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7편
<-- Chapter 6 : 이상의 기사 : 각성 -->
하지만 나는 경계를 늦추지 않고 스파다를 뽑아들었다. 그런 모습에, 우아랑은 가볍게 한숨을 내쉬며 양손을 높이 치켜들었다.
“싸움을 하러 온 게 아니라고 하지 않았더냐.”
그렇게 이야기한 녀석이 조용히 무어라 말을 중얼거렸다. 그러자 뒤를 이어 우아랑이 입고 있던 검은 코트가 사라지며 민소매셔츠가 그대로 드러났다.
“…?”
“코트를 해제했다.”
거기에 뒤를 이어,
“디멘션 커넥터도 종료해두도록 하지.”
녀석은 귓바퀴에 붙어 있던 원통형의 장비를 떼어내 바닥에 내려놓았다. 그런 모습에 나는어처구니가 없어지는 걸 느끼며 뒤를 돌아보았다.
넬에게 눈짓으로 신호를.
“네, 확인해보고 올게요.”
이제는 척하면 척이다.
고개를 끄덕인 넬이 하늘 높이 솟아올랐다. 희미한 점이 되어가는 그녀를 바라보며 나는 그 뒤에 서있던 린슬렛과 눈빛을 교환했다.
“…. 무슨 일로 온 거야?”
린슬렛이 앞으로 나섰다. 그녀는 경계를 늦추지 않은 채 우아랑을 향해 천천히 다가갔다.
“물어보고 싶은 게 있어서 왔다.”
“수상한 점이 한두 가지가 아닌데.”
침착하게 말을 중얼거리는 우아랑과는 달리, 린슬렛은 전혀 납득하는 눈치가 아니었다. 물론 그것은 뒤에서 입을 다물고 있던 나 역시 마찬가지였다.
“우리 위치는 어떻게 안 거지?”
그런 의문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제대로 위치 정보를 확인해보진 않았지만, 우리는 뒤를 남기지 않으려 조심조심하며 이곳까지 도망쳐왔다. 그렇기 때문에 우아랑이 어떻게 우리가 있는 장소를 알고 찾아온 걸까 싶었던 것이다.
“가웨인이 가르쳐주었다.”
그리고 거기에 우아랑은 알 수 없는 대답을 했다.
“가웨인이?”
“그렇다. 이렇게 퀘스트 마커가….”
되묻자 거기에 대답을 해주려던 우아랑의 손이 멈췄다. 잠깐의 침묵이 맴돌고, 녀석은 곤란한 듯 눈썹을 찡그린 채 나를 바라보았다.
“보여줄 수가 없군.”
“….”
아니 말로 설명하던가요.
“가웨인한테 뭔가 내 위치를 알 수 있는 장치라도 마련이 되어있었다는 거냐?”
“일종의 퀘스트였다. 그걸 수행하면 스컬, 네 현재 위치에 도달하게 되는.”
“그걸 그쪽이 대신…?”
내 질문에 우아랑은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어이가 없어지는 걸 느끼며 가볍게 코웃음을 쳤다.
“간절히 바라면 정말로 신이 도와주는군.”
하지만 말과는 달리 심각한 상황임을 인지했다. 이유는 잘 모르겠지만 그 퀘스트를 우아랑이 수행할 수 있다는 말은, 할 킬러즈의 다른 요원들 역시 내 위치를 알아낼 수 있다는 것이 되었으니까.
“걱정하진 마라. 그 퀘스트의 권한은 이제 내게 있으니까. 다른 요원들에게 밝히지는 않은 상태다.”
의외로 협조적인 태도로군.
나는 그렇게 생각하며 우아랑을 바라보았다. 이쪽의 표정을 읽어내고 안심하라는 듯 이야기하는 녀석에게서 예전의 악의는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검과 같은 날카로움이 대신 자리한 채였지만.
“하지만 수틀리면 언제라도 쓸 수 있다는 거겠지?”
“그래, 그렇기 때문에 말이라는 것을 하기 전에 생각을 충분히 할 것을 제안한다.”
중얼거린 녀석이 품안에서 무언가를 꺼내들었다.
네모난 형태의 기계 장치다.
“그건…?”
“그쪽에도 기기를 잘 다루는 녀석이 있겠지.”
녀석은 내 질문을 무시하고는 그것을 휙 내던졌다. 묵직한 감각이 느껴지며 나는 눈을 동그랗게 떴다.
현실의 물건이다. 단순한 기계 장치처럼 보이는. 하지만 어쩐지 흉흉한 오라가 휘감기는 듯했다.
“….”
“랜슬롯.”
잠깐 침묵하고 있자니 우아랑은 뒤를 이어 린슬렛에게 말을 걸었다. 린슬렛은 대답을 하는 대신 경계를 늦추지 않고 시선을 보냈다.
