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6편
<-- Chapter 6 : 이상의 기사 : 각성 -->
“…?”
조금 상황을 이해할 수 없는 기분이었다.
아랑은 곤혹스러운 마음에 콧대를 손가락으로 매만지며 잠시 생각하는 시간을 가졌다. 하지만 헥터는 그런 전설상의 검을 아무렇지도 않게 소개했다.
“무슨 말씀이신지.”
그리고 거기에는 천하의 정현 역시 조금 어이가 없다는 반응을 보였다. 입술을 조금 비틀자 입가에 주름이 새겨지는 모습에서 아랑은 그것을 느꼈다.
어머니가 동요를 감출 때 보이는 동작이라고.
“물론, 일종의 코드네임이죠, 회장님. 상징적인 무기기도 하잖아요? ‘아서리안’의 시작을 함께하고 동시에 마지막을 함께한. 호수로 반환된 성검.”
하지만 헥터는 아무렇지도 않게 말을 이었다. 아랑은 그것이 무척이나 이질적인 모습이라고 생각했다.
“…. 라고 말은 했지만, 실상은 정반대죠. 검을 다시금 대지에 꽂아 넣어 저희의 입맛대로 새로운 아서리안을 재창조하는 일에 가깝다고 해야 할까요.”
다량의 더미데이터를 통해 네트워크 세계를 순간적으로 마비시킨다. 그리고 엘레노어가 그것을 받아들이는 찰나의 순간 엑스칼리버를 사용한다.
“결국 엑스칼리버란 바이러스입니다. 전 세계의 네트워크에 끊임없이 더미데이터를 반복해 우겨넣는 것이죠. 그것을 통해 엘레노어를 묶어두는 겁니다. 그리고 협상을 진행하는 것이 저희의 작전입니다.”
“하지만 그건….”
“네, 물론 현실에 기반을 둔 네트워크에도 영향을 주겠죠. 하지만 별 수 없지 않습니까? 엘레노어 사태의 조속한 해결을 위해서…. 이니까요.”
말이 청산유수다.
하지만 그것을 들은 정현의 표정은 좋지 못했다. 그녀로서는 물론 그것이 현실에 끼치는 영향을 우려하고 있는 것일 터였다. 간단하게 말해 네트워크의 교류가 마비되면 곧바로 세계가 정지하는 셈이었으니까.
현대에서는.
“청야전술이라고 해두면 어떨까요.”
그것을 알아챈 듯 백 대령이 무뚝뚝하게 목소리를 냈다. 정현은 그런 소리에 기가 차다는 듯이 웃었다.
“우습군요.”
“하지만 맞지 않습니까? 점거 당한 네트워크 세계를 불태우고 그녀에게 항복을 종용하는 것이.”
“만약 그러지 않는다면? 통하지 않거나 협상이 결렬된다면? 책임을 질 각오는 되어있으십니까?”
“물론 없습니다.”
백 대령은 단호하게 중얼거렸다.
“저 하나로서 책임을 질 수 있는 사안이 아니기 때문이죠. 그렇기 때문에 질 마음이 없는 것입니다.”
“….”
뻔뻔한 모습이었다.
“아니면 제 가문의 모든 것을 불태워야만 속이 성하겠습니까? 제 머리를 효수하고 자식들의 내장을 끄집어내는? 현대인은 그리 야만적인 책임을 지지 않는다는 사실은 회장님께서도 잘 아실 텐데요.”
“그런 주제에 청야전술은 잘도 언급하시는군요. 당신이 책임을 지지 않는 건 권력을 쥐고 있기 때문이겠죠.”
“회장님만 하겠습니까.”
백 대령이 비릿하게 웃자 정현은 대답을 미루고 쓰게 웃었다. 호롱불의 사이로 그런 중년의 얼굴이 반쯤 드러난 채였다. 그것을 아랑은 불쾌한 얼굴로 바라보았다.
죄책감도 없는 걸까. 저 사람은.
“협력하도록 하지요.”
그렇게 생각하고 있자니 정현이 말을 이었다. 식은 차를 한 모금 마신 그녀는 이내 눈동자를 크게 치켜뜨며 반대편의 백 대령을 바라보았다.
