter 6 : 이상의 기사 : 각성 -->

“무례를 저질렀습니다.”

뒤를 이어, 라이오넬이 상황을 진정시키기 위해 앞으로 나섰다. 그 모습을 보고 잠깐 멍해져 있던 헥터가 이윽고 눈을 동그랗게 떴다.

“당신 대체 무슨 소리를…!”

“조용히 해라.”

라이오넬은 차갑게 중얼거렸다.

그 역시 입을 다물고 있었을 뿐, 상황을 파악하지 못하고 있던 것은 아니었다. 헥터가 상황에 있어 우위를 점하기 위해 일부러 조롱하듯 말을 던졌음을.

하지만 눈앞의 상대에게는 그게 통하질 않는다.

그렇다면 숙이고 들어가는 것이 옳겠지.

“당신은?”

앞으로 나선 라이오넬을 보고 진아가 침착하게 목소리를 냈다. 희미한 담배 연기가 허공에 흩날렸다.

“라이오넬. 할 킬러즈 소속의 요원.”

“하, 그쪽은 죄다 그런 이름으로 서로를 부르는 거야?”

“…. 일종의 코드네임입니다.”

“웃기는군. 쓰레기들 주제에.”

진아는 차갑게 독설을 내뱉었다. 뒤에 선 헥터가 발끈해 앞으로 나서려고 했지만 라이오넬은 어깨를 쭉 펴며 그 앞을 가로막았다.

이런 반응을 예상치 못한 건 아니었다.

“그래서? 내게 무슨 용건이지?”

“저희 쪽에서 대(對) 엘레노어 용으로 개발 중인 신 병기가 있습니다. 혹시 개발이나 이후의 디벨롶에서 도움을 주실 수는 없을까 해서….”

“아, 엑스칼리버를 말하는 거구나?”

“…?”

누군가 말을 했던가.

“편협하고 구식이지. 최신예 병기를 없애기 위해 짱돌을 수없이 던져 파묻으려는 짓이랄까.”

진아는 냉정하게 엑스칼리버를 평했다.

“그래서 뭐…? 남는 건 반복과 효율, 그리고 속도 테스트지 나처럼 다 늙어빠진 여자가 아닐 텐데.”

“그 부분을 확인해주셨으면 하는 거예요.”

다시금 헥터가 나섰다.

“진아 씨…. 예전에 분명 엘레노어의 초기 개발에 참가하셨잖아요? 그렇기 때문에 보시면 아시겠죠. 엑스칼리버가 엘레노어의 가슴에 꽂힐지 아닐지를.”

“발상 자체는 나쁘지 않아. 결국 가장 원시적인 영역에서 상대방을 봉쇄하겠다는 거잖아. 남는 건 그걸 사용하기 위해 필요한 에너지의 확보 정도겠지 싶은데….”

“그거라면, 현재 협의를 진행 중이에요.”

“어디랑?”

“중국이죠. 그리고 아프리카의 여러 국가.”

“…. 당신네들 진짜 최악이구나.”

진아는 그런 몇 마디만으로 상황을 파악하고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라이오넬은 역시, 우정현 회장이 소개를 시켜준 사람답다는 생각을 했다.

그녀는 알아챈 것이다. 현재의 일이 국제 사회의 충분한 협의를 거치지 않은 채 진행이 되고 있음을.

“중국은 시진핑이 암살당하고 누가 서기장이지…? 근데 그쪽은 개방 정책 취한다고 하지 않았나?”

“물론, 개방 정책이죠. 엘레노어와의 ‘협력 관계’가 원활히 이루어지면 나타날 새로운 세계에 대한….”

“나 하나도 제대로 말로 설득하지 못하고 있으면서 대체 무슨 소리를 하는 건지 모르겠네. 어렸을 적에 부모님한테 사랑을 받지 못하고 자랐나봐?”

“….”

“뭐, 그렇다고는 해도 내가 딱히 거절할 수 있을 것 같은 상황은 아니지만.”

제멋대로 말을 하고, 제멋대로 결론을 내렸다.

“이쪽으로 와요.”

분노가 폭발하기 직전에 있는 헥터를 유린하듯 그녀는 요염하게 정원으로 내려섰다. 그리고는 입에 물고 있던 담배를 어디론가 휙 내던지고는 걷기 시작했다.

두 사람은 반대편의 널찍한 안채까지 안내되었다.