“엑스칼리버의 토대가 되는 신형 장비다.”
“…? 이게?”
하지만 이어진 우아랑의 말에 놀라 눈을 휘둥그레 떴다. 대체 엑스칼리버가 무엇이기에 저러는 걸까.
“그래, 일종의 개미굴이라고 보면 되겠지. 세이프티가 해제된 상태이므로 사용에는 주의하도록.”
“저기…. 엑스칼리버라는 게 대체.”
“나중에 설명해줄게. 조용히 하고 있어.”
린슬렛은 날 무시하고는 앞으로 나섰다. 조금 타이르는 듯한 말에 어쩐지 나는 스스로가 꿔다 놓은 보릿자루마냥 쓸모가 없어지는 것을 느꼈다.
“그 전에 묻고 싶은 게 있는데.”
두 여자가 서로를 바라보며 섰다.
싱긋 웃으며 중얼거린 린슬렛이 재킷을 휙 벗었다. 안에는 몸을 부드럽게 감싸는 형태의 셔츠뿐. 땅에 떨어진 재킷이 검은 바람에 휩쓸려 풍화되듯 사라졌고, 린슬렛은 귓바퀴의 디멘션 커넥터를 뽑아 바닥에 내던졌다.
“마음은 정했다는 걸로 받아들여도 될까?”
“무슨 소리를 하는 건지 모르겠군.”
“우리 쪽에 붙을 생각이 있는 거 아니었어? 이것을 보여준다는 말은.”
“이야기를 하고 싶어서 왔을 뿐이다.”
“무엇을?”
“물론 저 장비에 관해서 말이지.”
중얼거린 우아랑이 내 손에 있던 장치를 손으로 가리켰다. 그녀는 가볍게 인상을 쓴 채로 말을 이었다.
“어디서 알았지?”
“…. 비비안이 알아온 정보야.”
린슬렛은 의미심장한 얼굴을 하고 있는 우아랑의 모습에 순순히 대답했다.
“만나고 싶다만. 단 둘이서.”
“어째서?”
“물어볼 게 있기 때문이지. 다만 조건이 있다.”
“그쪽이 내걸 처지야?”
린슬렛은 조금 불쾌하다는 듯 대답했다. 하지만 우아랑은 거기에 굴하지 않고 재차 말을 이었다.
“중요한 일이다.”
거기에서는 진중한 기색이 느껴졌다.
“…. 말해봐.”
“지금처럼 재킷을 완전히 해제한 채, 네트워크의 연결을 해제한 상태에서 만나고 싶다. 거기에 기왕이면 CCTV나 드론의 침입도 걱정 없는 곳에서.”
“이유는?”
“중요한 일이기 때문이다.”
목소리는 조심스러웠다.
거기에서 나는 알아차렸다.
그녀가 말하려는 사항에 관해, 그리고 엑스칼리버가 어떤 물건인지에 대해서.
“그 장치를 다룰 때도 상기한 주의사항을 지켜주었으면 한다. 다시 설명하겠지만 네트워크를 완전히 차단한 상태에서 내부를 살펴보도록.”
“….”
거의 확언에 가까운 목소리였다. 린슬렛이 조금 질린 듯한 얼굴로 나를 돌아보았고, 거기에 나는 앞머리를 매만지며 잠시 고민에 빠져들었다.
“왜, 이러는 거지?”
그리고 내 질문은 그것이었다.
“뭐가 말이냐.”
“넌 분명히 스스로를 할 킬러즈라고 정의했어. 그런데 이제 와서 린슬렛의 제안을 받아들이려는 이유는 뭐지?”
나는 그렇게 물었다.
분명 그것은 사실이었다. 우아랑은 나에 대해서 어느 정도 공감의 여지를 보였다. 하지만 결정적인 차이로 인해 전혀 다른 길을 걷게 되었다.
“제안을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질문에 우아랑은 다시금 알 수 없는 대답을 했다. 나는 어이가 없어지는 것을 느꼈다.
“뭐…?”
“스컬 네놈은 분명히…. 어느 정도 궤변을 옳게 들리도록 하는 능력이 있다. 설득력도 있고 이상적이지.”
그렇게 중얼거린 우아랑이 곤란하다는 듯한 눈으로 나를 흘겨보았다.
“혁명이라고 할 수도 있겠지. 어떻게 보면. 이 현대 사회에서, 이렇게 되어버린 세계에서 스스로의 길을 지니고 나아가려고 하니 말이다.”
“….”
“하지만 결정적으로 빠진 것이 있어.”
“현실성, 말이야?”
거기에 린슬렛이 나섰다.
