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네크로맨서 재킷-255화 (255/321)

255편

<-- Chapter 6 : 이상의 기사 : 각성 -->

[으윽, 발이 걸렸습니다.]

“….”

내가 본 사람 중 단연코 최악의 연기력이었다.

바닥에 넘어져 있던 우아랑이 비틀거리며 다시 일어섰다. 물통을 담아서 쓰는 낡은 정수기가 넘어지며 바닥에 한가득 물이 퍼진 상태였다. 사무실에서 일을 하던 병사 하나가 다가와 우아랑을 부축하려고 했다.

[아, 나는 괜찮다. 일단 이걸 치우고…. 윽?!]

녀석은 자신을 향해 다가서는 병사의 팔을 붙잡고 함께 넘어졌다. 무슨 삼류 코미디 프로그램도 아니고 개연성이라고는 눈을 씻고 찾아도 없는 슬랩스틱에, 나는 오히려 더 흥미가 샘솟는 걸 느꼈다.

하지만 그럴 때는 아니었다.

몸을 비틀어, 나는 다시금 환풍구 바깥으로 빠져나갔다. 그 상태에서 아래를 내려다보았지만 엘리베이터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그럼 위인가?

그렇게 생각하며 고개를 들자,

“…!”

엘리베이터가 내려오는 것이 보였다.

곧바로 머리 위다.

“우아랑, 엘리베이터 쪽으로 와! 어떻게든!”

피할 수 없다. 곧바로 그 사실을 알아차린 나는 버럭 소리를 지르며 아래로 뛰어내렸다. 화면 속의 우아랑이 몸을 움찔 떠는 것이 느껴졌다.

“큭….”

엘리베이터는 4층에 올라섰다. 3층의 환풍구를 팔로 붙잡고 버텨내던 나는, 곧이어 엘리베이터가 다시 하강하기 시작하자 입술을 질끈 깨물었다.

대체 어디까지….

환풍구가 들어갈 틈이 있는지 자세히 살펴볼 걸 그랬다. 뒤늦은 후회를 하며, 나는 거대한 엘리베이터를 피해 바닥까지 뛰어내렸다.

[윽…!]

화면 속의 우아랑이 짧게 신음했다.

옆에 있던 다른 간부와 이야기를 주고받던 중이었다. 엘리베이터 근처임에도 녀석은 괴로운 듯 가슴을 움켜쥐며 바닥에 무릎을 꿇었다. 허리를 낮춘 채로 있던 나는, 어서 빨리 엘리베이터가 움직이길 기도했다.

하지만 움직이지 않는다.

CCTV를 통해 살펴보자, 문을 열어둔 채 거대한 짐을 옮기는 병사들이 보였다. 거기에 눈을 동그랗게 뜬 나는, 좁은 틈을 기어 바닥 아래를 살폈다.

[흐윽…!]

그 사이 우아랑은 버텨내지 못하고 바닥에 무릎을 꿇었다. 옆에 있던 간부가 그녀를 향해 달려드는 모습이 보였다. 셔츠의 안쪽이 보이기라도 하면 끝장이다.

“우아랑! 엘리베이터를 타고 아래로…! 아니 계단이라도 좀 걸어서 와봐!”

[그럴, 수가…!]

빌어먹을.

거칠게 숨을 몰아쉬는 우아랑의 모습이 보였다. 눈썹을 잔뜩 찡그린 채, 괴로운 듯 가슴을 움켜쥐고 있다. 그러는 사이, 엘리베이터가 다시 움직이기 시작했다.

시간이 없다.

엘리베이터는 2층에서 다시 멈춰 섰다. 입술을 짜증스레 당긴 나는 닫힌 상태로 있는 엘리베이터의 1층 문을 바라보았다. 도박에 가까운 수를 한 가지 떠올렸다.

상황을 이상하게 생각한 남자 간부가 우아랑의 가슴을 향해 손을 뻗는 광경이 눈에 들어왔다.

“조금만 버텨…!”

나는 스파다를 뽑아들었다.

엘리베이터 문의 사이로 쑤욱 밀어 넣어, 지렛대를 누르듯 거칠게 벌렸다. 빠각, 하는 소리와 함께 문이 벌어지며 그 사이로 로비가 모습을 드러냈다.

“뭐, 뭐야…?!”

군복을 입은 병사들이 눈에 들어왔다.

“…!”

찰나의 순간, 나는 순식간에 어깻죽지로부터 검은 바람을 피워 올렸다. 시야에 불투명한 이미지가 덧씌워졌고, 나는 순식간에 열린 문의 틈새로 빠져나갔다.

“뭔가 있지 않았어…?”

“아니, 문은 왜 갑자기 이래?”

“또 방산비리냐….”

