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7편
<-- Chapter 6 : 이상의 기사 : 각성 -->
“…. 그게, 뭐야?”
놀란 트리슈가 목소리를 내고, 이어서 두 사람이 우아랑의 곁으로 다가갔다. 셔츠의 단추를 풀어 가슴에 달라붙은 그것을 내보이고 있던 우아랑은 생각보다 두 사람의 반응이 격하자 당황했는지 뒤로 물러섰다.
“괜찮은 거야?!”
하지만 트리슈는 그런 그녀를 막아서듯 팔을 잡았다. 우아랑은 그런 두 사람의 태도를 받아들이지 못하는 듯 눈을 동그랗게 떴다.
“뭐, 뭐가 말이냐?!”
“아니, 아프거나 하진 않아?”
“아, 음…. 불편하긴 해도 참을만하다.”
녀석은 떨떠름한 얼굴로 중얼거렸다. 그리고 뒤를 이어, 다가선 모드레드가 조심스럽게 손을 들었다.
“만져 봐도 되겠습니까?”
“…. 좋을 대로 해라.”
적응하지 못하는 걸까.
갑작스럽게 태도가 바뀐 트리슈와 모드레드의 모습에, 우아랑은 당황해 고개를 끄덕였다. 조금 멀리 떨어져 있던 나는 무슨 상황인지 단숨에 이해했지만.
어쨌든 두 사람 다, 우아랑은 경계하는 것과는 별개로 그 상태가 심각해보여 걱정하는 것이겠지. 우아랑의 가슴에 들러붙은 검은 점액질은 그 형태가 무척이나 그로테스크 했으니까.
“이건….”
“내 탓이야.”
그리고 나는 앞으로 나섰다.
가슴에 달라붙은 점액질을 매만지고 의아해하는 모드레드를 향해 천천히 다가갔다. 그리고 뒤를 이어 인상을 찌푸린 채로 말을 이었다.
“재킷을 해제한 상태에서 몬스터의 습격이 있었어.”
“거기에 당한 것이다. 실제로.”
우아랑이 말을 보충했다.
“그래서 내가 되살린 거야. 나의 망자로서.”
“…. 무슨 뜻이야?”
하지만 트리슈는 좀처럼 이해가 가지 않는다는 듯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리고 뒤를 이어 생각에 골몰하던 모드레드가 말을 이었다.
“‘현실’에서 당했다는 말씀이십니까?”
“…. 그래.”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적절하지는 않을지도 모르지만 나는 그 이외의 말을 머릿속에서 찾아내지 못했다.
지금껏 없던 일이다.
우아랑은 ‘정말로’ 칼에 찔렸다. 정보량 송신 합금으로 벼려진 검이 폐를 박살낸 것이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내가 스킬을 사용하자 저런 점액질이 생기며 다행히 신체 기능이 회복되었다.
그리고 나는 솔직하게 말해,
“….”
조금의 두려움을 느꼈다.
그녀는 대체 어떤 원리로 움직일 수 있는 것인지, 우아랑의 가슴 속은 지금 어떻게 되어있는 걸까에 대해 고민을 하자면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현실과 가상이 정말로 하나가 된 걸까.
이런 일이 계속해서 일어나는 것일까.
“하지만 어떻게?”
“그건….”
모드레드가 의문을 재기하자 나는 잠시 대답을 미루고 우아랑을 바라보았다. 이건 녀석에게도 말하지 않은 부분이다. 지금까지는 얼버무려왔지만.
“엘레노어가 말을 걸어왔어.”
아무래도 끝까지 숨길 수는 없겠지.
“엘레노어가?”
“그래, 너를 망자로 삼아 갤러해드로 만들라는 지시를 내리더군. 그리고 곧바로 몬스터가 나타난 거야.”
“너에게, 말이냐?”
우아랑은 당황한 눈치였다.
“…. 그렇다면 퀘스트가 최우선이겠군요.”
그러는 사이 앞으로 나선 모드레드가 상황을 정리했다. 단숨에 이해한 녀석이 손가락을 들었다.
“린슬렛님은 엑스칼리버의 탈취 준비를. 할 킬러즈는 엑스칼리버를 보강. 그 사이에 우 대위님과 타나토스 씨, 거기에 저희는 갤러해드 퀘스트를 진행.”
어떻게 보면 구도 자체는 삼파전인 셈이다. 우아랑과 할 킬러즈. 그리고 우리까지. 그것을 상기해낸 나는 모드레드를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그래서 도와줬으면 하는데.”