팔짱을 낀 채, 그녀는 내게 다가서려는 우아랑을 막아냈다. 그리고는 어이가 없다는 듯이 웃었다.
“그걸 깨달은 게 너 혼자만이라고 생각하는 거야? 얼마나 선민사상에 찌들어 있으면 그래?”
“랜슬롯….”
“그러니까 내가 옆에 있는 거라고. 우아랑.”
중얼거린 린슬렛이 내 옆구리를 팔꿈치로 찔렀다. 나는 그런 동작에서 강한 신뢰를 느꼈다.
“그리고 네가 필요한 거야.”
“뭐…?”
“너는 그런, 타인을 노예라고 밖에 생각하지 않는 사람들 사이에서 그나마 나은 인간이라고 생각하거든.”
린슬렛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서 도와줬으면 하는 거야. 만약 이게 네 말대로 혁명이라면 그 축을 맡아주는 것도 나쁘진 않잖아?”
“말도 안 되는 소리다.”
“글쎄? 과연 그럴까.”
“결국 ‘게임을 끝낸다.’는 발상은 우리가 평범한 인간으로 돌아간다는 것이지. 그런 상황에서 뒤의 일은 생각하고 있지 않는 거냐?”
“충분히 생각해두고 있어.”
“믿을 수 없다.”
“이유는?”
“결국 네놈들이 하는 짓거리는, 엘레노어의 권능 하에서 이루어지는 ‘게임’이기 때문이다.”
우아랑은 무뚝뚝하게 이야기를 잇고는 내 얼굴에 걸쳐져 있는 마스크를 손으로 가리켰다.
“그렇기에 나는 역으로 다른 형태의 협력을 제안하려고 한다, 스컬. 그리고 랜슬롯.”
그 손가락에 힘이 실린 채다.
“…. 좋아.”
나는 곧장 고개를 끄덕였다.
린슬렛이 놀란 듯 바라보는 것이 느껴졌지만, 시선을 마주쳐 안심시켰다. 그리고 나는 우아랑을 똑바로 바라보며 천천히 말을 이었다.
“하지만 ‘안전한 장소’까지는 이쪽의 지시에 완전히 따라줘야겠어.”
“알겠다.”
“린슬렛, 재킷을.”
“아, 응.”
나는 앞으로 나서 바닥에 떨어져 있던 린슬렛의 디멘션 커넥터를 주워 던졌다. 그것을 받아든 그녀가 귀에 착용하고 재킷을 기동시키는 사이 나는 묵묵히 서있던 우아랑을 돌아보았다.
“…. 뭐냐.”
궤변이라고 했었나.
“아니, 아무것도.”
그 말이 어쩐지 기억에 남았다. 나는 피식 웃으며 머리를 긁고는 꼿꼿하게 군인처럼 서있던 우아랑의 무릎 안쪽으로 손을 넣었다.
“…?!”
동시에 안아들었다.
갑작스러운 상황에 녀석이 놀라 내 어깨에 팔을 휘감았다. 볼이 새빨갛게 물든 우아랑과 눈을 마주친 나는 생각보다 가볍다는 생각을 했다.
아, 재킷을 입고 있기 때문인가.
“무, 무슨 짓이냐?!”
“이 밤에 산을 맨몸으로 내려가는 건 위험하니까.”
당황한 녀석에게 나는 이유를 설명했다.
어쨌든 껄끄러운 마음은 이해하지만, 적당히 납득을 해줬으면 하는 기분이었다. 이쪽으로서는 배려심에 한 행동인데 그렇게 싫어하면 슬퍼지니까.
“린슬렛, 이 녀석의 디멘션 커넥터를 부탁해.”
“아니, 반대로.”
린슬렛이 차갑게 중얼거렸다.
“…?”
의아해 바라보자 도끼눈을 뜬 채 다가온 녀석이 우리를 노려보았다. 순간 몸이 움찔 떨릴 정도의 압박감에, 우아랑 역시 내 목에 감싸고 있던 팔에 힘을 주는 기색이 느껴졌다.
“나를 안고 내려가…. 아니, 생각해보니 그건 안 되지. 내가 대위님을 안을 테니까 티티가 커넥터를 챙겨.”
그리고 린슬렛은 순식간에 명령을 내렸다.
“넵.”
거기에 내가 뭐라고 답할 수 있으랴.
========== 작품 후기 ==========
최근에 늦어지는 일이 많아서 죄송합니다 @..
다른 쪽 마감하는 것도 있고 개도 안 걸린다는 여름 감기를 걸려버려서...으.. 정신이 없네유..ㅠㅠ
그리고 음.. 우아랑은 글쎄요.. 초반만 하더라도 히로인 후보였던 것 같은데 지금은 잘 모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