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2편
<-- Chapter 6 : 이상의 기사 : 각성 -->
◇
배는 어둠에 물든 하수구 안을 가르고 있다.
하지만 곧이어 거기에 풍경이 덧씌워졌다. 디멘션 커넥터가 시야의 변형시켜 뇌에 착각을 일으켰다.
푸르게 빛나는 강.
거대한 범선은 그 줄기를 타고 천천히 운항하는 중이었다. 트리슈가 주변의 풍경을 면밀하게 탐색하여 할 킬러즈의 접근을 감시하고 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배가 너무 큰 거 아니야…?”
나는 거대하게 솟은 깃대를 올려다보며 불안감에 중얼거렸다. 그에 이와 같은 풍경이 더해져 누군가 접근하더라도 알아차릴 수 있을까 걱정이었다.
“걱정 마세요. 형태야 언제든지 바꿀 수 있으니.”
그러자 뒤쪽에 서있던 발렌타인이 슬며시 말을 걸어왔다. 알 수 없는 말에 나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형태를?”
“트레일러라던가. 아니면 크기를 줄일 수도 있고요.”
“흐음….”
뭐 그러시다면 그런 걸로.
지상 아래의 이곳에 관해서는 솔직히 나보다 베디비어나 발렌타인이 몇 배는 더 잘 알 테니까. 나는 이것저것 묻는 대신 입을 다물어 신뢰를 표했다.
어쨌든 우리는 그렇게 서울의 중심으로 향했다.
확실히 이제부터의 싸움에, 돌아갈 곳은 존재하지 않는다. 나는 그것을 느꼈다. 지상은 할 킬러즈에 의해 면밀하게 감시가 이루어지고 있는데다가 우리들이 주로 쓰던 지하에까지 손을 뻗치려 들고 있으니까.
“…. 모드레드.”
문득 떠오른 생각에 나는 다시금 뒤를 돌아보았다. 안쪽의 자리에서 넬과 대화를 나누던 그녀가 천천히 고개를 들어 나를 바라보았다.
“할 킬러즈가 지하로 들어왔다는 건 역시…. 엘레노어가 그것을 허락했다는 건가?”
“그렇다고 생각됩니다. 아마 그쪽에서도 여론이 안 좋아지는 걸 의식해 강하게 압박을 하는 거겠죠.”
“결국 시간을 끌어보겠다는 거군.”
“사실 타나토스 씨만 체포하더라도 그들로서는 소기의 목적은 달성했다고 여길 터입니다만.”
“…. 그랬으면 좋겠어?”
“농담입니다.”
녀석이 빙긋 웃었다.
“어쨌든, 다급한 거겠죠. 믿고 있던 가웨인이 당한데다가 전투 헬기까지 쓰고서도 당신을 붙잡지 못했으니. 무슨 수를 써서라도 주도권을 가져오고 싶을 터입니다.”
“….”
“그런 의미에서, 사실 걱정이 좀 앞섭니다만.”
“뭐가?”
“회장님 말입니다.”
모드레드가 날카로운 눈으로 날 바라보았다.
“그분께서 지니고 있는 ‘물건’을 탐낼 테니까요.”
“물건…?”
“저도 자세히는 모릅니다.”
“정현 씨를 도울 방법은….”
“아뇨, 저희는 저희의 일에 집중을. 회장님께서도 그걸 바라고 계실 겁니다.”
“…. 그래.”
조금 씁쓸한 기분이 들었지만 나는 그 말을 납득하고는 천천히 돌아섰다.
“일단 린슬렛이 있는 곳으로.”
“그렇습니다.”
내 말에 모드레드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린슬렛과 합류를 한 직후 갤러해드 퀘스트에 관해서 이야기를 한다. 그렇게 결론을 내린 뒤, 나는 곧바로 퀘스트창을 눈앞에 띄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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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픽 퀘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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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갤러해드의 여정 7/10
난이도 : 알 수 없음
내용 : 당신의 선택만이 남았습니다.
제한 시간 : 없음
보상 : 선택의 결과에 따른 정당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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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전히 알 수 없는 내용이다.
거기다 분명 가웨인과의 전투 직전에 클리어를 해두었던 퀘스트는 5/10이었다. 말인즉슨 하나의 그대로 전투를 거치며 퀘스트를 건너뛰었거나….
“가웨인과의 전투가 6/10이었다는 건가.”