“일단 퀘스트의 내용을….”
“여기에.”
우아랑은 망설이지 않고 퀘스트창을 내보였다. 뒤쪽에 있던 베디비어와 발렌타인이 가까이 다가왔다. 나는 베디비어의 등에 매달려 눈을 가리고 있는 발렌타인의 모습에 우아랑을 돌아보았다.
“옷은 다시 입어줘.”
“….”
거기에 슬쩍 얼굴을 붉힌 그녀가 단추를 잠갔다.
“흐음, 마커가 꽤나 많은데.”
그러는 사이, 퀘스트와 자료를 확인한 트리슈가 눈썹을 찡그렸다. 서울 시내에 떠오른 수십 개의 마커를 보자 무척이나 당황한 듯싶었다.
“뭔가 방법이 없을까?”
“으음…. 모르겠어. 직접 가서 확인해봐야 하는 거야?”
“거기까지는 확인해보지 않았는데.”
뭔가 뉘앙스를 느끼고 나는 스킬창을 열어 살폈다. 그리고는 곧바로 트리슈의 근본을 계승했다.
어깻죽지로부터 피어오른 뼈가 분리되어 검은 카메라가 되었다. 그것이 내 주변을 맴돌기 시작하는 걸 본 트리슈가 이유는 모르겠지만 얼굴을 붉혔다.
“헤헤.”
“…? 트리슈?”
그 의미를 이해하지 못해 고개를 갸웃거리자니, 모드레드가 카메라를 잡아서 손에 쥐었다.
“이걸로 시험을 해보죠.”
“카메라를 통해 확인을 해본다던가 하는 식으로?”
“네, 시도해볼만한 가치는 있을 듯합니다.”
“그렇다면….”
“일단은 가장 가까운 장소부터 탐색을 시작해보죠.”
고개를 끄덕인 모드레드가 발렌타인을 돌아보았다.
“발렌타인님, 현재 배의 위치는?”
“충무로 근처에요.”
서울의 중심이다.
“주변의 탐색을 계속하면서…. 바깥쪽으로 나가자. 아무래도 중심부는 경계도가 높을 테니까.”
나는 그렇게 제안하며 강북구 쪽에 위치한 마커 하나를 손으로 가리켰다. 그러자 뒤를 이어, 뒤쪽에 서있던 우아랑이 헛기침을 하고 목소리가 이어졌다.
“…. 오히려 중앙이 나을 것 같다만.”
거기에 우리는 누가 먼저랄 것 없이 그녀를 돌아보았다. 우아랑은 뭔가 알 수 없는 팝업창을 눈앞에 띄운 채로 우리를 향해 천천히 다가왔다.
“그게 뭔데.”
“부대 병력의 실시간 순찰 경로다. 주로 외곽에 집중되어있군. 거기다 시 외곽에는 너희들이 외부로 도망치지 못하게 하려고 간부들이 많이 배치되어있어. 한 번 들킨다면 추적을 따돌리기가 쉽지 않을 거다.”
“….”
우리는 그런 녀석을 제각기 놀란 눈으로 바라보았다. 거기에 반응을 보이지 않고 침묵하던 우아랑은 이윽고 집중되는 시선을 이겨내지 못하고 입을 열었다.
“뭐, 뭐 이상한 점이라도 있나?”
“아니…. 스파이 같아서. 우 대위님.”
나는 상황을 정리하듯 그렇게 말했다. 아마 다른 녀석들도 대부분 비슷한 심정일 것이다. 지금 상대하고 있는 적의 행동을 훤히 꿰뚫어볼 수 있는 우군이 생겼으니.
“혹시 공유 좀 해줄 수 있을까?”
하지만 그와는 별개로 확인은 해두어야겠지.
“그 이유는?”
“그쪽을 백 퍼센트 신뢰할 순 없으니까.”
“…. 타당하군.”
고개를 끄덕인 우아랑이 눈앞에 전광판처럼 커다랗게 띄워둔 팝업창을 접어 내게 건네주었다. 권한을 받아들이자 나 역시 그것을 볼 수 있게 되었다.
쓸 만한 걸 손에 넣었군.
“거짓말은 아니네.”
“그럴 이유가 어디에 있다고 하는 소리지.”
가볍게 장난을 치듯 말하자 우아랑은 인상을 찡그린 채 대답했다. 그리고 길게 한숨을 내쉬며 자신의 가슴을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이게 있는 이상 네 옆을 떠날 순 없단 말이다.”
“….”
