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1편
<-- Chapter 6 : 이상의 기사 : 각성 -->
◇
언제나 생각하는 사실이기는 했지만, 유하는 나 같은 게 범접할 수 없을 정도로 대단한 사람이다.
자연스럽게 분위기를 파악한다. 그리고 최선의 대처를 한다. 타인을 위해 감정을 꾹 참고, 마음을 다해 신경을 써준다. 유하는 그런 사람이었다.
예전이나 지금이나 그것은 바뀌지 않았다.
“준.”
앞치마 차림인 그녀가 나를 올려다보았다. 집은 텅 빈 채였다. 모두들 먼저 나가있겠다며 신경을 써주었기 때문이었다. 심지어는 넬까지도 자연스럽게.
그것 또한 유하의 영향이었다.
내 모든 것은, 그리고 감히 말 하건데 그녀와 만나는 모든 것은 유하의 좋은 영향을 받게 된다. 처음에는 다소 인간에 대해 모르던 넬도 자연스럽게 그녀의 영향을 받아 이쪽을 신경 써주고 있는 것이었다.
“유하.”
나는 나직이 그녀의 이름을 불렀다.
길게 기른 연갈색의 머리칼을 하나로 묶고, 새하얗게 드러난 목덜미가 눈이 부셨다. 부드러운 눈동자는 미소를 짓고 있는 입술에 녹아든 상태였으나 간간히 걱정하는, 또한 슬퍼하는 기색으로 가득했다.
“다녀올게.”
“준….”
앞치마에 발목까지 이르는 긴 치마와 스웨터. 나는 걱정스레 이쪽을 바라보는 유하의 얼굴을 애써 무시한 채 천천히 몸을 돌렸다.
하지만 이내 멈춰 섰다.
유하가 붙잡았다. 재킷의 끝을.
“유하….”
“준….”
돌아선다.
그녀의 눈동자를 가만히 들여다보았다. 그곳에 비친 내 얼굴은 어떤 표정을 짓고 있을까.
사실 혼란스럽기는 했다.
그래서 망설이는 걸지도 몰랐다.
촉촉하게 젖은 유하의 눈동자. 나는 그것을 바라보며 몇 번이고 입을 열려다 멈췄다. 거기에, 그녀는 더 참지 못하겠다는 듯 먼저 입을 열었다.
“저희…. 사실 보험 해약했어요.”
“?”
그리고 나는 눈을 동그랗게 떴다.
“어, 어떻게 하죠?!”
유하는 눈물을 글썽거리며 나를 바라보았다. 하지만 나는 황당한 말에 좀처럼 반응을 보이질 못했다.
“준이 돌아왔을 때, 있을 곳이…!”
“….”
“없어지고 말았어요!”
“아니, 보험은 왜?”
“그…. 어쩌다보니 가게 사정이 좀….”
내가 되묻자 머뭇거리며 고개를 푹 숙이는 유하. 가녀린 어깨를 문득 느낀 나는 길게 한숨을 내쉬며, 이내 저도 모르게 웃어버리고 말았다.
“하하…!”
“우, 웃을 일이 아니라고요?!”
“아니, 돌아올 곳이 없어졌구나. 해서.”
“그게…!”
“앞으로 나아가는 일만 남았다고 볼 수도 있겠지.”
그렇게 이야기하자 유하는 눈을 동그랗게 떴다. 나는 쓰게 웃으며 집안을 둘러보고는 어깨를 으쓱했다.
“여기는 어때?”
“여, 여기는 회장님께서….”
“그래, 잠깐 빌려준 곳이지. 하지만 좋잖아? 바로 앞에 바다도 있으니까 내가 매일 같이 바다에 나가서 고기를 낚아오고 유하가 요리를 하는 거야.”
게스트 하우스처럼 사람도 맞이하고.
“다른 녀석들도 함께 해도 좋겠지. 특히나 모드레드는 아마 일이 끝나면 갈 곳이 없을 테니까.”
그렇게 인생은 계속 이어지는 게 아닐까.
“넬, 린슬렛, 트리슈. 베디비어와 발렌타인. 제각기 삶이 있겠지. 하지만 그 안에는 내가 있어. 그리고 유하가 있지. 그리고 살아있는 한 이어지리라 믿어.”
나는 그렇게 생각했다.
소중한 장소를 잃었다. 하지만 어쩐지 그녀의 말을 들으니 정신이 번쩍 드는 듯한 기분이었다.
소중한 사람은 있으니까.
소중한 사람들은 남아있으니까.
그것이면 충분했다.
“어때?”
“….”
“인생이란 결국 어떻게 될지 모르는 거지만.”
“저는….”
“결국, 나는 죽여 봤자 되살아나니까.”
“네?”
“아니, 아무것도 아니야.”
그것은 ‘이쪽’의 이야기다.
“다녀올게, 유하.”
누나.
나는 대답을 듣지 않고 그녀의 입술에 가볍게 입을 맞췄다. 어깨를 살짝 감싸 쥐며 그렇게 응석을 부렸다.
돌아올 것이다.
모든 것을 끝낸 뒤.
