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3편
<-- Chapter 6 : 이상의 기사 : 각성 -->
◇
“이건…. 뭐냐?”
우아랑은 눈앞에 놓인 삼각 김밥을 놀란 눈으로 바라보았다. 무슨 우주기내식이라도 보는 것처럼.
“보면 모르냐.”
거기에 조금 당황해 대답하며 나는 재킷을 변형시켜 머리에 쓰고 있던 후드를 벗었다. 호텔의 바로 앞에 편의점이 있어 다행이었다.
“먹어.”
나는 후드 안에서 눌려 있던 머리를 매만지며 말을 이었다. 그리고는 혹시나 싶어 창문 쪽으로 다가가 바깥의 변화를 살펴보았다.
“아니….”
거리는 완연한 검정에 물든 채로, 가로등 불빛이 희미하게 비추는 것을 제외하면 조용하기 그지없었다. 할 킬러즈가 거리를 통제하고 있기 때문일까.
“그….”
편의점에 갔을 때도 전경들이 거리를 활보하기는 했다. 다들 피로에 찌든 얼굴이었기에 기억에 남았다.
“스, 스컬!”
바로 그때, 우아랑이 버럭 소리를 내질렀다.
“왜, 먹으라니까.”
창밖을 계속해서 관찰하던 나는 대체 뭔가 싶어 뒤를 돌아보았다. 방에 들어오자 무슨 주인 기다리는 개처럼 뛰어나와서 뭐 사왔냐고 묻더니….
그리고 굳어졌다.
“이, 이렇게 먹는 게 맞나…?”
녀석이 삼각 김밥을 죽이고 있었다.
“아니….”
당황스러운 기분에, 나는 굳어져 그런 목소리밖에 내질 못했다. 테이블 여기저기에 퍼진 밥알과, 녀석의 손안에서 절규하며 죽어가고 있는 삼각 김밥.
그냥 힘으로 뜯으려 한 것일까.
“하아, 뭐하는 거야.”
나는 슬며시 한숨을 내쉬며 돌아서 녀석의 곁으로 다가갔다. 침대 옆의 테이블에 앉은 채로 있던 우아랑은 나를 곤란하다는 듯 올려다보았다.
기운을 찾은 건지 셔츠를 대충 걸친 채였지만, 가녀린 어깨의 선이 드러난 채였다. 거기에서 나는 이 녀석이 어떤 존재였는지를 연상해냈다.
생각해보니, 부잣집 딸이다.
그것도 어마어마한.
“이런 거 드셔본 적도 없겠지.”
반대편에 앉아 편의점 봉투로 손을 뻗는다.
“고, 고맙다….”
삼각 김밥의 포장을 여는 내내 신기하다는 듯 보더니, 우아랑은 얼굴을 붉힌 채 받아들었다. 그리고는 조그마한 입으로 한 입 베어 물었다.
그리고 눈을 휘둥그레 떴다.
“맛있냐?”
“식욕이 도는군.”
“마실 것도 있으니까 천천히 먹어.”
나는 그렇게 중얼거리며 편의점 봉투 안에서 사온 것들을 꺼내 늘어놓았다. 보리차와 빵. 소시지. 간단하고 조리 없이 배를 채울 만한 음식들이었다.
“으음….”
“왜?”
“아니, 영양 배합을 생각하고 있었다.”
“….”
“하, 하지만 호의니 전부 먹어야겠지. 감사한다.”
얼척이 없어 바라보자니 우아랑은 얼굴을 붉히며 소시지와 빵을 자신의 앞으로 끌어갔다. 이쪽이 까탈스럽게 군다는 생각을 한다고 오해를 한 모양이었다.
딱히 그런 의미는 아니었는데.
“이런 거 먹어본 적 없어?”
“식사는 영양 균형에 맞춰서 했으니 말이다.”
“아 뭐, 단백질이나 섬유질 같은?”
“그래.”
참으로 불편한 성격이다.
“부잣집 아가씨가 그런 걸 신경 쓸 줄이야.”
“그게 무슨 소리냐.”
녀석이 나를 힐끔 노려보았다.
“삼각 김밥을 못 먹어봤다고 하니까.”
“머, 먹어보지 않은 것은 아니다.”
“아니, 한정식 집에서 금가루 뿌려서 주는 삼각 김밥은 빼고.”
“그런 게 아니라 편의점 음식도 먹어봤다는 말이다!”
당황한 녀석이 벌떡 일어서며 소리를 내질렀다. 하지만 이내 점액질로 뒤덮인 가슴을 움켜쥐며 다시 자리에 앉았다. 나는 그 모습을 무표정한 눈으로 바라보았다.
“아버지가…. 어렸을 적에 가끔 사주셨었지….”
