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4편
<-- Chapter 6 : 이상의 기사 : 각성 -->
“뭐…?”
나는 눈을 동그랗게 뜨며 되물었다.
“제대로 못들은 거야? 아니면 어이가 없는 쪽이야?”
거기에 린슬렛이 대답했다. 차가운 목소리에 나는 정말로 당황스러운 기분이 드는 것을 느꼈다.
그녀와 내 사이의 거리는 약 1미터 정도.
하지만 그 배를 훨씬 넘는 듯한 거리감을 느꼈다. 팔을 뻗으면 곧바로 닿을 거리인데도 말이다.
“린슬렛…?”
“대답해.”
진정시킬 요량에 이름을 불러보았지만 그녀는 단호한 얼굴이었다. 도무지 그런 태도가 이해가 되질 않아 나는 저도 모르게 인상을 찌푸렸다.
“대체 무슨…!”
갤러해드를 그만두라니.
아니, 잠시만. 생각을 할 시간이 필요했다. 너무나도 갑작스러운 사태에 나는 휘청거리며 뒤로 물러섰다. 그리고는 린슬렛의 얼굴을 다시 한 번 확인했다.
눈동자에 망설임은, 없다.
어떤 신념이 느껴졌다. 나는 그녀의 발언을 철회하기는 어려울 거라고 생각하며 입을 열었다.
“이유는?”
“….”
“설명해줘, 린슬렛.”
“‘너무나 맞아떨어지니까.’ 야.”
린슬렛은 차가운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아니, 자세히 보니 방패를 든 손끝이 파르르 떨리는 것이 느껴졌다. 거기에서 나는 그녀가 무리를 하고 있구나. 하는 생각을 했다.
하지만 대체 무슨 소리일까.
“맞아떨어진다니?”
“이 모든 사건과 과정이 결국 너를 갤러해드로 만들기 위한 것처럼 느껴져서야.”
“엘레노어의 손바닥 위에서…?”
“맞아.”
린슬렛이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트리슈가 오래 전에 했던 말이 문득 머릿속을 스치고 지나가는 것을 느꼈다. 그녀는 분명 이 ‘게임’이 어울리는 자를 기사를 만들고 그런 기사들을 불행하게 한다고 말했었다.
그런 말인가.
모드레드가 아버지에게 반역한 기사가 아닌, 내세워진 기사가 된 것처럼. 린슬렛이 나를 지키기 위해 라쿠스 기사단과 척을 진 것처럼.
“하지만 나는…. 그처럼 완벽한 사람이 아닌데.”
문득 떠오르는 의문에 나는 혼잣말에 가까운 말을 중얼거렸다. 그러자 뒤를 이어 린슬렛이 눈썹을 찡그린 채 조심스러운 목소리로 대답했다.
“성배를 찾아낸 기사이기도 하잖아? 갤러해드는.”
“….”
“나는 우아랑이 차라리 그 적임자일 거라고 생각해. 아서리안이라는 게임에서의 성배는, 결국에는 그 여자의 아버지인 셈이잖아?”
한성진.
그렇게 이름을 이야기한 린슬렛이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우리의 목적은 결국, 그걸 파괴하는 거지.”
“성배를….”
“그래서 그만뒀으면 하는 거야. 나는 네가 힘든 길을 걷고 있다는 생각을 하니까.”
어쩐지 머리를 한 대 크게 얻어맞은 듯한 기분이었다.
린슬렛의 말에 나는 아무런 대답도 하질 못했다. 그 말이 타당하다는 사실을 알았기 때문이었다.
“티티….”
린슬렛이 괴로운 표정을 지었다.
갤러해드는 원탁을 통틀어 가장 완벽한 기사라고 했다. 그는 가장 마지막에 원탁에 합류한 기사로서 성배를 찾아내 신의 곁에 되돌렸다.
단순히 전설 속의 이야기다. 하지만 그것은 이 아서리안이라는 게임과 융합되며 현실이 되었다.
그렇기 때문에 그만두라고 말하는 것일까.
“그만둔다고 그만둘 수 있는 게 아니겠지.”
나는 애써 침착하게 목소리를 냈다.
“티티…?”
“이걸 봐, 린슬렛.”
그리고 나는 그녀에게 팝업창을 띄워 보여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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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픽 퀘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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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갤러해드의 여정 7/10
난이도 : 알 수 없음
내용 : 당신의 선택만이 남았습니다.
제한 시간 : 없음
보상 : 선택의 결과에 따른 정당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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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
퀘스트의 내용을 읽은 린슬렛이 눈썹을 살짝 찡그렸다. 나는 거기에 곧바로 설명을 덧붙였다.
“사실 지금껏 쭉 고민하고 있었거든. 퀘스트의 여섯 번째가 없는 상태에서 뭔가 진행할만한 힌트도 없는 상황이었기 때문에.”
하지만 린슬렛의 말로 인해 희미하게 머릿속에 있던 예감이 확실해졌다. 나는 찡그려지려는 표정을 감추기 위해 애써 웃으며 말을 이었다.
“이 6의 퀘스트는 우아랑이 지니고 있는 거겠지.”
나는 그렇게 중얼거리며 손을 뻗었다.
‘퀘스트 포기’라고 적혀져 있는 창으로.
“….”
빌어먹을.
머리로는 이해하고 있다. 어리광을 부린 것이라고. 하지만 막상 받아들이려고 하자 좀처럼 손이 움직이질 않았다. 나는 입술을 질끈 깨물었다.
하지만 해야만 한다.
린슬렛을 안심시키기 위해서라도 나는 여기서 확실히 선택을 해야 할 때라고 느꼈다. 나에게 이것은 과정에 불과하다는 것을 주지시키고 싶었….
“미안, 티티.”