“여기서 기다리고 있어요. 뭐 마실 거라도 대접하고 싶…. 지는 않으니까 배고프면 풀 뜯어먹고.”

방문을 열어준 진아가 돌아섰다. 사랑채 방향으로 다시 걸어가는 그녀의 뒷모습을 바라보던 헥터는, 먼저 들어서있던 라이오넬을 따라 방안으로 들어섰다.

“젠장, 저 성격 더러운 여자….”

바닥에 주저앉은 헥터는 참았던 욕설을 내뱉었다. 거기에 반대편의 라이오넬이 차갑게 반응했다.

“조용히.”

“뭐 어대. 듣는 년도 없을 텐데.”

“혹시 모르는 일이지.”

“뭐?”

“엑스칼리버에 관해서 자세히 알고 있었으니.”

그는 침착하게 눈동자를 굴려 주변의 풍경을 확인했다. 방안은 차가운 기운이 느껴져, 그는 이 널찍한 집에 서진아 이외의 인물은 없는 걸까. 의문을 느꼈다.

대체 어떻게 된 일인 걸까.

“…?”

팝업창을 매만지던 우아랑의 손이 갑작스레 멈췄다.

뿐만 아니라 걸음까지.

“무슨 일이야?”

뒤쪽에 서있던 나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물었다. 고민에 잠겨 있던 녀석이 곧이어 날 돌아보았다.

“어쩌면 아는 사람일 수도 있겠다.”

“뭐가?”

거기에 트리슈가 되물었다.

“이 신호를 보내고 있는 사람이.”

우아랑은 확신은 하지 못한 상태에서 그렇게 중얼거렸다. 잠시 그 말을 듣고 고민에 빠져있던 나는 녀석이 들여다보고 있던 팝업창을 가져와 확인했다.

데이터베이스에서 별다른 자료를 찾지 못해, 우리는 탐색의 방향을 선회했다. 처음에 마커가 나타난 지점을 크게 잡고, 발생하는 신호를 추적하기로 했다.

그리고 현재 이곳이었다.

“아는 사람이 살아?”

“그것도 그렇지만…. 거기다 그 사람이 내가 알기로는 이런 쪽으로 조예가 깊어서 말이다.”

“그게 사실이라면 굉장한 우연이겠군.”

“글쎄…. 필연이라고도 볼 수 있겠지.”

우아랑은 어깨를 으쓱하고는 앞장서서 걷기 시작했다. 어쨌든 상자를 열어보기 전까지는 알 수 없었기 때문에 우리는 좁고 경사진 골목을 계속해서 올라갔다.

“부자 동네네.”

트리슈의 감상이 이어졌다.

“그런가…?”

“응응, 여기 땅값 엄청 비싸잖아.”

“이런 곳에 유하의 파트너가….”

“우 대위님 하신 말씀이 대충 맞을 것 같은데.”

“무슨 말이지?”

흥미를 느낀 듯 우아랑이 힐끔 돌아보았다. 거기에, 팔을 휘젓듯 뻗은 트리슈가 천천히 말을 이었다.

“회장님과 비슷한 경우가 상상이 되서 말이지. 아서리안에 흥미를 가지고, 필요한 정보를 얻기 위해 유하 언니에게 협력을 구했던 게 아니었을까? 이 사람.”

“그래서 파트너라는 거군.”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정현 씨가 내게 그랬던 것처럼 지금 우리가 찾고 있는 이 미지의 대상 또한 유하와 협력 관계였던 걸까.

그렇게 생각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우아랑에게 인도되어 나는 어느 한 저택 앞에 도착했다. 궁궐과도 같은 모양새에서는 사람을 압도하는 분위기가 느껴졌다.

“역시나….”

우아랑은 골치 아픈 듯 이마를 감싸 쥐었다.

“아는 사람의 집이야?”

“…. 그래.”

사실 아는 사람이라는 말에, 처음에는 쉽게 갈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했다. 하지만 지금 우아랑의 표정에서는 불편하다는 기색이 강하게 느껴졌다. 나는 어쩐지 불길한 예감에 휩싸였다.

“일단 불러보겠다.”

“뭐, 그래….”

하지만 어쩔 수 없나.

그렇게 생각하고 각오를 굳혔다. 뒤를 이어, 팝업창을 통해 집 주인에게 방문을 알린 우아랑이, 눈썹을 찡그리며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불쾌한 기분을 견뎌내듯이.

“괜찮아?”