“그 전에, 이것은 사담입니다만.”
그리고 차가운 목소리가 이어졌다.
자리에 있던 모두를 압도하는 듯한 분위기가 풍겨져 나왔다. 그것은 근 20년을 함께 살았던 아랑조차 다른 사람이라고 느낄 정도의 눈빛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죽어서 쉽게 천국에 가긴 힘들 것입니다.”
하지만 정현은 차갑게 뇌까렸다.
“저는 각오해둔 일입니다.”
“물론 저도….”
“글쎄요.”
백 대령의 말을 정현이 쓰게 잘라냈다. 그녀는 다시금 비릿한 웃음을 머금은 채 말을 이었다.
“정말로 그걸 각오하고 계시다면 지금 같은 일을 아무렇지도 않게 작전이랍시고 입안하진 않으셨겠죠.”
“말씀이 지나치십니다.”
“누군가의 생명이 달린 일을 말인가요?”
“작전의 이전에 미리 이야기를 해둘 것입니다. 국제 연합에 미리 연락을 취해두었고요.”
“그 연락은 물론…. 엘레노어가 모르는 은밀한 선에서 이루어지겠죠?”
정현이 빙긋 웃었다.
그녀는 가볍게 상 위에 있던 기계 장치를 매만졌다. 투박하게 네모난 모양으로, 현대에 이르러서는 아주 구형의 장치가 아닌 이상에야 쓰이지 않는 형태였다.
“이건, 미니 엑스칼리버라고 부르면 되려나요?”
그리고 그녀는 말을 이었다.
거기에 헥터가 조금 놀란 듯 눈썹을 파르르 떨었다. 정현은 그런 모습을 비웃듯 막힘없이 말을 이었다.
“사실 지난번에 드렸던 모르가나의 개량형이라고 보면 되려나요? 그게 현대에 태어난 신인 엘레노어에게도 통하도록 처음부터 다시 생각을 하셨군요.”
“….”
“하지만 그런 권능이 눈치를 채기 전에 이 일을 해내려면, 상당히 빠른 시간 내에 이루어져야겠죠. 이야기를 전하는 건 무척이나 구시대적인 방식으로요.”
그리고 다시금 공기가 얼어붙었다.
“구역질나는 포장은 됐습니다. 백 대령님.”
정현은 그렇게 중얼거리며 웃었다. 그것은 어울리지도 않게 무척이나 슬픈 미소라고 아랑은 생각했다.
“무엇이 필요하신지요.”
“…. 물론, 그쪽에서 가지고 있는 아서리안의 내부 정보입니다. 하나부터 열까지 모두.”
백 대령의 얼굴에 잔혹한 기색이 어렸다. 그는 이런 상황에서, 그저 그토록 고고했던 우정현 회장을 쓰러뜨렸다는 면에만 집중하는 것처럼 보였다.
“역시 통찰력이 뛰어나시군요.”
“허투로 살아남은 건 아니니 말입니다.”
칭찬을 됐다는 듯 정현이 차를 한 모금 마셨다.
“하지만 한 가지 잘못 생각하신 게 있습니다.”
“…?”
“저희에게는 좋은 타이밍이 있지 않습니까? 그 부분에 대해서는 전혀 간과를 해두신 것 같군요.”
백 대령은 씨익 웃으며 옆에 앉아 있던 아랑을 돌아보았다. 갑작스레 시선이 집중이 되었지만 그 자리에 있던 모두는 단박에 상황을 이해했다.
“갤러해드 퀘스트….”
“역시, 어머니를 닮아서 이해력이 빠르군.”
이어진 대답에 백 대령이 만족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아랑은 거기에 가볍게 눈썹을 찡그리며 불만을 표했다. 그렇게 ‘이해력이 빠르다.’라는 표현에서 어쩐지 얕잡아보는 듯한 느낌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이유를 여쭤 봐도 되겠습니까.”
하지만 그녀는 그런 기색을 숨기고는 다시 물었다.
