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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크로맨서 재킷-239화 (239/321)

239편

<-- Chapter 5 : 이상의 기사 -->

“자, 흥하세요.”

“…. 유, 유하.”

“어서요.”

방 안쪽에서 타나토스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말을 더듬는 태도에서 당황한 기색이 느껴져 들여다보니 안락의자에 앉은 그를 유하가 치료하는 광경이 눈에 들어왔다.

“아야야얏….”

“참아요.”

잔뜩 붓고 코피가 터져 엉망이 된 타나토스의 얼굴에 유하는 단호히 솜을 가져다댔다. 앓는 소리를 내면서도 타나토스는 그 손길을 웃으며 받아들었다.

어쩐지, 알 수 없는 기분이었다.

한동안 멍하니 그것을 바라보며 모드레드는 가볍게 커피를 한 모금 마셨다. 그리고는 의외로 나쁘지 않은 맛에 볼을 붉히며 감탄했다.

단맛을 싫어한다고 생각했는데.

“풍부, 합니다.”

애써 시선을 돌리듯 중얼거리며 그녀는 잔에 든 연한 갈색의 액체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이내 새삼 변한 자신에 대해 느끼고는 쓰게 웃었다.

하지만 이 역시 눈앞의 남자가 준 것이다. 때문에 모드레드는 알 수 없는 기분을 느끼고 있는 것이다.

“풍부하군요.”

바로 그때, 누군가 모습을 드러냈다.

바닷가 쪽에서 통화를 하고 있던 정현이 돌아온 것이었다. 가볍게 청바지에 드레스셔츠를 입고 있는 그녀의 모습을 돌아본 모드레드는 가볍게 목례를 했다.

“회장님.”

“…. 이런 부분은 변하지 않았지만.”

“네?”

“조금 더 편하게 대해주었으면 한다는 말이에요. 당신은 제 부하 직원도 뭣도 아니니까.”

가볍게 웃은 정현은 이내 테라스의 난간에 팔꿈치를 기대고 섰다. 불어오는 바람에 짧은 머리칼이 흩날려 모드레드는 잠시 그것을 바라보았다.

“당신이 틀렸네요, 모드레드.”

그리고 회장이 말을 이었다.

“제가 말입니까?”

“네, 기억나나요? 처음 대면했을 때. 그때 당신은 그를 믿을 수 없는 사람이라며 말했었죠.”

정현은 짓궂게 웃었다.

“하지만 뭐, 역시 인생 경험의 차이가 있는 만큼 어쩔 수 없는 거겠죠. 이게 무시할 수 없다니까요.”

“…. 즐거워 보이시는군요.”

모드레드는 짜게 식은 표정으로 대답했다. 하지만 정현은 그런 태도가 오히려 더 즐겁다는 듯 쿡쿡 웃었다. 거기에서 모드레드는 뒤늦게 그녀가 말했던 풍부하다는 말의 의미를 알아차렸다.

“풍부하단 건, 표정을 말씀하셨던 겁니까?”

“네, 커피의 향이 아니라.”

“….”

“사랑이란 사람을 변화시키는 법이죠.”

“그, 그런 건 아닙니다만….”

갑작스러운 얼굴에 모드레드는 얼굴이 새빨갛게 물들었다. 정현은 그런 모습을 보며 천천히 말을 이었다.

“그런 것치고는 아주 복잡해 보이는 얼굴이던데요.”

그리고 그녀의 시선은 방 안쪽의 두 사람에게 향했다.

“혹시 알고 계셨습니까?”

“뭘요?”

“유하 언니께서 갤러해드였단 사실을.”

“아뇨, 뭔가 있으리란 생각정도는 했지만.”

“그렇습니까?”

“네, 하지만 이건…. 솔직히 저도 예상치 못했군요.”

그녀의 표정은 씁쓸했다.

모드레드 역시 마찬가지였다. 지금의 상황에서, 그녀는 유하를 어떻게 대하면 좋을지 알 수 없다는 기분이었다. 그녀는 지금의 상황을 어떻게 생각하고 있을까. 어느 수준까지를 이해하고, 그 이상을 알지 못하는 자신을 자책하면서 괴로워하지는 않을까.

“그래도 뭐 어떤가요. 당신으로서는 좋은 게?”

“네?”

“마음이 애매한 시점에서 낚아채오는 거죠.”

“회, 회장님….”

너무 심한 말이 아닌가 싶어 모드레드는 눈을 동그랗게 떴다. 하지만 정현은 아무렇지도 않게 윙크를 하며 말을 이었다.

“사랑은 쟁취하는 거라고요?”

“자, 장난칠 사안이 아닙니다!”

“하아, 부하 직원이 소리를 지르다니.”

“방금 전까지만 해도 아니라고 하셨으면서!”

