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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크로맨서 재킷-262화 (262/321)

262편

<-- Chapter 6 : 이상의 기사 : 각성 -->

이제 와서 어머니 역할을 하려 드느냐는 비아냥을 듣더라도, 무어라 돌려줄 말은 없었다.

때문에 정현은 다음 날이 되자 애써 태연한 자신을 가장했다. 하지만 꾹 눌러 담은 감정은 행동에서 그 흔적을 드러냈다. 오전 시간동안 부하들이 무슨 일이 있느냐며 물어오는 통에 무척이나 곤란했다.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심정은 사실이었지만.

백 대령에게 말해 딸을 안전한 장소로 뺀다던가. 아니면 엘레노어에게 직접 거래를 요구한다던가. 말도 안 되는 이야기들뿐이었지만 그만큼 절실했다.

하지만 실제로 행동에 들어가지 않는 이유는, 그러는 대신 수치를 감내해가면서 20살이 넘게 어린 애송이에게 감정을 쏟아낸 이유는 물론 딸과의 관계 때문이었다.

망가질 대로 망가진 관계를.

대체 어떻게 하면 좋을지 알 수 없어서.

“후우….”

늙어서 뇌가 굳어진 걸까. 그런 스스로의 편협함을 인정하는 것도 부끄러웠다. 사무실의 책상에 기대어 앉은 정현은 길게 한숨을 내쉬며 고민에 빠졌다.

방법은 없는 걸까.

아니…. 사실 원한다면 행동을 취할 수는 있을 터였다. 하지만 그게 가져올 후폭풍을 감당해낼 수 있을까가 문제였다. 딸의 안전이냐 관계의 완전한 파멸이냐.

어머니로서는 선택하기가 어려웠다.

아랑의 가슴에 붙어있던 그 검은 점액질…. 그것은 분명 딸을 이 사태의 중심으로 끌어들이고 싶어 하는 엘레노어가 저지른 일일 터였다.

그 저의는 알 수 없었지만.

그녀는 언제나 그런 식이었다. 이 ‘아서리안’이라는 행동을 통해 인류를 조종하려고 들었다. 누군가에게는 게임이고, 누군가에게는 테러 행위인 이것을 통해….

정현은 그것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았지만.

“성진 씨 당신은….”

결국에 무엇을 하고 싶었던 것일까.

그런 생각을 하자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현재를 걸어 나가기 위해 땅에 묻어두었던 과거는 그렇게 문득 모습을 드러냈다. 정현은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엘레노어를 처음 만났을 때가 머릿속에 떠올랐다. 그래서 결국 그 존재는 무엇이지 싶어서.

우정현이 인간이듯이, 엘레노어는 어떤 단어로 표현을 하면 좋은 것일까. 다시금 그녀와 정면으로 마주하게 된 시점에서 정현은 그런 고민에 빠져들었다.

그리고 바로 다음 순간,

“….”

디멘션 커넥터가 울리기 시작했다.

누군가의 방문이 있는 것이었다. 문밖에 설치된 CCTV가 눈앞에 방문자의 신원과 목적, 그리고 모습을 실시간으로 보여주기 시작했다.

금색의 머리를 하나로 묶은 여자.

헥터다.

잠깐 고민에 빠져 있자니, 그녀는 이윽고 닫혀져 있는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섰다.

“안녕하세요, 회장님.”

팝업창을 밀어낸 정현은 모르가나를 손에 쥔 헥터로부터 인사를 받았다. 자연스럽게 인상이 찌푸려져 정현은 말을 이었다.

“들어오라고 말씀드린 적은….”

“받아본 것은 시험을 해봐야죠.”

검은 보석이 그녀의 눈앞에서 흔들렸다.

“그리고 한 가지 여쭤보고 싶어서요.”

“무엇이죠.”

“이 모르가나…. 말인데요. 엘레노어로부터 직접 받은 물건이라고 하셨죠?”

정현은 목소리를 내지 않고 고개를 끄덕이는 행동으로 대답을 대신했다. 그러자 가볍게 미

소를 지은 헥터는 보석을 꾸욱 움켜쥐어 없앴다.

“거짓말에 능숙하지 못하신데요.”

그리고 그녀는 말을 이었다.

“무슨 말씀이신지.”

“이거…. 회장님께서 개발한 거 아닌가요? 코드의 유사성이 느껴지는데. 뜯어서 안을 보니까 완전히.”

