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3편
<-- Chapter 6 : 이상의 기사 : 각성 -->
대부분 그다지 좋지 못한 얼굴이었다.
파티룸은 층 전체를 사용하는 만큼 거대했다. 끄트머리에 서서 가장 반대편에 있는 사람의 얼굴이 보이지 않을 정도였다. 바이올린의 선율이 희미하게 흘러 린슬렛은 그 모습을 보며 휠체어를 밀었다.
서른 명 남짓.
곳곳에는 테이블이 있고, 사람들의 사이에서 홀로그램으로 된 연주자가 바이올린을 켰다. 린슬렛은 좌중을 집중시키기 위해 가볍게 손가락을 튕겼다.
순식간에 침묵이 몰려들었다.
다들 조용히 두 사람에게 시선을 집중시켰다. 무뚝뚝한 얼굴을 한 채 린슬렛은 옆으로 물러섰다.
이곳의 왕은 그녀가 아니었기 때문에.
“마담.”
기사단원들은 중심에 서있던 말쑥한 정장 차림의 남자가 먼저 말을 걸어왔다. 린슬렛은 그 모습을 보며 대체 누굴까 싶어 고개를 갸웃거렸다.
“앤더슨.”
하지만 비비안은 단숨에 대답했다.
저게 ‘그’ 앤더슨이라고…?
린슬렛은 경악으로 물들려는 자신의 표정을 애써 평범하게 가장했다. 안경에 포마드를 발라 단정하게 머리를 넘긴 앤더슨의 모습은, 평소에 징 박힌 가죽 재킷을 입었던 거친 사내였던 걸까 싶은 모습이었다.
“오랜만이군요.”
비비안은 천천히 말을 이었다. 다들 평소와 다름이 없는 그녀의 모습에 넋을 놓은 듯한 눈치였다. 린슬렛은 그런 반응에 동의했다.
어이가 없는 거겠지.
“그래, 무척이나 오랜만이군.”
하지만, 앤더슨은 침착하게 그에 대답했다. 나름대로 비비안과 가웨인 다음으로 기사단 내에서 영향력이 있었기 때문일까.
“그동안 잘 지내셨….”
“잘 지내긴 씨발!!”
바로 그 순간, 반대편에서 목소리가 들려왔다.
흥분한 트레이닝복 차림의 여자가 테이블 위의 꽃병을 쥔 채 어깨를 떨었다. 그 모습을 보며 린슬렛은 불길한 예감에 앞으로 몸을 움직였다.
“너 때문에 내 친구들이 죄다…!!”
그리고 거기에 맞춰, 꽃병이 날아들었다.
입고 있던 재킷의 깃을 들어 비비안의 앞을 가렸다. 순간적으로 눈이 마주치자 입술을 질끈 깨물고 있는 비비안의 모습이 보였다. 괴로움을 참기 위해서다.
강한 충격이, 머리를 강타했다.
“린슬렛…!”
“괜찮, 아.”
순간적으로 넘어질 뻔했지만 견뎌냈다. 들고 있는 재킷의 안쪽에서 짧게 신음을 참아내던 린슬렛은, 이윽고 흥분한 여성의 목소리를 재차 들었다.
“다들 그때 할 킬러즈한테 잡혔다고! 녀석들한테 재킷을 제거당해서 아무것도 기억 못해!! 나 혼자 남아서…. 그런데 잘 지냈냐고?! 사람 가지고 장난쳐?!”
여성이 흥분해 버럭 소리를 질렀다. 거기에서 린슬렛은, 현실의 친구끼리 함께 게임을 한다고 했던 기사단원을 기억했다. 하지만 정확히 그 중 누구인 걸까.
역시나 재킷을 벗고 있어서, 거기에 꽤나 오랜만에 보는 사람들이니 만큼 제대로 기억이 나질 않았다.
“…. 진정해.”
그녀는 조심스럽게 재킷 밑에서 고개를 내밀었다. 비비안에게 달라붙은 채 이마를 정리하는 모습을 보고 여성이 분노해 다시 입을 열었다.
“린슬렛 너도…! 무슨 꼴을 당했는지 잊은 거야?”
“잊지 않았어.”
린슬렛은 힐끔 그녀를 돌아보았다.
“…!”
거기에 여성이 흠칫 놀라며 안색이 창백하게 물들었다. 린슬렛의 이마를 타고 피가 한 줄기 흘러내리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너희를 불러 모은 거야.”
“뭐…?”
여성이 의아한 눈으로 중얼거렸다. 그 모습을 가만히 바라보던 린슬렛은 순식간에 한 마디를 중얼거렸다.
“랜슬롯 재킷 기동.”
검은 바람이 휘몰아쳤다.
