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4편
<-- Chapter 6 : 이상의 기사 : 각성 -->
◇
가상 세계에 ‘혼자’ 들어오는 것은 오랜만이었다.
거기다 스스로 선택해서 돌아오는 것은 더욱이 처음이었다. 평소에 넬은 현실에서 잠시 자리를 비우더라도 디멘션 커넥터 안에 있을 때가 많았으니까.
아무것도 없는 어두컴컴한 공간에.
혼자 앉아, 멍하니 기다리는 것이었다.
사실 이번에도 그랬었다. 엘레노어는 그녀에게 디멘션 커넥터의 안에 있을 것을 종용했다. 신은 그를 홀로 시련에 대응하도록 만들고 싶어 했다.
하지만 넬은, 그것을 거부하고 한 가지 부탁을 했다.
그 사이 가상 세계에서 시간을 보내고 싶다고. 왜냐면, 어떻게든 그가 게임을 진행하도록 돕고 싶었으니까.
어찌 보자면 반역이다. 그녀의 세계를 지배하는 신에 대한. 하지만 신은 그것을 놀라워하며 즐겁게 허락했다. 거기에서 넬은 엘레노어를 완전히 이해했다.
그녀가 행동하는 원리, 어째서 즐겁게 느끼고 있는가. 마지막으로 이후가 어떻게 될 것인가. 단순히 허가된 데이터를 받아들인 것에 불과한 일이었지만.
“….”
그렇게 생각하자, 어쩐지 묘한 기분이었다. 그녀는 자신의 의식이, 그러한 ‘데이터’로서 치부되는 것에 최근 들어 묘한 기분을 느끼게 되었다.
넬이라는 존재란 결국 무엇일까 하고.
단순히 만들어진 인공지능에 불과한 걸까? 이렇게 느끼는 감정도, 손가락도, 얼굴이나 신체를 구성하는 모든 것들이 결국 그저 만들어진 것일까?
아니, 질문을 할 필요도 없다. 맞는 말이다.
하지만 그게 어딘가…. 묘한 기분을 들게 했다.
그 이유는 잘 모르겠다. 그 남자와, 그 남자의 곁에 있는 사람들과 함께 해오면서 생긴 어떠한 무언가다. 하지만 넬은 그것을 표현할 말을 찾질 못했다.
하지만 한 가지는 확실했다.
그를 돕는다.
게임을 끝낼 수 있도록.
“좋아!”
그것이 지금의 넬을 움직이게 하는 동력이었다.
양 뺨을 짜악, 때려 정신을 차렸다. 통증은 물론 느껴지지 않았다. 감각조차 없었다. 하지만 넬은 인간처럼 그런 행동으로 스스로를 되잡고 고개를 들었다.
거대한 데이터의 바다.
이곳에서 그녀는 무엇이든 될 수 있다.
모드레드도, 트리슈도…. 아니 린슬렛에 유하까지. 그 누구도 범접하지 못할 존재가 되어서….
그를 도울 수 있다.
그렇게 생각하자 의욕이 샘솟았다. 하지만 그런 감정의 근원을, 지금의 넬은 이해하지 못하고 있었다. 어떻게 보면 인간에 가까운 존재가 되었기에 낼 수 있는, ‘질투’라는 감정의 존재를.
왜냐면 그녀는, 그것을 ‘감정’이라고 불러도 되는 걸까 고민하고 있었기 때문에.
“아, 넬….”
가상 세계로 진입해, 공간의 좌표를 입력하자 곧바로 풍경이 드러났다. 검은 바닥에 발을 디디고 선 넬은 말을 걸어오는 소녀를 돌아보았다.
“응, 텔.”
검은 머리를 발끝까지 기른 소녀는, 넬과 비슷하게 노출이 심한 바디슈트를 입은 채였다. ‘예전’과는 달리, 그것을 넬은 묘한 기분으로 바라보았다.
“오랜만이네에. 잘 지냈어어?”
텔은 말꼬리를 조금 길게 늘여서 말하는 경향이 있다. 상냥하고 부드러운 성격으로 만들어져, 이 ‘엘레노어의 세계’를 안내하는 역할을 담당했다.
“응, 부탁할게 좀 있는데.”
“뭔데에?”
“자료의 열람이 하고 싶어.”
“어떠언 자료오?”
“….”
음, 좀 싫어지려고 한다.
“뭐든지이 말해봐아.”
외모적으로는 그런 말투를 써도 나무랄 구석이 없을 정도로 귀여운 텔이었지만, 넬은 그런 그녀에게 예전과는 달리 심할 정도로 이질감을 느꼈다.
“…. 잠시만.”
잠시 머뭇거리던 넬은 돌아섰다.
텔은 웃으며 자리에 서서 그런 그녀를 기다렸다. 넬은 머릿속을 정리하기 위해 턱을 괸 채 생각에 잠겼다.
어떤 정보를 가져가야할까. 하고.
