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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크로맨서 재킷-251화 (251/321)

251편

<-- Chapter 6 : 이상의 기사 : 각성 -->

“들어오시죠.”

회장이 무뚝뚝한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헥터는 속을 알 수가 없는 사람이라고 생각하며 그 뒤를 따라 어둠에 잠긴 방안으로 들어섰다. 디멘션 커넥터의 팝업창이 희미한 불빛을 내고 있을 뿐이었다.

그로서 회장의 위치가 짐작이 갔다.

안으로 들어선 그녀는 재킷을 벗어 어딘가에 걸어두었다. 그리고 떨어져, 조금 기다리자 삐걱거리는 소리가 들려와 그녀는 창문이 열렸음을 짐작했다.

조금 과하다 싶었던 오크통의 냄새가 빠져나갔다.

시야가 제대로 보이지 않기 때문일까. 민감한 냄새가 방안에서 사라지는 것이 그대로 느껴졌다. 하지만 그 뒤로 한참이나 지나도 불을 켜려는 시늉은 느껴지지 않아 헥터는 헛웃음을 내뱉으며 자리에 섰다.

대체 언제까지 이럴 모양인지 보자.

의외로 천박한 구석이 있는 여자구나 하는 생각을 했다. ‘꼬장’이라는 말로 간단하게 설명이 가능할 터였다. 운전을 하고 여기까지 오는 가운데 카페에서 차를 세우더니 자기 것만 사오고 출발한다던가.

묘하게 태도 하나하나에서 무시하는 게 느껴진다고 해야 할까. 물론 지금껏 목울대를 뻣뻣하게 세우던 여자가 이제 와서 협조적으로 응할 것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았지만, 이것은 아무리 그래도 너무 나갔다.

“저, 회장님?”

결국 참다못한 헥터는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그러자 서재 안쪽에 서있던 정현이 다시금 거실 쪽으로 나왔다. 헥터는 방의 구조도 제대로 모르는 상황이었지만.

“네, 헥터…. 라고 부르면 될까요?”

“편할 대로 하시죠. 일종의 코드네임이지만.”

“….”

명백히 비웃고 있다.

속이 슬쩍 끓기 시작했다.

헥터는 눈앞으로 다가와 무언가를 내미는 회장의 모습에 고개를 갸웃거렸다. 하지만 정현은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고 서있을 뿐이었다.

흰색 셔츠에 바지 정장이, 푸른 불빛을 받아 빛나고 있다. 반대로 검은 코트를 입은 채 서있던 헥터는 묵묵히 그녀가 내미는 검은 물체를 받아들었다.

손잡이가 쥐어졌다.

“이건…?”

그로서 서류가방이라는 걸 알아차렸다. 헥터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물었다. 묵직하지는 않고 오히려 텅 비었지 싶을 정도의 무게였다.

“진실의 일부. 라고 할 수 있겠군요.”

“어떤 진실을 말씀하시는 건가요.”

“아서리안의.”

“헤에….”

헥터는 흥미로운 촉이 발동하는 것을 느끼며, 가방을 손에 올리고 잠금 장치에 손을 가져다댔다.

“돌아가서 하시죠.”

하지만 다음 순간, 정현이 그 손을 막았다.

“…. 절 너무 경계하시는데요.”

“안 하는 편이 이상하다고 생각됩니다만.”

“이제 같은 편이니 잘 지내는 편이 낫지 않을까요?”

헥터는 싱긋 웃으며 다가섰다. 하지만 뒤를 이어 정현이 어이가 없다는 듯 웃는 소리에 멈춰 섰다.

“재미있는 발상이군요.”

“…?”

“아뇨, 백 대령은 휘하에 둔 아이들에게 제대로 된 ‘훈련’도 시키지 않았나 싶어서.”

비웃듯 이야기하는 정현. 적개심을 감추지 않는 태도에서 헥터는, 그녀가 말하는 ‘훈련’이 개나 짐승에게 쓰는 표현임을 알아차렸다. 말인즉슨 정현은 그녀를 인간 이하의 생명체로 비유한 것이었다.

“일단 첫 거래이니만큼 신뢰를 갖추기 위해, 그리고 사항이 사항이니만큼 직접 방문을 허가 드렸습니다만…. 적당히 해두라는 말입니다.”

“….”

“저는 좀 쉬겠습니다.”

“아, 네….”

아무렇지도 않게 이야기한 정현이 셔츠의 단추를 풀며 돌아섰다. 그제야 방안에 불이 들어와, 헥터는 무어라 설명하기 힘든 감정을 느끼며 그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하지만 이내 물러섰다.