거기에 순간적으로 모두가 굳어졌다.
“헤에.”
트리슈가 묘하게 차가운 목소리를 냈다. 뭔가 싶어 고개를 든 우아랑은 이내 얼굴이 새빨갛게 물들었다.
“아, 아니 그런 의미가 아니라!”
“타나 오빠. 뭔가 변명이라도?”
“….”
아니 근데 왜 화살은 나한테 돌아오는 거지.
◇
“확실히…. 인정하겠다.”
우아랑은 알 수 없는 말을 중얼거렸다.
지상에 나온 시점이었다. 배기관을 통해 증기가 나오는 가운데,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순식간에 날이 어두워진 틈에서 녀석은 어이가 없다는 듯이 웃었다.
“네놈들이 차라리 동료애가 있군.”
마지막으로 나온 모드레드가 침묵한 채 내 옆에 섰다. 하지만 나는 어쩐지 그녀가 그런 우아랑의 말에 묘한 감정을 느낀다는 생각을 했다. 기쁨에 가까운.
“…. 그렇게 보였다니 다행이네.”
그와는 별개로 나는 트리슈에게 꼬집힌 뺨이 얼얼한 것을 느끼며 중얼거렸다. 그러자 그 모습에 눈썹을 찡그린 우아랑이 곧이어 조심스럽게 말을 이었다.
“그녀는 네 연인인가?”
“….”
거기에 나는 똑바로 대답하지 못했다. 옆에 선 모드레드의 시선을 피하며 입을 다물었다.
“랜슬롯도 그렇고, 너는 죄 많은 남자인 거로군.”
그런 내 모습에 적당히 고개를 끄덕인 우아랑이 주변을 둘러보았다. 나는 녀석의 그런 말에 대답하지 않고, 이내 함께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비가 와서 다행이었다.
인적은 드물어지겠지만 애초에 얼굴이 할 킬러즈에게 알려져 있는 만큼 사람들 사이에 숨는다는 발상은 하지도 않았다. 나는 그렇게 생각하며 입을 열었다.
“넌 거리를 유지하고 근처에 있어.”
“뭐?”
거기에 녀석이 놀란 녀석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나는 재킷을 본격적으로 기동시키고는 품안에서 튕겨져 나오는 마스크를 받아 얼굴에 썼다.
“함께 있다는 걸 걸리면 위험하잖아.”
그리고 설명을 덧붙였다. 어쨌든 우아랑은, 최대한 할 킬러즈에 붙어있었으면 하니까. 적당히 거리를 유지하는 선에서 순찰을 도는 시늉만 해도 되겠지.
“…. 알겠다.”
“무슨 일 있으면 연락할 테니까. 가자, 모드레드.”
“알겠습니다.”
그렇게 대화를 나누고, 우리는 건물의 위로 뛰어올랐다. 모드레드는 비를 의식한 건지 후드를 뒤집어 썼다.
[도울게, 타나 오빠.]
“부탁해.”
트리슈의 목소리와 함께 주변에 카메라가 맴돌기 시작했다. 나는 흐릿한 시선의 너머로 무언가 있는 것을 발견하고 눈썹을 찡그렸다.
“일단 숨죠.”
모드레드의 제안을 따랐다.
“확실히 좀 피곤해졌군.”
나는 벽에 기대어 숨어서 중얼거렸다.
예전 같았으면 이곳은 우리의 장소다. 몇몇 경우를 제하면 돌아다니는 일에 아무런 지장이 없었다. 하지만 지금, 수많은 빗줄기들의 사이에는 드론이 가득했다.
“많기도 하군요.”
지상에서 순찰을 도는 병사들의 수 이상으로 많은 동그란 비행체들에 모드레드가 슬쩍 한숨을 내쉬었다.
하지만 문제될 것은 없겠지.
[자, 탐색 개시!]
트리슈가 활기차게 외치고, 뒤를 이어 카메라들이 주변으로 퍼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나는 곧바로 예정했던 대로 모드레드와 함께 나아갔다.
간단한 일이었다.
나머지 일행은 배를 대둔 채 지하에서 대기. 트리슈가 카메라를 통해 드론들의 움직임을 파악해주고, 나와 모드레드가 마커의 위치까지 전진하는 것이었다.
[카메라 한 대를 앞장세울게.]
목소리의 뒤를 이어, 주변에 원을 그리며 퍼진 카메라 중 한 대가 내 앞에 섰다.
나는 모드레드와 함께, 마커의 위치로 천천히 나아가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