얼마 후, 진정한 우아랑이 비릿한 웃음과 함께 말을 이었다. 거기에 나는 조금 흥미를 느꼈다.
“한성진?”
“그래, 일 때문에 바쁜 어머니 대신 아버지와 있는 시간이 더 많았으니까.”
우아랑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데도 삼각 김밥을 깔 줄 모른다고?”
“어, 어쩔 수 없다. 그런 건 아버지께서 까주셨으니까.”
“…?”
“그 밖에, 아이스크림 포장지라던가. 그런 것도…. 아버지는 내 손을 거치게 하신 적이 없었지.”
대체 얼마나 딸 바보인 거야.
“…. 그래서 군인이 되었다는 건가.”
나는 혼잣말에 가깝게 말을 중얼거렸다.
그렇게 자상하게 돌봐주었던 아버지가, 엘레노어의 협력자가 되다니 충격이 이만저만이 아니겠지. 모드레드의 기억을 통해서 봤던 거기는 했지만….
“정말로 그래도 괜찮은 거야?”
뭔가 이상하다 싶어, 나는 저도 모르게 목소리를 냈다. 삼각 김밥 하나를 다 먹고 빵으로 손을 뻗던 우아랑이 고개를 들었다.
“각오는 해둔 일이다.”
“….”
내가 끼어들 문제는 아닌가.
“왜 갑자기 마음이 바뀐 거야?”
나는 그렇게 생각하며 조심스럽게 질문을 던졌다. 쭉 궁금했던 사실이었고, 지금 단 둘이 있는 시점에서 이야기를 해도 좋겠다고 생각했다.
“할 킬러즈는 틀리지 않았다면서.”
“그렇게 말하지는 않았다. 네놈이 말하는 이상에 비해 현실성이 있는 선택을 하고 있다고 여겼었을 뿐.”
“여겼었다?”
“그래, 그렇게 생각했었지.”
녀석은 눈썹을 찡그린 채 중얼거렸다. 그리고는 손에 들고 있던 빵을 테이블에 내려놓았다.
“이준…. 너는, 싸울 수밖에 없었던 거냐?”
녀석은 말에 있는 뼈를 드러내 보이는 듯 내 이름을 불렀다. 의자에 앉아 무릎을 끌어안고 시선을 피한 채.
그 모습은 어쩐지 외로워보였다.
“나도 마찬가지야. 그렇다고 생각했었지.”
아마 우아랑이 말하는 건 집착일 터였다.
과거, 아니 그렇게 거창하게 말할 것도 없다. 고작 수개월 전의 내가 가지고 있었던 집착.
이 게임에 대한 증오, 그리고 분노.
하지만 모르겠다. 지금은….
“그럼 지금은 다 포기하고 돌아갈 수 있다는 말이냐?”
생각이 거듭되며 가속하려던 찰나, 우아랑이 말을 이었다. 거기에 나는 조금 놀라 눈을 동그랗게 떴다.
마치 내 마음을 읽은 듯한 행동이었다.
“그건 아니야. 너무 멀리까지 와버렸기 때문이지.”
“너무 멀리?”
“이게 옳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혁명이라도 꿈꾸는 것 같군.”
“그렇게 거창한 것까지는….”
“하지만 그 뒤는?”
우아랑은 차갑게 내 말을 끊었다.
“게임을 끝낸다. 얼핏 보기에는 이상적인 말이지. 현재 세계는 어느 곳이나, 엘레노어에 의한 테러 사태가 일어나지 않을까 전전긍긍해하고 있으니까.”
“그래, 그러니까….”
“그렇기 때문이다. 사회의 시스템은 이런 엘레노어 사태에 맞춰 최적화되어왔지. 그런 상황에서 무턱대고 게임을 끝내면? 그 후에 발생할 혼란을 감내해낼 수 있나? 게임이 정말로 끝날 거라고 보는 거냐?”
“그걸 나에게 강요하는 거야?”
“책임을 지라는 거다.”
“그런 걸 책임질 수 없는 사회는 붕괴하는 게 나아.”
“그런 태도가 무책임하다는 거다!”
우아랑이 다시금 소리를 질렀다.
“죗값을 치르라는?”
“그건 아니다…!”
“그럼 뭐지?”
되물어 생각을 캐내려고 했지만, 우아랑은 침묵했다. 나는 반대편에서 고개를 숙이고 있는 녀석의 모습에 길게 한숨을 내쉬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말할 수 없으면 먹고 잠이나 자.”
“…. 나는.”
덜컹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의자가 지익 뒤로 밀리며 우아랑이 나를 따라 자리에서 일어섰다. 세수라도 해야겠지 싶어 화장실 쪽으로 돌아섰던 나는,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이 게임을 끝낼 것이다.”
“말이 바뀌었네. 우아랑.”
