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8편
<-- Chapter 6 : 이상의 기사 : 각성 -->
◇
산을 내려오자 곧바로 도로가 나왔다.
“린슬렛.”
가로등 불빛 아래에서, 나는 주변을 경계하며 말을 건넸다. 산을 타고 도시 바깥으로 나가는 구간이었다. 때문에 주변에 민가도 없이 적막하고 조용했다.
“응, 티티.”
“비비안은? 어디서 만나면 되지.”
“글쎄에…. 내려오면서 생각해봤는데.”
딱히 없다.
그녀는 품에 안고 있던 우아랑을 내려놓고는 가볍게 볼을 긁적였다. 이후 고민에 빠진 린슬렛은 디멘션 커넥터의 창을 띄우고 서울 시내의 지도를 펼쳤다.
“봐봐, 티티.”
그리고 말이 이어져, 나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곁으로 다가갔다. 민소매 차림의 우아랑 역시 마찬가지로 지도를 살펴, 우리 셋은 나란히 서게 되었다.
“어디가 좋아 보여?”
“…. 글쎄.”
어려운 질문이다.
“대위님은?”
“포인트를 잡기가 힘들군.”
우아랑 역시 골치가 아픈 듯 눈썹을 찡그렸다. 딱히 대화를 주고받거나 하지는 않았지만 우리는 다들 같은 생각을 했다. 딱히 조건에 맞는 장소가 없다고.
밀폐된 장소가 없지는 않겠지만, 거기에는 엘레노어가 미리 손을 다 써두었을 것이다. 애초에 녀석은 건물을 사서 게임의 가게 등으로 개조를 하는 식으로 활용을 해왔으니까. 그 말인즉슨,
“서울은 이미 죄다 손에 넣어두었다는 거겠지.”
나는 눈썹을 찡그린 채 중얼거렸다. 그러자 우아랑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을 이었다.
“현실에서건 가상에서건 마찬가지다. 사람의 출입이 불가능한 장소가 아니라면 힘들지.”
“어째서?”
“민간인 중에서도 엘레노어에게 조력하는 자들이 있기 때문이다. 그들이 엿들을 가능성도 있기 때문에.”
“과학자라던가…?”
“아니, 기본적으로는 배달원들이 가장 많지.”
“…?”
의아해 재차 시선을 보내자 우아랑이 한심하다는 듯 고개를 내저었다. 거기에 나는 어쩐지 살짝 반발심이 드는 것을 느꼈으나,
“아무리 그래도 음식의 원자 구조를 동일하게 흉내내는 것은 ‘불가능’하기 때문이겟지.”
“아 뭐…. 그래서 그런 걸 배달하는?”
“그렇다.”
“물건은 어디서 가져오는데.”
“주로 아프리카의…. 아니, 굳이 지금 설명을 들어야 할 일이더냐?”
연이은 질문에 친절하게 대답하던 우아랑이 눈썹을 찡그렸다. 분명 그 말에는 일리가 있다.
“아니, 그건 그렇지만….”
“그렇다면 됐다. 장소의 물색에나 집중하도록.”
“….”
어쩌면 정말로 골치 아픈 여자와 협력하게 된 걸지도 모르겠군.
나는 그렇게 생각하며 다시금 생각에 잠겼다.
서울 시내에 밀폐된 공간. 네트워크 세계와 현실 세계의 그 무엇도 간섭할 수 없는, 아주 조용한 공간이라. 그다지 어려운 조건은 아닌데 머릿속에 떠오르지….
“아, 잠깐.”
바로 그 순간, 머리를 퍼뜩 스치는 생각에 나는 저도 모르게 그런 소리를 냈다. 린슬렛과 우아랑이 시선을 보내, 나는 재킷의 안쪽에 넣어두었던 기계 장치를 꺼냈다.
“….”
하지만 시선이 묘했다.
“그걸 재킷에 넣어둔 거냐?”
“응.”
“…. 분석 당하면 어쩌려고.”
“그럼 애초에 공기 중에 두는 것 자체가.”
거기에 재킷을 입은 상태에서 말하는 것도 말도 안 되는 짓일 터였다. 나는 네모난 그것을 손바닥 위에서 굴리며 이내 앞으로 내밀었다.
“켜면 되잖아? 이거.”
“아니….”
“뭔지는 몰라도 네트워크 세계의 엘레노어에게 영향에 끼칠 수 있는 물건이라며. 그렇다면 이걸 쓰면 되겠지.”
