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0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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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pter 6 : 이상의 기사 : 각성
눈을 떴을 때, 머리가 깨질 듯이 아파왔다.
“윽….”
눈앞이 어지러워 제대로 숨이 쉬어지질 않았다. 이불이 축축해, 나는 식은땀을 잔뜩 흘렸다는 사실을 상기하며 반사적으로 일어나려고 했다.
좀 더 자고 싶은 마음을 굴뚝같았지만, 어떻게든 떨쳐냈다. 일단 시간을 확인하기 위해 나는 디멘션 커넥터의 팝업창을 눈앞에 띄웠….
“…?”
되지 않는다.
무슨 이유에선지, 제대로 생각을 했음에도 시야는 그대로였다. 흰색의 시트가 눈앞에 맴도는 채로, 나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바닥을 짚었다.
좋은 냄새를 느꼈다.
갓 뽑아낸 커피의 향이었다.
“으응…. 준?”
바로 옆에 누군가 있다. 그런 자각이 일고, 나는 자연스럽게 옆으로 팔이 당겨지는 것을 느꼈다.
“누, 누나?”
유하였다.
“더 자요…. 괜찮으니까….”
잠에 취한 듯한 그녀가 나를 바라보며 미소를 지었다. 연갈색의 머리가 새하얀 얼굴을 반쯤 가린 채로, 그녀는 천사처럼 자애롭게 나를 끌어안았다.
하지만, 아니….
“네, 넬?”
나는 당황스러운 기색에 잠이 확 깨는 것을 느끼며 고개를 들려고 했다. 하지만 유하는 눈을 꼭 감은 상황에서 내 머리를 안은 채 놓아주질 않았다.
문제는 그것이었다.
가슴 사이에, 얼굴이 파묻혔다.
어제 히터를 좀 세게 틀어놓고 잔 것인지 유하의 풍만한 가슴골에는 땀이 송골송골 맺힌 채였다. 깜짝 놀랄 정도로 야한 네글리제는 유하가 ‘누나’였을 때의 흔적으로, 나는 당황스러운 기분을 느꼈다.
내 하반신도 마찬가지였다.
딱딱하게 굳어진 채다.
“네, 넬…!”
“음냐아…. 준?”
“유, 유하….”
“불러도 안 오니까 적당히 하고 좀 자요.”
“…. 넵.”
차가운 목소리에 나는 칼 같이 대답했다. 그러자 내 귓가에 입을 대고 요염하게 웃음소리를 낸 유하가 슬쩍 귓불을 깨물었다.
“…?!”
이게 대체 어떻게 된 상황인 걸까.
어제 밤, 나는 분명히 이 2층에 있는 커다란 침대 방에서, 혼자 잠을 정했었다. 눈을 감았다 뜨니 이런 상황이더라 싶을 정도로 깊은 잠에 빠져들었었다.
그래서 더 이해하기 힘들었다.
유하의 부드러운 살결이 코에 닿았다. 나는 입술을 들어 키스를 하고 싶은 유혹을 애써 참아냈다. 허리에 손을 올리고 싶은 매혹을 견뎌냈다.
그녀는 내게 있어서 천사다.
그와 동시에 몽마이기도 했다.
“윽….”
“아직 아침이 아니니까, 쉬어도 괜찮아요.”
유하는 그렇게 중얼거리며 계속해서 내 머리를 쓰다듬었다. 거기에 나는 처음의 생각과는 달리 다시금 천천히 찾아드는 수마를 느꼈다.
하지만 다음 순간, 문이 열리는 소리가 났다.
“히꺅…?!”
바로 뒤쪽이었다. 어둠으로 갑자기 빛의 줄기가 뻗어져, 나는 유하의 품에서 빠져나오며 동시에 벌떡 몸을 일으켜 세웠다.
“트, 트리슈…?!”
정신이 번쩍 들었다. 나는 문 앞에서 눈을 비비며 서있는 트리슈를 보고 눈을 동그랗게 떴다.
잘록한 허리, 운동을 한다는 것을 상기하는 듯 뻗은 엉덩이와 다리의 라인. 유하에 뒤지지 않는 아름다운 곡선을 그리고 있는 가슴.
“우음…. 타나 오빠…?”
“그, 지금 몇…!”
시간을 물으려고 했지만.
“트리슈, 무서운 꿈 꿔쪄어….”
그녀는 내게 천천히 다가왔다.
그리고 나는 한 가지 사실을 깨달았다.