“하지만 그건, 생각하고 있는 모든 조건이 완벽하게 맞아떨어졌을 때다.”
“그건…?”
흥미가 없지는 않아 계속 물었다.
“전제 조건은 물론, 엘레노어가 아서리안을 만든 이유다. 거기에서 우리가 타협할 여지가 있는가. 이득을 취함으로서 인류가 짊어질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는가.”
“….”
“할 킬러즈도 아니다. 그렇다고 너희는 더더욱 아니지. 하지만 멈춰 서서 절망할 수만도 없지 않나?”
다가온 녀석이 내 팔을 잡고 돌려 세웠다.
“나는 책임을 지겠다. 아버지의 행동에, 어머니의 망설임에. 그것이 내가 할 수 있는 행동이기 때문에.”
그 눈동자가, 의지를 담아 빛나고 있었다.
“도와주지 않겠나?”
“뭐….”
“네 도움이 필요하다. 이준.”
“어째서지?”
“그야 간단한 이유다. 할 킬러즈에 맞서는 것은 나 혼자서는 불가능하기 때문이지. 그렇기에 너나…. 랜슬롯의 힘이 필요한 것이다.”
“린슬렛이?”
“녀석은 현실성 있게 엘레노어에게 맞서기 위한 계획을 준비하고 있지. 그런 면에 있어서는 도리어 너보다 나을 정도다.”
우아랑은 고개를 끄덕이며 중얼거렸다.
“일단은 이걸 어떻게든 하는 게 우선이겠지만.”
그리고는 가슴을 뒤덮고 있는 검은 점액질을 손으로 가리켰다. 그녀는 애써 괜찮다는 듯 어설프게 웃었다.
“어떤 느낌인데?”
“숨이 좀 쉬기 힘들다는 것만 빼면 괜찮다. 칼에 찔렸을 때 폐가 부서진 것 같더니…. 이 점액질이 어설프게나마 그 역할을 다해주고 있는 모양이군.”
“….”
아무렇지도 않게 말하는 우아랑을 보고, 나는 눈썹을 찡그렸다. 폐가 부서졌다는 말에 어쩐지 나도 마찬가지로 심장이 꾹 조여드는 기분이었다.
“하지만 어떻게….”
“갤러해드가 되면 돼.”
어쩔 수 없다.
“뭐?”
“네가 갤러해드가 되라고.”
갑작스러운 이야기에 우아랑이 의아한 듯 눈을 동그랗게 떴다. 하지만 나는 망설이지 않고 퀘스트창을 꺼내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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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픽 퀘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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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갤러해드의 여정 7/10
난이도 : 알 수 없음
내용 : 당신의 선택만이 남았습니다.
제한 시간 : 없음
보상 : 선택의 결과에 따른 정당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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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선택이라.
“이런 게 없으면 선택하지 못할 거라고 생각한 거냐?”
나는 분노를 꾹 참아내듯 중얼거리며 버튼을 눌렀다. 눈앞에서 양피지가 불타 사라지는 이펙트와 함께, 나는 입술을 질끈 깨물었다.
확실히 좋은 느낌은 아니다.
타오르는 불길의 너머에 어쩐지 유하 누나가 서있는 것처럼 느껴졌으니까. 하지만 나는 그것을 무시했다.
유하라면 이렇게 행동했을 것이다.
“스컬….”
우아랑이 상황을 알아채고 목소리를 냈다. 녀석은 자신의 앞에 떠오른 새로운 퀘스트창과 나를 번갈아 바라보았다. 그 얼굴에 당혹스러운 기색이 펼쳐진 채였다.
“일단 갤러해드 퀘스트를.”
나는 침착하게 그녀를 타일렀다.
“…. 그래.”
고개를 끄덕인 우아랑이 눈앞에 떠오른 퀘스트를 확인했다. 분주하게 손길이 움직이고, 나는 그런 그녀의 뒤로 가서 함께 그 내용을 확인했다.
“이건…?”
그리고 우아랑은 다시금 놀란 목소리를 냈다.
“….”
그것은 나 역시 마찬가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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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픽 퀘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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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갤러해드의 여정 7/10
난이도 : ★★★★★★★★★★
내용 : 저를 만나러오세요.
제한 시간 : 없음.
보상 : 결과로 이어지는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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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레노어를 뜻하는 건가?”
“아니 그것보다…. 장소가 더.”
내 말에 자연스럽게 대답한 우아랑이 손가락을 튕겼다. 그러자 방안 가득 거대하게 지도가 떠올라 나와 녀석의 몸 주변을 휘감았다.
서울 시내다.
하지만 그것보다 더 중요한 사실은….
“마커가 여러 개라고?”
지도 위에 떠올라있는 마커의 숫자가 어림짐작으로 열 개는 넘는다는 사실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