“물론 엘레노어가 실제로 현실에 모습을 드러내는 순간이 그때일 거라 예측되기 때문이죠.”
거기에 대답한 것은 헥터였다.
“퀘스트의 완수를 기준으로 잡고 저희는 곧바로 엘레노어의 위치를 탐색할 생각이에요. 그리고 그녀가 나타난 순간에 곧바로 엑스칼리버를 발동시킬 계획이죠.”
“….”
“결국 작전의 성패는, 엘레노어에 대해 얼마나 잘 아느냐가 가르겠죠. 그렇지 않습니까?”
침묵을 지키는 아랑과는 달리 백 대령은 동의를 구하듯 웃으며 정현을 바라보았다. 하지만 그녀는 거기에 대답하지 않고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물론 비협조적인 태도다. 하지만 뒤를 이어 그녀는 가만히 있던 아랑과 시선을 마주치고는 고개를 들었다.
“자세한 사항은…. 오랜만에 종이로 보겠군요.”
그녀는 눈앞에 난잡하게 늘어져 있는 종이를 바라보며 질린다는 듯이 대답했다.
◇
안전한 지역까지 거리를 두고 멀어졌는데도, 린슬렛은 도무지 흥분을 가라앉히지 못했다.
“지, 진정해. 린슬렛….”
“안 돼. 그럴 순 없어.”
린슬렛은 침착한 것처럼 이야기했다. 하지만 이것은 나를 속이려는 수단일 뿐이다.
여기에 있는 놈들을 모조리 죽여 버리기 전까지 움직임을 멈추지 않겠다. 그녀는 마치 복수의 마녀라도 된 것처럼 아론다이트를 든 채 중얼거렸던 것이다. 거기에 나는 당황해 말을 이었다.
“아니 그, 미안.”
“…? 네가 뭐가 미안해!”
“그냥 여러모로 걱정시켜서…?”
“그건 사실이지만 널 죽이면 끝나는 일이고!”
죽일 거였습니까.
“당연하지! 매번 사람 걱정만 끼치면서 절대 바뀌지는 않고! 죽이는 수밖에 없잖아!”
“너 게임을 너무 많이 했어.”
“너야말로!”
린슬렛은 항의하듯 나를 바라보았다. 귀여운 얼굴이 분노로 가득 물든 채라 나는 다시금 곤혹스러운 기분을 느끼며 말을 이었다.
“그래서…. 그 엑스칼리버라는 게 뭔데?”
“안 알려줘.”
“왜죠.”
“사람이 기껏 고민에 고심을 거듭해서 알아온 정보란 말이지. 이걸 빌미로 네가 갤러해드가 되는 것을 포기하게 만들 생각이었단 말이야.”
“음…. 그런데?”
좋은 거 아닌가.
“너무 빨리 포기해서 미워.”
“…. 어쩔 수 없잖냐. 너희들이 날 이렇게 만들었는데.”
“널 어떻게?”
“상식이라는 게 통하는 멋진 남자로?”
“우와…. 아직 오글거리는 건 여전하네, 티티.”
린슬렛의 시선이 가슴을 찔렀다.
“뭐 그런 면을 좋아하는 거지만.”
하지만 뒤를 이어 그녀가 빙긋 웃었다. 조그맣지만 사실은 그 누구보다도 많은 생각을 하고 있던 그녀가.
“나도 널 좋아해.”
“헤에, ‘너도’겠지?”
“….”
오늘따라 왜 이리….
그렇게 당황하고 있을 무렵, 인기척을 느꼈다.
고개를 휙 돌리며 우리는 동시에 반응했다. 린슬렛이 수풀 사이로 아론다이트를 내던졌고 그것은 무언가에 부딪쳐 불꽃을 일으키며 원래 자리로 돌아왔다.
“나와.”
거기에 내가 이어지듯 이야기했다.
“…. 싸움을 하러 온 것은 아니다.”
그리고 익숙한 목소리와 함께 누군가 모습을 드러냈다. 나는 저도 모르게 놀라 말을 이었다.
“우아랑?”
검푸른 머리를 흩날리며 그녀는 아무렇지도 않게 우리 앞에 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