지금의 트리슈가 알몸이라는 것을.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태어난 그대로의.
아니 그런 괴상한 수식어가 계속해서 머리에 떠오를 정도였다. 진한 녹색의 머리가 가슴의 중요한 부분을 가린 채였지만 나는 경험(?)으로 인해 그 뒤에 있을 부드러운 무언가를 머릿속으로 상상했다.
“히잉…. 사실 거짓말이지만 그렇단 걸로.”
“아니, 트리슈…! 여기 유…!”
“같이 자도 되지? 응?”
모르고 있나.
잠에 취해 눈을 비빈 트리슈가 아무렇지도 않게 웃으며 내 쪽으로 다가왔다. 애교를 부리는 고양이처럼 엉덩이를 살랑거리며 그녀는 침대 안으로 슬며시 들어섰다.
“마음대로 해.”
나는 몸을 돌렸다.
위험하다. 뇌가 그렇게 말하고 있다. 나는 완전히 잠에 든 유하를 가리듯 끌어안고서는 숨을 삼켰다.
“읏챠아…. 헤헤….”
침대 안으로 들어온 트리슈가 내 등에 얼굴을 묻었다. 차가운 감촉이 흉터에 닿아, 나는 입술을 질끈 깨물었다.
앞에는 유하, 뒤에는 트리슈.
“이게…. 그 상처인 거네….”
흉터를 매만지는 손길이 느껴졌다.
흥미롭다는 듯, 그것을 매만진 트리슈의 손이 이내 내 허리를 스쳐 복부를 매만지기 시작했다. 나는 저도 모르게 숨을 삼켰다.
“후후…. 오빠 냄새 좋다.”
그리고 목소리가 이어졌다.
“….”
어디로도 빠져나갈 길이 없군.
◇
“젠장….”
나는 길게 한숨을 내쉬며 눈가에 붙은 반창고를 뗐다. 그리고는 화장실의 거울로 얼굴을 확인했다.
붓기는 거의 가라앉았고, 상처에는 딱지가 졌다. 가볍게 약을 바르면 괜찮을 정도 같아 나는 한 번 상처를 매만지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나쁘진 않았다.
잠을 못잤다는 것만 빼면.
“넬.”
가볍게 세안을 하고 머리를 정돈한 나는 옆에 서있는 넬을 돌아보았다. 녀석은 빙긋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네, 주인님.”
“어제 내가 말하는 거 못 들었냐.”
“네, 못 들었어요!”
“….”
당당히 대답하신다.
거기에서, 나는 어젯밤의 일들이 모두 계산된 행동이었음을 깨달았다. 더는 캐묻지 않고 불만스러운 얼굴인 채 바깥으로 나가자 부엌에서 아침 식사를 준비하고 있는 일행의 모습이 보였다.
나를 돌아본 트리슈와 유하가 킥킥 웃으며 하이파이브를 했다. 그런 행동으로서 확실해졌다.
“트리슈.”
“응? 왜, 타나 오빠.”
“굳이 알몸일 필요는 있었던 거냐?”
두 사람이 노리고 그런 행동을 한 것임을.
“….”
“뭐.”
순식간에 주방의 공기가 냉랭하게 얼어붙었다. 베디비어는 자리에 보이질 않았지만, 발렌타인의 얼굴이 새빨갛게 물들고 뒤를 이어 모드레드가 크게 헛기침을 했다.
“…. 트리슈?”
그리고 유하가 빙긋 웃었다.
무시무시한 얼굴로.
“유, 유하 언니?!”
“저희…. 최소한의 옷은 입기로 하지 않았던가요?”
“아, 아니! 입었거든요?! 입었는데…! 어쩌다보니 들어가는 시점에서 스르륵. 하고…?”
“후후, 그렇군요.”
유하는 아무렇지도 않게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물론 알겠다며 수긍하는 의미는 아니었기에 트리슈는 식은땀을 뻘뻘 흘리며 뒤로 물러섰다.
밤새 남의 복근을 만지작거렸던 벌이다.
나는 그렇게 생각하며 옆으로 돌아섰다. 무슨 옷을 입고 있었느냐며 자세히 심문(?)을 하는 유하와, 얼굴이 빨개져서 프라이팬의 빵을 뒤집는 발렌타인, 그 옆에서 식기를 두고 있는 모드레드에게로.
“잘 주무셨습니까.”
그녀는 무뚝뚝하게 날 바라보았다.