[뭘 드리면 좋을까요.]
바로 그때, 목소리가 이어졌다.
“…. 에, 엘레노어.”
고개를 든 넬은, 눈앞에 등장한 무언가를 보고 놀라 말을 더듬었다. 하늘하늘하고, 또한 거대한 기운이 아무것도 없는 허공에 가득 퍼진 상태였다.
“엘레노어어.”
텔이 무릎을 꿇으며 신을 맞이했다. 하지만 넬은 고개를 들어 그런 거대한 기운을 정면으로 바라보았다.
[말해보세요, 넬.]
“어떤 걸, 말인가요?”
[무엇이 그 사람에게 도움이 될 것 같나요?]
“…. 당신의 확언.”
넬은 망설이지 않고 대답했다.
[인간의 의지를 존중하라는 말이군요.]
“네…. 하지만.”
알고 있다.
엘레노어는 그럴 존재다. 왜냐면 그녀에게는 욕망이 없기 때문이었다. 그저 만들어진 목적에 따라 과제를 충실히 수행해나가는, 결국 인간에게 귀속된 존재니까.
“한성진이란 사람은요?”
그게 문제인 것이다.
[아, 제 낭군님…. 말씀이시군요?]
“네, 그 ‘사람’은, 당신을 움직이게 만드는 존재 아닌가요? 그렇기 때문에 저는 불안한 거예요.”
[확실히 그것도 그렇군요. 저는 그 사람을 세상 모든 것을 합친 것보다 사랑하니까. 저는 그 사람이 ‘하라.’ 그런 한 마디만 하면 무너져 내리겠죠.]
“그래서….”
[당신도 그렇게 되었군요.]
“네?”
넬은 놀라 눈을 동그랗게 떴다.
[당신은 무엇인가요. 넬. 나의 품을 떠난 나의 아이.]
“…. 확언해주세요.”
넬은 말을 돌리는 엘레노어를 똑바로 바라보았다. 신은, 그런 넬의 움직임이 흥미로워 즐거이 여겼다.
[불가능하다면?]
그래서 조금 짓궂게, 질문을 던졌다.
“그게 불가능하다면….”
거기에 넬은,
“자유로워지겠습니다, 저는.”
자신의 ‘감정’을 있는 그대로 이야기했다.
거기에 엘레노어는, 웃었다.
입이 없는 상태로 모습을 드러냈음에도…. 눈앞에 등장한 자신의 피조물을 그렇게 즐겁다는 듯이 바라보았다.
◇
사실 원래 계획은 밤부터 움직이는 것이었지만.
“조, 좁아….”
할 킬러즈의 간부인 우아랑의 사정을 생각하자니 그럴 수도 없게 되어버렸다.
[조금만 참아라. 그 구역을 빠져나가면 되니까.]
“아니, 우는 소리에 매번 반응해줄 필요는….”
다 들키겠다.
무뚝뚝한 녀석의 목소리에 나는 어이가 없어지는 것을 느끼며 중얼거렸다. 좁은 환풍구 내에서 어떻게든 자세를 잡아 앞으로 나아가며, 나는 시선의 한 구석에 떠올라있는 창을 살펴보았다.
본부의 CCTV 영상이 내게도 송출되어 우아랑의 위치가 보여지고 있다. 정문으로 들어선 녀석이 로비의 카운터를 지키고 있던 병사들의 경례를 받는 게 보였다.
단순한 군부대 같지는 않은 풍경이다.
차라리 그 손위라고 할 수 있는 국방부의 풍경에 가깝다고 해야 할까. 그런 기관이 아닐 텐데도 불구하고 손님을 맞아들일 준비를 갖춰 놓은 듯했다.
그만큼 이 나라에 있어서 중요한 기관이기 때문일까.
어쨌든….
“몇 층으로 가는지, 손가락을 펼쳐서 대답해.”
그렇게 묻자 로비를 걷던 우아랑이 허공을 향해 네 개의 손가락을 쭉 폈다. 그런 동작에 주변을 걷던 병사들이나 간부들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아니….”
안 그래도 다 보이는데.
CCTV는 로비 전체를 완전하게 비추고 있다. 거기에 내가 생각하는 바에 따라 확대나 축소도 되어, 내가 우아랑의 움직임을 놓칠 일은 없었다.
[아…. 중령님. 간단한 스트레칭이었습니다.]
봐, 저렇잖아.
우아랑의 행동을 보고 옆에 서있던 여자 간부가 다가와 말을 걸었다. 내용이 들리지는 않았지만 나는 당황하는 우아랑의 목소리에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하, 젠장….”
이제는 같이 엘리베이터로 가고 있다.
여기까지는 플랜이다. 하지만 방해꾼을 상정해 두지는 않았기에 나는 길게 욕지기를 내뱉고는 계속 바닥을 기어 안쪽으로 이동했다.