그런 생각에 나는 옆에 있던 넬을 돌아보았다. 모드레드와 계속해서 진지한 얼굴로 대화를 나누던 녀석이 이윽고 시선을 느낀 듯 뒤를 돌아보았다.
“아니…. 아무것도.”
혼자 확인해보면 될 일이다.
나는 그렇게 생각하며 아서리안의 개인 기록을 살폈다. 위에서부터 재킷을 얻고 제일 처음 클리어했던 쓰레기를 줍는 퀘스트가 있어 어색하게 웃었다.
이것도 벌써 반 년 전의 일이다.
“주인님?”
흥미를 느낀 것인지 넬이 가까이 다가왔다. 목록을 반대로 정렬한 나는 고개를 들어 그녀를 바라보았다.
“무슨 일 있으신가요?”
“아니, 퀘스트 완료 목록을 좀.”
“음?”
녀석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갑자기 퀘스트가 하나를 뛰어넘어서 말이지.”
나는 퀘스트창을 넬에게 넘기고는, 기록을 살펴보았다. 반대로 정렬되어 가장 최근에 클리어한 퀘스트는….
갤러해드 퀘스트 5/10이다.
“이상한 일이네요.”
넬 역시 그런 내용을 보고는 고민에 빠져 신음을 냈다. 엘레노어가 숫자를 제대로 세지 못하는 게 아니라면 확실히 뭔가 문제가 있다는 말이었다.
대체 뭐가 어떻게 된 거지.
나는 고민에 빠진 채 퀘스트창을 바라보았다.
6/10이 아닌, 7/10으로 표시된 그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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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픽 퀘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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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갤러해드의 여정 6/10
난이도 : 알 수 없음
내용 : 인도에 따라 붉은 기사를 만나세요.
제한 시간 : 없음
보상 : 경험치 40,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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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앞에는 그런 팝업창이 떠오른 상태였다.
“….”
뜨거운 커피를 한 모금.
잠을 자지 못해 굳어져 있던 뇌에 카페인이 스며들었다. 군용 셔츠에 바지를 입은 채 우아랑은 어둠에 물든 방안을 천천히 거닐었다.
머릿속이 복잡했다.
사건의 전말을 모두 알게 되었음에도 생각이 더욱 많아질 뿐이었다. 하지만 그것은 명백히 하나의 답을 가리키고 있다. 우아랑은 입술을 질끈 깨물었다.
할 킬러즈는 비비안을 감금했다. 그리고 또한 가웨인을 협박하기 위한 재료로서 사용했다. 비비안에게 이야기의 전말을 듣고 부대의 관련된 자료를 찾아본 끝에 도달하게 된 결과였다.
그것은 받아들이기 힘들었다. 정말이지 최악의 결과였다. 현 사태의 책임을 지기 위해 일부로서 싸우는 길을 택했던 우아랑 스스로를 부정하는 듯한 결과였다.
모두 알고 있는 것일까.
할 킬러즈가 결국은 이런 집단이라고. 승리를 위해서는 비합법적인 짓이라도 저지르는…. 차라리 조직폭력배가 낫겠다 싶을 정도의 썩어빠진 집단이라고.
“빌어먹을…!”
참지 못하고 머그컵을 내던졌다. 벽에 부딪친 그것이 날카롭게 깨지며 파편이 사방으로 튀었다. 벽을 타고 진한 갈색의 액체가 피처럼 흘러내렸다.
[조사해봤어?]
그리고 다음 순간, 목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멋대로 연락하지 마라! 테러리스트…!!”
불쾌한 기분에 우아랑은 어두운 방안에서 저도 모르게 소리를 내질렀다. 하지만 반대편의 목소리는 계속해서 이어졌다. 무척이나 진지하게.
[성질부릴 곳에서 성질 부려. 우아랑.]
“랜슬롯…!”
[마음은 정했어?]
린슬렛의 목소리는 차갑고 또한 단호했다. 거기에 압박감을 느껴 우아랑은 입술을 질끈 깨물었다.
“아직….”
[지금 그쪽으로 가고 있는데.]
“그게 무슨….”
[그런 걸 보고도 아직 마음을 정하지 못했다는 거야?]
“테러리스트가 되라는 말이냐?”
[극단적이네. 누가 그러라고 했어? 단지 당신 스스로의 정의에 맞춰서 행동하란 말이지.]
시비를 거는 듯한 태도다.
[그게 아니라면 개나 돼지와 같잖아?]
“너는…. 어째서….”
