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7편
<-- Chapter 5 : 이상의 기사 -->
“가웨인….”
헬기가 돌아오고 있다. 그 뒤로는 새벽녘을 알리듯 동이 터오는 것이 눈에 들어왔다.
“주인님!”
그리고 다음 순간, 넬이 모습을 드러냈다.
“넬!”
활짝 웃고 있는 모습에, 뭔가 좋은 소식을 가져온 걸까 싶어 나는 눈을 동그랗게 떴다. 그러자 가까이 다가온 녀석이 푸르게 빛나는 픽셀 조각을 내밀었다.
“받아보세요.”
나는 그것을 받아 권한을 받아들였다. 가까워지는 헬기에서 풍겨져 나오는 불길한 감각에 나는,
[준? 준인가요?]
심장이 멎는 것을 느꼈다.
“유하…?”
[아, 그…. 혹시 지금 집이에요?]
혹시나 싶어서 되묻자 그녀는 조금 당황한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거기에 나는 무어라 대답하지 못하고 뒤를 돌아보았다. 멀리 보이는 카페는 이제 완전히 불에 타, 검은 뼈대만 남은 상태였기 때문이었다.
[죄송해요, 많이 걱정한다고 들어서…. 저 지금 회장님 댁에 와있거든요. 뭔가가 위험하다고 하셔서.]
“회장님이면….”
[물론, 저입니다.]
뒤를 이어 우정현 씨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정현 씨…?”
[연락이 늦었습니다. 일단 나중에 설명을 드릴 테니 빠져나올 수 있겠습니까?]
“…. 유하를 바꿔줘요.”
나는 머릿속이 멍한 기색을 느끼며 대답했다.
유하가 무사하다. 다행이다. 그런 생각에 앞서, 나는 그녀에게 말을 전해야한다는 생각을 했다.
[아, 준? 할 말이라도….]
“송유하.”
그리고 나는 그녀의 이름을 담았다.
현실을 이겨내지 못하고 도망쳤던 과거의 내가, 가장 소중하게 생각했던 사람. 기억을 잃고 다른 사람이 되어버린 현재에도 소중하게 된 사람.
[네, 네?]
“거기서 꼼짝 말고 기다려.”
나는 그녀에게 눈물을 참으며 이야기를 했다.
“내가 따라갈 테니까.”
이제는 내가 증명하겠다고.
[…. 준.]
대답을 듣지 않고 전화를 끊었다.
길게 숨을 내뱉으며 나는 스파다를 꺼내들었다.
내 레벨은 156, 상대는 200의 기사.
하지만 아무런 상관이 없다.
무슨 수를 써서라도 이길 것이다.
유하의 길을 증명하기 위해.
“백시호!!!”
나는 가까이 다가오는 전투 헬기의 맞은편에서 단전의 기를 끌어 모아 고함을 내질렀다.
미사일이 발사되었다.
나는, 어쩐지 심장이 세차게 뛰는 듯한 감각을 느꼈다. 꼬리를 물며 날아드는 폭발물이 두려워서가 아니었다. 온몸에서 에너지가 넘치고 있는 것이었다.
물론 통증은 거셌다.
진짜로 다친 부분의 감각은 마비되었지만, 이제는 가웨인의 검이 내건 저주가 쓰려오기 시작했다. 그러나 그런 걸 모조리 무시할 정도로 몸에 에너지가 넘쳐흐르는 듯한 감각이 이어졌다.
나는 입술을 질끈 깨물었다.
날아드는 미사일, 그 뒤에서는 헬기의 개틀링이 나를 겨누고 있다. 가웨인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지만 나는 녀석 역시 재킷의 힘을 되찾았다는 사실을 알아차렸다.
어깻죽지로부터 뻗어 나온 뼈가, 붉은색으로 빛났다.
나는 그것을 재킷의 위에 휘감았다. 자라나는 나뭇가지처럼 온몸을 단단하게 감싼 그것은 갑옷이었다.
갤러해드의 붉은 갑옷.
그 직후, 미사일이 적중했다.
나는 똑똑히 그것을 인식했다. 날아든 미사일의 끄트머리에서 신관이 작동하며 폭발이 일어남을. 강렬한 빛이 몸을 완전히 찢어발길 기세로 날아듦을.
하지만 아무런 소용이 없다.
나에게는.
“….”
빛과 열기를 붉은 갑옷이 모조리 막아냈다. 상쇄하듯 갑옷 역시 사라졌으나 나는 폭발의 힘이 수그러드는 시점에서 린슬렛의 방패를 피워 올렸다. 연기가 걷히며 눈앞에 다시금 헬기가 모습을 드러냈다.
헬기에 달린 개틀링의 회전 속도는 이미 한계에 다다른 뒤였다. 마치 그 회전력을 반동 삼는 듯 무수히 많은 탄환이 쏟아져 나오기 시작했다.