“…. 다녀와요.”
그리고 그녀는 활짝 웃었다.
“저는 어디에도 가지 않을 테니까.”
나는 문을 열고 바깥으로 나갔다.
◇
내가 넬과 함께 서울 외곽 부근에 도착한 것은 시간이 막 오후로 넘어갈 시점이었다.
[진입하시면 말씀해주십시오.]
“그래.”
모드레드의 귓속말에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자연스럽게 대답했다. 넬이 보조를 맞춰주어 시야의 한구석에 서울의 지도가 푸른빛을 발하며 뜬 채였다.
현재 서울은, 할 킬러즈에 의해 철저하게 봉쇄되었다.
녀석들이 시민들의 통제를 위해 뿌리는 데이터를, 나는 아서리안을 거쳐 받아들였다. 그로서 디멘션 커넥터는 시야에 가상의 세계선을 표시했다.
육각형으로 된 불투명한 방어벽이 견고하게 서울 전체에 돔의 형태로 둘러진 채였다. 나는 머리가 이리저리 흩날리는 것을 느끼며 그것을 바라보았다.
둥그렇게 형태를 그리고는 뻗으며 각 지역으로 차량을 인도하는 외곽 순환 도로의 난간 위.
‘좋은 걸’ 발견한 나는 곧바로 뛰어내렸다.
서울을 향해 들어가는 트레일러의 위로 가볍게 착지했다. 그리고는 숨을 내뱉으며 천천히 일어섰다. 주변을 쏜살같이 차량들이 지나치는 게 눈에 들어왔다.
말하자면 나는, 성으로 쳐들어가는 셈이었다.
그것도 정문을 통해 당당히.
“주인님….”
견고한 방어벽을 향해 달려가는 차 위에서 넬이 걱정스러운 목소리로 날 불렀다. 거기에 반응해 돌아보자 그녀는 쓰게 웃어보였다.
“아무래도 다른 분에게 부탁하시는 편이….”
“적을 도발하는 용도라면 내가 제일 적절하겠지.”
가볍게 대답했다.
“거기다가 자신 있으니까.”
“뭐가요…?”
“내 옆에는 네가 있으니.”
“…. 요새 들어 그렇게 달콤한 말로 어물쩍 넘어가시려고 하는 순간이 많아지신 것 같은데요.”
넬이 단호하게 지적했다.
“아, 통과한다. 준비해줘.”
“으앙! 또 그렇게 말 돌…!”
바로 그 순간, 나는 몸이 방어벽을 넘는 것을 느꼈다. 그리고 뒤를 이어 육각형으로 된 벽이 붉은빛으로 빛나기 시작하며 ‘ALERT’라는 글자가 새겨졌다.
동시에 소리가 울리기 시작했다.
아서리안의 유저인 나를 인식한 할 킬러즈의 슈퍼컴퓨터가 순식간에 세계를 지배했다. 차량들이 순차적으로 도로 위에 정지하고 나는 주변을 둘러보았다.
여기저기에서 검은 궤적이 날아드는 게 보였다. 코트를 입은 할 킬러즈의 요원들이었다.
물론 이것은 전부 계산 하의 행동이다.
“최대한 소란을 피워볼게.”
나는 뇌까리듯 중얼거리며 검은 보석을 꺼내들었다. 확연하게 형태를 갖춘 그것이 손바닥의 위에서 음산한 기운을 내뿜었다.
“모르가나.”
그리고 나는 그것을 사용했다.
트레일러의 옆에 매달려 있던, 바이크에.
낮은 배기음을 내며 차체가 떨리기 시작했다. 바이크를 고정시키고 있는 사슬을 걷어차 뜯어낸 나는 그대로 중심을 잡고 바닥에 착지하는 바이크에 올라탔다.
“넬, 조종을 부탁해.”
“맡겨만 주세요!”
호기롭게 소리치며 넬이 바이크를 움직이게 했다.
현대의 바이크는 과거에 비해 ‘비교적’ 안전장치를 많이 보유하고 있다. 특수 고무로 되어 충돌 시 인간의 신체를 감싸는 형태로 튀어나오는 에어백부터 시작해서.
기본적으로 ‘잘’ 넘어지지 않는다.
인간의 체중의 변화를 읽어내고 거기에 대응해 내장된 장치가 자동으로 바이크의 균형를 조정했다. 거기에 나는 넬이 그런 장치의 조정을 도맡은 상황이다.
바이크에서 중심을 잡고 일어섰다.
“속도, 적당히 조절해줘!”
거센 바람에 저도 모르게 소리를 내지르며 나는 스파다를 뽑아 손에 쥐었다. 멈춰선 차량들 사이를 스치듯 바이크가 달리는 가운데 요원들이 가까이 다가왔다.
차량 위에서 녀석들 중 하나가 뛰어내렸다.
“이 새끼…! 여기가 어디라고!”
그는 분노한 상태였다. 하지만 나는 곧바로 검을 마주치며 긁어서 튕겨냈다. 바이크가 왼쪽으로 기울었다.
그 위에서 아슬아슬하게 중심을 잡아냈다.