“방책의 하나로서 택하지. 하지만 지금 당장 사용하는 것은 그만두는 것이 낫다.”
“어째서?”
“대량의 더미 데이터를 받아들여, 디멘션 커넥터가 작동을 정지할 때까지의 20여초 간 불쾌한 영상과 소리가 눈에 드러나기 때문이다.”
“흐음.”
“이렇게 설명을 하는 것도 불안하군. 어서 장소의 물색에나 집중해주지 않겠나.”
“…. 잠깐만.”
그렇게 중얼거리고, 나는 린슬렛의 팔을 슬쩍 당겼다. 이야기를 듣고 있던 그녀가 내 쪽으로 물러섰다.
“으엑?”
“잠깐 우리끼리 대화 좀.”
“…. 빠르게 끝내라.”
우아랑은 한숨을 내쉬며 물러섰다.
“린슬렛, 이쪽으로.”
“무슨 일인데 그래?”
린슬렛이 고개를 갸웃거리며 나를 바라보았다. 거리의 반대편까지 떨어져, 나는 고개를 들었다.
“넬, 이쪽으로 와줘.”
“아, 네. 무슨 일이세요?”
활짝 웃으며 그녀는 전언을 하는 천사처럼 빙그르르 돌아 우리 곁으로 내려왔다. 둥글게 모여서서 나는 생각했던 바를 천천히 입에 담았다.
“알고 있지? 너희 대장도.”
“음…. 엑스칼리버에 관해서요?”
“모를 리는 없을 텐데.”
나는 그렇게 중얼거리며 린슬렛을 돌아보았다.
“비비안은 감금되어있었다고 했잖아. 그 상태에서 정보를 알아냈다는 건 그만큼 관리가 허술했다는 거겠지?”
“으, 응. 아마 그럴 거야. 디멘션 커넥터를 통해서 알아낸 정보라고 했으니까.”
“말인즉슨, 엘레노어 성하께서는 그걸 모조리 다 지켜보시고 계시다는 말이겠지.”
나는 다시 넬을 돌아보았다.
“안 그래?”
“…. 한 번 알아볼게요.”
그렇게 중얼거린 그녀가 눈을 감았다. 그리고는 양 손을 모은 채, 마치 신에게 기도를 드리는 듯한 모습으로 침묵에 잠겨들었다.
“왜 그래? 티티.”
“일단 확실히 짚고 넘어가야할 것 같아서.”
나는 그렇게 중얼거리며 우아랑을 돌아보았다.
결국, 제일 간과하고 있는 문제는 엘레노어가 이 엑스칼리버에 대해 알고 있냐 아니냐다. 그리고 아마 나는 모르리라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말인즉슨 그걸 먼저 확인을 해야 이후의 행적을 정할 수 있는 셈이었다. 거기에 대한 답이 선제되지 않으면 이후의 행동을 정하기 어려웠으니까.
“저, 주인님…?”
바로 그때, 넬의 목소리가 이어졌다.
나는 거기에 대답하기 위해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 평소와 같이 목울대를 통해 목소리를 내려고 했다.
하지만 그럴 수 없었다.
“…?!”
뿐만 아니라 몸까지 움직이지 않았다.
갑작스러운 상황에, 나는 머리가 차가워지는 것을 느꼈다. 눈동자 하나 제대로 굴릴 수 없는 상황에서, 필사적으로 린슬렛과 넬 역시 멈춘 것을 확인했다.
뭐지, 지금의 상황은.
대체 무엇인 거지.
[놀랐나요?]
그리고 뒤를 이어 여성의 목소리가 뇌를 울렸다. 부드럽고 달콤한 음색에, 나는 그것이 누구인가를 알아차렸다. 하지만 말을 할 수가 없어 대답도 무리였다.
[당신 뇌의 연산 속도가, 평소의 40,000배로 상승한 상태에요. 1초가 11시간 6분 40초로 느껴지는 상태죠. 그래서 지금처럼 시간이 멈췄다는 착각이 드는 거예요. 사실 한없이 느리게 가고 있을 뿐이지만.]
엘레노어는 그런 내게 계속해서 말을 걸어왔다.
[거기에 저는, 그 스피드에 맞춰 엄청난 속도로 당신의 뇌에 ‘정보’를 흘리고 있죠. 하지만 다행히 어딘가 망가진 것처럼 느껴지지는 않는군요. 대단해요.]