“또 찾아뵙겠습니다.”

라고, 조금 딱딱하게 말을 남기고.

회장이 일을 위해 따로 사용하는 이 집은, 건물의 가장 높은 곳에 있다. 고급스러운 복도로 나와 곧바로 도착한 엘리베이터에 올라타며, 헥터는 눈썹을 찡그렸다.

하지만 견뎌냈다.

1층으로 내려가, 차에 돌아갈 때까지.

“…. 왔군.”

거대한 사내가 검정 세단의 앞에 서있었다. 지나가는 사람들이 모두 한 번쯤은 돌아볼 거구에, 헥터는 길게 한숨을 내쉬며 그 곁으로 다가갔다.

그리고 세차게, 가방을 집어던졌다.

“무슨 짓이지.”

그것을 라이오넬은 아무렇지도 않게 잡아냈다. 잔뜩 참은 것을 풀어내듯 인상을 찡그린 헥터는 분을 이기지 못하고 차량의 타이어 부분을 걷어찼다.

“차가 날아갈 거다.”

하지만 라이오넬이 그것을 막아냈다. 그는 재킷을 입었다는 사실을 인지하라는 의미에서 손으로 막아낸 헥터의 발을 쥐고 거꾸로 훅 들어올렸다.

“무슨, 짓이야…!”

다음 순간, 눈을 동그랗게 뜬 헥터는 몸을 비틀어 라이오넬의 턱을 걷어찼다. 충격을 느낀 그가 반쯤 발을 들던 손을 놓았고, 그녀는 바닥에 내려섰다.

하지만 갑작스러운 행동에 정신이 좀 들었다.

“하아…. 그 미친년.”

앞머리를 쓸어 올리며 중얼거린 헥터는, 이내 라이오넬의 손에서 다시 서류가방을 빼앗아왔다.

“무슨 일이 있었나?”

“제대로 정신 나간 년이야. 상대하기조차 불쾌하군.”

“….”

“일단 가면서 이야기하자고.”

그렇게 중얼거린 뒤, 헥터는 곧바로 차량의 뒷좌석 문을 열었다. 그리고는 서류가방을 휙 내던지고는 검은 시트 안으로 몸을 밀어 넣었다.

“빌어먹을….”

“무슨 일이 있었던 거지.”

운전석에 라이오넬이 올라타 시동을 걸었다. 자동으로 카시트가 뒤로 움푹 빠지며 그 거대한 덩치에 맞게 조정되어, 헥터는 그 위에 발을 올렸다.

새하얀 다리를 꼰 채로.

“대충 예상가지 않아? 그 여자 커피 자기 것만 쏙 사오는 것부터 시작해서…. 뭐 우리가 마음에 안 드신다는 거겠지. 꼴에 자존심은 있어서.”

“….”

“그래서 좆같다는 거야. 결국 고개 숙일 거면서 마지막 자존심은 지키겠다고 저러니까. 근데 그거 알아? 자존심이 아니라 그냥 단순히 애새끼처럼 구는 거지.”

차량이 출발했다.

시트에 기대어, 헥터는 통제가 계속해서 진행 중인 서울 시내를 바라보았다. 우정현이라는 사람에 대한 증오를 강한 욕설로 조금 누그러뜨리며.

“어떻게든 엿 한 번 거하게 먹여주지….”

그녀는 차근차근 작전을 되짚으며 중얼거렸다.

“한 가지, 묻고 싶은 게 있다.”

바로 그때, 능숙하게 운전을 하던 라이오넬이 말을 이었다. 헥터는 눈썹을 찡그리며 룸미러에 비추는 그의 검은색 눈동자를 바라보았다.

“뭐야.”

“싸우는 이유.”

“….”

참으로 간결한 질문이다.

하지만 헥터는 그 말을 정확히 이해했다. 묻고자 하는 의미나 의도에 대해서도.

“하.”

그렇기 때문에 그녀는 그것을 비웃었다.

“왜? 내가 한 여자를 위해서 싸울까봐?”

대답은 들려오지 않았다. 쭉 편 다리를 들어 라이오넬의 머리가 대어진 시트의 반대편을 걷어찬 헥터는 흐르는 물처럼 말을 이어나갔다.

“븅신들, 그러니까 니들은 어디서 발이 걸려 넘어지는 거야…. 인간이 싸우는 이유는 하나면 충분해.”

“무엇이지.”

“자기 자신.”

그것이 그녀의 대답이었다.

승리하기 위해.

자기 자신의 영위를 계속해 나가기 위해서. 뒤쳐지지 않고, 오히려 앞서나가 테이블을 세팅해두고 뒤를 따르는 우민들의 등을 처먹기 위해서.

