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9편
<-- Chapter 6 : 이상의 기사 : 각성 -->
“큭…!”
그녀가 죽어가던 것이 ‘멈췄다.’ 린슬렛이 그랬던 것과 마찬가지로. 나는 권능을 부리는 것 마냥 스킬을 사용해 우아랑을 되살렸다. 민소매 셔츠의 가슴 부분에 검은 세포 조직 같은 것이 일렁거리며 꿈틀거리기 시작했다.
“윽…!!”
괴로운 감각을 느끼는 듯 우아랑이 그것을 벗겨내려고 했다. 하지만 나는 그런 그녀의 손을 꽉 쥐었다.
“가만히 있어.”
“스컬…!”
크게 신음한 우아랑이 내 손을 떨쳐내고는 반대로 세게 움켜쥐었다. 눈썹을 잔뜩 찡그린 채 그녀는 고통에 신음하며 활처럼 등을 휘었다.
재킷을 벗도록 하는 게 아니었다.
물론 그것은 그녀 스스로 우리의 신뢰를 얻기 위해 한 행동이었다. 하지만 나는 인간을 벗어나는 듯한 우아랑의 모습에 죄책감이 밀려드는 것을 느꼈다.
검은 점액이 혈관과 같은 형태로 뻗어나가 그녀의 상반신을 뒤덮었다. 목을 타고 올라가 턱 끝에 이르러서 멈추어 마치 새로운 피부가 된 듯했다. 우아랑은 그것을 버텨내지 못하고 이내 혼절했다.
“티티!”
그러는 사이, 뒤늦게 린슬렛과 넬이 가까이 다가왔다. 나는 추욱 늘어진 우아랑을 안아들고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다.
“이게, 무슨…?”
린슬렛은 안색이 창백해져서 물었다. 설명을 하려는 요량인 것일까. 눈앞에 다량의 팝업창이 떠올랐지만 나는 무시하고는 앞으로 나섰다.
“일단 안전한 곳으로.”
그리고 뒤를 이어, 도로 위에 검은 바람이 휘몰아쳤다.
적이 등장했느니 뭐니 하면서 팝업창과 함께 눈앞에 검은 기사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나는 입술을 질끈 깨물며 어깻죽지에 트리슈의 근본을 계승했다.
“비비안은?”
사족보행을 하는 골격들이 날아가 기사들을 덮쳤다. 나는 그 사이를 아무렇지도 않게 걸으며 물었다.
“지금 연락했어. 안전한 장소를….”
“아니, 아무 곳이나 괜찮아.”
“응?”
린슬렛이 의아한 얼굴로 나를 돌아보았다. 거기에 나는 점차 속력을 높이기 시작하며 대답했다.
“엘레노어와 이야기를 했거든.”
“그게 무슨….”
“정말이야, 왜냐하면….”
우아랑은 이렇게 당해버렸다.
그것도 엘레노어가 말을 끝낸 직후. 그렇기 때문에 나는 린슬렛이 의문에 망설이지 않고 대답했다.
아무 소용이 없다고.
녀석에게 무언가를 숨기려는 짓은 아무런 소용이 없는 행위였다. 현실이던 가상이던, 엘레노어는 인간의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하고 제어하는 신이었다.
하지만 방법이 없다.
결국 이 세계에 속한 이상….
==============================
특별 퀘스트
==============================
제목 : 망자들의 왕
난이도 : ★☆☆☆☆☆☆☆☆☆
내용 : 고결한 기사를 당신의 망자로 만드세요.
제한 시간 : 없음
보상 : 갤러해드
==============================
다시금 눈앞에 확인하라는 듯 퀘스트창이 떠올랐다. 하지만 나는 그것을 무시하고 내달렸다.
◇
호텔의 방은 적막히 희미한 등이 밝혀진 채였다.
싱글 사이즈의 침대가 두 개. 이어진 반대편 방에는 킹 사이즈의 침대가 하나. 그런 구조였다.
“후우….”
린슬렛이 한숨을 내쉬며 반대편 방에서 나왔다. 초조한 기분을 느끼며 의자에 앉아있던 나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서며 동시에 입을 열었다.
“어때?”
“괜찮은 것 같아. 조금 보기에는 그렇지만.”
그녀는 괴로운 듯 신음하며 중얼거렸다. 그러자 뒤를 이어 린슬렛의 뒤에서 모습을 드러낸 비비안이 이마를 매만지며 말을 이었다.
“칼에 찔린 상처에 검은 조직이 들러붙은 상태에요. 타나토스님은 혹시 짐작 가는 바가 없으신가요?”