그것을 방패로 막아내며, 나는 돌진했다.
“타나토스…!!”
가웨인이 모습을 드러낸 것은, 개틀링의 총신이 붉게 물드는 시점이었다. 개틀링이 동작을 멈추고, 헬기가 드높이 떠오르는 시점에 그 위에서 녀석이 허공에서 갈라틴을 휘둘렀다.
비헤딩 슬래셔.
목을 잘라내는 검의 빛이 연이어 지상을 향해 날아들었다. 순간적으로 멈춰선 나는 모드레드의 근본을 이어받아 시야가 불투명해지는 걸 느꼈다.
반달처럼 휘어진 빛의 검기를 피해냈다.
바닥이 부서지며 동시에 조각이 흩날렸다. 높이 튀어오른 그것을 밟고 나는 가웨인의 등 뒤로 날아들었다.
“큭!”
검으로 베자, 가웨인이 뒤늦게 반응해 몸을 비틀며 막아냈다. 하지만 자세가 흐트러져 나는 손을 뻗어 녀석의 멱살을 움켜쥐었다.
“저열한 새끼!! 도망치기만 한 주제에…!!”
주먹을 꽂아 넣은 뒤, 나는 무너지는 가웨인의 복부를 세차게 걷어찼다. 그리고 그것을 반동으로 삼아 보다 높은 곳에 있는 헬기를 향해 돌진했다.
꼬리 날개를 향해 검을 밀어 넣었다. 거대한 헬기가 한순간 휘청거렸고, 검이 깊숙이 박힌 상태에서 나는 힘을 주어 그것을 완전히 잘라냈다.
중심을 잃은 헬기가 빙글빙글 돌기 시작했다. 잘려진 날개의 끝을 박차고 뛰어오른 나는 반대편의 건물 위로 떨어져 중심을 잡고 착지했다.
조종사들이 뛰어내리는 게 보였다. 허리에 달린 제트 클러스터를 분사해 두 사람이 근처의 옥상에 뛰어내렸고, 중심을 잃은 헬기는 지상을 향해 추락했다.
폭음과 함께 다시금 거센 폭발이 일었다.
남겨져 있던 미사일의 탄두가 연쇄 작용을 일으켜 주변의 건물이 거기에 휩쓸렸다. 재킷이 흩날리는 것을 느끼며 그것을 바라보던 나는,
“…!”
날아드는 검기를 아슬아슬하게 피해냈다.
동시에 그것을 반동 삼아 지상으로 내려섰다. 폭발을 등진 채 서있는 가웨인의 모습이 보였다.
“방금 뭐라고 했지…?”
녀석은 코피를 스윽 닦아내며 그렇게 물었다.
“저열한 새끼라고 했다.”
나는 아무렇지도 않게 대답하며 다가갔다. 녀석 역시 불길에 그을린 코트를 펄럭이며 다가왔다.
“그렇게 볼 수도 있겠지. 나 역시 이 세계를 이용해 내 마음에 들지 않는 현실을 수정하려는 것이라고.”
“이준….”
“하지만 아니야! 나는 이 세계가 잘못되었다고 믿으니까! ‘누나’는 그렇게 하지 못했으니까!”
검이 부딪쳤다.
나는 가웨인의 얼굴을 노려보며 버럭 소리를 내질렀다. 녀석의 눈에 순간적으로 당황한 기색이 스쳐, 나는 검을 튕겨내며 몇 번이고 맞섰다.
녀석은 명백히 당황했다.
겨루는 검에 힘이 없어, 나는 몇 번이고 틈을 노려 녀석의 팔과 다리를 베어냈다. 붉은 피가 튀어 녀석이 점차 중심을 잃고 검에 기대었다.
“눈을 돌리고, 도망치기만 하는 네놈과는 달리!”
“이준…!”
“나는 고통스럽더라도, 나아가야 한단 말이다!!”
가웨인의 어깨에 검이 꽂혔다.
“날 죽이더라도 멈출 순 없어!! 다시 살아날 테니까!”
하지만 이내, 나는 그것이 사라지는 것을 느꼈다. 확연히 잡히던 손잡이의 감각이 사라졌고 거기에서 나는 재킷의 힘이 몸을 빠져나갔음을 느꼈다.
가웨인의 몸에 있던 상처가 사라졌다.
“…!!”
묻지도 않고 주먹을 날렸다.
현실로 돌아와, 나는 마찬가지인 가웨인과 주먹을 주고받기 시작했다. 빠각, 하는 소리와 함께 턱이 들렸지만, 나는 멈추지 않고 녀석의 복부를 걷어찼다.
“커헉!”
나가떨어진 녀석의 위에 올라타 주먹을 내질렀다.