병사들은 내 존재를 알아차리지 못했다.

스킬의 지속 시간은 무척이나 짧다. 그것을 의식해 순식간에 넓은 로비를 내달린 나는, 끄트머리에 있는 비상계단으로 내달려 들어갔다.

어두컴컴한 걸로 봐서는 평소에는 잘 쓰지 않는 장소인 듯싶었다. 시야가 원래대로 돌아와, 나는 벽을 박차고 내달려 순식간에 4층까지 올라갔다.

다행히 누군가와 마주치지는 않았다.

[…. 후우.]

화면 속의 우아랑이 몸을 일으켜 세웠다. 거리가 좁혀진 걸까 싶어, 나는 문 앞에 기대어 섰다.

“이제 좀 괜찮아?”

[괘, 괜찮습니다. 지병이 발작한 거라서….]

내 질문에 하는 대답은 아니었지만, 고개를 끄덕인 우아랑이 다시금 간부와 함께 걷기 시작했다. 하지만 비상계단과 정반대의 방향이었다.

조금 더 거리를 좁히는 게 낫겠군.

[지금 4층이야. 마음대로 움직여.]

그렇게 판단한 나는, CCTV를 통해 상황을 판단했다. 이런 이유로 퀘스트에서 건물 내부의 CCTV를 볼 수 있도록 하지 않았나 싶을 정도였다.

근무 시간이기 때문인지, 복도에는 아무도 없었다.

“좋아….”

걸리면 끝장이다. 빠져나갈 수야 있겠지만 우아랑의 현 상태를 생각해보자면 분명히 뭔가를 잃을 터였다.

그렇기 때문에, 조심스러웠다.

일단 화장실이 제일 낫겠지. 거기라면 칸막이가 있어 숨기에 좋았으니까. 나는 그렇게 결론을 내리고는 복도를 내달려 남자 화장실의 안으로 들어섰다.

“…!”

누군가 있다.

“빌어먹으을…. 오침 시켜준대 놓고선.”

병사 둘이, 소변기에 달라붙은 상태였다. 순간적으로 자리에 멈춰선 나는 재빨리 바깥의 상황을 확인했다. 누군가 나오는 게 보였다.

검은 피부의 거인이었다.

아니, 이 자식은 왜 이 타이밍에…!

“이뱀, 오늘 점심 뭔지 아십니까?”

당황해 머뭇대는 사이 병사들이 대화를 나누었다. 고민에 빠져있던 나는 물러설 길이 없다는 생각에 불길에 뛰어드는 기분으로 화장실로 들어섰다.

“그걸 왜 나한테 물어…. 뭔데?”

천만다행으로, 병사들은 내게 별 관심을 갖질 않았다. 가장 가까운 곳의 칸막이로 들어선 나는 문을 잠그고 변기통 위에 걸터앉았다.

이 정도면 괜찮겠지.

“닭튀김이랍니다. 히히.”

“…. 일주일째 닭이구먼. 그거 왜 그런지 아냐?”

“뭐 말임까?”

“폐사된 거 짬 처리하는 거야.”

두 병사의 목소리가 이어졌다.

잠깐 고민에 빠져 있던 나는, 우아랑이 별 문제없이 복도 반대편의 사무실로 들어서는 것을 발견했다. 하지만 화면이 전환되지 않아 눈썹을 찡그렸다.

부대장실에도 CCTV가 없다는 말인가?

무슨 이야기를 하나 듣고 싶었는데….

“추, 충성!”

아쉬움을 느끼고 있자니 병사가 당황해 경례를 붙이는 소리가 들려왔다. 거기에 반응해 고개를 든 나는 이윽고 식은땀이 주륵 흐르는 것을 느꼈다.

뭔가 거대한 그림자가, 칸막이 너머에 졌다.

“고생이 많다.”

“아닙니다!”

“….”

라이오넬이다.

나는 놀라 눈을 동그랗게 떴다. 사실 그쪽이 뭔가 의심이라도 하지 않는 이상 들키지 않을 것임에도, 어쩐지 심장이 두근거리는 것을 느꼈다.

발소리가 이어졌다. 정황상 화장실에 있던 병사들이 바깥으로 나간 듯했다. 나는 조용한 화장실에 라이오넬과 단 둘만 남아있다는 사실이 당황스러웠….

지이이이익. 하고 뭔가 내려가는 소리가 들려왔다.

“….”

아니 물론, 바지도 큰 거 입겠지만. 아니, 잠깐.

“….”

소리가, 너무 적나라하다고.

불안했다.

가슴이 찢어지는 듯한 통증은 사라졌지만 그로서 불안한 기운이 음습했다. 옆에 선 간부를 따라 부대장실로 들어서면서도 아랑은 뒤를 힐끔 돌아보았다.