정보량 송신 합금이 공기 중에서 결합되며 형태를 이루기 시작했다. 디멘션 커넥터가 네트워크의 어딘가에 있는 ‘신’께 권능을 요청한 결과였다.
“랜슬롯…?”
반대편의 여성이 눈을 동그랗게 떴다. 린슬렛은 품안에서 튕겨져 날아오는 마스크를 손으로 잡았다.
고양이의 얼굴을 본뜬 듯한 바이저.
“그래도 한 번쯤 엿 먹이고 싶다는 생각쯤은 있지?”
가볍게 그것을 얼굴에 착용하며 린슬렛은 좌중을 둘러보았다. 아이템을 사용해 실존하는 상처를 지워버리고 그녀는 아무렇지도 않게 웃어보였다.
“할 킬러즈를 말이야.”
“하…. 대체 무슨 소리를. 지금 이 상황에서?”
여성은 어이가 없다는 눈이었다.
“이런 상황이니만큼.”
“자세히 이야기나 들어보고 싶은데.”
앤더슨이 상황을 정리하듯 물었다.
“그건 물론…. 확실히 계약이 성립된 후의 이야기야.”
그러니 더는 설명해줄 수 없다.
빙긋 웃으며 이야기한 린슬렛의 뒤를 이어 비비안이 천천히 휠체어에서 ‘일어섰다.’ 그 모습을 본 파티룸의 모두가 제각기 놀라는 반응을 보였다.
그녀의 손에는 상자가 들린 채였다.
거기에 허리춤에는 찬란하게 빛나는 검이 꽂힌 채였다. 그것을 확인한 앤더슨이 눈을 동그랗게 떴다.
“갈라틴…. 어떻게…?”
하지만 비비안은 대답하지 않고 손안에 있던 상자를 휙 집어던졌다. 회전하며 떠오른 그것이 열리며 규칙적으로 동그란 무언가를 뱉어내기 시작했다. 모두들 그것이 실존하는 물건이 아님을 알아차렸다.
황금으로 된 빛나는 동전.
기사의 명예였다.
“현금으로 환전 시 10억 원입니다.”
비비안은 그렇게 중얼거리며 앞으로 나섰다. 홀로그램으로 된 바이올린 연주자를 지나쳐 그녀는 바닥에 떨어진 ‘기사의 명예’를 바라보았다.
“단 한 번의 전투면 됩니다. 그게 끝난다면 이것을 공평하게 나눠드리도록 하죠.”
거기에 대답을 하는 사람은 없었다.
하지만 다들 눈이 복잡한 감정으로 뒤섞여 빛나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비비안은 그것을 천천히 돌아보며, 마지막으로 린슬렛에게 시선을 고정한 채 말을 이었다.
“이 경우는 기사단이 아니라 용병단이겠군요.”
거기에 린슬렛은, 저도 모르게 피식 웃었다.
하지만 이내, 아서리안의 계정 내로 편지가 한 통 발견해 있는 것을 발견했다.
◇
슬슬 겨울인가 싶었다.
밤이 되자 온도가 크게 떨어졌다. 숨을 쉬자 새하얀 입김이 나오는 것을 보며 나는 조금 멍하니 서있었다.
슬쩍 느껴지는 추위.
거기에서 문득 이것이 진짜일까. 하는 의문이 몰려들었다. 실제로는 이 입김조차 단순한 홀로그램에, 재킷이 뇌를 착각하게 하는 것일 수도 있으니까.
생각해봤자 별 수 없겠지만.
“….”
“주인님.”
건물 사이의 좁은 골목에 몸을 숨기고 있자니, 곧이어 멀리까지 정찰을 나갔던 넬이 돌아왔다.
“어때?”
“아직 주변 감시가 무척 심하네요.”
“그렇군.”
나는 무뚝뚝하게 중얼거렸다.
결국 문제는 그것이었다. 지난번의 사건 이후로 할 킬러즈는 내 현실에서의 아이덴티티가 무엇인지 알게 되었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다른 동료들과는 달리 재킷을 벗을 수 없는 몸이 되어버리고 말았다.
이전의 모드레드마냥.
“음…. 은신처는 어디로 하실 거예요?”
바로 그때 넬이 고개를 갸웃거리며 물었다.
“뭐?”
“다른 분들과는 달리, 주인님은 얼굴이 알려져 있으니까요.”
“아, 그거….”
나는 잠시 고민했다.
“사실 아무 생각도 없는데.”
“….”
넬의 눈이 가늘어졌다.
“잠 같은 거 안 자도 이 몸으로는 괜찮잖아? 거기다 뭐, 딱히 쉬지 않아도 중간에 목욕하는 것 마냥 구호 센터에서 몸 좀 치료받으면 되고.”
그러는 사이 할 킬러즈의 습격이 이어져 고양이 주인이 또 오오오옹. 하면서 울지도 모르지만.