가상, 그리고 현실. 그것이 뒤섞인 이 순간. 나는 주먹이 닿는 순간 뇌가 멈추는 것을 느꼈다.
눈을 감았다 뜨니, 가상의 세계였다. 아무것도 없는 새하얀 공간에, 나는 가웨인과 함께 떨궈졌다.
“크윽….”
그리고 녀석이 무릎을 꿇었다.
통증은 느껴지지 않았다. 물론 이것은 현실이 아니기 때문이다. 단순히 뇌가 착각을 일으키는 것에 불과했다.
하지만 가웨인은 무릎을 꿇었다.
“일어, 서….”
나는 그런 녀석을 바라보며 차갑게 중얼거렸다.
“일어서라고!! 멈춰있으면 안된다고!”
“타나, 토스….”
“네 입으로 한 소리잖냐! 이것이 세상의 흐름이라고! 진화라고! 그렇다면 지금 대체 뭘 하고 있는 건데!!”
“이, 새끼….”
“결국 앞서있는 개새끼들에게 유린당할 뿐이잖아!!”
“큭!!”
녀석이 달려들었다.
갈라틴이 내 목을 날카롭게 찔렀다. 강한 통증과 함께 나는 제대로 숨이 쉬어지지 않는 것을 느꼈다.
하지만 멈추지 않는다.
“나는, 그런 개새끼들을, 증오…. 한다고!!”
칼날을 잡았다.
엘레노어와 할 킬러즈, 멀리는 고그와 모그를 상상하며. 스스로를 선구자라고 생각해 자기들 멋대로 행동을 하며 결국에 현실을 유린할 뿐인 머저리들.
“하지만 가장 혐오하는 건, 네놈처럼 부정만 할뿐, 아무것도 하지 않는 개자식이다!!”
뽑아내, 나는 다시 한 번 주먹을 날렸다. 그것이 적중해, 가웨인이 뒤로 나가떨어졌고,
“큭…!”
나는 녀석의 위에서 정신을 차렸다.
현실로 돌아왔다. 아니 현실이 아니라 그것이 가상과 뒤섞인 세계였다. 나는 손에 스파다가 잡힌 것을 통해 그 사실을 깨달았다.
하지만 가웨인은 움직임이 없었다.
녀석은 축 늘어진 채, 거칠게 숨을 몰아쉬며 멍한 눈동자로 날 올려다보고 있을 뿐이었다.
“계속 누워 있어, 머저리 자식.”
“젠, 장….”
나는 그런 녀석을 놔둔 채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리고 발견했다.
어느덧 주변에 모여든 기사들을.
“….”
트리슈와 모드레드, 베디비어.
그리고 헥터와 라이오넬까지.
나는 순간적으로 당황해 자리에 멈춰 섰다. 다들 언제부터 나와 가웨인의 전투를 지켜보았던 걸까. 제각기 복잡한 표정을 지은 채 서있던 중 베디비어가 내 쪽으로 천천히 다가왔다.
“빠져나가죠.”
그리고 싱긋 웃어보였다.
“…. 그래.”
어쩐지 다리에 힘이 풀려, 그런 나를 베디비어가 부축했다. 하지만 이윽고 나는 몸이 붕 들리는 것을 느꼈다. 아예 베디비어가 날 안아든 것이었다.
그리고 뒤를 돌자, 라이오넬의 모습이 보였다.
어느새 특유의 바이크 헬멧을 벗은 녀석이 나를 바라보며 서있었다. 깊은 눈동자가 나를 한 번 쓱 훑고는 이내 옆으로 비켜섰다.
“뭣…. 그냥 보낼 거야?!”
거기에 헥터가 흥분해 달려들었다. 하지만 녀석은 아무렇지도 않게 고개를 끄덕였다.
“밤이 지났으니, 우리의 시간은 아니다.”
“병력 동원해서 지역 봉쇄하고….”
“정보상의 앞에서는 통하지 않는다.”
“헤에, 말이 좀 통하네. 라이오넬.”
그렇게 말하는 두 사람의 뒤를 이어 뒷짐을 진 트리슈가 웃으며 다가왔다. 라이오넬의 앞을 지나치며 싱긋 웃은 그녀가 이내 내 쪽을 돌아보았다.
“그럼, 트리슈가 안내할게.”
“저는 호위를 하겠습니다.”
마지막으로 모드레드까지.
조금 어깨에 힘이 풀리는 것을 느끼며, 뒤를 이어 나는 허공으로 몸이 부웅 떠오르는 것을 느꼈다.
바닥에 쓰러진 가웨인은 미동조차 하지 않았다. 그렇다고 라이오넬이나 헥터가 다가가는 것도 아니었다. 나는 거기에서 그것이 결국 가웨인이라는 생각을 했다.
스스로가 일구어낸 결과일 뿐이었다.
◇