“없어.”
나는 인상을 찡그린 채 중얼거렸다. 두 사람이 우아랑의 상태를 살피는 사이 스킬에 대해 조사를 해보았지만 죽은 자를 되살린다는 것 이외에 정보는 없었다.
“하지만…. 비슷한 상황 겪어보지 않았어?”
뒤를 이어 린슬렛이 입을 열었다. 그녀는 조금 곤혹스러운 표정으로 비비안을 돌아보고는 내게 다가왔다.
“나 때도 그랬잖아.”
“그랬지.”
하지만 그때는 재킷이 다시 입혀지며 상처가 완벽하게 회복되었다. 우아랑과는 상황이 정반대였다.
“거기다 퀘스트까지….”
“퀘스트?”
의아해하는 린슬렛. 나는 그녀에게 팝업창을 띄우고는 슬쩍 내밀었다. 그 뒤에 선 비비안과 함께 퀘스트를 확인한 린슬렛이 눈썹을 찌푸렸다.
“고결한 기사를 당신의 망자로?”
“랜슬롯이 그랬던 것처럼 말이군요.”
“끄응….”
비비안의 말에 린슬렛은 이마를 짚었다.
“어쨌든 상황을 정리해보자.”
나는 그렇게 중얼거리며 자리에 앉았다. 린슬렛이 장식장에 기대어 서고 비비안 역시 침대에 앉아 나는 앞머리를 매만지며 잠시 생각을 정리했다.
“너희는 뭘 하려는 거야.”
그리고 일단 질문을 던졌다.
“….”
거기에 린슬렛은 대답하는 대신 비비안을 바라보았다. 그런 동작을 잇듯 비비안이 천천히 입을 열었다.
“물론, 엑스칼리버의 탈취에요.”
“이게 대체 뭔데, 그래?”
나는 그렇게 중얼거리며 품안에서 우아랑에게 받은 상자를 꺼내들었다.
“다량의 더미 데이터를 발생시켜 혼란을 주는 장치야.”
“더미 데이터?”
“아….”
바로 그때 옆에서 신음에 가까운 소리가 들려왔다. 고개를 갸웃거리며 시선을 보낸 나는, 넬의 안색이 창백하게 질린 모습에 고개를 갸웃거렸다.
“넬?”
“….”
이름을 불러보았지만 대답은 돌아오지 않았다. 겁에 질린 것일까. 주변을 두리번거리던 녀석이 린슬렛의 등 뒤로 가서 숨었다.
대체 무엇이기에.
“넬, 커넥터 안으로 들어가있어.”
“네?”
“두 사람도 디멘션 커넥터 끄고.”
“아니….”
린슬렛이 이어질 내 행동을 눈치 챈 듯 눈썹을 찌푸린 채 중얼거렸다. 하지만 넬의 존재를 알지 못하는 비비안은 고개를 갸웃거리며 말을 이었다.
“무슨 말씀이신지….”
“백문이 불여일견 아니겠어?”
나는 일부러 미소를 지으며 그렇게 대답했다. 머뭇거리던 넬이 디멘션 커넥터 안으로 모습을 감췄고 뒤를 이어 비비안이 침대 위로 올라 앉았다.
“하아, 말려도 소용없겠지….”
린슬렛이 쓰게 웃으며 디멘션 커넥터를 껐다. 자리에서 일어선 나는 그녀에게 들고 있던 기계를 넘겼다.
“괴로운 것 같으면 바로 꺼줘.”
“5초 후에 끌 테니까, 준비됐으면 말해.”
린슬렛이 기계에 달린 조그마한 버튼에 손을 올렸다. 잠깐 각오를 굳히고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
뭔가가 들어왔다.
뇌를 타고, 무언가가 흘러들어오는 기분이었다. 이미지로는 차가운 녹색의 방사능. 불쾌하고 끈적거리는 오염된 독극물의 느낌.
“큭…!”
그리고 그게, 뒤바뀌었다.
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머릿속을 쿵쿵 부딪치며 울리는 것 마냥 음악과 소음, 목소리가 마구잡이로 이어졌다. 혀에서는 온갖 맛이 뒤엉켰고 그 밖의 오감이 몸을 동시에 유린하는 듯했다.
가장 크게 느낌이 오는 것은 시야였다.
여자가 서있다.
남자가 서있다.
그게 뒤섞인 무언가가 서있다.
빠른 속도로 사라지며 모든 게 하나가 되었다 사라졌다. 자동차와 인간이 하나로 융합되고 손톱과 전등이 달라붙어 빛나기 시작했다. 그리고 뒤를 이은 ‘데이터’는 나조차도 도저히 이해하기 힘들었다.