카가가각, 하고 바닥에서 불꽃이 튀었다. 제 아무리 그래도 저런 운동 능력으로 부딪치면 차가 들이박는 충격과 별반 다들 바가 없을 터였다.
녀석들 역시 그걸 노리고 있는 걸까.
바이크를 쓰러뜨린다고?
“…!”
다른 요원이 옆에서 날카로운 비수를 던졌다. 바이크의 바퀴를 노리고 있어 나는 그것을 쳐냈다.
하지만 반대편에서 다시…!
망자 소환.
스킬을 사용해 나는 달려드는 요원 하나를 향해 달려들도록 했다. 짧은 틈새에 연공을 펼쳐오는 요원들의 모습에 나는 입술을 질끈 깨물었다.
역시나 호락호락하진 않군.
거기에 달려드는 요원들의 숫자가 점차 늘어났다. 멈춰선 차량들을 징검다리마냥 달리고 뛰어넘어 녀석들은 계속해서 나를 추격해왔다.
역시 노리던 바였다.
조금만 더 버티자, 조금만 더.
나는 그렇게 생각하며 녀석들의 공세를 견뎌냈다. 바이크는 일정한 속도를 유지한 채 계속해서 도로를 내달렸고, 진화된 감각으로 나는 차량의 운전자들이 경악에 찬 눈을 하고 있음을 알아차렸다.
시속 100km의 바이크에 서있는 남자와, 그것을 아무렇지도 않게 쫓는 요원들의 모습이 그들에겐 어떻게 보일까. 이게 현실이라고 생각이나 할까.
그리고 얼마나 지났을까.
[진입했습니다.]
모드레드의 목소리에 나는 망자를 소환하다 말고 고개를 끄덕였다. 날아드는 요원 하나를 뛰어올라 걷어차고는 각을 비틀어 기우는 바이크의 위에 내려앉았다.
“넬! 최고 속도로 달려!!”
그렇게 소리치자, 바이크는 순식간에 가속했다.
날카롭게 궤적을 남기며 차량들 사이를 뻗어나갔다. 거기에 대응하지 못하고 따라붙던 요원들이 뒤처지는 광경이 눈에 들어왔다. 그들은 순식간에 점이 되었다.
속도는 200km
차량들이 길게 늘어져, 시간이 늘어진 듯했다. 준비를 마친 나는 모드레드의 근본을 이어받았다.
“주인님! 지금이에요!”
그리고 넬의 말에, 나는 순식간에 옆으로 날았다.
시야는 불투명하게 물든 상태였다. 할 킬러즈에게 내가 뛰어오른 곳을 속이기 위한 트릭이었다. 멈춰선 세단의 위를 날아 가드 레일의 바깥으로 몸을 날린 나는 순식간에 스킬을 하나 더 시전 했다.
망령 신체.
그와 거의 동시에, 바닥에 붙어 나뒹굴었다. 잔디가 우거져 있는 도로 옆의 구역이었다. 이곳을 중심으로 도로는 둥그렇게 원을 그리고 있다.
“윽….”
몸에 충격은 없지만 더럽게 어지러웠다.
200km로 달리는 바이크에서 몸을 날린 영향일 터였다. 몇 번이고 땅을 들이박고 튕겨져 날아오른 나는 이내 중심을 잡고 바닥에 착지했다.
그리고 곧바로 움직였다.
[타나, 이쪽이에요.]
베디비어의 목소리를 따라.
이 근방에는 하수 처리 시설이 있다. 서울 시내로부터 나온 각종 생활 오염수들을 씻어서 재활용할 수 있도록 만드는 장소였다. 순식간에 내달려 투명화가 풀리기 직전 안으로 들어선 나는 곧바로 파이프 안으로 들어섰다.
[내부의 지도와 저희의 위치를 전송했습니다.]
모드레드의 목소리.
그 권한을 받아 승인하자 눈앞에 노란색으로 빛나는 궤적이 눈앞에 파이프관의 골격을 그려냈다.
그리고 그 중심에 가장 밝게 빛나는 점이 하나.
나는 그것을 곧바로 뒤쫓아 갔다.
“속도 늦추지 마. 바로 옆이니까.”
[물론이에요. 화이트는 과격하답니다.]
발렌타인이 거기에 대답하고, 나는 나란히 서서 달리다 옆으로 꺾어지는 구획을 발견했다.
속도를 더욱이 드높였다.
벽을 박차고 방향을 꺾어, 나는 파이프관의 바깥으로 빠져나갔다. 폭포처럼 하수가 쏟아져 내리며 저 멀리 거대한 범선이 한 척 눈에 들어왔다.
쿵, 하는 소리와 함께 그 위에 내려앉았다.
“후.”
“고생했어.”
그 직후, 목소리를 들었다.
고개를 들자 갑판 위에 올라와있던 트리슈의 모습이 보였다. 검은 안대에 챙과 깃털이 달린 모자, 오늘은 또 화려하게 치장이 된 망토를 두르고 있었다.
“어때? 해적 느낌인데.”
“그렇게 예쁜 해적이 어디 있냐.”
나는 피식 웃으며 중얼거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