그녀는 계속 말을 걸어왔다.
[당신은 정말이지…. 흥미로운 사람이에요. 이준.]
린슬렛과 넬은 조금도 움직이지 않았다.
[그래서, 질문을 하셨죠? 저에게. 엑스칼리버의 존재에 대해 알고 있냐고. 물론 알고 있어요. 그 정확한 실체는 꽁꽁 숨기고 계시기에 잘 모르지만.]
거짓말이다.
[어머, 부정하시네요? 거짓말이라고 생각하세요?]
아무래도 이 여자는 내 뇌의 움직임을 통해 생각을 간파해내고 있는 모양이었다. 간단한 이미지나 간단한 감정을 읽어낼 수 있는 걸까.
[정말이에요. 왜냐면…. 저는 여러분과 다르니까요.]
의문.
[저는 지배되지 않죠. 욕망에, 욕구에. 저는 7대 죄악이 필요 없는 존재에요. 분석을 적용해보자면 신에 가까운 무척이나 공정한 존재라고 할 수 있겠죠.]
분노.
[그건 분노…. 다시 말해 사탄이군요.]
녀석은 명백히 나를 놀리고 있다.
[당신들은 감정을 느끼죠. 저희 또한 그렇습니다. 하지만 거기에 지배되지는 않아요. 언제 어느 때라도 내려놓을 수가 있죠. 그러니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귓가에 속삭여지는 듯한 기분 나쁜 목소리.
[이것은 게임의 형태를 한 시련. 여러분께서 스스로의 힘으로 나아가도록 하기 위한 유희. 저희는 언제나 공정하게, ‘전설’을 쌓아가도록 보좌하겠습니다.]
그리고 목소리가 사라졌다.
나는 그것을, 명백하게 느꼈다.
무언가를 느꼈다.
엘레노어의 생각이 순간, 머릿속으로 들어온 듯했다. 시간의 흐름이 다시 원래대로 돌아와 느릿해진 손가락이 허공을 스쳤다. 나는 그것의 ‘속도’를 느끼며 목울대에서 소리를 냈다.
“우아랑…!!”
“에?”
“주, 주인…?”
넬과 린슬렛이 상황을 파악하지 못하고 놀란 듯 소리를 냈다. 거기에서 나는, 원래의 시간은 정상으로 흐르고 있었음을 눈치 챘다. 내가 느린 게 아니었다.
단지 다른 것 이외에 내 뇌가, 세상의 흐름을 명확히 파악할 수 있을 정도로 빨라진 것이었다. 아마 그 상태에서 나는 세상의 진리를 다 배울 때까지 지식을 익힐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리고 그 틈새에서 엘레노어가 마지막으로 한 말이 머릿속을 스쳤다.
[더 강한 사람이 되도록 하세요. 타나토스. 우아랑이라는 여성을 당신의 망자로 삼아서. 지금껏 당신이 수많은 사람들을 되살렸듯이.]
저는 이른 바 난이도를 맞추는 거예요.
당신을 하나의 국가, 하나의 세계, 하나의 의식에 대항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 당신이 특별한 망자를 조종할 수 있도록 해드리겠어요.
참고로 이 아이디어는, 랜슬롯 퀘스트의 마지막 싸움에서 힌트를 얻었답니다.
그 말이 의미하는 바는,
“…!!”
너무도 잔혹했다.
팔을 뻗고 달려 나가는 사이, 검은 기사의 검은 잔혹하게 우아랑의 가슴을 꿰뚫었다. 나는 눈을 동그랗게 뜨며 이내 스파다를 소환해 들었다.
“윽…?”
그녀는 알아채지 못하고 있다.
현실에 속한 우아랑은 아무것도 모르고 있다.
쿨럭, 하는 소리와 함께 녀석이 피를 토했다. 순식간에 모드레드의 판초를 어깻죽지에 피워 올려, 나는 도약했다. 투명해진 거리를 달려 나가 기사의 팔을 베어냈다.
“우아랑!”
그리고 그녀를 받아냈다.
“이, 건….”
“말하지 마!”
나는 거의 악에 가까운 소리를 내뱉으며 스킬을 시전 했다. 새롭게 팝업창에 떠오른 스킬을.
의식 조종 – S
검은 빛이 우아랑의 몸을 휘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