“….”

정현은 대답하지 않았다.

“아니 회장님 말고…. 다른 분이시려나?”

“만약 그렇다면 어쩌실 셈이죠.”

단순히 시간을 끌어보려던 거짓말이 금방 들통이 났다. 하지만 어차피 그다지 문제될 일도 아니었기 때문에, 정현은 아무렇지도 않게 말을 이었다.

“소개해주시죠.”

“이유라도 있나요?”

“엑스칼리버의 개발에도 협력해주셨으면 해서죠. 뭐, 개발의 막바지이니만큼 사소한 오류나 고견 등을 들어보고 싶은 것뿐이지만.”

“고견…?”

“네, 정말 대단한데요. 이분. 이렇게 완벽한 해킹 프로그램을 만들다니. 거기다 가볍고 쓰기에 쉽고.”

헥터는 활짝 웃으며 중얼거렸다.

“마치 엘레노어 같네요.”

그리고 의미심장한 말을 덧붙였다.

눈앞에는 유하가 서있었다.

“….”

활짝 웃은 그녀가 나를 돌아보았다. 앞치마 위에 가지런히 손을 올린 채, 고개를 끄덕이며 다가왔다.

“절 찾아주셨군요.”

“그래.”

나는 무뚝뚝한 목소리를 내서 대답했다.

뒤쪽에는 모드레드와 우아랑이 선 채였다. 하지만 유하는 그런 두 사람에게는 시선조차 주지 않고 내 어깨에 팔을 휘감았다. 그리고 웃으며 안겨왔다.

“보고 싶었어요….”

부드러운 감촉을 느꼈다.

하지만 물론, 말이 안 되는 짓이다. 나는 유하의 좋은 머리의 향을 맡았지만, 손을 뻗어 전화를 걸었다.

유하에게다.

[…. 아, 준?]

신호음이 가고, 좋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당신이 유하라는 증거를 대봐.”

그리고 반쯤 장난으로 물었다. 침묵이 이어지고 곧이어 반대편에서 놀란 듯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네, 네?]

“지금 그, 별장에 있는 거 맞지?”

[네, 아…. 맞다! 얼마 전에 꽃을 심었는데 싹이 났어요! 나중에 사진 찍은 거….]

“볼게.”

[후후….]

부드러운 웃음소리에 안심이 되는 걸 느꼈다.

“그쪽은?”

“저는 매일 야한 생각만 해요.”

“….”

가짜 유하가 말했다.

아니 진짜도 할 거 같은 소리긴 한데.

[음, 준? 거기서 저랑 비슷한 소리가….]

“저는 준의 가슴 위에서 계란부침을 굽고 싶어요.”

[?????]

유하가 당황했다.

“아니, 아무것도 아니야. 끊을게.”

[잠…?! 준?! 저, 저는 절대로 그런?! 꺄아아악?!]

전화가 끊어졌다.

“저기, 이제 좀 사라지지 그래.”

나는 아무것도 모른다는 듯 눈을 깜빡이고 있는 가짜 유하에게 물었다.

“제가 드리는 말씀은 모두, ‘제’가 준의 가슴을 보고 느낀 감정을 토대로 가장 유사한 묘사를….”

“아니 거기까진 됐어.”

나는 입을 막았다.

그러자 그 상태에서 다시금 고개를 끄덕인 유하(가짜)가 희미한 빛에 물들었다. 비록 가짜라는 것을 알았음에, 본인과 완전히 닮은 모습에 나는 눈썹을 찡그렸다.

“…. 우아랑.”

유하가 사라지고 그 자리에 무언가 남았다. 동그랗게 빛나는 구체였다. 가까이 다가가자 획득할 수 없다는 말에 나는 고개를 돌려 우아랑을 돌아보았다.

“음, 그래.”

뭐에 정신이 팔렸는지 멍해져 있던 녀석이 다가와 아이템을 습득했다. 빛이 그녀의 팔위에서 흔적을 감추고, 나는 다음으로 떠오르는 퀘스트를 확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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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픽 퀘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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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갤러해드의 여정 8/10

난이도 : ★★★★★★★★★★

내용 : 제 파트너를 설득하세요.

제한 시간 : 없음.

보상 : 결과로 이어지는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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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파트너?”

“짐작이 가는 바가 있습니까?”