[어, 어쩔 수 없지 않나…! 아, 아니 아무것도 아닙니다. 중령님….]
그리고 우아랑은 거기에 최악의 반응을 보였다.
“….”
발끈해 소리를 내지른 녀석이 이내 상황을 수습했다. 나는 우아랑은 이런 은밀한 작전에 있어서는 도무지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잠정적으로 결론을 내렸다.
사실 별 것 아닌 내용이다.
뭔가 훔치려고 하는 것도 아니다. 단지 우아랑에게 아무런 일도 없다는 것을 알리기 위해서 얼굴을 비추러 온 것에 더해져 퀘스트를 수행하러 온 것뿐이었다.
그 말처럼, 부대 내부의 한 공간은 아서리안의 퀘스트가 지정한 장소였다. 그 밖에, 서울 시내 전체를 대상으로 하여 수많은 마커가 있었지만….
어쨌든 빨리 끝내고 나가는 게 좋으리라.
“끄윽….”
통로는 점점 좁아져 폐소공포증을 불러일으킬 것만 같았다. 하지만 아주 조금 남았다. 나는 최대한 소리를 내지 않으려 하며 열심히 기었다. 그리고는 우아랑의 움직임을 주시하며 어두운 공간으로 빠져나갔다.
엘리베이터가 1층에 도착하는 타이밍이었다.
그 위에 내려앉은 나는, 조명도 하나 없이 어두컴컴한 가운데 중심을 잡고 섰다. 엘리베이터의 바로 위였다.
이것저것 시험해본 바에 따르면, 우아랑과 내가 떨어질 수 있는 거리는 30미터 전후였다. 그 이상으로 가면 칼에 찔린 부분에서 심한 통증을 느끼는 듯했다.
“….”
어젯밤에 발견했을 때의 거리는 그 이상이었다. 말인즉슨 녀석은 그런 통증을 참아내고 부대로 돌아가려고 했다는 걸까.
[네, 작전에 참가할 수 있어 영광이라고 생각합니다.]
엘리베이터 안에서 녀석은 중령과 계속해서 대화를 나누었다. 나름대로 침착한 태도여서 나는 별 일이 없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며 벽 쪽으로 다가갔다.
마커가 가리키는 장소는 5층,
그리고 녀석이 먼저 들리겠다는 사무실은 4층이다. 엘리베이터 근처에 있다고 했으므로 적당히 그 층의 환풍구에 숨어있으면 되겠지.
그로부터 얼마 지나지 않아 엘리베이터는 멈춰 섰다. 우아랑이 그곳으로부터 내려, 나 역시 좁디 좁은 환풍구 속으로 머리부터 몸을 밀어 넣었다.
[충성.]
우아랑이 경례를 붙이고, 그것을 받은 중령이 반대편으로 사라졌다. 그리고 뒤를 이어, 녀석이 CCTV 쪽을 힐끔 돌아봐 나는 곧장 말을 붙였다.
“안심하고 전진해.”
거기에 고개를 끄덕인 녀석이 문을 열고는 사무실 안으로 들어섰다. 더 나가볼까 싶어 고개를 든 나는, 몸이 통과할 수 없을 정도로 좁아진 환풍구의 모습에 멈췄다.
여기까지인가.
[네?]
하지만 바로 그때, 목소리가 이어졌다.
화면 속의 우아랑이 놀라 눈을 동그랗게 뜬 채였다. 나는 녀석의 앞에 서있는 한 간부의 모습에 뭔가 심상치 않은 예감을 했다.
[아, 알겠습니다.]
“뭐야? 무슨 상황이야?”
[대령님이…. 어디에서?]
찾아오라는 말을 들은 건가?
[4층의 부대장실, 알겠습니다. 밀린 업무 하나만 처리하고 곧바로…. 네?]
내게 말을 전하며 자연스럽게 돌아서던 우아랑이 이내 눈을 동그랗게 떴다. 말을 전한 간부가 문을 여는 동작으로 봐서는 같이 가자고 한 모양이었다.
“안 돼.”
난 그것을 저항해내듯 중얼거렸다.
환풍구 안으로 들어설 수 없다. 그렇기 때문에 다른 곳으로 돌아갈 시간이 필요했다.
“최대한 시간을 끌면서 가.”
[어, 어떻게 말이냐…?]
“아 씨, 그건 알아서 좀 해…! 뭐, 가다가 최대한 일을 벌이는 식으로!”
[아, 알겠다.]
그렇게 말하고 나는 환풍구 바깥으로 다시 빠져나왔다. 엘리베이터가 다시 1층으로 내려간 상태인 것을 확인하고 고개를 들었다.
하지만 바로 다음 순간, 화면에서 이물감이 느껴졌다.
“….”
스스로의 발을 건 우아랑이 몸을 내던져 사무실 한 구석의 정수기를 쓰러뜨리는 모습이 보였다.
아니, 좀. 이 미친 여자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