“다른 분들은 다 집으로 보내셨으면서.”
“…. 하하.”
나는 힐난의 시선을 흘리듯 웃었다.
그 말대로, 나를 제외한 동료들은 일단 재킷을 벗고 집으로 돌아간 상태였다. 많은 인력이 움직이면 괜히 시선을 끌 우려가 있으니 확실히 도움이 필요해질 때까지는 혼자서 행동하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집으로 보냈다니?”
바로 그 순간, 목소리가 이어졌다.
고개를 든 나는, 골목의 반대편에서 모습을 드러낸 여성을 발견했다. 털 달린 가죽 재킷. 어깨까지 이르는 금발. 표정은 조금 딱딱하게 굳어진 채였다.
“린슬렛.”
“티티….”
하지만 가까이 다가오며 점점 웃었다.
그 미소가 눈이 부시다고 생각하며 나는 천천히 벽에서 등을 뗐다. 가까이 다가온 그녀가 이내 팔을 활짝 펼치고는,
“…?!”
주먹을 날렸다.
순간적으로 놀라 그것을 피했다. 대체 뭔가 싶어 눈을 동그랗게 뜨자 흉흉하게 눈을 치켜뜨고 있는 린슬렛의 모습이 보였다.
“피하지 마.”
다시금 주먹이.
“….”
그 말대로 했다.
빠악, 하는 소리와 함께 코에 주먹이 꽂혔다.
하지만 충격은 거의 없다. 거기에서 나는, 린슬렛이 재킷을 입지 않은…. 다시 말해 주다연이라는 사실을 알아차리고는 입을 꾹 다물었다.
“한 번 더. 괜찮아?”
“좀 조용한 곳으로 가서 하면 안 될까.”
괜히 주변의 시선은 끌고 싶지 않다.
“어떻게 보면 되게 이상하게 들리는 말인데.”
“…?”
“아니 뭐, 그래 좋아. 한 번으로 봐줄게.”
중얼거린 그녀가 손을 내렸다. 그 손등이 붉게 물든 채다. 놀라 보려고 했지만 린슬렛은 뒤로 감췄다.
거기에서 거리감을 느꼈다.
“린슬렛?”
“대충 상황을 설명해줄게.”
“아니 그거라면…. 대충 어떻게 되었는지는 알아?”
“그래?”
린슬렛이 눈썹을 치켜떴다. 나는 거기에 적당히 기억에 남는 순간을 떠올리며 말을 이었다.
“비비안이, 가웨인을….”
하지만 어쩐지 말이 잘 나오질 않았다.
비비안이 갈라틴을 빼앗아 가웨인을 찔렀다. 그런 상황에 대한 설명이 어려웠다. 기억은 마치 영상이 지금 눈앞에 떠올라있는 것처럼 선명한데도.
“그래, 찔렀어. 가웨인은…. 물론 죽지는 않았지만 재킷이 사라지지도 않은 상태야. 아직 ‘가웨인’인 거지.”
“그렇다면?”
“그 밖의 상황은 몰라. 아마 충격이 커서 밖으로 나오지 못하고 있는 게 아닐까 싶은데.”
게임 내에서 입은 상처는 현실보다 단 기간에 회복된다. 그렇기 때문에 아직 바깥에 녀석이 모습을 드러내지 않은 건 다른 문제일 가능성이 크다는 말인가.
“어쨌든…. 그 이후에 우리도 설명할 부분이 있어서.”
“우리?”
고개를 갸웃거리자 린슬렛이 응. 하고 긍정했다.
“라쿠스 용병단.”
“요, 용병?”
“일단 그렇게 됐어.”
어깨를 으쓱한 녀석이 가까이 다가왔다. 그리고 나를 지나쳐 반대편으로 천천히 걸어갔다. 그런 행동에 나는 알 수 없는 불안감을 느꼈다.
“우리의 목적은 간단해.”
그리고 검은 바람이 불었다.
재킷이 한순간 크게 펄럭이며 린슬렛은 고양이의 얼굴을 본뜬 가면을 손에 들었다.
“할 킬러즈가 보유하고 있는…. ‘엑스칼리버’를 탈취하는 거야.”
“…? 엑스칼리버라니.”
“설명은 여기까지.”
질문을 던졌으나 단숨에 거절되었다.
“그 전에 한 가지 권유하고 싶은 게 있어. 티티.”
린슬렛은 가면을 쓴 채 나를 돌아보았다.
그 팔에는 완전한 원형을 그린 ‘검’이 패용된 상태였다. 나는 아론다이트라는 이름을 기억해냈다.
그리고 뒤를 이어,
“갤러해드가 되려는 걸 그만둬.”
린슬렛은 차갑게 목소리를 냈다.
언제라도 그 검을 뽑아들 살기를 내뿜으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