“원래 말과 사람 간의 관계는 휙휙 바뀌는 법이죠.”

“우으….”

모드레드는 말을 잇질 못하고 물러섰다. 사랑이라는 것에 대해 그저 얼마 전까지만 하더라도 불필요한 감정 중 하나일 뿐이라고 여기고 있었던 그녀는, 당황스러운 기분을 느끼며 입술을 질끈 깨물었다.

“그러니까, 너무 어려워할 것 없다는 겁니다.”

뒤를 이어 정현이 부드럽게 웃었다.

“….”

“정작 본인이 감내하고 있는 일을 굳이 모드레드 당신이 어려워할 필요는 없죠. 그렇지 않습니까?”

“확실히 그건 그렇습니다.”

“그러니까, 괜히 감정에 손을 볼 이유도 없어요.”

어머니처럼, 자애로운 미소를 지은 채 중얼거린 정현은 모드레드의 머리를 가볍게 쓰다듬었다. 그리고 그녀는 셔츠의 깃을 여미며 일어섰다.

“마음이 가는 대로 행동하도록 해요, 모드레드. 오랜 시간이 지나서 후회가 남지 않도록.”

“회장님…?”

뭔가 의미심장한 목소리에 모드레드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뒤를 따랐다. 돌아선 정현은 위에 가볍게 점퍼를 걸치고는 자리에 멈춰 섰다.

“저는, 분명히 전해두었으니까요.”

그녀는 돌아보지 않았다.

“흐음….”

넬의 손길이 분주했다.

거실은 널찍한데다 큰 소파가 좌우로 한 개씩 놓여 모두가 모이기에 좋았다. 중심에 넓게 뻗은 상 위로 갖가지 팝업창을 띄운 넬은 가끔씩 고개를 갸웃거리기만 할 뿐 그러한 데이터의 분석에 한창이었다.

“이건 어떤 것 같으십니까?”

“호오…. 대단한데요.”

그리고 그걸 간간히 모드레드가 옆에서 도왔다. 두 사람은 진지한 얼굴로 인근의 보안 상태를 확인했다.

다시금 완연한 밤이 찾아들어 저녁을 먹은 뒤 소파에 앉은 채로 쉬고 있던 나는, 가볍게 숨을 내뱉으며 트리슈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응…?”

내 무릎 위에서 반쯤 잠들어 있던 그녀가 고개를 들었다. 반응이 있어 나는 옆에서 쿠션을 가져와 베개로 삼게 하고는 조심스럽게 자리에서 일어섰따.

“타나 오빠…. 어디 가?”

졸린 듯 눈을 비비며 이야기하는 트리슈.

“잠시 전화 좀. 쉬고 있어.”

거기에 대답을 한 뒤, 나는 스킬창을 살피는 베디비어와 가볍게 눈빛을 주고받고는 테라스로 걸음을 옮겼다. 지금껏 연락이 안 되고 있는 린슬렛에게 전화를 해두어야겠지 싶었던 것이다.

하지만 그때, 무언가 어깨를 덮었다.

“…?”

부드러운 감촉에 뒤를 돌아본 나는, 유하를 발견하고는 저도 모르게 웃었다. 그녀가 내 어깨에 가벼운 아우터를 덮어준 것이었다.

“밤에는 추우니까요.”

“고마워.”

“네, 혹시나 이 이상 더 아프게 되면 나중에 가게가 왜 그렇게 되었는지 물어볼 수 없으니까요.”

“….”

확실히 캐물으실 생각이군.

당황해 유하의 차갑게 식은 눈길을 견뎌내고 있자니, 킥킥 거리며 웃는 소리가 들려왔다. 고개를 든 나는 부엌에서 설거지를 끝내며 나오는 발렌타인을 발견했다.

민간인으로 위장해 피난용 쉘터에 갔던 그녀는 저녁 시간이 다 되어서야 이곳에 도착했던 것이다.

“크흠….”

“너무 오래 있지는 말고요. 바닷바람에 상처가 아려올 수 있으니까.”

“아, 알았어.”

나는 약간 당황해 대답했다. 조금 강한 어조로 이야기하고 있지만 유하의 말속에서는 언중유골마냥 나를 걱정하는 기색이 강하게 느껴졌다.

하지만 어쨌거나, 그런 우려를 감사히 받아들인 나는 이내 바깥으로 나왔다.

차가운 어둠, 가끔 파도가 치는 소리가 들려왔다. 어둠의 불안함을 증폭시키듯 밀려드는 그것을 가만히 바라보며 나는 천천히 모래사장을 밟았다.

전화라고는 했지만 사실은 게임의 귓속말이다.

“네크로맨서 재킷, 기동.”

쓰라린 통증을 느꼈다.