뇌의 인식이 그것을 받아들이지 못했다.
마치 기괴한 영상을 눈앞에서 틀어놓은 듯했다. 문제는 그것이 단순한 영상이 아닌 오감을 자극하고 있다는 것이었지만.
“자, 5초.”
“윽…!”
그리고 그것이 사라졌다. 나는 비틀거리며 중심을 잃었고, 뒤를 이어 린슬렛이 받아주어 기댔다.
“괜찮아?”
그녀는 내 등을 토닥이며 상냥한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하지만 나는 온몸을 갈기갈기 찢는 듯한 ‘정보의 바다’에서 막 나온 상태였다. 소름이 끼치고 두려움에 온몸이 지배를 당한 상황이었다.
“이거 완전, 마약인데….”
“흐응, 해봤어?”
“아니, 그건 아니지만.”
사람의 정신을 옭아 넣는다는 부분에서는 비슷하지 않을까. 나는 그렇게 생각하며 린슬렛으로부터 떨어졌다. 그리고는 다시 자리에 주저앉았다.
“이런 거였군.”
“이해했어?”
수많은 의미가 없는 데이터를 발생시켜 정상적인 행동이 불가능할 정도로 속인다는 걸까.
“넬.”
뒤를 이어 든 의문감에, 나는 디멘션 커넥터의 안으로 숨어있던 녀석을 불러냈다. 그러자 뒤를 이어, 허공에 동그란 구멍이 생기더니 넬이 눈만 빼꼼 내밀었다.
“끄, 끝난 건가요?”
“…. 그래.”
나는 슬며시 미소를 지으며 그녀를 불러냈다. 주변을 두리번거리던 넬이 바깥으로 빠져나왔다. 거기에 나는 의문의 해답을 찾기 위해 질문을 던졌다.
“이거라면 엘레노어에게도 통할까?”
라고.
“…. 아마도요.”
거기에 녀석은 조금 괴로운 듯 대답했다. 나는 다시금 의아한 기분을 느꼈지만 미뤄두고 고개를 들었다.
“이걸 엘레노어에게 사용한다는 거지?”
“네, 결국 그녀도 어떠한 정보의 집합체에 불과하니까요. 꽂아 넣을 수만 있다면 저희의 승리입니다.”
“가능할까?”
“완성된 검을 봐야겠지만…. 할 킬러즈가 행동에 들어간 걸로 봐서는 기대할만하지 않을까?”
“글쎄….”
나는 어려운 이야기라고 생각했다. 가능성이 없는 이야기는 아니겠지만, 이게 과연 엘레노어라는 ‘신’에게 통할까 싶었다. 그녀는 언제나 인간의 상상을 뛰어넘는 존재로 군림하고 있었기 때문에.
“저 주인님…?”
바로 그때, 목소리가 이어졌다. 고개를 들자 팝업창을 띄운 채 고개를 갸웃거리고 있는 넬의 모습이 보였다. 그녀는 망설이다 내 쪽으로 창을 보냈다.
- 당신의 망자가 깨어났습니다.
“…? 잠시만.”
그건 우아랑을 뜻하는 말일까.
나는 의아한 기분을 감추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리고는 린슬렛의 곁을 지나쳐 반대편 방으로 향했다.
“….”
녀석은 침대에서 일어나 앉은 채였다. 확인을 할 때 셔츠를 벗긴 모양인지 상반신이 훤히 드러난 채였지만 나는 개의치 않고 가까이 다가갔다.
“상황을 설명해주겠나.”
검은 점액이 그 위를 뒤덮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어깨나 복부를 제외하고, 마치 붕대라도 된 것처럼 점액질은 칼에 찔린 가슴 부분으로부터 목까지 이어진 상태였다. 나는 한숨을 내쉬며 가까이 다가갔다.
하지만 대체 무엇부터 설명을 하면 좋을지.
불편한 침묵을 견뎌내고 있자니 디멘션 커넥터를 확인한 우아랑이 눈을 동그랗게 떴다. 거기에 나는 의아해 저도 모르게 입을 열었다.
“왜 그래?”
“아니…. 갤러해드 퀘스트가 해결 됐다.”
“뭐?”
눈썹을 치켜뜨자 그녀가 바라보고 있던 팝업창을 내게 넘겼다. 나는 곧바로 그 내용을 확인했다.
- 퀘스트를 완료하였습니다.
- 경험치가 상승하였습니다.
- 레벨이 상승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