“당신은 그랬었지…? 배곯는 국민들을 위해서 싸운다고. 그러니까 안 되는 거야. 인간의 앞에 고결함이란 단어가 붙다니, 꿈에서나 통할 소리지.”

“….”

“그건 모조리 포장이야. 개소리란 말이지.”

헥터는 라이오넬의 신념을 단숨에 부정했다.

“당신은 그로서 당신이 고결하다고 생각할 뿐인 거야. 그리고 조국의 영웅으로서 기록될 자신을 사랑하는 거지. 결국에는 모든 이유에는 자신이 붙는다고?”

“….”

“그 남자도, 그리고 또 다른 남자도. 결국 여자를 사랑한 게 아니야. 여자를 사랑하는 자기 자신을 사랑하는 거지. 병신 같은 마초이즘에 취해서….”

“하지만 그렇게 보면 모든 것은 의미가 없다.”

“맞아, 의미가 없는 거라고.”

헥터는 고개를 끄덕이며 옆에 있던 시트에서 서류 가방을 집어 들었다. 그리고는 무릎에 올려, 잠금 장치에 천천히 손을 가져다댔다.

“승리 이외에는…. 순수하지 못한 거야.”

그녀는 자신의 신념을 이야기하며, 가방을 열었다.

승리로 향하기 위하여.

“끄응….”

이 녀석, 생각보다 무겁다.

“고, 고생하셨어요.”

힘에 부처 벽에 기대고 주욱 미끄러져 앉은 나를 보고 넬이 어색하게 웃었다. 거기에 반응하듯 고개를 끄덕인 나는 이어서 반대편의 침대를 바라보았다.

아까 전과 같은 상황이다.

킹사이즈의 침대. 거기에 여자가 누워 있다. 내가 보는 각도에서는 발밖에 보이지 않았지만.

“윽….”

신음이 이어졌다. 괴로운 듯 우아랑이 침대 위에서 몸을 비틀었다. 그 행동이 과격해, 끝으로 떨어지려고까지 해 나는 벽을 박차고 그 곁으로 다가갔다.

“하아, 어째서 이렇게.”

“으극….”

가슴을 양손으로 움켜잡고 있던 그녀가 내게 매달려왔다. 괴로움을 전하려는 듯이 이쪽의 팔뚝을 세게 할퀴며 거칠게 숨을 몰아쉬었다.

얼굴이 땀으로 범벅이었다.

“재킷은 또 어따 팔아먹은 거야…?”

“주인님…. 코트에요, 코트.”

넬이 설정을 정정해주었다.

“아니, 그게 문제가 아니잖아.”

그보다 너 타나토스라고 부른다고 하지 않았냐.

길게 한숨을 내쉬며 대답한 나는 다시금 우아랑을 침대에 눕혔다. 얼굴이 완전히 엉망진창이어서, 조금 걱정스러운 기분을 느꼈다.

그것은 책임감으로부터 비롯된 것이었다.

“어떻게 하지? 아니, 왜 이런 거야?”

머릿속이 복잡했다.

위치 정보가 떠오른 곳으로 가보니 이 녀석이 바닥에 쓰러져 있어서 얼마나 당황했던지. 완전히 몸을 못 가누는 상태에서 주변에 모인 사람들이 구급차까지 불러 데려오는 일에 꽤나 애를 먹었다.

이 또한 엘레노어가 의도한 바인 걸까.

그런 식으로밖에 생각할 수 없어, 나는 불쾌한 기분을 느꼈다. 녀석은 또 나에게 뭘 시키려는 걸까 싶어서.

“설마 이 녀석을 갤러해드로 만들라고…?”

머릿속에 떠오르는 한 가지 사실에, 나는 저도 모르게 중얼거렸다. 침대 위에서 어린아이처럼 웅크리고 있는 우아랑을 내려다보며 나는 입술을 질끈 깨물었다.

게다가 이 녀석은 할 킬러즈의 요원이다. 스파이에 가까운 짓을 하고 있지만 그래서 더 문제였다.

이 녀석과 이제부터, 갤러해드 퀘스트를 완료할 때까지 단 한시도 떨어지지 말고….

“같이 있어야 한다고?”

정말로?

========== 작품 후기 ==========

저도 사실 예기치 못했는데 한 가지 재미있는 사실은...

후반부의 챕터 구성이 주인공이 히로인과 만남을 가진 순서에서 역순으로 가고 있다는 것입니다. 전 챕터는 유하의 챕터엿고 현 잽터는 우아랑의 챕터죠. 그럼 마지막 챕터는...음.. 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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