우아랑은 혼란스러운 기분에 지끈거리는 이마를 짚으며 물었다. 너무나도 머리가 복잡해 근본적인 부분에 의문이 이르렀다.
어째서 그렇게 말할 수 있는 거지?
랜슬롯…. 아니, 그 제대로 된 이름조차 알 수 없는 상대에게 그런 질문을 하고 싶은 마음이었다.
[랜슬롯이니까.]
그리고 거기에 그녀가 대답했다.
[평범한 사람이었다면 몰랐겠지.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나 자신이 특별하다고 생각하지는 않아.]
그 목소리는 어쩐지 확고했다.
[그저, 나 자신의 행동에 책임을 져야겠다고 생각했을 뿐이니까. 본디 선결되어야 했던 것이지만.]
의지를 느끼게 했다.
[각오를 굳혔으면 오도록 해. 우아랑.]
그리고 곧 조용해졌다.
어둠에 물든 방안, 혼자가 되어 우아랑은 분한 마음을 견뎌냈다. 대체 뭐하는 여자인지도 모를 테러리스트가 한 말에 그녀의 신념은 갈기갈기 찢겨졌다.
대체 어떻게 하면 좋단 말인가.
그렇게 고민을 하고 있자니 불현듯 그 남자에 대한 것이 머릿속에 떠올랐다. 현재 전국적으로 지명 수배가 되어 있는 23세의 청년. ‘이준’의 모습이.
그의 행동이, 그 동기가.
그녀 스스로를 비루하게 만드는 기분이었다.
지금까지 그래도 대의가 있었다고 생각했던 장소가 완전히 붕괴해버리고 말았다. 그렇다고 해서 넙죽 모든 사실을 받아들일 정도로 우아랑은 약삭빠르지 못했다.
결국 없는 것인가.
세상에 옳은 일이란.
“아버지….”
그녀는 어둠 속에서 비참하게 중얼거렸다.
◇
결국 아무것도 정하지 못했다.
“후우….”
짜증이 치솟아, 린슬렛은 앞머리를 매만져 쓸어 올리며 차에서 내렸다. 디멘션 커넥터가 주행 종료 시간과 거리 등을 표시해주어 적당히 치워냈다.
어쨌든 재킷을 입기 전까지는 수도 없이 탔던 차였다. 새하얀 스포츠카. 그녀는 반대편에서 내리는 인물을 발견하고는 나직이 이름을 불렀다.
“수현 씨.”
“네, 다연 씨.”
“…. 정말 어색하네.”
“하지만 어쩔 수 없잖아요?”
상대편이 쓰게 웃었다.
검게 기른 머리. 평소에는 안경을 착용하는 모양으로, 그녀는 차량에서 분리된 휠체어에 타고 있는 상태였다. 품에서 선글라스를 꺼내 착용한 린슬렛은 그 뒤로 향해 휠체어를 밀기 시작했다.
“다들 모여 있으라고 했어?”
“네, 기대되시나요?”
“그럴 리가 있겠어…?”
어이가 없어 대답했다.
휠체어를 밀며, 린슬렛은 비비안과 함께 주차장을 빠져나가 엘리베이터의 앞에 섰다. 그러는 이유는 간단했다. 두 사람 다 재킷을 해제한 상태였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평범한 사람’처럼 차를 몰고 비비안은 다시 휠체어에 탔다.
현재 서울은 할 킬러즈에 의해 철저하게 감시되고 있는 상황이었다. 벽이 유리로 된 고급 엘리베이터가 도착해 거기에 올라타 린슬렛은 멀어져가는 지상을 내려다보았다. 육각형으로 된 불투명한 방패가 검문 구역 따위를 표시하고 있는 광경을.
“….”
바보 같은 일이다.
결국 그런 검문도, 모두가 엘레노어의 ‘허락’이나 ‘묵인’ 하에 이루어지는 것이다. 말인즉슨 그녀의 시나리오대로 모두가 움직이고 있을 뿐이다.
할 킬러즈의 높으신 분들도 그걸 모르진 않겠지.
“불쾌하네….”
중얼거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정상에 도착했다. 띠링, 하는 소리와 함께 엘리베이터의 문이 열리는 소리를 듣고 린슬렛은 휠체어를 이끌며 내렸다.
호텔의 파티룸이었다.
예약자는 E.
엘레노어가 빌린 것이었다.
유저인 린슬렛과 비비안,
“…. 오랜만이군요.”
그리고 라쿠스 기사단의 일원들을 위하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