넬의 말에 의하면 이곳은 안전지대라고 했으니 말이다. 그 말처럼 검은 백사장 위에 푸른 꽃들이 피기 시작해 나는 그것을 무덤덤한 표정으로 바라보았다.

“린슬렛.”

마스크를 손에 쥔 채 귓속말을.

이후의 상황을 확인해보고 싶었다. 넬은 그녀에게 분명히 내가 어떤 상황에 처했는지를 전했다고 이야기했다. 하지만 이후로 린슬렛이 나타나지는 않았다.

비비안 역시.

두 사람은 대체 어떻게 된 것일까.

“린슬렛, 대답해. 나야.”

[타나토스님.]

그리고 전혀 다른 목소리가 들려왔다.

“…? 비비안?”

희미한 소리의 채취로부터 추론을 하듯 나는 상대방의 이름을 입에 담았다. 그러자 잠깐의 침묵이 이어지고 이어서 반대편에서 목소리가 들려왔다.

조금 떨리는, 린슬렛의 목소리가.

“잠, 뭐야?!”

나는 놀라 버럭 소리를 내질렀다. 그러자 반대편에서 소리가 멎고 이내 다른 목소리가 이어졌다.

[응, 티티.]

“린슬렛…?”

[무슨 일인데 그래?]

“지금 어디야.”

[잠깐 피신 중이야. 미안, 못가서.]

“뭐…? 그게 무슨 소리야!”

[자, 잠깐? 그렇게 소리 지를 이야기는 아니야.]

그리고 린슬렛은 상황을 설명했다.

넬에게 연락을 받고 집에서 나와 가게로 오던 중, 갑작스레 할 킬러즈의 습격이 있었다고. 그것을 피해 지금 에스콰이어들이 많은 곳에 숨어있다고 말이다.

[순찰이 약해지면 집에 돌아갈 생각이야. 정말로 별 거 아니니까 나중에 이야기하자. 할 말이 많아.]

“…. 나도.”

더 물을 순 없겠다고 생각했다.

어쩐지 알 수 있었다. 평범함을 가장하고 말하는 린슬렛의 목소리에, 아주 조그마한 균열이 있었음을. 그렇기 때문에 나는 더 묻지 않고 귓속말을 종료했다.

“넬.”

재킷을 해제하고 나직이 중얼거렸다.

“네, 주인님. 부르셨어요?”

그러자 집안에 있던 넬이 곧바로 내 앞에 모습을 드러냈다. 나는 슬쩍 앞머리를 매만지며 그녀를 바라보았다.

“혹시 린슬렛의 위치를 알아봐줄 수 있겠어?”

“무슨 일 있으셨나요?”

“별 일 아니라고 말하기는 했는데…. 그걸 곧이곧대로 받아들이기는 힘들어서.”

나는 그렇게 중얼거리며 넬을 바라보았다. 잠시 머뭇거리던 녀석이 당찬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한 번 알아볼게요.”

“부탁해.”

“대신, 저도 부탁이 있어요.”

“…?”

뭔가 안 좋은 예감이 드는데.

“적어도 오늘 밤만은 푹 쉬어주세요.”

그렇게 생각하고 있자 녀석은 씁쓸하게 웃으며 나를 바라보았다. 소금기를 먹은 바람이 몰려드는 가운데 나는 바다를 등진 채 서있는 그녀를 향해 입을 열었다.

“알았어.”

사실 아슬아슬하게 한계라고 생각하기는 했었으니까.

가웨인을 쓰러뜨리자 디버프인 ‘가레스 경의 붉은 피’는 해제되었지만…. 그 외에도 상처는 심각했다. 현실과 가상 양쪽이 베스트 컨디션이 아니었다.

어쨌든 좀 졸리기도 하니 말이다.

같은 시각, 다른 장소.

소금기를 머금은 듯한 바람의 냄새를 맡은 듯했다. 분명 디멘션 커넥터의 너머에서 날아든 것이었다.

“뭐, 잠시 방해가 있었지만….”

아론다이트를 바로 세운 채 그녀는 여유롭게 중얼거리며 팝업창을 밀어서 치웠다. 그러자 그 앞에, 시선의 끝에 누군가 서있는 모습이 들어왔다.

하나로 묶은 검을 머리가 찰랑거렸다.

“한 가지 제안을 하고 싶은 게 있어서.”

“…. 무엇이지. 테러리스트.”

우아랑은 불만스러운 얼굴이었다. 그럴 터였다. 가웨인의 상태가 그렇게 되었는데도 끈질기게 불러냈으니.

“네게도 좋은 제안이야.”

하지만 린슬렛은 물러서지 않고 싱긋 웃었다.

“갤러해드가 되어줬으면 해.”

그런 목적을, 아무렇지도 않게 이야기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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