바로 그 순간, 괴로움에 젖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눈앞의 팝업창을 흩트리며 다가온 린슬렛이 곧바로 팔을 뻗었다. 그녀는 곧바로 나를 끌어안았다. 아니 그렇게 해주었다. 적어도 나는 그렇게 느꼈다.
“정말로 미안. 말이 너무 심했어.”
“….”
“굳이 그렇게 말하지 않아도 괜찮았어. 확실하지도 않은 정보니까. 하지만…. 미안해, 그저 내 여자로서의 꼴사나운 질투일 뿐이야.”
린슬렛은 입술을 질끈 깨물었다.
조그마한 그녀가 내 명치 끝에 머리를 묻고 바들바들 떠는 것이 느껴졌다. 잠시 멍해져 있던 나는 이윽고 고개를 내저었다. 그리고 손을 들었다.
“우리가 처음 만났을 때 기억나?”
린슬렛의 금발을 부드럽게 쓰다듬었다.
“티티….”
“그때 우리 서로 되게 싫어했던 것 같은데.”
나는 장난을 쳤다.
볼을 살짝 꼬집으며 짓궂게 웃자 린슬렛이 눈을 동그랗게 떴다. 하지만 이윽고 그녀는 얼굴을 새빨갛게 물들이며 반박하듯 입을 열었다.
“하, 하지만 그때 티티 넌 정말로…!”
“그래, 잘생긴 것 빼고는 아무것도 없는 멍청이였지.”
“…???”
린슬렛이 당황했다.
“이렇게 알 정도로 성장하지 않았어?”
나는 빙긋 웃으며 그녀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그런 나를, 린슬렛이 머뭇거리며 살피는 기색이 느껴졌다.
“네가 있었기 때문이야.”
“티, 티티….”
“고마워. 그렇기 때문에 넌 그렇게 말할 자격이 있어. 그건 절대로 질투가 아니니까.”
중얼거리며 나는 린슬렛의 어깨 너머로 손을 뻗었다. 조금은 망설이는 마음을 감추기 위해 그녀를 끌어안고 나머지 팔로 그 너머에 있는 팝업창을 끌어왔다.
갤러해드 퀘스트.
이걸 포기한다면 나는 갤러해드가 될 수 없다.
“안아도 될까.”
“뭐…?”
“조금 세게.”
“….”
“미안, 무서워서.”
중얼거리고 다음 순간, 나는 허리에 휘감겨지는 손이 떨어지는 것을 느꼈다. 그리고 가슴을 매만지며 타고 올라온 린슬렛의 손이, 내 얼굴을 감싸 쥐었다.
눈동자가 서로 마주쳤다.
“용기를 나눠줄 테니까.”
빙긋 웃은 그녀가 천천히 다가왔다. 나는 심장이 두근거리는 것을 느끼며 그것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입술이 닿으려던 순간,
“여기에 있다!”
갑작스레 목소리가 이어지며, 무언가 날아들었다.
“?!”
놀란 린슬렛이 밀쳐, 나는 뒤로 물러섰다. 완만하게 곡선을 그리는 검이 한 자루, 린슬렛과 내 얼굴이 맞닿으려던 장소를 스쳐 벽에 꽂혔다.
“….”
파르르 떨리는 그것을 린슬렛이 놀란 눈으로 바라보았다. 나는 그런 그녀를 몸으로 가리며 반대편에서 모습을 드러낸 사내를 노려보았다.
검은 코트가 바람에 펄럭였다. 인상을 찌푸린 채 골목길의 반대편에서 나타난 녀석이 팔을 뻗었다.
“테러리스트다!!”
“칫…. 린슬렛, 탈출을…!”
나는 스파다를 뽑으며 뒤를 돌아보았다. 하지만 순간적으로 뭔가 검은 게 눈앞을 스쳤다. 그게 방패라는 자각이 들고, 나는 놀라 다시 앞을 돌아보았다.
“커헉!”
빠가악. 하는 엄청난 소리. 그와 함께 얼굴의 정중앙에 방패를 맞은 할 킬러즈의 요원이 뒤로 나가떨어졌다. 후두둑 튀어 오른 이빨이 땅으로 떨어졌다.
어, 음.
“다 죽고 싶어?”
잘못 들은 건가.
“….”
순간 그런 생각이 들었지만, 나는 이내 옆을 스치며 걸어가는 린슬렛을 보고 몸을 움찔 떨었다. 거의 사람 한 명 아무렇지도 않게 잡을 듯한 살기가 느껴졌다.
“지금 분위기 한참 좋을 때에….”
허공을 빙글빙글 돌아온 방패가 그녀의 팔에 다시 장착되었다. 하지만 린슬렛은 멈추지 않을 것처럼 보였다. 나는 푸르게 빛나기 시작하는 아론다이트를 보며 그것을 직감했다.
“리, 린슬렛!!”
달려들어 막는다.
“이거 놔.”
“아니, 그! 일단 피해야…!!”
“다 죽일 거야. 여기 오는 놈들.”
“그러니까 그럴 수가 없다고!”
나는 거의 절규에 가까운 비명을 내지르며 린슬렛을 뒤에서부터 힘껏 끌어안았다. 그리고 동시에 높이 벽을 박차고 뛰어올랐다.
“이거 놔! 다 죽여 버릴 거야!!”
하지만 린슬렛이 아론다이트를 휘둘렀다.
뒤를 쫓아온 몇몇 요원들이 우리를 향해 달려드는 것이 보였다. 푸른 검기가 뻗어져 나가 그들의 몸을 완벽하게 베어냈다. 순간적으로 두 동강이 났다는 착각이 들 정도였다.
“지, 진정해! 린슬렛!”
나는 난동을 부리려는 그녀를 타이르며 곧바로 지역을 이탈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