나는 그 어깨에 손을 얹었다. 지친 표정으로 날 돌아본 녀석이 씁쓸하게 웃었다.

“아…. 괜찮다.”

“그렇게 불편한 사람이야?”

“아니, 그런 이유는 아니다. 다만…. 내가 별 것 아니라고 생각하며 살아왔던 과거를 다시금 차근차근 마주해나가야 하는 일이 되어버렸으니까.”

“모르레드라던가?”

“그건 무슨 소리지?”

“…. 아니 아무것도.”

설마 아직 눈치 채지 못하고 있나.

그렇게 생각한 나는 볼을 긁적이며 다시 물러서려고 했다. 하지만 뒤를 이어, 가볍게 숨을 몰아쉰 우아랑이 자신의 어깨에 올려진 내 손을 움켜쥐었다.

“….”

그리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어쩐지 볼이 붉어진 게 아닐까. 생각할 무렵,

“흥흥.”

가볍게 코웃음을 치는 소리와 함께, 옆에서 트리슈가 머리를 기대오는 것이 느껴졌다. 동시에 팔짱을 낀 그녀가 우아랑을 찌릿찌릿 강한 시선으로 노려보았다.

“….”

정작 본인은 알아차리지 못했지만.

뒤를 이어, 양쪽으로 난 커다란 문이 열렸다. 손을 쥐고 있던 우아랑이 앞으로 나서, 우리는 누가 먼저랄 것 없이 저택 안으로 발을 들였다.

“이래도 되는 거야?”

아무도 마중을 나오지 않는 상황에, 나는 의문을 느끼고 질문을 던졌다. 방향을 망설이지 않고 앞으로 나아가던 우아랑이 나를 돌아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집안에 사람을 두는 걸 싫어하시는 분이셔서.”

“인공지능도?”

“인공지능을 더.”

“….”

넬이 있었다면 큰일 날 뻔했군.

“원래는 안 그러셨는데…. 아버지가 그렇게 되고 나서는 병적으로 인공지능을 혐오하게 되셨지.”

“한성진…?”

“그래, 아마 내 생각에는, 아버지의 흔적을 쫓기 위해 송유하와 협력을 한 게 아닐까 싶군.”

“오랜만이구나.”

바로 그때, 다른 목소리가 이어졌다.

무게감이 느껴지는 목소리에 흠칫 놀라 멈춰선 나는 고개를 들었다. 누군가 대청마루의 위에 올라서있다는 사실을 알아차렸다.

차가워 보이는 눈동자다.

시니컬하달까. 퇴폐적인 냄새가 나기도 했다. 담배를 입에 문 채 헝클어진 머리를 매만지며 그녀는 천천히 우리를 향해 다가왔다.

“아랑아.”

중년의 여성이다.

하지만, 셔츠 한 장을 걸친 몸에서는 육감적인 미가 물씬 풍겼다. 나는 이곳에 올 때까지 계속 팔짱을 끼고 있던 트리슈가 내 팔을 힘껏 잡는 것을 느꼈다.

“이모님, 그간 안녕하셨습니까.”

우아랑은 그 앞에서 예의를 갖추어 고개를 숙였다. 여자는 트리슈나 내게는 시선조차 주지 않은 채 천천히 말을 이었다.

“그래, 무슨 일로?”

“퀘스트에 도움을 주실 수 없을까 해서.”

“퀘스트?”

“네, 이모님께서 지금은 게임에서 ‘사망’한 옛 갤러해드의 파트너였다고 퀘스트에 나타나서 말입니다.”

“….”

“어떻게든 당시의 이야기를 알려주실 수 없을지.”

“그 옆에는?”

여자는 나와 트리슈를 눈빛으로 가리켰다. 거기에 뒤를 힐끔 돌아본 우아랑이 망설이다 말을 이었다.

“아, 이 두 사람은….”

“할 킬러즈의 내부 협력자입니다.”

“그쪽에게는 물어보지 않았어.”

목소리가 날카로웠다.

“요새 들어서 자꾸 귀찮은 일이 생기고 말이지. 아랑이 너만 아니었으면 곧바로 내쫓았을 거야.”

“송구스럽습니다.”

“…. 손님방으로 가있어. 옷을 입고 갈 테니까.”

그리고 여자는 돌아섰다.

잠시 시선을 주고받은 뒤, 나와 트리슈는 우아랑의 뒤를 따라 다시금 정원을 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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