자신은 아무것도 모른다는 태도다.
“그래 보여?”
“네, 계속 지켜본 바에 따르면 수면의 질은 나쁘지 않으신 것 같았습니다. 활동에 지장은 없겠죠.”
“…? 계속 지켜보다니.”
그 말에 모드레드의 동작이 멈췄다.
짧은 머리칼이 턱 근처에서 미세하게 떨리기 시작했다. 거기에 나는 설마 싶은 마음으로 입을 열었다.
“혹시 보고 있었냐.”
“….”
녀석은 대답이 없다.
“계속해서?”
“아니, 그…. 신체 상태의 점검을 위해서입니다.”
“그래?”
“네, 혹시라도 오류가 일어나면 안 되니 말입니다!”
되묻자 녀석은 거짓말에 보태듯 고개를 끄덕이며 반짝거리는 눈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나는 거기에 무어라 대답을 할 수가 없음을 느꼈다.
“죄, 죄송합니다.”
결국 모드레드는 내 시선을 이겨내지 못하고 얼굴이 빨갛게 물들어선 사과를 했다. 우물쭈물하는 녀석의 모습에 나는 미소를 지으며 머리를 쓰다듬었다.
“괜찮아.”
“그, 그렇습니까.”
얼굴이 한층 더 빨개졌다.
“사실 걱정이기는 하지만, 잠 안 자도 괜찮은지.”
“아, 그거라면 같습니다.”
“뭐가?”
“저도, 타나토스 씨가 안 잘까봐 걱정이었습니다.”
녀석은 그렇게 말하고는 이내 부드러운 미소를 지어보였다. 앳된 외모와 그런 말은 마치 화폭에 담긴 듯하여 나는 심장이 두근거리는 것을 느꼈다.
“그리고, 사실 어제 조사를 좀 해보았습니다만.”
“린슬렛에 관해서?”
“네, 넬 양이 많이 도와주셨습니다.”
“헤헤, 어제 재미있었죠?”
넬이 웃었다. 거기에 모드레드도 부드럽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별 일 없는 모양입니다. 도리어 다른 쪽에서 문제가 발생한 모양으로….”
그녀는 눈앞에 팝업창을 하나 띄웠다.
희미한 홀로그램이 이내 형태를 갖추었다. 영상이다. 재생 표시가 있어 나는 그것을 눈앞으로 끌고 와 눌렀다.
“…?”
그것은 공중에서 지상을 촬영한 영상이었다.
곳곳에 파괴된 도심이 보였다. 눈에 익어 조금 들여다보고 있자니 누군가가 눈에 들어왔다.
울면서 바닥을 내리치고 있는 남자.
가웨인이다.
“가웨인?”
“조금만 더 보시면 됩니다.”
중얼거린 모드레드의 말에 나는 눈썹을 찡그린 채 계속해서 영상을 시청했다. 이윽고 일어선 가웨인이 반대편을 허망한 눈으로 바라보기 시작했다.
그리고 반대편에서,
“비비안…?!”
거기에 린슬렛까지.
‘서있는’ 비비안을 향해 가웨인이 믿을 수 없다는 얼굴로 달려가기 시작했다. 나는 상황을 단숨에 이해했다. 이것은 내가 동료들과 함께 가웨인을 쓰러뜨리고 빠져나온 직후에 촬영된 영상이었다.
비비안 역시 달리기 시작했다. 나는 그 광경을 도무지 영문을 모르겠다는 눈으로 바라보았다.
하지만 그 직후, 아예 입을 다물지 못했다.
달려든 가웨인이 한쪽 팔로 비비안을 끌어안으려던 순간, 그녀는 날카롭게 갈라틴을 들고 휘둘렀다.
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하지만 가웨인은 분명히 칼에 찔렸다.
“이상입니다.”
“가웨인이 비비안에게?”
“네, 두 사람은 이후로 행동을 같이 한 모양입니다.”
“린슬렛과 비비안이?”
혼란스러운 기분이다.
거기에 모드레드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잠시 머리가 멍해져 테이블을 붙잡고 선 나는 이내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그리고 뒤를 이어 목소리가 들려왔다.
“준, 아침 먹어요.”
유하였다.
“…. 그래.”
거기에 대답하며, 나는 천천히 몸을 돌렸다.
생각해둔 바기는 했지만 어쨌든, 서둘러 움직여야 할 것 같았다.
========== 작품 후기 ==========
Chapter 6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