엘리베이터는 3층에서 움직이지 않았다. 말인즉슨 그는 다른 경로를 통해 4층으로 올라왔다는 말이었다.

행여나 들키진 않았을까. 그리고 만약 들킨다면 어떻게 행동하면 좋을까. 머릿속이 복잡했다.

물론 그의 실력이라면 이곳을 탈출하는 것쯤은 누워서 떡 먹기일 터였다. 하지만 그와는 별개로, 그가 도망을 친다면 아랑은 어떻게 행동을 해야 할지 싶었다.

쫓아가서 함께 빠져나가?

그로서 한 번은 속일 수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 이후가 문제였다. 경비는 강화될 테고, 그렇다면 아랑 자신도 부대에 들어오지 못하게 될 수도 있다.

그것은 피해야만 했다.

아직 부대에서 할 일이 남아있었기 때문에.

“조금 늦었군.”

경례를 붙이자 담배를 물고 있던 백 대령이 의아한 듯 중얼거렸다. 거기에 아랑은 옆의 간부가 힐끔거리며 자신을 보자 말을 이었다.

“죄송합니다.”

딱히 변명을 하지는 않았다.

“어젯밤에는 어디서 뭘 했나?”

그걸 묻기 위해서 부른 건가.

백발에 가까운 머리를 올백으로 넘긴 백 대령은 무표정한 눈으로 아랑을 바라보았다. 그녀는 스스로의 가슴을 뒤덮고 있는 점액질을 느끼며 말을 이었다.

“퀘스트를 수행 중이었습니다.”

“보고는?”

“죄송합니다. 적을 발견해서 겨를이 없었습니다.”

“어디에서…?”

“시 외곽이었습니다. 보고를 받으셨을 텐데 말입니다? 테러리스트들이 경계를 뚫고 안으로 들어왔다고….”

“물론 들었네. 그래서 어떻게 됐지?”

“퀘스트는 수행했지만 포획에는 실패했습니다.”

그녀는 능청스럽게 거짓말을 했다.

심장이 세차게 뛰는 것을 느꼈지만 참아냈다. 우아랑은 고개를 숙이지 않고 백 대령을 똑바로 응시했다.

“퀘스트는 계속해서 진행 중입니다. 상대 쪽 역시 같은 것을 수행하고 있는 듯합니다.”

“필요한 사람이 있다면 데려다 쓰게.”

“알겠습니다. 그래서 그 때문에?”

“아니…. 사실 다른 일을 맡기려고 했네만.”

백 대령은 골치가 아프다는 듯 이마를 짚었다. 아랑은 조금 의아한 기색을 느끼면서도 그것을 굳이 티내지는 않은 채 백 대령을 바라보았다.

“회장님이 우리 쪽 간부들을 별로 마음에 들어 하지 않아 하셔서 말이네.”

“….”

무슨 말을 하려는 건지 대충 짐작은 갔다.

“혹시 자네만 괜찮다면, 협업에 있어서 도움이 되어줄 수 있겠나? ‘우’아랑 대위.”

그리고 그런 예상은 전혀 빗나가지 않았다.

비릿하게 웃은 백 대령은 우아랑의 반응을 살피듯 입을 다물었다. 거기에 그녀는, 일부러 조금 뜸을 들이며 침착하게 행동을 정했다.

그래도 다행이었다. 모친과의 관계가 관계이니만큼, 이렇게 고민을 해도 이상하게 여겨지진 않을 테니까.

“…. 알겠습니다.”

얼마 후, 그녀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불편한 마음은 있다. 지금껏 쭈욱, 그녀는 어머니와 반목해왔으니까. 거기에 지금의 상황은, 도리어 서로의 입장을 바꾸어 반목하게 만드는 듯했다.

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확인할 필요성을 느꼈다.

어머니의 진심을.

“부탁하네. 옆에 있는 김 대위가 그쪽과 관련해서 업무를 수행할 예정이니까. 적당히 분위기를 누그러뜨리는 식으로 해서….”

“알겠습니다.”

다시금 대답을 반복하고, 경례를 붙였다.

“업무가 남아 있어서 가보겠습니다.”

“…. 그러게.”

백 대령은 다 피운 담배를 재떨이에 비벼서 껐다. 아랑은 몸을 돌려 바깥으로 나왔다.

“후우….”

하나로 묶어둔 머리가 오늘따라 불편했다.

“그럼, 나중에 연락드리겠습니다.”

“네, 대위님.”

함께 나온 대위와 적당히 인사를 하고 보낸 뒤, 그녀는 버텨내지 못하고 벽에 기대어 섰다. 가슴이 답답한 것을 느끼며 매만지려다가 참았다.

“어머니와 협력한다는 건가….”

그녀는 아이러닉한 일이라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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