모드레드가 물었다. 아무래도 여기서 말하는 ‘제 파트너’라는 말은, 유하가 갤러해드였던 때의 파트너라는 걸까? 아니 음…. 뭔가 말이 이상한데.

“어디로 가면 되는데?”

“이상하군.”

“뭐가.”

우아랑이 고개를 갸웃거려 나는 되물으며 퀘스트창을 여기저기 눌러보기 시작했다. 하지만 딱히 드러나는 바가 없이, 파트너를 설득하라는 말 이외에는 보이는 정보가 없었다. 지도를 펼쳐보아도 딱히 변화는 없엇다.

“으음….”

“뭔가 이상한….”

바로 그때, 지도 위에 붉은 점이 생겨났다.

“응?”

하지만 이내 곧바로 사라졌다. 잠깐의 반짝임으로는 서울 북서쪽이라는 사실 정도만 알 수가 있어 나는 눈썹을 찡그린 채 우아랑을 바라보았다.

“위치 어딘지 알겠어?”

녀석은 가볍게 앓는 소리를 냈다. 갑작스레 난이도가 엄청나게 높아져 우리는 동시에 꿀 먹은 벙어리가 되어 퀘스트를 진행할 방법에 대하여 고민하기 시작했다.

“저….”

뒤를 이어 모드레드가 끼어들었다.

“조건이 있는 것 같습니다.”

“무슨?”

“위치가 나타나는데 말입니다.”

“그렇다면 조금 기다려봐야겠군.”

우아랑이 이해한 듯 고개를 끄덕였다.

나 역시 마찬가지였다. 모드레드의 말처럼 퀘스트에서 지정한 대상의 위치가 드러나는데 어떤 조건이 필요하다면, 그 조건을 알기 위해서는 위치가 드러나는 상황이 되도록 많이 필요하겠지.

“그럼, 일단 돌아갈까?”

여기서 해결하기 쉬울 것 같지는 않아, 나는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평범한 상가 건물의 옥상, 내 말에 동의한 모드레드와 우아랑이 고개를 끄덕였다.

정 그러시다면.

“진짜 여자 납셨네.”

부드럽지만 강한, 여성으로서의 매력을 놓지 않은 목소리였다. 그런 정현의 모습에 헥터는 몸에 소름이 돋는 걸 느끼며 비아냥거리듯 말을 중얼거렸다.

‘정 그러시다면 집 주소를 드릴 테니 직접 찾아가봐라.’ 그런 이야기가 무척이나 강렬하게 기억 속에 맴돌았다. 결코 여유를 잃지 않는 모습에서 짜증을 느꼈다.

“당황할 거라고 생각했는데….”

자동차의 뒷좌석, 풍경이 쏜살같이 스치는 것을 보며 헥터는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물론 그게 목적이 아니었고, 도리어 더 당황해 숨겼으면 귀찮아졌겠지만.

그래도 역시 좀 제대로 엿을 먹이고 싶은데.

“저기, 라이오넬 대위님.”

그러다 문득, 그조차 귀찮다는 생각이 들어 헥터는 애교를 부리며 운전석에 발을 얹었다. 거대한 덩치를 구겨 넣고 있던 라이오넬이 뒤를 돌아보았다.

“우 대위님한테 연락은 해뒀어?”

거기에 라이오넬은 침묵했다.

“그 여자 역시 좀 바깥으로 도는 것 같지?”

“아직 모르는 이야기다.”

“뭐, 말도 안 되는 이야기긴 하지. 하지만 신뢰를 쌓아두어도 모자랄 마당에 말이야….”

“억측은 불신을 낳는다.”

“헤에, 명언제조기 납셨네. 그러다가 우리 가웨인이 어떻게 됐지? 다 숨기고 지 혼자서 맛있는 거 냠냠 하려다가 지금 중환자실에서 간호사가 똥오줌 받아주잖아.”

“….”

“확실히 해두자는 거지. 내 말은…. 다 같이 뇌가 맛이 간 세상이니까. 뭐가 벌어지더라도 이상하진 않잖아?”

중얼거리고, 헥터는 받은 번호로 전화를 걸었다. 길게 차내에 신호음이 이어지고, 곧이어 딸칵하는 소리….

[지금 몇 신데 사람 다 잘 시간에 전화를 걸어!!!]

와 함께 태풍이 지나가더니 전화가 끊어졌다.

“….”

“….”

두 사람은 반응조차 못한 채 눈을 동그랗게 떴다.

오후 두 시가 지나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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